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몰락
제임스 리카즈 지음, 최지희 옮김 / 율리시즈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화폐의 몰락-제임스 리카즈

<은행이 멈추는 날>의 제임스 리카즈 책을 또 읽었습니다. 아마도 전에 제가 그의 책을 읽고 토해낸 감정을 담은 글을 보고 또 그의 책을 읽을리는 없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다시 그의 책을 읽게 됐습니다. 흠~~ 써놓고 보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라서 '이러저러한 인연'에 대해서 밝혀야겠습니다. 모든 것은 우연에서 시작됐습니다. 알라딘에서 책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화폐의 몰락>이라는 제목을 봤습니다. '화폐의 몰락'이라고? 제목에 끌리는데 한 번 읽어볼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보니 없었어요. 없네? 어떻게 하지? 살펴보니 그 책을 쓴 저자의 다른 책이 읽는 거예요. 그게 <은행이 멈추는 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며칠 뒤에 가서 <화폐의 몰락>이라는 책을 빌려왔죠. 일단 <은행이 멈추는 날>이라는 책을 읽고 저자에 대한 연습을 하고 뒤이어 <화폐의 몰락>을 읽을 생각이었습니다. 계획에 따라 책을 펼쳐 <은행이 멈추는 날>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일단 책 앞부분의 저자 소개에서 '폭스뉴스' 부분에서 멈칫거렸습니다. '극우 매체이지만 뭔가 큰 문제는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임스 리카즈는 경제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전문가답게 멀쩡합니다. 물론 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음모론과 비관론의 기미가 보이지는 하지만 그것은 전문가적 식견에 의해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경제 문제 이외의 이야기를 할 때, 특히 정치 이야기를 할 때 그는 광기를 발휘합니다. 음모론과 비관론이 결합된 정치적 광기. 책을 정상적으로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읽기로 했으니 꾹 참고 다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이 책에 큰 의미는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책을 의미깊게 읽은 분들에게는 참으로 죄송한 얘기이지만, 저에게는 이 책이 음모론자의 광기에 가득 찬 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책 정도에 불과해서요.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습니다. <화폐의 몰락>이라는 양장본의 두꺼운 책이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거죠.

고민 따위는 없었습니다. 저는 지체없이 <화폐의 몰락>을 펼쳐 읽었죠. 책이 있으니까 읽는다는 듯이. 음모론은 문제없다는 듯이. 다 읽고보니 생각보다 훨씬 정상적인(??) 책이었습니다. <은행이 멈추는 날>과 비교해보면, 음모론의 강도는 훨씬 약해졌습니다. 저자 자신의 정치적인 광기는 잠깐씩 드러날 뿐, 거의 대부분은 저자 자신의 전문분야인 경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도 특유의 비관론은 여전했습니다. 저자인 제임스 리카즈는, 현재 달러 중심의 국제 화폐 시스템이 무너지고 새로운 국제 화폐 시스템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책 제목에 나오는 <화폐의 몰락>이 가리키는 화폐란, 세상의 모든 화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현재 달러 중심의 국제 화폐 시스템을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2007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의 최악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이 달러화를 시장에 마구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한 이래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달러화의 가치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약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달러화가 시장에 너무 많다 보니 가치가 하락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외의 다양한 원인들이 뒤얽혀서 달러화 약세가 이루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국제 경제의 관점에세 국제 경제에 관여하는 이들이 과거보다 달러화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과거보다 다수의 사람들이 달러화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달러화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죠.(단기적인 의미에서는 달러화의 가치가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라는 말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미래에 달러화 중심의 국제화폐 시스템이 무너지고 새로운 국제화폐 시스템이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래의 가능성으로서의 사건은 절대적인 것은 없거든요. 저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은 가능성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능성이 가능성을 넘어서서 확신으로 가게 된다면 그건 위험한 것입니다. 반론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적인 확신이 역사에서 얼마나 잘못된 일들을 저질렀는지 너무 많이 봤거든요. 때문에 저는 어느 정도의 확신은 인정하지만, 어느 정도의 확신을 넘어서 절대에 가까운 확신이 된다면 저는 두려움에 가득한 채로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구분이 모호하긴 하지만, 저는 제 나름의 판단에 따라서 그것을 구분하려고 합니다.(저도 전문가가 아니라서요^^;;) 그런데 이 책에서 나오는 제임스 리카즈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제 입장이지만 아주 강한 확신처럼 보입니다. 제임스 리카즈는 당연히 달러화 중심의 세계화폐 시스템이 무너지고, 그것을 엘리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의 시스템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아주 확신하고 있습니다. 강한 확신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주장에 유리한 방식으로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게 됩니다. 논증을 통해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정해놓고 논증을 그쪽으로 이끌고간다는 말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연준에 대한 비판, 유로화의 강세 주장이나 유럽에서 경제 위기를 겪은 나라들에 대한 입장, 긴축정책에 대한 지나친 긍정, IMF가 발행하는 특별인출권(SDR)의 강세 주장, 케인스주의에 대한 비판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달러화 중심의 국제 화폐 시스템이 몰락해야 한다는 당위에 따라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이죠. 특히 케인스주의에 대한 반발은 심각하게 균형을 잃은 상태입니다. 케인스주의의 성공 사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리카즈는 실패 사례만 나열하며 케인스주의는 성공할리 없다고 말합니다. 케인스주의식으로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재정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위원회(줄여서 연준)의 경제정책이 실패한다는 말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준은 특성상 미국이 중심이 되는, 현재의 달러화 중심의 국제화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는데, 연준의 개입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 달러화 중심의 국제화폐 시스템이 무너진다는 것이 되고, 그 말은 제임스 리카즈의 '화폐의 몰락'론이 옳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그는 유로화가 강세라고 주장하며 유로화 강세의 미래예측을 합니다. 실제 현실은 다릅니다. 과거의 유로화 강세에 대한 예측과는 달리 지금 유로화는 생각보다 국제 화폐 시장에서 예측보다 못한 상황입니다. 그것은 유럽의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리카즈는 이 책에서 계속해서 경제 위기를 겪은 유럽 국가들의 구조조정이 성공적이라고 얘기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구조조정이 경제 위기를 겪은 유럽국가들에 큰 성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습니다.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리스는 따로 두더라도, 위기에서 벗어난 국가도 있지만, 위기에서 벗어난 국가라도 과거의 경제에 미치지 못하는 힘겨운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유럽공동체가 강요한 긴축정책이 유럽 전부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죠. 제임스 리카즈는 의도적으로 긴축의 장점을 부각합니다. 정부의 공공지출을 강력하게 줄이고, 국가 부채 삭감에만 매달리는 긴축은 서민들의 고통을 만듭니다. 실업, 복지삭감, 공공정책의 축소, 불평등과 빈곤의 확대로 이어지는 긴축 정책이 야기하는 서민의 고통을 제임스 리카즈는 완벽하게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 이야기합니다.(왜냐하면 유로화가 강세가 되어야 달러화 중심의 국제 화폐 시스템이 몰락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의 상황이 괜찮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리스가 괜찮아졌다고요? 글쎄 제가 아는 한에서는 그리스의 경제를 두고 괜찮아졌다고 말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 드네요. 경제가 쪼그라든 것도 그렇고, 엄청난 실업률과 지속되는 서민들의 빈곤, 긴축으로 인해서 정부가 시민들을 제대로 돕지도 못하는 현재의 상황과 과거 경제 위기 전의 그리스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괜찮아졌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이네요.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인 제임스 리카즈가 동유럽 국가들 이야기를 하며 경제 위기를 겪은 남유럽 국가들(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의 긴축이 좋지 않다는 천기 누설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했던 말을 자기가 반박하는 상황을 책에서도 볼 수 있다는 거죠. 더 흥미로운 건 저자는 시위를 아주 안 좋게 보고 있습니다. 힘겨운 고통 속에서 불만을 드러내는 시민들이 잘못됐다고 말하며 그는 시위 같은 것은 하지 않고 현실을 잘 받아들여 생존에 힘쓰는 게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야 이거 어디서 많이 듣는 말 아닌가요? 세상에 불만을 드러내지 말고 '노오력' 하면 더 나아진다는 말은 한국의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하잖아요? 제임스 리카즈도 어쩔 수 없는 무책임한 기성세대군요. 현실의 고통 따위는 무시하고 개인의 생존만 강조하는 그런 기성세대.

쓰고보니 또 엄청난 불만을 늘어놓네요. 뭐 그 외에도 비판할 구석이 여러 개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가 주장하는 것중에서 금의 영향력 증대는 아마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러화가 약해지는만큼, 금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거든요. 그리고 세계의 강대국들이 금을 모아놓고 있는 현실도 그것을 반영하고 있고요.

어찌되었든 <은행이 멈추는 날> 정도의 비판은 하지는 않았습니다. 비판할 부분은 비판했지만, 저자의 음모론이 상당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강력한 비판을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비판은 일단 결론을 정해놓고 거기에 현실을 끼워맞추는 부분에 집중됐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으니까요. 책을 덮고 보니 최근에 제가 경제책을 너무 많이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조금 쉬는 기분으로 가벼운 책을 읽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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