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풍경
페터 슈탐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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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라는 에세이에서 소설가 김중혁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보낸 며칠을 못 견디게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해가 뜨지 않고 밤이 계속되는 겨울철 북극권 극야의 날들, 어두움과 희미함이 뒤섞인 모호하고 희미한 풍경들,

밤을 환하게 밝히는 한국의 불야성과는 다른 희미한 빛으로 뒤덮인 도시.

그곳에서 보낸 며칠은 무엇하나 명확하지 않은, 희미한 빛에 휘감긴 나날들로서 감당 못할 우울함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겨우 며칠을 보낸 사람에게 우울함을 불러일으키는 그곳의 희미한 풍경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 누군가가 그곳에서 희미한 풍경을 바라보며 살다보면, 그 누군가의 삶도 희미해지지 않을까?

확실한 의지를 가지기보다는 타성에 젖어 자신의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희미한 풍경>은 이런 상상을 나보다 먼저 한 작가에 의해 쓰여진,

희미한 풍경에서 살다가 삶이 희미해진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2.
스웨덴보다 위도가 높은 노르웨이 북구 항구마을에서 삶을 살아가는 카트리네.

백야와 극야가 이어지는 이 마을은 희미한 풍경을 거의 일년내내 유지하는 곳이다.

그곳의 풍경이 그녀에게 영향을 끼친 것일까?

카트리네는 확고한 자아를 가지고 살기 보다는 타성에 젖은 채 수동적인 삶을 이어나간다.

알코올 중독자로 싸움이 잦았던 첫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실패였고,

타성적이고 희미한 삶을 탈피하기 위해 행한 부유한 집안에다 명확한 인생의 목표를 가진 두번째 남편과의 결혼 생활도

마초적이고 권위적이며 거짓말 투성이인 남편의 행동때문에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길 원했지만, 언제나 어긋나버리는 그녀의 삶.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하고 희미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 결국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자아를 찾는 여행에 나선다.

 

'너, 항상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언제나.'

 

3.

<희미한 풍경>은 이야기의 힘보다는 풍경과 일상 묘사를 바탕으로 한 분위기에 의존하는 소설이다.

평범한 풍경과 일상묘사이지만 다른 무엇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분위기를 실남나게 재현하며,

소설은 한 여인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조명한다.

 

희미해진 삶을 희미하지 않게 만들려는 여인의 여정.

그 여정에서 그녀가 겪을 일들이 그녀를 변화시키리라는 점은 누구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녀가 변화를 위해 스스로 나섰다는 바로 그점이다.

그녀가 변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의지를 품고 나섰기에, 여행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이다.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여행은 진정한 변화라는 마법을 그녀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녀 스스로의 의지가 만든 여행. 여행은 단지 그녀에게 그 기회일 뿐이었다.

 

4.

만약 지금 스스로가 표류하고 있다면 그녀처럼 여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여행이 문제가 아니라, 거침없이 나서려는 의지가 이미 스스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에,

우리는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앞으로 나서자.

그러면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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