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당신, 풀릴 가망 없는 미스터리-겨울일기
첫 번째 이사는 월세 15만원이었다. 가끔씩 그 건물을 지나갈 때면 지금도 놀란다. 누군가 살고 있을까봐. 바닥은 따뜻할까? 라는 걱정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당시 그곳은 누군가 '살았다는 것'이 의심스러운 집이었다. 곰팡이가 주인이었다면 모를까. 그러나 군대에 간다는 세입자가 1년 하고도 6개월 살았다는 주인의 말에 쉽게 의심을 거두던 스무살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에게 위안을 받았다. 서늘하다 못해 축축한 북향. 빛이 아스라하게 들어왔다. 해질무렵이 아침보다 환했다. 무엇을 보고 따졌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무언가를 살폈고 근엄하게 계약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른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네 벽을 타고 물이 기어 올라왔다. 보일러 배관이 터져서 불이 돌지 않았던 것. 그것은 내가 점검할 수 없는 것이었고, 아니 점검하기 이전에 당연하게 배치되어야 했을 것이었지만 그랬다. 그래도 그때 마련했던 살림기구들이 여전히 쓰이는 걸 보면 선택이 모두 잘못될 수는 없다고 위로하고 싶다. 키티 밥그릇, 키티 접시, 키티..가 말갛게 마르고 있다. 그 후로 십년, 노련해졌을까? 살핀다고 살피고 들어왔지만 이웃까지 알 수는 없었다. 아랫층에 혼자 사는 95년생 돼지같은 꼬마가 새벽 다섯시까지 소리를 지르며 롤을 한다. 인터넷을 끊어놓고 싶다는 충동을 삼키며 귀마개를 다짐했다.
폴 오스터의 겨울일기는 몸-기억과 집-기억으로 이뤄졌다. 그는 '당신'이라고 자신을 부르면서 자신과 친밀하면서도 적정한 거리를 둔다. 몸-기억은 아주 사소한 감각에 시작해서 자신의 가족사를 살피고 예상 할 수 없는 풍경으로 성큼 나간다. 지나왔던 자신을 쓰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자신은 모두 알고 있었겠지만, 이것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되었던 예전의 감각 또한 많을 것 같다. 길고 가난했던 성적 충동을 설명하는 대목을 보자. 이렇게 자세하게...당시에 지배적이었을 분노·흥분 등의 감정을 놓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한다. 자신이 어떻게 들볶였는지, 어떻게 굴복했는지 부풀리거나 은폐하지 않고 서술한다. 위트마져 적는다. [당신은 끝날 줄 모르는 성적 흥분의 고통과 좌절 속에 살면서 1961년과 1962년 내내 매달 북미의 자위 기록을 갱신한다. 52] 그럴리 없겠지만 그랬다는 고백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발달하기 전에 폭발해 버린 본능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이제 할아버지에 가까운 그는 그것에 시달렸던 청소년기를 짖궃게, 그러나 아련한 시선으로 되돌아본다.
몸-기억은 집-기억으로 변한다. 무려 55페이지에 이르는 21번의 이사 기록은 단순히 집을 옮겼던 기록으로 볼 수 없다. 소라게처럼 집을 쓰다가 벗는 것은 자신의 변화를 분명히 수반하기 때문이다. 집이 있던 지역, 당시의 상황, 같이 있던 사람이, 나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황이 달라진다. 모두 자신이 살아왔지만 그것은 모두 다른 자신이기 때문에 한 번도 만날 수 없던 타인의 삶 21개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집마다 창의 크기가 다르고 들어오는 햇빛의 각이 다르듯 절망의 조도 또한 다르다. 그가 살았던 16 번째 집을 보자. 예감하겠지만, 가장 절망스러운 집이었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그 진입이 아무렇지 않다.
[이웃들 전부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지만, 더치스 카운티의 이웃들에 대해 제일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그 집에서 일어난 비극들이었다. 예를 들면 다발성 경화증으로 쓰러진 스물여덟 살 여인, 스물다섯 살 딸이 지난해 암으로 죽어서 슬픔에 잠긴 중년 부부, 술로만 연명하다가 뼈와 가죽만 남은 부인과 그녀가 쓰러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다정한 남편, 그 집들의 잠긴 문과 내려진 커튼 뒤에는 너무나 많은 고통들이 있었고 물론 당신의 집도 그중 하나였다.99]
잠긴 문과 내려진 커튼 뒤에 너무나 많은 고통, 그리고 그것에 도착하는 곳이 마침내 폴 오스터 자신이라는 서술은 절망이 귀하고 유별난 것이 아니라 흔하고 별스럽지 않은 것임의 증명이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껏 겪어 본 세월 중에서 의문의 여지없이 가장 절망적인 세월이었다. 99]라고 절망의 크기를 열심히 그려내면서(그의 첫 번째 결혼생활이 파경을 맞는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겪은 절망과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를 또 열심히 적는다. 절망스러운 집을 관리했던 사람을 설명하는 구절을 보라. [이웃은 쿠바 태생의 명란한 여자로, 조용한 미국인 정비공과 결혼했고 유리로 된 코끼리(!?) 상을 수집했다. 100] 자기도 이런 자세한 설명이 겸연쩍었는지 코끼리 뒤에 (?!)부호를 적어 놓았다. 나는 코끼리(더욱이 유리로 된) 상을 수집했다는 이야기를 왜 적었을가 생각하다가 코끼리상으로 꾸며진 집을 생각하며 실풋 웃고 말았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절망 속에 적는 것은, 절망의 결에 한가롭게 흐르는 보통을 잊지 말라는 뜻일까. 어쩔 수 없이 절망하면서도 또 어쩔 수 없이 웃게 되는 일을 기억하라는 것인지도. 주어 빈 자리에 굳이 '인생'이라고 쓰기엔 촌스러우니 그냥 비워놓기로 한다. 그렇게 21 번째 이사를 끝으로 작가는 현재에 도착한다. 내가 월세 15만원을 떠올리고 7 번째 이사에 도착한 것처럼, 누구나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이야기를 오십페이지쯤은 갖고 있다는 귀띔인 것 같다.
<겨울일기>는 여러모로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떠오르게 한다. 필립 로스의 그것은 짧고 강렬하고, 손 쓸 틈이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지만 겨울일기는 작고 작은 이야기가 남겨둔 여백에 푹푹 빠져 나의 그때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보다 더 반성적이고, 보다 더 감상적이다. 그러나 폴 오스터의 문장은 문득 마법이라서 책을 덮기까지 당신은 그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당신은 의식적으로 모든 사람이 되기로, 가장 완전하고 자유롭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당신 안의 모든 이를 포용하기로 했다. 당신이 누구인가는 미스터리고 그 미스터리는 영영 풀릴 가망이 없으니까. 128] 내가 풀릴 가망이 없는 미스터리였다니.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지만...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지? 큰 비밀은 대체로 허탈한 것일까. 귀마개를 고르면서 아랫집 돼지꼬마가 학교에 갈 날을 생각한다. 그 꼬마는 조금도 기다리지 않을 개학날을 내가 대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떤 상관도 없었던 아랫집 고등학생의 방학을 셈하게 될 줄이야. 앞으로는 또 얼마나 동떨어진 일들을 마주하게 될까.
이쯤에서 폴 오스터의 말을 살짝 고쳐도 좋을 것 같다. '당신, 풀린다면 이상한 미스터리.' 그래서 우리가 일기장에 삶의 비밀 같은 것을 아무리 풀어 놓아도, <겨울일기>처럼 대대적으로 들킨대도 걱정할 일 없다. 결코 당신이 누구인가는 밝혀 지지 않으니까. 당신의 내일은 분명히 오늘보다 더 미스터리 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