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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제인 오스틴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평점 :
읽어보진 않았어도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그 책, 오만과 편견.
학창시절에 몇번이고 도서관 책장을 기웃거리다 한번 읽어보겠노라 잡았다가 끝끝내 완주하지 못하고 내려두었던 그 책을 이렇게 십수년이 지난 후 성인이 되어서 다시 읽게 되었다.
가끔 책 좋아하는 분들은 청소년기에 읽었던 고전 책들을 다시 찾아 읽어보곤 하던데 오만과 편견은 어찌나 인기가 좋은 책인건지 몇번이고 표지를 바꿔입고 나와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듯하다.
위즈덤 하우스에서 나온 이 책은 표지를 가득 채운 일러스트가 가장 먼저 눈에 띄인다. 왠지 익숙한 그림체다 싶었는데 90년대 소녀들에게 사랑받던 윙크 만화잡지에 연재하던 분의 그림이였다. 이것 역시 나와 비슷한 나이의 독자들을 노린 출판사의 전략이 아니였을까 하는 깜찍한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베넷 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떻게든 다섯 딸들을 좋은 집안에 시집보내고 싶어하는 조금은 속물스러운 엄마에게 어느 날 영국 북부 출신의 돈 많은 청년이 네더 필드에 이사온다는 소식은 마음을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그의 이름은 빙리. 아버지로부터 거의 10만 파운드에 달하는 재산을 물려받고 1년에 4,5천 파운드를 버는 그는 과년한 처녀를 둔 집안이라면 모두 눈독 들이는 사윗감이 아닐 수 없다.
'허영심과 오만은 자주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사실 두 단어는 의미가 아주 달라. 허영심이 없어도 오만할 수는 있어, 오만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와 관련이 있고, 허영심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내리는 평가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첫 만남이 이루어진 메리턴 무도회가 끝나고 빙리가 맏 딸인 제인과 두번이나 춤을 추었다는 사실에 가족들은 흥분하지만 함께 참석한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부인에게 말 한마디 붙이지도 않았고 아가씨들과 거의 춤도 추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오만'이라는 딱지가 붙게 된다. 물론 그의 재산과 배경도 그를 오해하게 하는데 한 몫했지만.
조금씩 다아시가 자신에게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엘리자베스는 역시 그를 '오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모두 그녀의 '편견' 때문이였다. 그는 진짜 친한 사람이 아니면 말을 잘 하지 않는다는 제인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한번 자리잡은 편견은 쉽사리 모습을 바꾸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그가 아주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잖니."
"그럴 리가! 그렇다면 그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거야! 싫어하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다니! 내가 그런 불운을 겪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제인은 빙리씨의 말을 빌려 다아시의 좋은 면을 다시 부각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위컴에게 호감을 표시한다. 그러다 그가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크게 충격받는다.
콜린스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며'자신이 결혼을 하려는 이유'를 들 때는 정말 뒤로 넘어갈뻔했다.
자신이 그녀와 결혼하려는 이유가 아니라 그저 '결혼이 필요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가 거듭해서 청혼을 거절하자 그가 하는 말은 더 기가 막혔다.
'당신이 여러 면에서 매력이 있긴 합니다만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결코 청혼을 받지 못할 수도 있음을 깊이 고려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당신이 물려받는 재산이 너무 적기 때문에, 당신이 사랑스럽고 여러가지 자격을 두루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 장점들을 십중팔구 무용지물이 될 겁니다.'
이런 굴욕적인 이유를 듣고도 결혼을 결심한다면 바보나 다름없겠지만, 후에 샬롯은 이같은 청혼을 받아들인다.
제인은 빙리와 서로 마음을 통해했지만 주변의 말들로 헤어졌다가 겨우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룬다.
위컴의 겉모습만 보고 넘어간 리디아는 나중에 엘리자베스에게 아니 다아시에게 뻔뻔하게 빌붙는 신세가 된다.
언니의 결혼을 반대도 했고 그가 오만하다는 생각 때문에 처음 다아시의 청혼을 거절했던 엘리자베스는 그가 리다이를 위해 해준 일과 그에 대한 오해들을 하나씩 풀어가며 마음을 열게된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여성에게는 재산상속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재벌가와 결혼이야 말로 신분을 상승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음을. 하지만 서로의 신분과 마음이 맞는 사람과의 결혼이라면 다행이지만 얼마나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적 지위와 가문을 위해 원치 않은 운명을 택했을지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제인에 이어 엘리자베스의 결혼이 결정되자 돈도 용돈도 보석도 많아질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야단법석을 떠는 엄마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은 소름이 다 돋았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은 1796년, 만나던 남자의 집안 반대로 결혼이 무산된 후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작가의 길을 걸었던 그녀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랑은 과연 어떤 것이였을까.
아마 시대적인 상황은 자신이 바꾸지 못하더라도 엘리자베스처럼 당당하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선택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꿈꾸며 이 소설을 탄생시키지 않았을까.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게 돌아서게 된 결정적인 장면이 분명하지 않아 조금 아쉬웠지만 (설마 다아시의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놀랍게 아름다운 장소와 경치를 자랑하는 대저택을 보고 흔들린건 아니겠...) 아무튼 사랑을 이룬 두 쌍의 커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야기는 남녀심리 뿐 아니라 주변 상황으로 인해 어떻게 마음이 변하게 되는지도 나와있어서 흥미롭게 읽힌다. 오만과 편견이 모든 멜로 드라마 스토리의 가장 기본이 된다는 이유를 이제 좀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