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닉 -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마음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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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닉-배명훈

 

2013년의 새해가 밝았다. 극심한 정신적인 충격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 새해가 전혀 새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전과 다름없음을, 증명하는 건 내가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과 다름없이 계속해서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새해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책들은 스티븐 킹의 <11/22/63 1>과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 배명훈의 <은닉>,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횔덜린의 <휘페리온>이다. 이 중에서 <황야의 이리>, <인간의 대지>, <휘페리온>, <11/22/63 1>은 나중에서 다시 글을 쓰기로 하고 먼저 <은닉>에 대해 말해보겠다.

 

배명훈의 장편 SF 소설 <은닉>은 거짓이 가득한 세상을 작가 자신이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SF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거짓이 가득해서 진실을 뒤덮고, 거짓이 또다른 거짓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거짓이 진실의 자리를 꿰차는, 이 정보 과포화 사회의 모습을, 자신의 모습을 은닉하며 거짓을 통해서 상대방을 이용하는 이들의 얘기인 것처럼 우리에게 전달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인생의 의미인 한 여자를 지키려는 킬러와 자신의 모든 것을 은닉하고 숨어 살면서 의중의 계획을 숨기고 있는 여자와 킬러를 사랑해서 모든 것을 걸고 킬러를 돕지만 역시 진실을 은닉하고 있는 킬러의 동성친구, 그리고 역시 자신의 진짜 계획을 은닉한 채 이들을 둘러싸고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는 세력들의 이야기인 이 소설은 기술은 발달했지만 인간적인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대 사회의 앙상한 몰골을 드러낸다. 발달된 과학기술을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인간 본연의 권력욕과 지배욕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대 사회의 모순적인 모습이 세 사람의 슬픈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과거와 인간적이 본질이 거의 차이가 없는 현재가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이라면 , 우리가 가야하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 우리는 과연 달라질 수 없는가 하는 질문. 이 질문은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뇌리를 맴돌고 있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작가가 이 소설에서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악마를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이미 <신의 궤도>에서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신을 SF적으로 형상화했던 작가는 이 작품에서 악마의 SF적 형상화에 도전한다. 그 도전의 끝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건, 현대의 발달된 기술과 정보의 집약체인 창조물과 인간의 유전자에 내재한 본성과 만나서 빚어진 악마의 모습이었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그것을 이용해서 얻은 정보가 집약되어 만들어진 창조물과 인간의 유전자에 숨겨져 있던 본능이 만나서 빚어진 악마의 모습은,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권력의지 그 자체였다. <은닉>에서 말하는 악마란 순수한 지배욕과 권력욕 덩어리인 것이다. 작가는 니체가 언급했던 권력의지의 순수한 구현에서 악마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여기에서 덧붙여 생각해야 할 사실은 그 악마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악마가 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이 모든 애기들은 문학이라는 샘으로 모여든다. 거짓과 진실, 은닉, 현대 사회의 앙상한 몰골, 악마, 권력의지 같은 것들은 문학이라는 샘으로 모여들어 용해되어서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으로 형상화된다. 거기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의 삶이고 그 삶에서 생생히 빛을 발하고 있는 만남과 이별, 진실한 사랑과 희생 같은, 너무도 낡고 낡았지만 여전히 인간과 인간의 삶에서 보물같은 소중한 인간적인 가치였다. 결국 거짓과 진실이 어떻고, 은닉이 어떻고, 현대 사회의 앙상한 몰골이 어떻고, 악마와 권력의지가 어떻고를 떠나서 작가는 아직도 빛이 바래지 않은 인간적인 가치들을 말하고 있다. 과거와 인간적인 본질이 거의 차이가 없는 현재가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이라고 해도 우리 곁에는 우리를 빛나게 할 수 있는 인간적인 가치들이 있기에 그것에 희망을 걸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희망을 본다. 절망을 은닉하고, 희망을 바라보고 사는 삶에 대한 의지를 얻는 것이다. 살면서 절망을 맞본다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이 절망과 희망의 변주곡을 삶으로서 받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희망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 사실 그건 멍청하고 바보스러운 삶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삶을 살아가겠다. 그게 내가 선택한 삶이고 인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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