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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문답 - 東湖問答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50
이이 지음, 안외순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8389.동호문답-이이(2)
<동호문답>을 다 읽고 나니 가끔씩 해왔던 나의 '점강법'적 사고가 떠오른다. 그건 이런 식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 비해 수가 적을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는 철학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 철학책을 즐겨 읽지 않는 사람보다 적을 것이다. 여기서는 표현이 조금씩 달라진다. 내 경험상(내 경험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철학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 서양철학책을 주로 읽는 사람이 동양철학책을 주로 읽는 사람보다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동양철학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공자,<논어>,<맹자>,<대학>,<주역>,노자,장자,<손자병법> 같은 중국 고대의 철학을 다룬 책들을 읽는 사람이, 조선의 사상가들을 다룬 책이나 그들이 쓴 책을 읽은 사람보다 많을 것이다. 범주를 계속 좁혀서 사고해보니 나만의 결론이 하나 나온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조선의 사상가와 관련된 책들을 읽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그나마 조선 시대 사상가 중에서 많이 읽히는 이들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다. 다산 정약용이나 연암 박지원, 박지원과 함께한 북학파들을 다룬 책이나 그들이 쓴 책을 읽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유학을 대표하는 이황이나 이이의 책은? 개인적으로 독서모임을 10년 넘게 다녔지만, 그들의 책을 읽었다는 사람을 만나볼 수 없었다. 우리는 왠만하면 그들의 이름은 안다.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서 그들의 이름을 들었고, 시험을 쳤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폐에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아, 그 사람들'하고 모든 사람이 외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책은 읽히지 않는다.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이황과 이이는 유명하지만, 그들의 책은 읽히지 않는 상황. 저자의 이름은 유명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 그게 내가 파악한 이황과 이이의 책이 처한 상황이다.
시간이 남는 김에 이황과 이이를 파고들어가 본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이기이원론'과 '이기일원론'이 나온다. 이황은 '이기이원론'을 주장했고, 이이는 '이기일원론'을 주장했다는. 이건 너무 단순해보인다. 더 파고들어가보자. 더 검색해보면 이황은 '이기호발'을 주장했고, 이이는 '기발이승일도'를 주장했다. '이기호발'은 이와 기가 서로 함께 작용한다는 주장이고, '기발이승일도'는 '기가 작용을 하고 이가 그 위에 올라탄다'는 주장이라고 한다. 두 주장을 알려고 노력하다보면 당연하게 사단칠정논쟁이 끼어든다. 자, 여기까지 오고 보니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고 내가 뭘 알려고 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잠시 쉬려고 내 책장을 들여다본다. <동호문답>이 보인다. 과거에 한 번 읽은 적이 있는 책이다. 꺼내어서 읽기 시작한다. 과거에 처음 읽었을 때는 쉽게 읽히지 않고 어려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동양철학책을 열심히 읽었기 때문일까? 두번째 읽으니 손쉽게 술술 흘러간다. 과거에 읽을 때 나를 막아섰던 고사와 고사 속 등장인물들은 대충 파악이 가능하고, 과거에 나의 읽기를 가로막은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고문체의 말투와 어투도 동양철학책을 읽으면서 익숙해져서인지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술술 읽고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율곡은 누구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던 조선의 정치와 제도를 바꾸고 싶어했다는.
유학의 이상을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유학자라면, 난세를 만나 은거해서 살기보다는, 치세에 나서서 자신의 유학적 이상을 세상에 구현하고 싶어할 것이다. 입신양명하는 것이 그들의 길이 아니던가. 율곡도 마찬가지이다. 추상화되고 이상화된 '이'를 중요시하는 이황과 달리, 세상 만물에 존재하는 '기'를 통해서만 '이'가 작용이 가능하다고 외친 율곡이 '기'가 가득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출사표를 던지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동쪽의 호수에서 문답을 주고받았다는 이름의 <동호문답>은, 선조에게 바치는 책이면서, 그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담고있다. 유학자라면 당연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수기'에 해당하는 왕이 자신을 어떻게 갈고 닦아야 하는지에 관련된 부분도 있고, '치인'에 해당하는 어떻게 다스려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도 있다.
내가 관심있게 지켜본 것은 잘못된 법과 제도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율곡은 세금과 부역 부담자가 도망갔을 대 이 부담을 일족과 이웃에게 전가하는 일족절린의 폐단은 연좌제와 다를 바 없으므로 폐지하고 본인만 부담시켜야 한다고 했고, 국가에 진상하는 물품의 과도함으로 생긴 진상번중의 폐단은 국가에 긴요하지 않는 품목들에 대해서는 진상의 관행을 폐지하는 것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전들이 국가에 공물을 대납한 다음 강제로 백성들로부터 폭리를 취하는 공물방납은 전답 1결당 1두씩만을 징수하는 공물법을 참작하여 고쳐야 한다고 했고, 국가에 바치는 부역의 불균형으로 생업에 지장을 주는 역사불균은 국역자들의 생업과 휴식이 가능한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했다. 아전들의 뇌물 수탈을 가리키는 이서주구의 경우는 아전들이 불법을 저지를 수 없게끔 기초적인 생계가 가능한 수준의 급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이 부분을 읽으니 해당되는 문제에 대해서 너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서 청량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 일족절린과 방납과 균역, 아전의 뇌물 수탈 문제는 율곡이 말을 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어지면서 조선 후기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백성들의 삶의 비극을 초래하면서 조선 후기 민란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율곡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쉽다.
위에서도 적었지만 율곡은 자신의 개혁안을 선조에게 지속적으로 말했다. <동호문답>뿐만 아니라 다양한 책과 말을 통해서. 그러나 그의 말과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조는 그의 말이 너무 과격하고 시기상조라 여겼다. 하지만 조선 후기 역사를 돌이켜보면 율곡의 제안은 결코 시기장조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미래를 내다본, 현재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마땅할 정책이었다. 하지만 율곡의 미래를 내다본 제안은 무시되었고, 조선은 민란으로 이어질 내부적인 문제점들을 안은 채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 율곡 사후에 들이닥칠 임진왜란이라는 어둠과 더불어. 당당하고 기백 넘치는 청년 율곡의 기상이 가득한 <동호문답>에서 생생한 생명력과 더불어 어스름한 어둠이 느껴지는 건, 다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