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 함석헌 : 역사의 길, 민족의 길 지식인마을 39
이흥기 지음 / 김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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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15.신채호&함석헌:역사의 길,민족의 길-이흥기

국가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은 신채호와 함석헌을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제시한 해결 방도는 달랐다. 신채호는 폭력 혁명을, 함석헌은 인간의 새로운 변화를 말한다.(18)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민족은 능동적인 사회 역사적 주체의 자리에서는 '민중'보다는 한층 내려와 있다. 조선 민족은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식민지 피지배 세력으로서 인민이 되었으나 민중의 혁명을 통해 그 살길을 보전할 수 있으리라는 논리가 된다.(95)

민중을 믿지 않고는 전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마치 신을 믿지 않고서는 신을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씨알이 저를 깨고 나오는 날이 올 것이다. 깨기 전엔 씨알이다. 깨면 전체다.(124)

진리는 "항상 그 시대 최고 지식을 표현의 의상으로 삼는다"(183)

'시대착오'. 이 말을 써놓고 한번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현재 존재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거나 오히려 역행하는 것을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마도 각 영역마다 그런 시대착오적인 것들이 있을 겁니다. 역사학이나 역사책에도 이런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민중을 역사의 중심으로 내세우며 역사적 변화를 꿈꾸는 민중사관도 흘러간 시대의 유물일 겁니다. 민족주의적 역사관은 어떤가요?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를 쓰면서 민족주의를 비판한 것처럼 민족주의적 역사관은 아직도 시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는 있지만 역사학적 흐름에서는 이미 낡은 유물에 불과하고 그 설득력도 예전만큼 못한 게 사실입니다. 거시담론?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과 미시사의 등장 이래로 역사학의 흐름 속에서 '거시담론'은 흘러간 옛 노래가 됐죠.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건, 과거의 유물들이 항상 나쁘냐는 겁니다. 그것들이 항상 나쁘고 항상 옳지 않은 걸까요? 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 트렌디한 것들만이 옳고 좋은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의 흐름에 맞다고 해도 틀리고 옳지 않은 것이 있을 것이고, 과거의 것이라고 해도 좋고 지금 필요한 것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과거의 것들 중에서 지금 필요한 것들을 취사선택하고 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쓰면 됩니다. 무조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며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채호&함석헌:역사의 길,민족의 길>은 신채호와 함석헌이라는 두 인물의 삶의 궤적과 그들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책입니다. 조선시대 말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과 군사독재 시절에 걸쳐 독립과 저항과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두 인물의 이야기인 만큼 이 책의 서술 대다수는 과거의 목소리입니다. 조선말에 태어나 천재로 불렸지만 일본에 국가를 빼앗기게 된 상황에서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투사이자 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토대로 책을 쓴 역사학자 신채호, 기독교인이지만 무교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종교관을 구축한 채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시절에 걸쳐 저항하는 길을 걸어온 인물이자 민중 중심의 기독교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역사책을 쓴 함석헌. 두 인물의 삶의 궤적은 그들이 걸어온 길만큼이나 한 시대의 삶을 오롯히 증명하며 찬연히 빛을 바랍니다. 그들이 구축한 역사관과 그들이 쓴 책도 그들의 삶과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그 뿌리가 깊고 강건한 기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관과 그들이 쓴 책이 현재 우리의 삶에 무조건 적용될 수 있는 책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들의 역사관은 흘러간 옛 노래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과거의 목소리가 스며 있는 시대착오적인 옛 노래.

그러나 앞에서도 적었지만 흘러간 옛 노래라고 해서 그 가치가 줄어드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닐 겁니다. 저는 오히려 신채호와 함석헌의 역사관과 그들이 쓴 책이 '시대착오적'이라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버려두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민족주의적이고 민중 중심적인 사관은 오히려 지금이라서 더 가치가 있을 겁니다. 미시 담론에만 빠져드는 현대의 모습에 그들이 이야기하는 거시담론은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오직 나만 생각하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이 사회의 전체적인 비전과 하나의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사고하게 만드는 그들의 역사관은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오직 돈만을 생각하기 쉬운 이 시대에, 두 사람의 빛나는 삶의 궤적만큼이나 낡았지만 힘있는 역사관은 돈을 벗어나는 사람의 길을 생각하게 해줄 겁니다. 그것이 쉽지 않을지라도, 저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사고하고 생각하기를 두 손 모아서 기도해봅니다. 그것만이 신채호와 함석헌의 삶의 유지를 이을 수 있는 우리만의 작은 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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