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 노자의 길과 장자의 길 사이에서
강신주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국 장자 철학은 매개 제거를 위한 수양론, 그리고 조우한 타자와의 생생한 소통의 모습을 기술하는 데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이 점에서 장자 철학은, 비록 삶이 직접적인 타자와의 소통 속에서 정립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타자에 대한 경험과 새로운 주체 형식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는 침묵할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전망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전망 혹은 미래에 대한 전망에 속한다. 그렇다면 비록 장자 철학이 주체와 타자 간의 무매개적 소통이라는 현실을 영원한 현실 혹은 영원한 순간으로 매우 섬세하게 포착해서 기술하고 있다 할지라도, 무매개적 소통의 진실은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경험할수 없는 그런 사적인 것에 머물게 된다. 소통의 즐거움은 오직 나만이, 혹은 잘해야 주체와 타자만이 공유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즐거움에는 애초에 직접적인 주체와 타자를 제외한 다른 제3자가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그러나 주체와 타자 간의 갈등이 과연 주체와 타자만의 문제일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런 갈등은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층위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비록 장자가 기존의 모든 이념들에 대해 냉철한 비판의식을 유지했다고 할지라도, 철학은 기존의 삶의 형식에 대한 비판과 수양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철학은 기존의 삶의 형식과 질적으로 다른 주체및 타자 형식, 즉 주체와 타자를 거듭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의미체계를 우리에게 던져주었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법이니까. 바로그때서야 이념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철학의 진정한 역할이 완수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장자에게서 배우게 되는 마지막 교훈일 것이다. 새로운 체계, 새로운 의미, 나아가 새로운 주체를 우리의 힘으로 구성하라는 것!
이제 장자로부터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언제 다시 우리가 장자에게 돌아올지 기약은 없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는 전혀 다른 주체로 변형되어 돌아와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를 가르쳐주었던 장자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 P6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 노자의 길과 장자의 길 사이에서
강신주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유란 그래서 새롭게 정의해야만 한다.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서 한 상태를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능력‘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의미를 생산한다는 것은 홀로 남겨져서 이리저리 몽상에 빠지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의미란 특정한 주체와 특정한 타자를 생산하는 선험적인 관계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의미란 주체와 타자를 동시에 함축하는 개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주체 홀로 이러저러하게 새로운 의미를 구성할수는 없다. 그것은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 P6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 노자의 길과 장자의 길 사이에서
강신주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자와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동일성을 무너뜨리는 어떤 힘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관조의 대상이나 풍경이 결코아니다. 그것은 삶의 차원에서 사건으로 나에게 닥쳐오는 것이다.
내면과 외면이라는 구조 속에서 결코 포착되지 않는 그 무엇이 바로 타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면과 외면이라는 동일성의 구조를 와해시키는 사전에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타자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아이처럼 귀하게 키웠던 새끼 호랑이가 어느 날 자신의 손을 무는 것처럼 그렇게 타자의 타자성은 우리의삶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흔적을 만든다. 비유하자면 타자는 아름답고 고요한 호숫가에 앉아서 바라보는 자연이 아니라, 거친 대양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릴 것 같은 폭풍우와 같은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거친 폭풍우를 대양 속에서 경험하고 살아 돌아온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타자와 차이를 겪었고 경험했고, 그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 P5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모든 현실주의자들은 특정한 관념체계만을 유일한 현실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관념론자라고 할 수 있다.
고착화된 관념론에 불과한 이른바 ‘현실주의‘라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관념( = 이념)을 고안하고 이것에 어울리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야만 한다. 바로 여기에 철학의 존재 이유가 있다. 철학이 이런 새로운 이념의 창조 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일 수 있겠는가? 따라서 철학은 주어진 현실을 정당화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철저하게 비판적인 사유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 좁게는 철학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기존 제도권 내의 인문학과 철학이 창조의 작업을 한 번이라도 수행했던 적이 있었는가? 우리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나라에 인문학이나 철학이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솔직한 술회로부터 우리의 철학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이 넘어진 자리에서만 일어나야 한다. - P4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거절은 선택이고, 모든 침묵은 목소리이다. 우리의 수동성조차 우리 의지의 소산이다. 선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선택해야한다. 선택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 P1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