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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평점 :
그럴 수도 있는 세계의 탄생-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이 원자폭탄 때문에 내게 화가 나지는 않았어요?
뭐.....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p. 221.
<셈을 잘하는 까막눈이 여자>의 스토리는 '그럴 수도 있죠'를 기반으로 한다. 물론 다섯 살 때부터 분뇨통을 나르던 놈베코의 인생은 '그럴 수도 있죠'로 얼버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떠나서 영양 육포와 바뀐 핵폭탄과 스웨덴에 도착하는 것이 과연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인가? 두어 번 살게 되면 그때나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 쌍둥이로 태어나 하나의 이름으로 사는 홀예르 1,2의 삶은 어떤가. 물어보기도 전에 튀어나오는 본멘 소리. 이게 말이 돼? 기가 차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며 페이지를 넘긴다. 시도 때도 없는 코미디다. 신음하는 홀예르2의 삶에 웃고 있는 모습이라니.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수밖에.
핵폭탄이라면서, 실은 수조의 거북이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돌보지 않는다. 거북이라면 밥도 주고 똥도 치우고 일광욕도 시키고... 거북이 어떻게 될까봐 노심초사 그밖에 것을 더 생각하겠지만. 폭탄을 집에 두고는 독자만 전전긍긍하게 해놓고뾰족한 대책 없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리고는 그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라는 대답을 이 먼 곳의 독자에게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의뭉스런 스토리에 걱정이 되는지, 이렇게 극중 인물을 빌어 묻는다. '이 (원자폭탄)소설 때문에 내게 화가 나지는 않았어요?' 라고. 놈베코는 능청스럽게 '뭐...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라며 넘기지만 간단히 말해 내 대답은 가차 없다. 당연히 화나지 이 양반아! 어떻게든 전해지길. 요나손의 진지한 답변을 듣고 싶다.
성석제가 떠올랐다. 군더더기 없는 간단한 문장만으로 논리적인 세계를 쥐락펴락한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상한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인물인데, 우울이나 슬픔이라고는 없는 비극을 살아내느라 고통조차 희화화 되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열심이다. 한편으로는 우울과 슬픔이 허락된 이 세계에서 고통을 고통으로 알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곳에 있는 '유머'만큼 끔찍한 것도 없을 테니까. 여기까지 미치자 비로소 유머가 어떤 마음에서 존재 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할 수 있었다. 유머는 슬픔을 온전히 슬퍼하는 마음에 실은 후에야 존재할 수 있는 형식이라고.
그래서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유머 감각을 지닌 광신도는 아직껏 본 적이 없다-아모스 오즈> 오호라. 이 소설을 특히 추천하고 싶은 분들이 떠올랐다. 옳고 그름을 가늠하지 않은 채 굳건하게 지켜야할 '믿음'만 있는 광신도처럼,근엄하게 유병언 일가의 수사(?)결과(?)를 발표하지만 말을 맞추지도 협력하지도 끝내는 무엇조차 믿을 수도 없게 하는 그분들과, 뭐 발표만 나면 릴레이 경주 바톤터치 하듯 기사를 까는 그들에게.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진상을 밝히는 노력이지 우스꽝스러운 '믿음'의 간증이 아니다. 여기 그들에게 심각하게 부족한 '유머'라는 덕목이 가득하니, 진지 좀 그만먹고 책을 좀 보세요, 놈베코의 생각을 보낸다.
놈베코는 이 휘발유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공동변소에서 분뇨통을 두어 개 비워 보면 시야가 좀 더 넓어질 텐데.....p. 242.
이렇게 능청스러운 말들이라니. 그러면서 굳이 꺼내지 않는 아픈 말줄임표라니. '셈까말'에는 원자폭탄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존재하지 못하는 삶을 조금은 아쉬워 하면서도 현재에 살기를 멈추지 않는 주인공들이 있다. 삶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자꾸 삶에 닿고 싶게 하는 유머의 힘을 들여다 보길. 나는 창문 밖으로 도망쳤다는 백세 노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것도 상쾌하다면 그분들께 또 추천할 생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