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 모중석 스릴러 클럽 43
제프리 디버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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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그림자가 되어주겠어. 영원히.(9)
말 그대로 나는 당신의 그림자가 된 것 같아. ... 그리고 넌 내 것이고. 황홀하군!(11)
공연장의 심장은 사람이다.(15)
당신은 무대 위로 나와서 사람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죠.
모두를 웃게 해줘요. 무엇이 잘못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곧 그 일에는 희생이 따르는 걸 알게 되죠.
모두가 당신의 영혼을 한 조각씩 원하고 있으니까.(52)
스토커 같은 관음적인 범인들은 늘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들은 남을 훔쳐보며 편안해진다.(89)
에드윈이 현실 파악을 못 한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케일리와 접촉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걸 고치려고 하지 않는 거죠.(152)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성공하는 유명인이 될 수록 사람들은 점점 그의 영혼까지 앗아갈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237)

최근에 우연히 인터넷 방송을 자주 보게 됐습니다. 채팅을 치면서 소통하는 것도 재미있고,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이가 선보이는 것들도 재미있고 해서 즐기고 있게 됐죠. 그런데 가끔씩 예상못한 악플을 쓰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어떻게 그런 독하고 나쁘고 더러운 말들을 마구 내뱉을 수 있을까요? 자신에게 그렇게 남을 비난하고 욕하고 함부로 말할 권리가 있다고 진짜로 여기는 것일까요? 아니면 단지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익명성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제가 그 사람이 아니니 알 수 없지만, 안타까운 건 그들에게 상호교류라는 인간 특유의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남은 건, 자기 자신의 생각과 언어에만 집착하는 자폐성이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스토커도 위에서 이야기한 악플러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스토킹 하는 대상이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으면서 관계가 있다고 착각합니다. 스토킹의 대상이 자신에게 어떤 행동도 하지 않거나 별의미 없는 행동을 했는데 오해하고 착각하면서 자신만의 망상 스토리를 써나가는 스토커는 스토킹의 대상과 상호교류를 하지 않습니다. 스토커에겐 오직 일방향의 자폐적인 관계만 있을 뿐입니다. 자신만의 망상 스토리에 빠진 스토커에게 스토킹의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할 뿐. 어떻게 보면 스토커에겐 스토킹의 대상은 인간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과 망상을 투여하는 '물건'일 뿐입니다. 저는 스토킹의 비극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XO>도 스토킹의 비극이 담긴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컨트리 가수로 유명한 케일리 타운이 최악의 스토커 에드윈 샤프에게 시달리고, 케일리 타운과 알고 지내던 행동학전문가 캐트린 댄스가 그와 관련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국 크라임 스릴러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제프리 디버의 소설답게, 책은 곳곳에 독자들을 홀리고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고나가는 '미스디렉션'이 가득합니다. 마술사가 자신의 마술을 성공시키기 위해 마술을 바라보는 이들을 홀리는 기술을 가리키는 '미스디렉션'을 잘 쓰는 작가답게 제프리 디버는 독자들을 쥐고 뒤흔들다 자신만의 결론을 보여줍니다. 저도 초반에 디버에게 뒤흔들리다 어느 순간부터 정신을 차리고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결론까지 다 읽고나니 남는 건 관계에 대한 생각이더군요.

최근의 저에게는 '재밌다', '재미없다'라는 감정보다 저 자신의 생각에 남겨진, '생각의 잉여'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XO>가 남긴 '생각의 잉여'는 관계에 가 닿고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이끌어냅니다. 쌍방향이 아닌 일방향의 관계에 집착하다 벌어진 스토킹 같은 비정상적인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 관계의 상호성을 어떻게 이끌어내야 하는가 같은. 결국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함께 산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야 자폐성에 집착하는 인간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 별로 특별한 건 없네요.^^;; 특별한 건 없지만, 다른 무엇도 아닌 이 책이 제게 준 생각이라는 점에서 이 생각은 중요합니다. 스토킹이 아닌 쌍방향 관계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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