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현실주의자들은 특정한 관념체계만을 유일한 현실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관념론자라고 할 수 있다.
고착화된 관념론에 불과한 이른바 ‘현실주의‘라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관념( = 이념)을 고안하고 이것에 어울리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야만 한다. 바로 여기에 철학의 존재 이유가 있다. 철학이 이런 새로운 이념의 창조 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일 수 있겠는가? 따라서 철학은 주어진 현실을 정당화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철저하게 비판적인 사유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 좁게는 철학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기존 제도권 내의 인문학과 철학이 창조의 작업을 한 번이라도 수행했던 적이 있었는가? 우리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나라에 인문학이나 철학이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솔직한 술회로부터 우리의 철학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이 넘어진 자리에서만 일어나야 한다. - P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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