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에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좌판이, 검은 색 그늘막이 상시 걸리는 시장이 있다. 


부대끼는 것 아니고 폭신한 조끼와 얄팍한 등산 점퍼의 아주머니들을 살갑게 지나는 거다. 어느새 한적한 대로다. 큰 길에 나오면 건너편으로 끝 모르고 이어진 담장이 잘 보인다. 그 담장은 사적을 정비하며  세운 것으로. 예전 아이들이 '사방팔방'을 하기 위해 땅바닥에 선을 그리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여 기-우리가 약속한 세계를 보존하기 위한 금. 땅바닥에 공들여 선을 긋는 일과. 수천년 자신을 지켜온 저 사적에 담장을 두르는 일은  무엇이 다른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 아이들의 놀이라고 해도 금이 그어진 이상 누구도 어길 수 없는 공간인 것이다. 공들여 길게 자리한 담장을 보면 금이 흐릿해질 때마다 힘주어 눌러 그은 돌맹이의 감촉 같은게 가끔 떠올랐다.


대대로 이곳에 살아 지낸 이들에게 그런건 번잡하고 거충장스러운 치장에 지나지 않았지만, 외지에서 오는 이들에게는 벌써부터 고조, 긴장을 불러모으는 표시였다. 나는 아주 멀리에서부터 그런 담장을 기다려왔고. 그 주변을 오래 걸어 만나게 되는 석탑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석탑이 지척에 있다는 것을 생각치 않는 이곳, 주민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곳에 가면 오층으로 단정한 어깨가 있다. 석탑은 한층 한층 하늘에 닿는 높이가 달라 보여주는 풍경 또한 달랐으며. 나는 눈으로 처마 선을 따라 그리는 것을 인사 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조금 비스듬한 고개가 되었고, 점잖고 단정한 이가 작은 탈선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석탑은 점심을 풍기며, 그것이 닭곰탕이나 청국장이라도 가리지 않고 만나주었고 굳이 그를 보러 가지 않아도 얼굴을 보여주었다. 움직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때 나는 석탑을 너무 자주 보지 말자 라는 이상한 마음을 먹었었는데. 그곳에 사는 이들 아무도 석탑을 부러,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미뤄두고 싶다. '그 앞에서 자연스러운 눈을 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 석탑과 나 사이를 그럴듯 하게 터 놓을 수 있었다. 나를 그 옆에 바로 세워두지 않아도 '언제나' 눈가로 석탑의 처마가 떠오를 때. 그 선을 따라 도착한 저녁이 궁금할 때, 나는 최선을 다해 달려갈 수 있었으며, 언제라도 그곳에 석탑이 있다는 사실이 약속 같은 것으로 믿어질 무렵의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일하는 중에도 웃음이 잘 났으며, 


수천년 굳은 어깨를 아무도 없는 밤중에 으쓱거릴거라는 생각을 낳기도 했다. 그길은 조 금 걸을까요. 라는 말을 하기 좋았고 그건 누구의 물음 없이도- 스스로에게 건네도 좋았다. 석탑이라는 말에 고즈넉한 곳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낮의 정림사지는 실은 재재했다. 바로 옆에 부여 중학교가 있기 때문인데 '부여 중학교', 부여를 떼고 보면 그냥 '중학교'로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와 교실에 다금다금한 아이들의 소리가 석탑 가까이 있었다. 담장 밖에는 바스라져 뜻을 알 수 없는 음만 들렸는데. 석탑의 가까이 가면 복도의 발소리, 계단을 뛰내리는 소리, 아이들의 목소리가 잘 들릴 것이었다. 부여에 있은지 오래 되어 나는 사적지에 들어가 관광객처럼 석탑 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 밖 담장에 기대 한 점심 앉아 있다 오는 일이 석탑을 보는 거였다. 그 밑에서 나는 이달의 우표를 삼월, 사월, 오월을 한꺼번에 꺼내보았고. 편지의 대부분은 부치지 않았으며, 봉한 편지들 중 대부분도 서랍에 두는 것으로 계절을 보냈다.

 

석탑의 키와 나의 키를 더한 이만큼을 남겨두는게 좋았다. 등을 맞댄 거라고 생각했다. 편지가 잘 보였을 것이다.




+

제주도의 '돼지'처럼 아고리는 엄청 힘을 내고 있어요. 참기 힘든 괴로움 가운데서도 믿을 수 없을만큼 강령하게 욕구가 일어나 작품을 마구 그려내고 자신감이 넘쳐....넘쳐....터질 것만 같은 이 아고리, 성실하고 훌륭한 남덕 씨를, 나의 유일한 현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 같은 거라오. 

1954. 1. 7

<이중섭 편지>



+

편지는 받을 사람이 정해져 있는 글로, 서로를 제외하고서는 읽을 수 없어서 서로에게 활짝 열린다. '그런 편지'가 출간되는 건 쓴 사람과 읽은 사람이 지나온 거리를 다른 이들이 서성이게 두는 것에 다름아니다. '우리'라고 하자. 편지에 적힌 '서로'를 제외하고 남은 '우리'들은 편지의 바깥에서 그것을 읽는다. 편지에는 사이가 있고, 사이에는 서로의 키를 더한만큼의 거리가 있고, 그 거리에는 이렇게 서로를 포개놓으려 움직였던 안타까운 시간이 있다. 우리가 자주 잊는 것은, 사랑으로 가득찬 편지일수록 그 밖에는 그렇게 쓰고도 전하지 못한 '자신'이 편지 바깥에 남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편지를 읽는 '우리'의 자세는 편지 속의 아름다운 '서로'가 되려는 걸 가까스로 달아나, "참기 힘든 괴로움 가운데" 남아 있는 사람을 생각하는 일 아닐까.



편지와














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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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천년 굳은 어깨를 아무도 없는 밤중에 으쓱거릴 석탑˝ 이런 표현은 신춘문예 당선작 같은 데서 보는 멋진 표현인데!
아름답고 끝없이 적혀서 보내지는, 편지와 편지와 편지...였어요.

봄밤 2015-04-01 15:14   좋아요 0 | URL
...부분을 계속 읽습니다.
아갈마님. 정말 봄이네요. : ) 아갈마님 서재에 마음 호강합니다. 자주 들려요. 계속 써주시기를요!

AgalmA 2015-04-0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내가 이곳에서 뭐하고 있나, 한심하게 느껴지는데, 꼭 그럴 때마다 봄밤님 같은 벗들의 마음의 편지가 당도해서 또 주저주저 하며... 저도 봄밤님의 기필코 시로 가려는 글 읽는 게 정말 좋습니다! 늘 기운 잃지 마시길 멀리서 기원합니다.

봄밤 2015-04-02 22:07   좋아요 1 | URL
몇 번을 썼다가 지웠는데요, 그 사이 그냥 있기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마도 아갈마님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이야기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해주고 계시지요. 읽을 수 있는 글은 많지만 읽어야 할 글은 찾기 어려운 가운데,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