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야미나는 잠에 몰려 하루를 적어별것도 아닌 일 몇 개와 도저히 적지 않을 수 없는 일 몇 개를 불성실하게 써통째로 옮겨 놓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바닥에 배를 깔고 턱을 괴는 것은 필수야일기를 적는 몇 가지 원칙. 1. 간신히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만2. 가장 중요한 내용은 덜어내고진심이 촌스럽게 잘려. 사방에 흩어져몇 개는 그 날의 꿈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아. 버린 마음들은, 현실에서 질식하는 진심은 살아남으려고 몸을 틀.


아야미나는 잠에서 일어나면 꿈을 적어꿈이 오래지 않아, 없었던 일처럼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다는 허무.를 허무려고잠이 덜 깬 상태에서 띄엄띄엄 적어가정성스럽게 한 페이지를 다 채우는 날도 있는데정신이 들어서 읽으면 해독할 수 없는 오타로 가득해어떤 날은 "엄청난 꿈이었어"라는 말만 적혀 있어서, 그날은 일어나서 '엄청난 꿈'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 것이 나의 일이야. 


아야미,

종이학을 접을 때정사각형의 종이를 반으로 접는 '순서'를 건너지 않고 날개를 펼 수 없듯이당신은 원하지 않아도 두 개로 나눠진 세계에 '차례'로 도착하는 왕복을 반복해야 해꿈에서 깬 당신은 꿈을 받아 적고오늘의 끝에선 당신은 오늘을 받아 적는-각각 한 차원에서 가능한 한 가지 일들을 맞아그러나 


'꿈에서 막 깬 당신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늘을 받아 적었다.' 어떨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 없는 순환이 시작되겠지더 이상 두 세계를 왕복하지 않는다면 꿈과 오늘을 나눌 수도나누려는 이유도 존재하지 않겠지종이접기를 시작한 적이 없는데, 손끝은 날개를 펼치려는 장면에 닿아 있어.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는 만들지 않은 종이학이 부유해그곳에는 꿈도 오늘도 모두 '행방불명'해서 '무엇을잃어버렸다는 느낌도 없고, 그래서 그것을 '찾으려는'것도  무의미해띠를 잘라내 하나의 완전한 고리를 다시 만들기 전까지그러나 그 띠의 둘레를 걸으며잘못된 곳을 찾는 것은 어떤 시간 속에도 불가능하지아야미, 당신이 무심코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를 잘라내기 전까지 말이야당신이 머무는 모든 곳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아야미.


그러나 당신이 아니더라도, 두 개의 세계를 오가지 않고 오로지 한 곳에서만 살기로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아는 당신은. 그들과 이야기 할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미리 말해주는 사람처럼 아야미. 친절하게 당신의 꿈 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구나. 몇 개의 직업과 몇 개의 얼굴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 당신의 진짜일지 궁금하지 않아. 중요한게 아닐테니까. 그러나 나는 충실하고 성실하게 오늘과 오늘을 매일 건너서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를 엿보고도, 진심을 온전하게 한 곳에 적을 수가 없구나. 다만 당신의 세계를 나에게 빗대 그곳은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지. 그렇다면 아야미. 당신은 나의 세계, 모든 곳이 잘못되었다면, 네가 건너고 있는 두 세계는 온전한가. 묻겠지. 대답은 매일 '촌스럽게' 뜯긴 자국들이 붙잡아 놓았던 책의 구절로 대신할게. 한밤의 일기보도, 뱃사람들을 위한 바다의 일기예보. 내가 결코 들을 적 없던, 시작되는 말 사이의 무수하게 찍힌 온점들로.


한낮의. 기온. 섭씨. 삼십. 구도. 바람. 없음. 그늘. 없음. 여니에게. 전화해. 주세요. 삼십. 구도. 바람. 없음. 그늘. 없음. 한낮의. 도시. 신기루. 현상이. 나타날. 예정. 바람. 없음. 구름. 없음. 하늘. 의. 색깔. 없음. 여니에게‥여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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