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는 ‘상상력imagination이란 기억이다‘라고 실로 간결하게 정의했습니다.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조이스, 완전 정답입니다. 상상력이란 그야말로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combination을 말합니다. 단어의 의미상으로는 좀 모순된 표현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유효하게 조합된 맥락없는 기억은 그 자체의 직관을 갖고 예견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토리의 올바른 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P126
나는 소설을 쓰면서 필요에 따라 이거다 싶은 서랍을 열고 그 안의 소재를 꺼내 스토리의 일부로 사용합니다. 캐비닛에는 방대한 수의 서랍이 있지만, 소설 쓰기에 의식이 집중하기 시작하면 어디의 어떤 서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머릿속에 서랍의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떠올라 한순간에 무의식적으로 그 소재를 찾아냅니다.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기억이 저절로 술술 되살아납니다. 머리가 그런 융통무애融通無碍의 상태가 되면 그건 상당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말을 바꾸면, 상상력이 내 의지를 벗어나 입체적으로 자유자재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소설가인 나에게 그 뇌 내 캐비닛에 담긴 정보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하기 어려운 풍성한 자산입니다. - P126
나에게 에세이란 굳이 말하자면 맥주 회사가 출시한 캔 우롱차 같은 것, 이른바 부업입니다. 정말로 좋은 소재는 다음 소설=본업을 위해 챙겨둡니다. - P128
재료 그 자체의 질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거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매직magic‘입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밖에 없더라도, 간단하고 평이한 말밖에 쓰지 않더라도, 만일 거기에 매직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것에서도 놀랍도록 세련된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 P129
우리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창고‘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매직을 구사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실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 P129
아무튼 있는 대로 죄다 쓸어 모아 그걸로 노력해볼 만큼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걸 해낸다면 당신은 큰 가능성을 손에 넣게 됩니다. 바로 당신이 매직을 구사할 수 있다는 멋진 사실입니다. - P131
‘이건 뭐, 아무것도 쓸 게 없다는 것을 쓰는 수밖에 없겠다‘ - P131
내가 유념했던 점은 우선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보다는 다양한 단편적인 에피소드나 이미지나 광경이나 언어를 소설이라는 용기 안에 척척 집어넣고 그걸 입체적으로 조합해나간다. 그리고 그 조합은 통념적인 논리나 문학적인 언어와는 무관한 장소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기본적인 작전이었습니다. - P132
그런 작업을 추진하는 데는 무엇보다 음악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듯한 요령으로 문장을 만들어갔습니다. 주로 재즈가 도움이 됐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듬입니다. 적확하고 견고한 리듬을 시종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청중은 따라와주지 않아요. - P132
그다음은 코드(화음)입니다. 하모니라고 말을 바꿔도 좋을지 모르겠군요. 아름다운 화음, 탁한 화음, 파생적인 화음, 기초음을 생략한 화음. 버드 파월의 화음, 텔로니어스 멍크의 화음, 빌 에번스의 화음, 허비 행콕의 화음. 다양한 화음이 있습니다. 모두 똑같이 여든여덟 개의 건반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사람에 따라 이토록 화음의 여운이 달라지다니,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한정된 소재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더라도 거기에는 무한한ㅡ혹은 무한에 가까운ㅡ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건반이 여든여덟 개밖에 없어서 피아노로는 더이상 새로운 건 나올 수 없다‘는 말은 할 수 없겠지요. - P133
마지막으로 프리 임프로비제이션free improvisation이 나옵니다. 자유로운 즉흥연주지요. 즉 재즈라는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것입니다. 견고한 리듬과 코드(혹은 화성적 구조) 위에서 자유롭게 음을 짜 내려갑니다. - P133
음악을 연주하듯이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이 맨 처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나는 항상 거기에서 올바른 리듬을 추구하고 적합한 여운과 음색을 찾습니다. 그것은 내 문장에서 변함없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 P134
‘써야 할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 - P134
설령 당신이 가진 것이 ‘경량급‘ 소재고 그 양이 한정적이라고 해도 조합 방식의 매직만 깨친다면 그야말로 얼마든지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 작업에 숙달된다면, 그리고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깜짝 놀랄 만큼 ‘무겁고 깊은 것‘을 구축해나갈 수 있습니다. - P134
나이가 들수록 체험이 부여해주는 다이너미즘은 역시 조금씩 저하합니다. - P135
어떤 일이든 경험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이내믹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소설을 쓸 수 있다, 라는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말하려는 것뿐입니다. 어떤 소소한 경험에서라도 인간은 방법 여하에 따라 깜짝 놀랄만큼 큰 힘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 P136
‘부석침목浮石沈木‘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뜻인데, 소설 세계에서는ㅡ혹은 예술 세계에서는, 이라고 말을 바꿔도 무방한데ㅡ그런 역전 현상이 실제로 자주 일어납니다. 통상적으로 가벼운 것으로 취급되던 것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획득하고, 일반적으로 묵직하다고 여겨졌던 것이 어느새 그 무게를 잃고 형해만 남습니다. 지속적 창조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시간의 도움을 얻어 그런 과격한 역전을 몰고 오는 것입니다. - P137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소재가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약간만 시점을 바꾸면, 발상을 전환하면, 소재는 당신 주위에 그야말로 얼마든지 굴러다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눈길을 받고 당신의 손에 잡혀 이용되기를 기다립니다. 인간의 삶이란 얼핏 보기에는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실은 그런 흥미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줄줄이 만들어냅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키포인트입니다. - P137
이건 오랜 나의 지론인데, 세대 간에 우열 따위는 없습니다. 어느 한 세대가 다른 한 세대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다, 라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 P137
각각의 세대 간에는 우열도 없고 상하도 없습니다. 물론 경향이나 방향성에는 저마다 차이가 있겠지요. 그러나 질량 그 자체는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혹은 굳이 문제로 삼을 만한 차이는 없습니다. - P138
각각 잘하는 분야가 있고 잘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그뿐입니다. 그렇다면 각 세대는 뭔가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각자 ‘잘하는 분야‘를 척척 전면에 내세우면 됩니다. 자신이 잘하는 언어를 무기로 삼아서 자신의 눈에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것을 자신이 쓰기 쉬운 말로 써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세대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질 필요도 없고 또한 반대로 묘한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 P138
‘실제로 나는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데 뭐, 이렇게 쓰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잖아. 그게 뭐가 나빠?‘ - P139
문학에서는 뭔가 증명되는 일이라고는 영원히 없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거야 어찌 됐든, 삼십오 년 전에도 지금 현재도 내가 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는 신념에는 거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 P139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세대만의 소설적 소재가 있고, 그 소재의 형태나 무게로부터 역산逆算해서 그것을 실어 나를 비이클의 형태나 기능이 설정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소재와 비이클과의 상관성에서, 그 접면接面의 바람직한 자세에서, 소설적 리얼리티라는 것이 탄생합니다. - P140
어떤 시대에도 어떤 세대에도 각각 고유의 리얼리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소설가에게는 스토리에 필요한 소재를 꼼꼼히 수집하고 축적하는 작업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마 어떤 시대에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 P140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 P140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한 쌍의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입니다. - P140
다양한 것들이 제대로 종합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움직이자면 어느 정도 몸집이 있는 시간과 거리가 필요합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로 비유하자면 상당히 긴 활주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P145
단편소설은 장편소설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세부를 커버하기 위한, 자잘한 방향 전환이 가능한 준민한 비이클입니다. 거기에서는 문장으로도 구성으로도 마음먹은 실험을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고, 단편이라는 형식이 아니면 다룰 수 없는 종류의 소재를 다루는 것도 가능합니다.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측면을 마치 촘촘한 그물망으로 미묘한 그림자를 길어 올리듯이 그대로 쓱쓱 형상화하는 것도 (잘되면) 가능합니다. 완성하기까지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준비고 뭐고 없이 일필휘지로 며칠 만에 쓱싹쓱싹 완성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어떤 시기에는 나는 그렇게 몸이 가벼운, 융통성 있는 형식을 무엇보다 필요로 합니다. - P145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소설을 쓰려고 할 때, 말을 바꾸면 ‘나 자신을 혁신하게 될 가능성을 가진 종합적인 스토리‘의 시동을 걸려고 할 때, 나는 자유롭게 아무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우선 그럴 만한 공간이 확보된 것을 확인한 뒤에, 그 공간을 채울 만한 에너지가 내 안에 축적된 것을 확인한 뒤에, 말하자면 수도꼭지를 최대한 틀어놓고서 장기전의 업무에 착수합니다. 그런 때 느끼는 충실감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신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건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기분입니다. - P146
내게는 장편소설이야말로 생명선이고 단편소설이나 중편소설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중요한 연습의 자리이자 유효한 스텝이라고 해버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 미터나 오천 미터의 트랙경기에서도 그 나름의 기록은 남기지만, 주축은 어디까지나 마라톤 풀코스쪽으로 잡고 있는 장거리 주자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 P146
장편소설을 쓸 경우, 나는 우선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책상 위에 있는 것을 깨끗이 치웁니다. ‘소설 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는 태세를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일 그때 에세이를 연재하는 중이었다면 거기서 일단 중지합니다.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일거리도 어지간한 경우가 아닌 한, 받지 않습니다. 뭔가를 진지하게 하기 시작하면 다른 건 전혀 못 하는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 P147
마감이 없는 번역 작업을 내가 원하는 페이스에 따라 동시 진행적으로 간간이 하기도 하지만, 이건 생활을 위해서라기보다 오히려 기분 전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번역이란 기본적으로 테크니컬한 작업이라서 소설을 쓸 때와는 그 사용하는 뇌의 부위가 다릅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근육의 스트레칭과 같아서 그런 작업을 병행하는 것은 뇌의 균형을 잡는 데 오히려 유익한지도 모릅니다. - P147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중략)...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 라는 것으로는 규칙성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거의 정확하게 20매를 씁니다. - P150
왜 소설가가 예술가가 아니어서는 안 되는가. 대체 누가 언제 그런 것을 정했는가. 아무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으로 소설을 쓰면 됩니다. 우선 ‘딱히 예술가가 아니어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집니다. 소설가란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유인이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대로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자유인의 정의입니다. 예술가가 되어서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부자유한 격식을 차리는 것보다 극히 평범한,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자유인이면 됩니다. - P151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 _이사크 디네센 - P151
장편소설의 집필은 야구와 달라서 일단 초고를 완성한 그때부터 다시 또 다른 승부(게임)가 시작됩니다. 한 말씀 드리자면, 바로 여기서부터가 그야말로 시간을 들일 만한 보람이 있는 신나는 부분입니다. - P152
나는 아무리 긴 소설이라도 복잡한 구성을 가진 소설이라도 처음에 계획을 세우는 일 없이 전개도 결말도 알지 못한 채 되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척척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러는 게 쓰는 동안에 단연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쓰다 보면 결과적으로 모순되는 부분,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성격이 중간에 홱 바뀌어버리기도 합니다. 시간 설정이 앞뒤로 오락가락하기도 합니다. 그런 삐걱거리는 부분을 하나하나 조정해서 이치에 맞는 정합적인 이야기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상당한 분량을 통째로 빼버리고 어떤 부분은 늘리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여기저기에 덧붙이기도 합니다. - P152
장편소설은 말 그대로 ‘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석구석까지 나사를 팽팽히 조여버리면 독자는 숨이 막힙니다. 군데군데 문장을 헐렁하게 풀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쪽의 호흡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체와 세부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 그런 관점에서 문장의 세밀한 조정을 행합니다. - P154
장편소설을 쓸 때는 일하는 시간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공장 등에서의 제작 과정에, 혹은 건축 현장에 ‘양생養生‘이라는 단계가 있습니다. 제품이나 소재를 ‘재워둔다‘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놔두면서 바람을 쐬게 한다. 혹은 내부가 단단히 굳도록 한다는 것이지요.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양생을 확실하게 해주지 않으면 덜 말라서 무른 것, 고르게 배어들지 않은 것이 나오고 맙니다. - P154
진득하게 재운 작품은 나에게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결점도 아주 또렷하게 보입니다. 깊이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이 됩니다. 작품이 ‘양생‘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내 머리도 다시 멋지게 ‘양생‘이 된 것입니다. - P155
양생도 진득하게 했다. 그런 다음에 어느 정도 수정도 마쳤다. 자, 이 단계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이 바로 제삼자의 의견입니다. - P155
내가 생각건대, 읽은 사람이 어떤 부분에 대해 지적할 때, 지적의 방향성은 어찌 됐건, 거기에는 뭔가 문제가 내포된 경우가 많습니다. 즉 그 부분에서 소설의 흐름이 많든 적든 턱턱 걸린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그 걸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제거하느냐는 작가 스스로 결정하면 됩니다. 설령 ‘이건 완벽하게 잘됐어. 고칠 필요 없어‘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입 다물고 책상 앞에 앉아 아무튼 고칩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장이 ‘완벽하게 잘됐다‘라는 일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으니까. - P158
어떤 문장이든 반드시 개량의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아무리 ‘잘 썼다‘ ‘완벽하다‘라고 생각해도 거기에는 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퇴고 단계에서는 자존심이나 자부심 따위는 최대한 내던져버리고 달아오른 머리를 적정하게 식히려고 노력합니다. 단지 그 달아오른 머리를 지나치게 식혀버리면 퇴고 자체를 못 하니까 그런 쪽으로는 약간 조심해야 합니다만. 그러고는 외부의 비판에 견뎌낼 태세를 정비합니다. 뭔가 재미없는 소리를 듣더라도 가능한 한 꾹 참고 꿀꺽 삼킨다. 작품이 출간된 뒤에 들어오는 비평은 마이페이스로 적당히 흘려 넘긴다.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쓰다가는 몸이 당해내지를 못합니다(진짜로). 하지만 작품을 쓰는 동안에는 주위에서 들어오는 비평 · 조언은 가능한 한 허심탄회하게, 겸허하게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옛날부터의 나의 지론입니다. - P160
중요한 것은 뜯어고친다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작가가 ‘이곳을 좀 더 잘 고쳐보자‘라고 결심하고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손질한다, 라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어떻게 수정하느냐‘라는 방향성 따위는 오히려 이차적인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경우, 작가의 본능이나 직감은 논리성이 아니라 결심에 의해 좀 더 유효하게 이끌려 나옵니다. 숲을 몽둥이로 두드려 안에 숨은 새를 날아오르게 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어떤 몽둥이로 두드리든, 어떤 식으로 두드리든, 그 결과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아무튼 새를 날아오르게 하면 그걸로 좋은 것입니다. 새들의 움직임의 역동성이 고정되어가던 시야를 뒤흔듭니다. 그것이 내 의견입니다. 뭐, 상당히 난폭한 의견인지도 모르지만. - P162
고쳐 쓰는 데는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화가 나든 말든) 그것을 염두에 두고 참고하며 고쳐나갑니다. 조언은 중요합니다. 장편소설을 다 쓰고 난 작가는 대부분 흥분 상태로 뇌가 달아올라 반쯤 제정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정신인 사람은 장편소설 같은건 일단 쓸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닌 것 자체에는 딱히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건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인간에게 제정신인 인간의 의견은 대체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 P162
물론 타인의 의견을 모두 다 덥석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개중에는 잘못짚은 의견, 부당한 의견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의견이든 그것이 제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거기에는 뭔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견은 당신의 머리를 조금씩 냉각시켜 적절한 온도로 이끌어줍니다. 그들의 의견이란 즉 세상 사람들의 의견이고, 당신의 책을 읽는 건 결국 세상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신이 세상 사람들을 무시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세상 사람들도 똑같이 당신을 무시할 것입니다. - P163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 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 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_레이먼드 카버 - P164
시간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소중한 요소입니다. 특히 장편소설에서는 ‘사전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안에서 나와야 할 소설의 싹을 틔우고 통통하게 키워가는 ‘침묵의 기간‘입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기분을 내 안에 서서히 만들어 갑니다. 그런 사전 작업에 들이는 시간, 그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일으켜나가는 기간, 일어선 것을 냉암소에서 진득하게 ‘양생하는‘ 기간, 그것을 밖으로 꺼내 자연의 빛을 쏘이고 단단히 굳어져가는 것을 세세히 검증하고 쿵쾅쿵쾅 망치질을 하는 시간・・・・・・ 그런 과정 하나하나에 충분한 시간을 들였느냐 아니냐는 오로지 작가 본인만이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 하나하나에 들인 시간의 퀄리티는 틀림없이 작품의 ‘납득성‘이 되어서 드러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거기에는 역력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 P166
나는 내 작품이 간행되고 그것이 설령 혹독한ㅡ생각도 못할 만큼 혹독한ㅡ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할 만큼은 했다‘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 작업에도 양생에도 진득하게 시간을 들였고, 망치질에도 충분히 시간을 들였다는. 그래서 아무리 혹독한 비판을 받아도 그것 때문에 위축되거나 자신감을 잃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물론 약간 불쾌해지는 정도의 일은 가끔 있지만,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시간에 의해 쟁취해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확신이 내 안에 없었다면 아무리 배짱 좋고 태평한 나라도 어쩌면 침울해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는 확실한 실감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그다음은 시간의 손에 맡기면 됩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성을 대할 때와 똑같은 일이지요.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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