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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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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의 하드케이스 여행가방, 그 옆에 고급스러운 브라운 색 가죽가방. 그 위에 자연스럽게 말아올라간 여행모자. 반쯤 열린 현관에 짐을 기대 놓았다. 가뿐하게 채비를 마친 가방들은 주인을 기다린다. 여행의 기대 때문일까, 바깥은 '바닥'마저 눈부시다. 그러나 생활로 머무는 안쪽은 벽돌의 그림자며 색이며 하나같이 명확하다. 더이상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또렷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책을 덮어도 표지는 그대로다. 사진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현관을 나서지 않을 가방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렘만을 보여준다. 사진은 시간을 멈추므로, 이 평화로운 표지로는 난과 핑핑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어제라는 24시간짜리 예고편도 내일을 확실히 감지 해 본 적 없듯이. 중국 아니라 미국에서의 삶, 두 개의 언어와 두 개의 생활에서 난은 두 번의 고비를 찾아간다. 새로운 나라에서 정착이 한 고비였다면, 다시 휘청이는 고비는 ''.

 

'자유로운 삶'은 무엇일까. 이 물음은 하나다. 그러나 그 대답은 여러개를 낳고, 정답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핑핑이 대답하는 자유로운 삶과 타오타오가 대답하는 자유로운 삶, 그리고 난이 대답하는 삶은 모두 다르다. 모두 다른 방향을 가르키는 삼각형의 모서리처럼,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각자의 욕망은 멀어질 뿐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모두 '자유'를 이야기 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난의 삶은 그의 가족으로 지탱되지만 동시에 그의 자유가 사랑하는 가족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견디기 어렵다. "나는 그런 헛소리 못 받아들여요. 내가 왜 희생을 해야 하죠? 나는 이미 충분히 희생했어요. 게다가 '희생'이란 우리의 비겁함과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뿐이에요. 내 아들한테는 자기 인생이 있고 나한테는 내 인생이 있어요." 139

 

소설은 정직하다. 미국에서 사는 이야기, 자전적인 자신의 삶을 어떤 수사나 특별한 장치 없이 3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말한다. 팍팍한 빵을 씹는 식감인데, 이 무딤에서 맛이 찾아온다. 작가가 알고, 내가 아는 공통의 맛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야기가 솔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나 또한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날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 난 타오타오는 그에게 '두시백'*이라고 했다. 난은 그 말을 알지 못했다. 사전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았다. 한번은 아들에게 철자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알려주지 않으려 했다.' 157 난은 그러면서 딸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장을 맺는다. 무슨 의미냐고 묻는다면 별 의미 없다고 답할 수밖에. 그저 이 쓸쓸함을 알아주길 바랄뿐이다. 가족은 노력과 관계 없이 자꾸만 부딪히며 상처를 준다. 이런 장면이 감정을 배제한 채 자주 나온다. 마음 없어서 더 남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줄기 중에 난의 막내 동생 닝이 이민을 고민하며 난에게 묻는 대목을 기억해야 한다. 난은 막내 동생이 늘 어린애였고, 그에게는 외국에서 몸부림을 치며 살아갈 힘이 없었다 335고 기억한다. 그러나 난 역시 미국에 올 때, 그 같은 걱정을 말 없이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낯선곳을 개척하고 말고의 문제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달려있는 일이라는 것을 난은 알지 못한다. 닝은 말한다. "외로움은 두렵지 않아. 희망이 없는 것보다 낫잖아. 여기는 완전히 망가졌어."336 마음을 크게 움직였을 말에도 불구하고 난은 닝의 나이와 닝의 어학능력, 그밖에 그가 오스트레일리아로 갈 수 없는 이유를 댈 뿐이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 난이 바랬던 모습일까? 난은 자신이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못견뎌 하면서도, 다른이에게는 '현실'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한다. 다시 '자유로운 삶'이라는 질문으로 돌아오자. 자신에게 올 때와 다른이에게 갈 때 다른 기준을 부여하는 것. 삶의 어깨가 어긋나는 장면같다.

 

다시 돌아와. 난은 미국에서의 생활이 안정될수록 그 상태를 경계한다. 그에게 쓰는 문제는 다른 삶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자유가 '자유'로 있을 수 있는 삶. 보통의 삶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 그는 재능과 주어진 여건과 관계없이 '쓰기'를 지속하지 못하는 것을 죄스러워한다. 쓰는 것의 결과가 무엇이던가에 써야한다. 그러나 난이 시에 집중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생활과 멀어지는데, 여기서 핑핑과의 불화를 막을 수없다. 그러나 난에게 '인간은 삶을 완성할지아니면 작품을 완성할지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문제는 지금의 삶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결국 시를 쓰고, 발표한다. 더 이상 가게를 유지 할 수 없어 정리하지만 모텔 카운터를 맡아 생활은 유지할 수 있다. 난은 이 일이 아주 마음에 든다.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지 않고 생각하며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이 안온을 오래 오래 유지하기를 바라며 소설은 끝난다해피엔딩인가?  고뇌 끝에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는 이야기일까. 이런 결말은 중요하지 않다. 내게 이 소설의 끝은 이보다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을 정리하기 전, 돈에 대한 혐오를 견디지 못하고 난은 가게 카운터의 현금을 꺼내 돈을 불태우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야말로 미친것이다! 그러나 이십분 후 난은 제정신으로 돌아와 가지를 썬다. '핑핑이 체로키 농부 시장에서 골라서 산, 부드럽고 씨가 없는 가지였다. 그는 할 일을 하면서 아주 조용히 나머지 하루를 보냈다.' 418 방금 전까지 돈을 꺼내 태우다가 멀쩡한 모습으로 가지를 하루종일 잘랐을 난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나는 이 이십분이 '자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미칠 수밖에 없었던 이십분. 조용히 소리가 남는 도마 위. 또 무엇이 빛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은밀한 미침의 순간을 제외하고 나면 말이다.

 



 

*douch bag 얼간이라는 의미의 속어

**윌리엄 예이츠의 <선택>의 일부 379p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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