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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에두아르도 라고 외 지음, 신미경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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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을 두 배 빨리 하고 싶었던 열린책들>
이 책은 2010년 로베르토 볼라뇨에 대한 글로 엮어 낸 프랑스의 잡지 『시클로코스미아Cyclocosmia』 3호의 내용과 국내 필진의 글을 함께 실은 책이다. 국내외의 작가, 비평가, 번역가, 그의 주변 인물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로베르토 볼라뇨를 주제로 작가론, 작품론 등의 비평과와 더불어 그에 대한 에세이와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오마주 작품을 담았다.
이 책은 볼라뇨의 해설이 아니며, 볼라뇨를 성심껏 분석한 글도 아니다. 한바탕 볼라뇨에 취한 사람들이 모여서 저마다 자신을 통과한 볼라뇨를 그려놓은 화집이다. 어디서 뻗어나왔는지 선을 도통 이해할 수 없으나 색채 하나는 화려해서, 감염의 동일한 증상인듯하다. 한 작가의 화풍을 다 알기도 전에 그를 해석한 각각의 프리즘을 보는 것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야말로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이다.
볼라뇨의 계산법? 그것은 <문학+병=병>이다. 어차피 일체가 파국으로 치닫고 종국에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라해도, 그 종착지가 어디든 쉬지 않고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 아마 이렇기 때문에 언뜻 보면 무덤덤해 보이는 그의 몇몇 픽션들 역시 아무런 명확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마치 이야기의 전개 자체가 갑자기 중도에서 유예된 것처럼 끝맺는지도 모른다. 216
어느 순간은 아니었겠으나, 볼라뇨는 어느날 색색의 표지와 무려 나무로 짠 '전집 케이스'에 나타났다. 길게 등장한 가운데 실제로 읽은 것은 몇권에 지나지 않아서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이 날뛰는 책을 진득히 볼 수 없었다. 감염 되기도 전에 감염기를 읽는 것은 오히려 몸을 잔뜩 세우는 일이지 않나. 걸려들지 않으려고 면역력, 마음의 경계를 높인다.
필진들의 광란과 불편함 사이에서 안정을 찾았던 것은 마지막에 우리나라 필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그들의 이해가 적어도 누군가를 통해 번역된 것은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심. 둘째. 처음 볼라뇨를 만났을 거리가 어쨌든 나와 동일했을거라는 위로가 있었다. 그러나 함정은 장정일, 금정연도 어지간히 취한사람들이었다! 장정일은 마지막 페이지를 세상에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대한 그림을 그렸는데, 봐주기 어려울 정도다. 부제가 그림을 채우는 상황이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제일 마지막장은 볼라뇨의 여러 작품을 번역했던 역자였다.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그는 감염기를 감추고 비교적 차분하게 볼라뇨의 생을 짚고 그의 문학세계를 짚어주었다. 특히 로베르토 볼라뇨의 삼각형은 얼마나 유용한지, 앞으로 그의 작품을 접할 이들에게 듬직한 지도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삼각형이라니. 그의 소설은 각각 지향하는 바가 삼각형처럼 다르다니. 그래서 역자는 마지막 장에 '지금, 볼라뇨를 읽어야 할 이유'를 정리해 놓았다. <그러하니 볼라뇨를 읽는다는 것은 추악한 현실을 보는 것이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 모두가 그 현실의 공모자인 한 그의 문학을 추적하는 일은 불편한 모험이다. 부디 누구든지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모험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313> 대답 대신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이제 열린책들 볼라뇨 박스 풀셋 앞에서 말없이 기웃거리는 수밖에. '방법'이,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