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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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평소 문학에 대해 갖고 있는 철학이 어떤 것인지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저자의 인생관이나 가치관 같은 것들도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설령 소설가를 지망하는 독자가 아니더라도 분야를 막론하고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라면 마땅히 가져야할 태도나 사고방식을 저자의 얘기를 통해 일정부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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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 수 있었다. 독자인 나는 이제껏 소설을 쓰는 작가가 어떤 작품을 자신이 맨 처음에 기획했던대로 끝까지 쭉 써내려가는 게 아닐까라는 섣부른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작가가 작품을 쓰다보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반드시 나오기 마련인데, 그 캐릭터의 특정한 언행이 시발점(?)이 되어서 작가가 기존에 기획했던 범위를 뛰어넘는 추가적인 이야기들을 쓰게끔 만든다는 게 독자인 내가 오늘 본문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실제로 저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음을 본문에서 고백하기도 한다. 처음엔 단편으로 기획했던 소설이 등장인물의 한 마디 말로 인해 내용이 이래저래 덧붙여져서 장편소설이 되었다는 얘기는 독자인 나의 뇌리에 아주 강하게 내리 꽂혔다. 독자인 나는 실제 사람이든 소설 속 캐릭터든 간에 사람의 일은 아무리 예측을 하려고 해도 그 예측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걸 보면서 소설을 쓰는 행위라는 게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도 본질적으로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이라는 것도 살아가다보면 애초에 미처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발생하게 되고 그 이후에 변화된 상황에 따라 행동하다보면 기존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또다른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쓰면서 문득 생각난 말인데, ‘인생이 소설이고, 소설이 인생이다‘ 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의식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내 소설 속 캐릭터들은 작자인 나를 다그치고 격려하고 등을 떠밀어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 P252

내가 말하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설가는 소설을 창작하는 것과 동시에 소설에 의해 스스로 어떤 부분에서는 창작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P253

지극히 일반적인 의미에서도 ‘지금 이곳의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바라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현재진행형의 나 자신은 웬만해서는 파악하기 어려워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다양한 사이즈의 내 것이 아닌 구두에 발을 밀어 넣고, 그것으로 지금 이곳에 있는 나 자신을 종합적으로 검증해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삼각법으로 위치를 측정하는 것처럼. - P256

나를 위해서 쓴다, 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P259

내 안에 존재하는 몇 가지 이미지를, 나에게 딱 감이 오는, 납득이 가는 단어를 사용하고 그 말을 적절히 조합해 문장의 형태로 만들어간다... - P260

모든 창작 행위에는 많든 적든 스스로를 보정補正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 - P260

즉 자신을 상대화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지금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형식에 끼워 맞추는 것을 통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다양한 모순이나 뒤틀림, 일그러짐 등을 해소해나간다ㅡ혹은 승화해나간다ㅡ는 것입니다. - P260

내가 글을 쓰면서 즐거우면 그것을 똑같이 즐겁게 읽어주는 독자가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 수는 별로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지 않은가. 그 사람들과 멋지게, 깊숙이 서로 마음이 통했다면 그걸로 일단은 충분하다, - P261

‘그냥 쓰면서 즐거우면 그걸로 좋지 뭐‘ - P262

기분 좋다는 게 뭐가 나빠? - P262

쓰면서 나 자신이 기분좋고, 동시에 정면 돌파적인 힘을 가진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이미지를 단편적이고 감각적으로 문장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아이디어나 의식을 좀 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문장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 P263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나대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선행하는 그러한 작품에 담긴 파워를 구체적인 예로 염두에 두면서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것을 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 P264

‘그렇다면 내가 즐기기 위해 쓰는 수밖에 없다‘ - P269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쓰든 결국 어디선가는 나쁜 말을 듣는다‘ - P269

‘뭐든 상관없어. 어차피 나쁜 말을 들을 거라면 아무튼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자‘ - P269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없다면 나 혼자 즐기는 수밖에 없지
_리키 넬슨이 만년에 발표한 노래 <가든파티> - P270

"내가 할 말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된다는 거야.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건 생각할 것 없어. 연주하고 싶은 대로 연주해서 너를 세상에 이해시키면 돼. 설령 십오년, 이십 년이 걸린다고 해도 말이야."
_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멍크 - P270

최소한의 지지자를 획득하는 것도 프로로서 필수 조건입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만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다‘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즐겁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란 아무리 살아봤자 별로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 P271

중요한 것, 교환 불가능한 것은 나와 그 사람이 이어져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 P272

소설이란, 스토리란, 남녀와 세대 간의 대립이나 그 밖에 다양한 스테레오타입의 대립을 누그러뜨리고 그 날카로운 칼끝을 완화하는 기능을 가진 것 - P280

독자와 나 사이에 굵고 곧은 파이프를 연결하고 그것을 통해 직접 주고받는 시스템을 시간을 들여 구축해왔다 - P283

어떤 말들을 하건 모른 척 흘려들으면 됩니다. - P300

어떤 세계에서나 똑같지만, ‘사람 망치는 칭찬 세례‘만큼 무서운 것도 없으니까요. - P300

돌아가는 형세를 계산해가며 자기 좋을 대로 확실한 근거도 없이 발언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항상 일정한 수만큼 있는 법 - P301

애초에 소설이란 어디까지나 신체의 내측에서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는 것이지 그렇게 전략적으로 홱홱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조사 같은 것을 해서 그 결과를 보고 의도적으로 내용을 분류해가며 써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일천한 지점에서 태어난 작품은 수많은 독자의 지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지지를 얻는다 해도 그런 작품이나 작가는 오래갈 수도 없고 금세 잊힙니다. - P301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을 짧은 기간 동안 속이는 건 가능하다. 몇몇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일 수는 없다‘라고. 소설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시간에 의해 증명되는 것, 시간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이 이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 P302

‘영어로 된 원고라면 읽을 수 있다‘ - P303

사회 기반 · 구조의 급격한 변동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품고 있던 리얼리티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개변을 요구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현실 사회의 리얼리티와 스토리의 리얼리티는 인간의 영혼 속에서(혹은 무의식 속에서) 피할 수 없이 그 근저에서 상통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대에도 대변혁이 일어나 사회의 리얼리티가 크게 교체될 때, 그것은 스토리의 리얼리티의 교체를, 마치 반증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요구합니다. - P305

스토리란 본래 현실에 대한 메타포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들은 변동하는 주변 현실의 시스템을 따라잡기 위해, 혹은 거기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내적인 장소에 앉혀야 할 새로운 스토리=새로운 메타포 시스템을 필요로 합니다. 그 두 가지 시스템(현실 사회의 시스템과 메타포 시스템)을 제대로 연결하는 것에 의해, 다시 말해 주관 세계와 객관 세계를 오고 가면서 상호 간에 제대로 적응하도록 하는 것에 의해, 사람들은 불확실한 현실을 겨우겨우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 P305

무엇보다 텍스트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는 번역은 그저 성가신 ‘일거리‘가 될 뿐입니다. - P310

새로운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의욕을 항상 간직한다는 것은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 - P311

하나의 포지션, 하나의 장소(비유적인 의미에서의 장소)에 안주해서는 창작 의욕의 신선도는 감퇴하고 이윽고 상실됩니다. - P311

어떤 기치를 목표로 내건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몇 살이 되더라도, 어떤 곳에 있더라도. - P314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가의 역할은 단 한 가지, 조금이라도 뛰어난 텍스트를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텍스트라는 것은 하나의 ‘총체‘, 영어로 말하면 whole입니다. 말하자면 ‘블랙박스‘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덩어리의 텍스트로서 기능합니다. 텍스트의 역할은 각각의 독자에게 저작詛嚼되는 데 있습니다. 독자는 그것을 원하는 대로 마음껏 풀어서 저작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만일 독자의 손에 건너가기 전에 저자에 의해 풀리고 저작된다면 텍스트로서의 의미나 유효성이 대폭적으로 손상됩니다. - P320

이야기=스토리라는 것은 인간의 영혼 밑바닥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 밑바닥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과 사람을 근간에서부터 서로 이어줍니다. - P326

나는 내가 쓰는 소설에 대해 별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비교적 강하다. 자작自作에 대해 말하다 보면 아무래도 변명하거나 자랑하거나 자기변호를 하게 되기가 쉽다. 그럴 생각이 없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여버리는‘ 면이 있다. - P330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지속적으로 표현한다는 것 - P332

100명의 작가가 있다면 100가지의 글쓰기 방식이 있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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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 저자는 레이먼드 카버가 에세이에서 했던 말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소설을 쓰든 아니면 다른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아,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와 같은 후회와 미련이 남기 마련이고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가 되어 자신의 삶을 조금씩 갉아먹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ㅡ. 나는 소설 쓰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아연해진다. (중략) 만일 그가 써낸 이야기가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소설 따위를 쓰는가.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져갈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 힘껏 일했다는 노동의 증거, 그것뿐이다. 나는 그 친구를 향해 말하고 싶었다. 제발 부탁이다. 지금 당장 다른 일을 찾아봐라, 라고. 똑같이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해도 세상에는 좀 더 간단하고 아마 좀 더 정직한 일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너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쏟아부어 글을 써라. 그리고 변명이나 자기 정당화는 안 돼. 불평하지 마. 핑계 대지 말라고‘(졸역 「글쓰기에 대하여」) _레이먼드 카버 - P168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자면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로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입니다. 시간에 컨트롤 당하기만 해서는 안 되지요. 그래서는 역시 수동적이 되고 맙니다. ‘시간과 밀물 썰물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쪽에서 기다릴 생각이 없다면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이쪽의 스케줄을 적극적으로, 의도적으로 설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수동적이 아니라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도전해가는 것입니다. - P169

작품에 대한 판단은, 말할 것도 없이,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립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명확하게 판정해주는 것은 시간입니다. 작가는 입 다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 P170

나의 어떤 작품도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라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잘 못 쓴 것이 있다면 그 작품을 쓴 시점에는 내가 아직 작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유감스럽기는 해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부족한 역량은 나중에 노력해서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잃은 기회를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P170

글을 쓸 수 있는 내 나름의 고유한 시스템을 나는 오랜 세월을 들여 마련하고 내 나름대로 꼼꼼하고 주의 깊게 정비해가며 소중하게 유지 관리해왔습니다. 먼지를 닦고 기름을 칠하고 녹이 슬지 않게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보잘것없지만, 자부심을 느낍니다. 개개의 작품의 완성도나 평가에 대해 말하기보다 오히려 그런 전반적인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나로서는 더 즐겁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구체적인 보람도 있습니다. - P170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실감‘을 믿기로 하십시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그런 건 관계없습니다. 글을 쓰는 자로서도 또한 그걸 읽는 자로서도 ‘실감‘보다 더 기분 좋은 건 어디에도 없습니다. - P171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밀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한없이 개인적인 일입니다. 혼자 서재에 틀어박혀 책상을 마주하고 (대부분의 경우) 아무것도 없었던 지점에서 가공의 이야기를 일궈내고 그것을 문장의 형태로 바꿔나갑니다. 형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주관적인 일들을 형상이 있는 객관적인 것으로(적어도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변환해간다ㅡ극히 간단히 정의하자면 그것이 우리 소설가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작업입니다. - P175

어떤 장소가 됐든 인간이 소설을 쓰려고 하는 곳은 모두 다 밀실이고 이동식 서재입니다. - P177

내가 생각건대 사람은 원래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아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강한 개인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내적인 힘을 바싹바싹 느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고생해가며 열심히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 P177

그 계기가 어떤 것이든 일단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소설가는 외톨이가 됩니다. 아무도 그/그녀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리서처가 붙는 일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역할은 단지 자료나 재료를 수집하는 것뿐입니다. 아무도 그/그녀의 머릿속을 정리해주지 않고 아무도 적합한 단어를 어딘가에서 찾아와주지 않습니다. 일단 스스로 시작한 일은 스스로 추진해나가고 스스로 완성해내야 합니다. - P178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가 그렇다는 것인데, 장편소설 한 편을 쓰려면 일 년 이상(이 년, 때로는 삼 년)을 서재에 틀어박혀 책상 앞에서 혼자 꼬박꼬박 원고를 쓰게 됩니다. - P178

날이면 날마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 P179

고독한 작업, 이라고 하면 너무도 범속한 표현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ㅡ특히 긴 소설을 쓰는 경우에는ㅡ실제로 상당히 고독한 작업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어"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물인 작품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지만(물론 잘되면), 그것을 써내는 작업 그 자체에 대해 사람들은 딱히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 P179

미국의 금주 단체 표어에 ‘One day at a time‘(하루씩 꾸준하게)이라는 게 있는데, 그야말로 바로 그것입니다.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입니다. 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씩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 - P180

긴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이어가려면 장편소설 작가든 단편소설 작가든 지속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해줄 만한 지속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면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ㅡ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 P181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얘기지만) 그에 따라 사고 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사고의 민첩성, 정신의 유연성도 서서히 상실됩니다. - P183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 - P183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런의 수는 유산소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유산소운동이란 수영이나 조깅 같은 장시간에 걸친 적당한 운동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새롭게 태어난 뉴런도 그대로 두면 28시간 뒤에는 별 쓸모도 없이 소멸해버립니다. 정말 아깝지요. 하지만 막 태어난 뉴런에 지적인 자극을 주면 그게 활성화해서 뇌 내의 네트워크와 이어져 신호 전달 커뮤니티의 유기적인 일부가 됩니다. 즉 뇌 내 네트워크가 좀 더 확장되고 촘촘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습과 기억 능력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임기응변으로 사고를 전환하거나 비범한 창조력을 발휘하기가 쉬워지는 것이지요. 좀 더 복잡한 사고를 하고 대담한 발상을 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즉 육체적인 운동과 지적인 작업의 일상적인 조합은 작가가 행하는 종류의 창조적인 노동에는 매우 이상적인 영향을 끼치는 셈입니다. - P184

자연스러운 감촉으로서, 실감으로서, 그런 게 내 안에 있습니다. - P185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아. 별로 달리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고 나 자신에게 되뇌면서, 이래저래 따질 것 없이 그냥 달렸습니다. 그 문구는 지금도 나에게 일종의 만트라 주문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는 것. - P187

몸의 정직한 느낌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뭔가를 창조하려는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작업이었구나, 라고 통감했습니다. 정신이든 두뇌든 그건 결국 똑같이 우리 육체의 일부인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과 두뇌와 신체의 경계는 내가 생각하기에는ㅡ생리학자가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ㅡ그다지 뚜렷하게 명확한 선으로 구분되는 게 아닙니다. - P188

소설가의 기본은 이야기를 하는 것tell a story 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의식의 하부에 스스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속 어두운 밑바닥으로 하강한다는 것입니다. 큼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작가는 좀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큼직한 빌딩을 지으려면 기초가 되는 지하부분도 깊숙이 파 들어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치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그 지하의 어둠은 더욱더 무겁고 두툼해집니다. - P188

작가는 그 지하의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ㅡ즉 소설에 필요한 양분ㅡ을 찾아내 손에 들고 의식의 상부 영역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형태와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전환해나갑니다. 그 어둠 속에는 때로는 위험한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곳에서 서식하는 것은 때때로 다양한 형상을 취하며 사람을 미혹시키려 합니다. 또한 표지판도 지도도 없습니다. 미로같은 곳도 있습니다. 지하 동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칫 방심하면 길을 잃고 헤매고 맙니다. 그대로 지상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어둠 속에는 집합적 무의식과 개인적 무의식 등이 뒤섞여 있습니다. 태고와 현대가 뒤섞여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해부하는 일 없이 그대로 들고 돌아오는데 어떤 경우에 그 패키지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 P189

깊은 어둠의 힘에 대항하려면, 그리고 다양한 위험과 일상적으로 마주하려면 반드시 피지컬한 강함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필요한지 수치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강하지 않은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강한 편이 훨씬 더 좋겠지요. 그리고 그 강함이란 타인과 비교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강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강함을 말합니다. 나는 매일매일 소설을 계속 써나가는 작업을 통해 그것을 조금씩 실감하고 차츰차츰 깨달았습니다. - P189

마음은 가능한 한 강인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장기간에 걸쳐 그 마음의 강인함을 유지하려면 그것을 담는 용기인 체력을 증강하고 관리 유지하는 것이 불가결합니다. - P190

자신의 지금 상태를 최선의 모양새로 유지하기 위한 강함 - P191

모든 일에는 ‘물때‘라는 게 있고, 그 물때는 한번 상실되면 많은 경우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때때로 변덕스럽고 불공평하며 어떤 경우에는 잔혹한 것입니다. - P196

‘만전을 기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다시 말해 영혼을 담는 ‘틀‘인 육체를 어느 정도 확립하고 그것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 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경우) 지겨울 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입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육체를 잘 유지해나가는 노력 없이, 의지만을 혹은 영혼만을 전향적으로 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 P198

인생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경향傾向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인간은 늦건 빠르건 반드시 다른 한쪽에서 날아오는 보복(혹은 반동)을 받게 됩니다. 한쪽 편으로 기울어진 저울은 필연적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육체적인 physical 힘과 정신적인 spiritual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갈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할 때, 가장 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 P199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균형 있게 양립하도록 해야 합니다. 각각 서로를 유효하게 보조해나가는 태세를 만들어야 합니다. 싸움이 장기전일수록 이 이론은 보다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 P200

의지를 최대한 강고하게 할 것, 또한 동시에 그 의지의 본거지인 신체를 최대한 건강하게, 최대한 튼튼하게, 최대한 지장 없는 상태로 정비하고 유지할 것ㅡ그것은 곧 당신의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를 종합적으로 균형 있게 위로 끌어올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그런 견실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거기서 창출되는 작품의 퀄리티 또한 자연히 높아질 것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이 이론은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예술가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 P201

나는 살아가고 성장해가는 과정 속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나만의 방식을 어떻게든 찾아나갔습니다. ...(중략)... 당신은 당신의 방식을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 P201

언어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인간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살아 있는 인간이 살아 있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려고 하는 것이라서 거기에는 반드시 유연성flexibility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자유자재로 움직여 가장 유효한 접점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 P212

소설가란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자꾸자꾸 만들어가는 사람 - P228

어떤 시대에나 어떤 세상에나 상상력이라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 P228

상상력과 대척점에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효율‘입니다. - P228

내가 학교에 바라는 것은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의 상상력을 압살하지 말아달라‘는 단지 그것뿐입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하나하나의 개성에 살아남을 수 있는 장소를 부여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학교는 좀 더 충실하고 자유로운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병행해 사회 자체도 좀 더 충실하고 자유로운 장소가 될 것입니다. - P230

소설을 쓰려면 무엇이 어찌 됐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라는 얘기와 동일한 의미에서, 인간을 묘사하려면 사람을 많이 알아야 한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236

사람을 알아야 한다고 해도 상대를 이해하거나 분석하는 선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겉모습이나 언행의 특징 등을 언뜻 눈에 담아두기만 하면 됩니다. 단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솔직히 영 안 맞는 사람도, 가능한 한 가리지 말고 관찰하는 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자신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 이해하기 쉬운 사람만 등장시켰다가는 그 소설은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인데) 폭이 부족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행동을 취하고, 그런 것이 맞부딪치면서 상황이 굴러가고 얘기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니까 얼른 한번 보고 ‘이 인간은 영 마음에 안 드네‘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눈을 돌리지 말고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어떤 식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가‘ 등의 요점을 머릿속에 담아둡니다. - P237

어차피 난감한 일을 겪어야 한다면 거기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도 건져야지요(아무튼 본전이라도 뽑자, 라는). 당연히 그때는 나름대로 상처를 받고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그런 체험은 소설가인 나에게는 무척 자양분이 가득한 것이었구나, 그런 느낌을 이제는 갖고 있습니다. 물론 멋지고 즐거운 일도 상당히 많았을 텐데,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왠지 네거티브한 체험 쪽입니다. 다시 떠올려서 즐거운 일보다 오히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떠올라요. 결국은 그런 일에서 오히려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는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 P239

소설을 쓰면서 내가 가장 즐겁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마음만 먹으면 나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P240

나는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좋아, 이번에는 이런 것에 도전해보자‘라는 구체적인 목표ㅡ대부분은 기술적인, 눈에 보이는 목표ㅡ를 한두 가지씩 설정했습니다. 나는 그런 식의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새로운 과제를 달성하고 지금까지 못 해본 것을 해내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작가로서 성장한다는 구체적인 실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단 한 단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는 것처럼. 소설가의 좋은 점은 설령 쉰 살이 되더라도, 예순 살이 되더라도, 그런 발전과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연령제한이라는 게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어 스포츠 선수라면 아무래도 그렇게는 안 되겠지요. - P245

일인칭 소설을 쓸 때, 많은 경우 나는 주인공인 (혹은 화자인) ‘나‘를 대략 ‘넓은 의미에서 가능성으로서의 나 자신‘으로 인식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실제의 나‘는 아니지만 장소나 시간이 바뀐다면 어쩌면 이렇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런 형태로 가지를 쳐나가면서 나는 나 자신을 분할하고 있었다는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분할하고 스토리 안에 던져 넣는 것을 통해 나라는 인간을 검증하고 나와 타자와의 혹은 세계와의 접점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처음 한동안은 그런 글쓰기 방식이 내게 잘 맞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애호하는 소설도 대부분 일인칭이었습니다. - P246

일인칭이 가진 제약의 벽은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점점 답답한 것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 P247

분할한 나 자신을 타자에 위탁할 수 있었다 - P248

소설적 시좌를 바꾸면 소설의 구조 자체에 크게 손을 대야 하고 그 변혁을 뒷받침하기 위한 확실한 소설적 기술과 기초 체력도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씩 상황을 봐가면서 단계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습니다. 신체로 말하면, 운동 목적에 맞춰 골격과 근육을 아주 조금씩 개조해나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육체 개조ㅡ거기에는 공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 P248

캐릭터는 소설에서 지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소설가는 현실감이 있고 그러면서도 흥미롭고, 언동에 적당히 예측 불가능한 면이 있는 인물을 작품의 중심에ㅡ 혹은 중심 근처에ㅡ앉혀야만 합니다. 뻔히 알 만한 인물들이 뻔히 알만한 말만 하거나 뻔히 알 만한 짓만 하는 소설이라면 독자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겠지요. 물론 ‘그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써내는 소설이 뛰어난 것‘이라고 하는 분도 더러 계시겠지만 나로서는(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으로서) 그런 이야기에는 아무래도 흥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 P249

하지만 ‘리얼하고 흥미롭고 어느 정도 예측 불가능한 것‘ 이상으로 소설 캐릭터에 특히 중요한 것은 나로서는 ‘그 인물이 얼마나 이야기를 앞으로 끌고 가느냐 하는 점입니다. 등장인물을 만든 것은 물론 작자지만, 참된 의미에서 살아 있는 등장인물은 어느 시점부터 작자의 손을 떠나 자립적으로 움직입니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픽션 작가들이 흔쾌히 인정하는 일입니다. 실제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소설을 계속 써낸다는 건 상당히 빡빡하고 힘겨운 작업이 됩니다. 소설이 제대로 궤도에 오르면 등장인물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스토리가 제 마음대로 흘러가고, 그 결과 소설가는 단지 눈앞에서 진행되는 것을 그대로 문장으로 받아쓰기만 하는 지극히 행복한 상황이 출현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 캐릭터가 소설가의 손을 잡고 그/그녀가 미처 예상조차 하지 못한 뜻밖의 장소로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 P250

"(너는) 네가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꼭 봐야 할 것을 봐야 해" - P251

사라의 말 한 마디가 거의 한 순간에 이 소설의 방향과 성격과 규모와 구조를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건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가 아니라 실은 작자인 나를 향해 말을 건넸던 것입니다. "너는 이제 그다음 스토리를 써야 한다. 너는 그 영역에 이미 발을 들였고 이미 그만한 능력을 갖고 있으니까"라고. 요컨대 사라 역시 나의 분신의 투영이었다는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내 의식의 또 다른 모습으로서 나에게 지금 이 지점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짚어주었습니다.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글을 써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나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 작품입니다. 형식은 이른바 ‘리얼리즘 소설‘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복합적으로, 또한 은유적으로 펼쳐진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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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The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라는 곡에 대한 얘기를 읽다가 나온 것이다. 폴리스의 대장인 스팅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본능적으로 그냥 지나치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의미를 곱씹어보고자 일단 남겨봤다. 생각하기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과 적용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문득 든 생각은 우리 일상의 생활패턴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게 어쩌면 어딘가에 구속되어서 계속 돌고 도는 것과 본질적으로 비슷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간혹 어디론가 멀리 여행같은 걸 떠나보기도 하면서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할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 구속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렇게 구속된 대상이 집이나 가족일수도 있고, 직장이나 학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구속되어 있을수도 있고 기타 등등 여러가지 형태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생각하고 자기 상황에 적용해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을 지치거나 지루해하지 않고 잘 견뎌내는 것이 어쩌면 능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인내심이 있다는 것이니까. 인내심이라는 건 분야를 막론하고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좀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건 말이죠. 구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거예요." ...(중략)... "계속 돌고 도는 거죠." - P532

"The grabbing hands / Grab all they can / All for themselves (거머쥐는 손들 / 있는 대로 다 거머쥐지 / 자기들만 가질 생각으로)" - P527

"Let‘s dance, for fear tonight is all (춤을 추자,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 P522

"Diving for dear life / When we could be diving for pearls (목숨을 위해 몸을 던져 / 진주를 건지러 몸을 던질 수도 있었는데)" - P509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음악을 만드는 것만이 전부라는 걸 정말 보여주는 거죠." ...(중략)... "그리고 그냥 결과를기다리는 것뿐입니다." - P501

팝 음악에서는 항상 본질이나 실상만큼 스타일이 중요하다. - P500

하지만 3번째는 꼭 이루어지는 법이다. - P500

"전 노래를 들을 때 가사가 정확히 하나하나 다 들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마이클 스타이프, 1983 - P497

"Keep me out of country in the word / Deal the porch is leading us absurd" ㅡ perhaps말 속의 나라에 날 들어가지 못하게 해줘 / 현관문을 나눠주는 건 우리를 미치게 하지ㅡ아마도)) - P497

"전 의도적으로 가사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죠..." - P497

"아직 가사를 한 글자도 제대로 적지 않은 탓에, 그냥 막 지껄여댔어요." - P497

"이 곡은 거의 저절로 알아서 작곡되다시피 하는 듯 느껴졌죠."
데이비드 에이가, 2009 - P496

"The one who insists he was first in the line(제일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고 우겨대는 그는)," ...(중략)... : "Is the last to remember her name(그녀의 이름을 제일 먼저 잊어버리지)." - P494

"I‘m paying the price / for throwing the dice in the air / Why must we learn it the hard way / and play the game of life with your heart(난 대가를 치르고 있네 / 공중에 주사위를 던진 대가를 / 왜 사람은 힘들게 인생을 배워나가야 하지? / 그리고 자신들의 마음을 가지고 인생이란 게임을 하는 거지?" - P490

"제 마음 속 응어리를 표현할 때 다른 사람의 노래를 통해 하면 더 잘해요." - P489

"Just when I thought I could not be stopped / when chance came to be king / the ghosts of my life blew wilder than the wind. (내가 막을 수 없이 승승장구할 때 / 내게 왕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 내 삶의 유령들이 바람보다 세차게 닥쳐왔네)." - P488

"Why can‘t we give love that one more chance (사랑에게 바로 그 마지막 기회를 줘보는 게 어때)?" - P486

압력밥솥식 환경의 이 압박감 높은 세상 속에서도 관용과 인간적 연민을 잃지 말라 - P486

"곡 중에 나오는 하얀 날개의 비둘기는 육체를 떠나는 영혼을 의미하죠." - P484

"When justice is gone, there‘s force, And when force is gone, there‘s always Mom, Hi Mom (정의가 간 자리에는 무력이 지배하지. 무력이 간 자리에는, 항상 엄마가 있어. 안녕 엄마)!" - P483

항상 자신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미치게 만드는 노래가 하나 있기 마련이죠. - P477

"Vienna, It means nothing to me(비엔나, 넌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 P475

"즐기세요. 그것에 대해 한바탕 웃고 말아요. 마구 떠들썩하게 즐기는 거죠.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돼요" - P471

"우리 같이 현실을 직시하죠ㅡ이제 단 몇 년밖에 남지 않았어요. 남은 것을 최대한 즐깁시다." - P471

"우리 음악은 파괴적이죠ㅡ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그들을 뒤흔들어놓는 것이 목적이죠." - P471

"자기 자신을 위해 곡을 쓸 때는," 배리 깁이 설명하기를, "당신 자신만이 유일한 악기이다. 따라서 머릿속에서나 마음으로나 일정한 제약이 따르게 된다. 반면 다른 사람을 위해 곡을 쓸 경우, 더군다나 그 사람이 바바라와 같은 음역을 소유하고 있다면, 마음껏 자신을 펼칠 수 있게 된다." - P469

"선술집에 가면ㅡ신에게 가는 것과 다름없죠ㅡ당신은 그에게 사랑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에게 빈 잔을 내밀어야 하죠." "만일 이미 잔이 가득 찼다면, 당신의 마음을 그에게 내보일 필요 자체가 없는 거겠죠." - P467

"Someone take these dreams away / that point me to another day(누군가 이 꿈들을 좀 없애줘 / 또 다른 내일을 꿈꾸게 하는)" - P464

"모방을 통해서 우리는 결국 진정 자신만의 것에 도달하게된다". - P462

"마르코(피로니, 기타리스트)와 나는 대담할 정도로 화려해져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현실도피적인 동시에 매우 요란하고, 영웅적이면서, 숭고하기를 원했다. 좀 진부하긴 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 P462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한 장의 음반에 담으려고 노력했죠. 그것이 성공한 거예요." - P462

"If you want a taste of madness, you‘ll have to wait in line(광기를 맛보고 싶다면, 줄 서서 기다려야 할걸)"이라고 조롱하며, "You‘ll probably see someone you know on Heartattack and Vine(히든어택 앤 바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이라고 덧붙인다. - P461

암울할지언정 축배할 만한 이 삶을, 환희에 젖은 필사적 몸부림으로 살아가야 - P461

"곡을 쓰는 것만이 현재 단 하나의 문제이다. 진행이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 P461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곡을 함께 쓰고싶다ㅡ작곡 활동에 있어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다." - P461

"Hip-hop you don‘t stop(힙합은 멈추지 않아)"을 "You don‘t stop... punk rock(멈추지마. 펑크 록)"으로 - P459

"우리 이혼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 P458

"But tell me does she kiss / like I used to kiss you? / Does it feel the same / when she calls your name (나에게 말해줘. 그녀는 너에게 키스하니? / 내가 예전에 하던 것처럼? / 그때와 느낌이 같니? / 그녀가 네 이름을 부를 때)?") - P458

"외로움이 저를 사로잡기도 하지만, 전 그걸 오히려 이용하죠." ...(중략)... "전 그것을 마음껏 즐깁니다." - P455

"Walked out this morning, don‘t believe what I saw / Hundred billion bottles washed up on the shore / Seems I‘m not alone in being alone / Hundred billion castaways, looking for a home(오늘 아침 밖에 나가서 내 눈을 의심했지 / 해안가에 모습을 드러낸 수천억 개의 병들 / 혼자라는 게 나 혼자뿐은 아닌가 보니 수천억 명의 조안자들이 집을 찾고 있어)." - P455

"이건 짧고 단순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모든 것이 딱 한 단어로 통하게 되죠.
‘불안‘이에요. 모두들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모두들 근심해요."
말콤 오웬, 1979 - P454

레게와 펑크는 탄생 때부터 동침 관계였다. - P454

개리 뉴먼은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자동차들을 일종의 개인용 탱크로 보는 저의 생각에 관한 내용이에요. 안좋은 일이 생기면, 곧바로 차를 타고 항상 자리를 뜰 수 있잖아요." 가사가 이런 그의 심정을 증언한다("Here in my car / I feel safest of all / I can lock all my doors(내 차 안에서 / 난 최고의 안전함을 느껴 / 난 사방의 문을 다 잠글 수 있지)"). - P453

"Bernie Rhodes knows, don‘t argue (버니 로즈는 다 알아. 그러니 대들지 마)" - P452

("Don‘t interrupt while I‘m talking / Or they‘ll confiscate all your guitars(내가 말할 때는 끼어들지 마 / 그렇지 않으면 너희 기타를 다 압수할 거야)" - P452

"때로는 노래가 15분 만에 그냥 쏟아져 나오죠. 마치 ‘Maria‘가 그랬듯 말이에요. 때로는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요. 그리고 ‘Atomic‘이 그런 경우였죠." - P450

펑크는 혼자 알아서 하기 (D.I.Y.) 에토스에 그 기반을 둔다. 그것은 군중들 떼를 좇아 따르는 것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을 따라 걷는 것이 무한히 더 낫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이었다. - P449

"Who‘s bringing out the new, improved model(이 새롭게 향상된 원형을 제시하는 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 P449

("Now it‘s 1984 / Knock, knock at your front door / It‘s the suede-denim secret police / They‘ve come for your uncool niece(이제 1984년도가 되니 / 대문에 노크 소리가 들려요 / 스웨이드 데님 차림의 경찰이 찾아왔지 / 네 쿨하지 못한 여조카를 잡으러)"). - P448

(I said a hip-hop, the hippie, the hippie to the hip, hip-hop, and you don‘t stop(내가 외치지, 힙합, 더 히피, 더 히피 투 더 힙, 힙합, 그리고 멈추지마)...) -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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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저자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관찰한 뒤 거기서 핵심을 추론하거나 논리적인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어떤 상황이나 현상 그대로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기억해두었다가 그렇게 수집한 소재들을 이런저런 형태로 조합해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고 말한다.

주저리주저리 길게 적어봤는데,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상상력‘이라는 한 단어로 응축시켜서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를 위해 제임스 조이스의 말을 인용하며 그것을 뼈대로 삼은 뒤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이 글을 통해 소설가라는 직업을 오래도록 해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어떤 정형적인 틀에 국한되지 말고 그러한 틀 밖에 있는 것까지도 기꺼이 포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생각이 필요하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생각의 상방에 제한이나 제약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고정관념같은 것에 갇히지 않고 마음껏, 자유자재로 생각해보는 것.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제임스 조이스는 ‘상상력imagination이란 기억이다‘라고 실로 간결하게 정의했습니다.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조이스, 완전 정답입니다. 상상력이란 그야말로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combination을 말합니다. 단어의 의미상으로는 좀 모순된 표현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유효하게 조합된 맥락없는 기억은 그 자체의 직관을 갖고 예견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토리의 올바른 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P126

나는 소설을 쓰면서 필요에 따라 이거다 싶은 서랍을 열고 그 안의 소재를 꺼내 스토리의 일부로 사용합니다. 캐비닛에는 방대한 수의 서랍이 있지만, 소설 쓰기에 의식이 집중하기 시작하면 어디의 어떤 서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머릿속에 서랍의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떠올라 한순간에 무의식적으로 그 소재를 찾아냅니다.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기억이 저절로 술술 되살아납니다. 머리가 그런 융통무애融通無碍의 상태가 되면 그건 상당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말을 바꾸면, 상상력이 내 의지를 벗어나 입체적으로 자유자재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소설가인 나에게 그 뇌 내 캐비닛에 담긴 정보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하기 어려운 풍성한 자산입니다. - P126

나에게 에세이란 굳이 말하자면 맥주 회사가 출시한 캔 우롱차 같은 것, 이른바 부업입니다. 정말로 좋은 소재는 다음 소설=본업을 위해 챙겨둡니다. - P128

재료 그 자체의 질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거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매직magic‘입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밖에 없더라도, 간단하고 평이한 말밖에 쓰지 않더라도, 만일 거기에 매직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것에서도 놀랍도록 세련된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 P129

우리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창고‘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매직을 구사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실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 P129

아무튼 있는 대로 죄다 쓸어 모아 그걸로 노력해볼 만큼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걸 해낸다면 당신은 큰 가능성을 손에 넣게 됩니다. 바로 당신이 매직을 구사할 수 있다는 멋진 사실입니다. - P131

‘이건 뭐, 아무것도 쓸 게 없다는 것을 쓰는 수밖에 없겠다‘ - P131

내가 유념했던 점은 우선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보다는 다양한 단편적인 에피소드나 이미지나 광경이나 언어를 소설이라는 용기 안에 척척 집어넣고 그걸 입체적으로 조합해나간다. 그리고 그 조합은 통념적인 논리나 문학적인 언어와는 무관한 장소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기본적인 작전이었습니다. - P132

그런 작업을 추진하는 데는 무엇보다 음악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듯한 요령으로 문장을 만들어갔습니다. 주로 재즈가 도움이 됐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듬입니다. 적확하고 견고한 리듬을 시종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청중은 따라와주지 않아요. - P132

그다음은 코드(화음)입니다. 하모니라고 말을 바꿔도 좋을지 모르겠군요. 아름다운 화음, 탁한 화음, 파생적인 화음, 기초음을 생략한 화음. 버드 파월의 화음, 텔로니어스 멍크의 화음, 빌 에번스의 화음, 허비 행콕의 화음. 다양한 화음이 있습니다. 모두 똑같이 여든여덟 개의 건반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사람에 따라 이토록 화음의 여운이 달라지다니,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한정된 소재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더라도 거기에는 무한한ㅡ혹은 무한에 가까운ㅡ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건반이 여든여덟 개밖에 없어서 피아노로는 더이상 새로운 건 나올 수 없다‘는 말은 할 수 없겠지요. - P133

마지막으로 프리 임프로비제이션free improvisation이 나옵니다. 자유로운 즉흥연주지요. 즉 재즈라는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것입니다. 견고한 리듬과 코드(혹은 화성적 구조) 위에서 자유롭게 음을 짜 내려갑니다. - P133

음악을 연주하듯이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이 맨 처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나는 항상 거기에서 올바른 리듬을 추구하고 적합한 여운과 음색을 찾습니다. 그것은 내 문장에서 변함없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 P134

‘써야 할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 - P134

설령 당신이 가진 것이 ‘경량급‘ 소재고 그 양이 한정적이라고 해도 조합 방식의 매직만 깨친다면 그야말로 얼마든지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 작업에 숙달된다면, 그리고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깜짝 놀랄 만큼 ‘무겁고 깊은 것‘을 구축해나갈 수 있습니다. - P134

나이가 들수록 체험이 부여해주는 다이너미즘은 역시 조금씩 저하합니다. - P135

어떤 일이든 경험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이내믹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소설을 쓸 수 있다, 라는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말하려는 것뿐입니다. 어떤 소소한 경험에서라도 인간은 방법 여하에 따라 깜짝 놀랄만큼 큰 힘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 P136

‘부석침목浮石沈木‘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뜻인데, 소설 세계에서는ㅡ혹은 예술 세계에서는, 이라고 말을 바꿔도 무방한데ㅡ그런 역전 현상이 실제로 자주 일어납니다. 통상적으로 가벼운 것으로 취급되던 것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획득하고, 일반적으로 묵직하다고 여겨졌던 것이 어느새 그 무게를 잃고 형해만 남습니다. 지속적 창조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시간의 도움을 얻어 그런 과격한 역전을 몰고 오는 것입니다. - P137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소재가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약간만 시점을 바꾸면, 발상을 전환하면, 소재는 당신 주위에 그야말로 얼마든지 굴러다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눈길을 받고 당신의 손에 잡혀 이용되기를 기다립니다. 인간의 삶이란 얼핏 보기에는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실은 그런 흥미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줄줄이 만들어냅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키포인트입니다. - P137

이건 오랜 나의 지론인데, 세대 간에 우열 따위는 없습니다. 어느 한 세대가 다른 한 세대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다, 라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 P137

각각의 세대 간에는 우열도 없고 상하도 없습니다. 물론 경향이나 방향성에는 저마다 차이가 있겠지요. 그러나 질량 그 자체는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혹은 굳이 문제로 삼을 만한 차이는 없습니다. - P138

각각 잘하는 분야가 있고 잘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그뿐입니다. 그렇다면 각 세대는 뭔가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각자 ‘잘하는 분야‘를 척척 전면에 내세우면 됩니다. 자신이 잘하는 언어를 무기로 삼아서 자신의 눈에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것을 자신이 쓰기 쉬운 말로 써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세대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질 필요도 없고 또한 반대로 묘한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 P138

‘실제로 나는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데 뭐, 이렇게 쓰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잖아. 그게 뭐가 나빠?‘ - P139

문학에서는 뭔가 증명되는 일이라고는 영원히 없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거야 어찌 됐든, 삼십오 년 전에도 지금 현재도 내가 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는 신념에는 거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 P139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세대만의 소설적 소재가 있고, 그 소재의 형태나 무게로부터 역산逆算해서 그것을 실어 나를 비이클의 형태나 기능이 설정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소재와 비이클과의 상관성에서, 그 접면接面의 바람직한 자세에서, 소설적 리얼리티라는 것이 탄생합니다. - P140

어떤 시대에도 어떤 세대에도 각각 고유의 리얼리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소설가에게는 스토리에 필요한 소재를 꼼꼼히 수집하고 축적하는 작업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마 어떤 시대에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 P140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 P140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한 쌍의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입니다. - P140

다양한 것들이 제대로 종합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움직이자면 어느 정도 몸집이 있는 시간과 거리가 필요합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로 비유하자면 상당히 긴 활주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P145

단편소설은 장편소설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세부를 커버하기 위한, 자잘한 방향 전환이 가능한 준민한 비이클입니다. 거기에서는 문장으로도 구성으로도 마음먹은 실험을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고, 단편이라는 형식이 아니면 다룰 수 없는 종류의 소재를 다루는 것도 가능합니다.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측면을 마치 촘촘한 그물망으로 미묘한 그림자를 길어 올리듯이 그대로 쓱쓱 형상화하는 것도 (잘되면) 가능합니다. 완성하기까지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준비고 뭐고 없이 일필휘지로 며칠 만에 쓱싹쓱싹 완성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어떤 시기에는 나는 그렇게 몸이 가벼운, 융통성 있는 형식을 무엇보다 필요로 합니다. - P145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소설을 쓰려고 할 때, 말을 바꾸면 ‘나 자신을 혁신하게 될 가능성을 가진 종합적인 스토리‘의 시동을 걸려고 할 때, 나는 자유롭게 아무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우선 그럴 만한 공간이 확보된 것을 확인한 뒤에, 그 공간을 채울 만한 에너지가 내 안에 축적된 것을 확인한 뒤에, 말하자면 수도꼭지를 최대한 틀어놓고서 장기전의 업무에 착수합니다. 그런 때 느끼는 충실감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신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건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기분입니다. - P146

내게는 장편소설이야말로 생명선이고 단편소설이나 중편소설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중요한 연습의 자리이자 유효한 스텝이라고 해버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 미터나 오천 미터의 트랙경기에서도 그 나름의 기록은 남기지만, 주축은 어디까지나 마라톤 풀코스쪽으로 잡고 있는 장거리 주자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 P146

장편소설을 쓸 경우, 나는 우선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책상 위에 있는 것을 깨끗이 치웁니다. ‘소설 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는 태세를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일 그때 에세이를 연재하는 중이었다면 거기서 일단 중지합니다.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일거리도 어지간한 경우가 아닌 한, 받지 않습니다. 뭔가를 진지하게 하기 시작하면 다른 건 전혀 못 하는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 P147

마감이 없는 번역 작업을 내가 원하는 페이스에 따라 동시 진행적으로 간간이 하기도 하지만, 이건 생활을 위해서라기보다 오히려 기분 전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번역이란 기본적으로 테크니컬한 작업이라서 소설을 쓸 때와는 그 사용하는 뇌의 부위가 다릅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근육의 스트레칭과 같아서 그런 작업을 병행하는 것은 뇌의 균형을 잡는 데 오히려 유익한지도 모릅니다. - P147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중략)...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 라는 것으로는 규칙성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거의 정확하게 20매를 씁니다. - P150

왜 소설가가 예술가가 아니어서는 안 되는가. 대체 누가 언제 그런 것을 정했는가. 아무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으로 소설을 쓰면 됩니다. 우선 ‘딱히 예술가가 아니어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집니다. 소설가란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유인이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대로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자유인의 정의입니다. 예술가가 되어서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부자유한 격식을 차리는 것보다 극히 평범한,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자유인이면 됩니다. - P151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 _이사크 디네센 - P151

장편소설의 집필은 야구와 달라서 일단 초고를 완성한 그때부터 다시 또 다른 승부(게임)가 시작됩니다. 한 말씀 드리자면, 바로 여기서부터가 그야말로 시간을 들일 만한 보람이 있는 신나는 부분입니다. - P152

나는 아무리 긴 소설이라도 복잡한 구성을 가진 소설이라도 처음에 계획을 세우는 일 없이 전개도 결말도 알지 못한 채 되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척척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러는 게 쓰는 동안에 단연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쓰다 보면 결과적으로 모순되는 부분,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성격이 중간에 홱 바뀌어버리기도 합니다. 시간 설정이 앞뒤로 오락가락하기도 합니다. 그런 삐걱거리는 부분을 하나하나 조정해서 이치에 맞는 정합적인 이야기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상당한 분량을 통째로 빼버리고 어떤 부분은 늘리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여기저기에 덧붙이기도 합니다. - P152

장편소설은 말 그대로 ‘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석구석까지 나사를 팽팽히 조여버리면 독자는 숨이 막힙니다. 군데군데 문장을 헐렁하게 풀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쪽의 호흡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체와 세부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 그런 관점에서 문장의 세밀한 조정을 행합니다. - P154

장편소설을 쓸 때는 일하는 시간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공장 등에서의 제작 과정에, 혹은 건축 현장에 ‘양생養生‘이라는 단계가 있습니다. 제품이나 소재를 ‘재워둔다‘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놔두면서 바람을 쐬게 한다. 혹은 내부가 단단히 굳도록 한다는 것이지요.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양생을 확실하게 해주지 않으면 덜 말라서 무른 것, 고르게 배어들지 않은 것이 나오고 맙니다. - P154

진득하게 재운 작품은 나에게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결점도 아주 또렷하게 보입니다. 깊이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이 됩니다. 작품이 ‘양생‘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내 머리도 다시 멋지게 ‘양생‘이 된 것입니다. - P155

양생도 진득하게 했다. 그런 다음에 어느 정도 수정도 마쳤다. 자, 이 단계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이 바로 제삼자의 의견입니다. - P155

내가 생각건대, 읽은 사람이 어떤 부분에 대해 지적할 때, 지적의 방향성은 어찌 됐건, 거기에는 뭔가 문제가 내포된 경우가 많습니다. 즉 그 부분에서 소설의 흐름이 많든 적든 턱턱 걸린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그 걸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제거하느냐는 작가 스스로 결정하면 됩니다. 설령 ‘이건 완벽하게 잘됐어. 고칠 필요 없어‘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입 다물고 책상 앞에 앉아 아무튼 고칩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장이 ‘완벽하게 잘됐다‘라는 일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으니까. - P158

어떤 문장이든 반드시 개량의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아무리 ‘잘 썼다‘ ‘완벽하다‘라고 생각해도 거기에는 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퇴고 단계에서는 자존심이나 자부심 따위는 최대한 내던져버리고 달아오른 머리를 적정하게 식히려고 노력합니다. 단지 그 달아오른 머리를 지나치게 식혀버리면 퇴고 자체를 못 하니까 그런 쪽으로는 약간 조심해야 합니다만. 그러고는 외부의 비판에 견뎌낼 태세를 정비합니다. 뭔가 재미없는 소리를 듣더라도 가능한 한 꾹 참고 꿀꺽 삼킨다. 작품이 출간된 뒤에 들어오는 비평은 마이페이스로 적당히 흘려 넘긴다.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쓰다가는 몸이 당해내지를 못합니다(진짜로). 하지만 작품을 쓰는 동안에는 주위에서 들어오는 비평 · 조언은 가능한 한 허심탄회하게, 겸허하게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옛날부터의 나의 지론입니다. - P160

중요한 것은 뜯어고친다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작가가 ‘이곳을 좀 더 잘 고쳐보자‘라고 결심하고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손질한다, 라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어떻게 수정하느냐‘라는 방향성 따위는 오히려 이차적인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경우, 작가의 본능이나 직감은 논리성이 아니라 결심에 의해 좀 더 유효하게 이끌려 나옵니다. 숲을 몽둥이로 두드려 안에 숨은 새를 날아오르게 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어떤 몽둥이로 두드리든, 어떤 식으로 두드리든, 그 결과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아무튼 새를 날아오르게 하면 그걸로 좋은 것입니다. 새들의 움직임의 역동성이 고정되어가던 시야를 뒤흔듭니다. 그것이 내 의견입니다. 뭐, 상당히 난폭한 의견인지도 모르지만. - P162

고쳐 쓰는 데는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화가 나든 말든) 그것을 염두에 두고 참고하며 고쳐나갑니다. 조언은 중요합니다. 장편소설을 다 쓰고 난 작가는 대부분 흥분 상태로 뇌가 달아올라 반쯤 제정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정신인 사람은 장편소설 같은건 일단 쓸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닌 것 자체에는 딱히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건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인간에게 제정신인 인간의 의견은 대체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 P162

물론 타인의 의견을 모두 다 덥석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개중에는 잘못짚은 의견, 부당한 의견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의견이든 그것이 제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거기에는 뭔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견은 당신의 머리를 조금씩 냉각시켜 적절한 온도로 이끌어줍니다. 그들의 의견이란 즉 세상 사람들의 의견이고, 당신의 책을 읽는 건 결국 세상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신이 세상 사람들을 무시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세상 사람들도 똑같이 당신을 무시할 것입니다. - P163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 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 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_레이먼드 카버 - P164

시간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소중한 요소입니다. 특히 장편소설에서는 ‘사전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안에서 나와야 할 소설의 싹을 틔우고 통통하게 키워가는 ‘침묵의 기간‘입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기분을 내 안에 서서히 만들어 갑니다. 그런 사전 작업에 들이는 시간, 그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일으켜나가는 기간, 일어선 것을 냉암소에서 진득하게 ‘양생하는‘ 기간, 그것을 밖으로 꺼내 자연의 빛을 쏘이고 단단히 굳어져가는 것을 세세히 검증하고 쿵쾅쿵쾅 망치질을 하는 시간・・・・・・  그런 과정 하나하나에 충분한 시간을 들였느냐 아니냐는 오로지 작가 본인만이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 하나하나에 들인 시간의 퀄리티는 틀림없이 작품의 ‘납득성‘이 되어서 드러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거기에는 역력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 P166

나는 내 작품이 간행되고 그것이 설령 혹독한ㅡ생각도 못할 만큼 혹독한ㅡ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할 만큼은 했다‘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 작업에도 양생에도 진득하게 시간을 들였고, 망치질에도 충분히 시간을 들였다는. 그래서 아무리 혹독한 비판을 받아도 그것 때문에 위축되거나 자신감을 잃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물론 약간 불쾌해지는 정도의 일은 가끔 있지만,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시간에 의해 쟁취해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확신이 내 안에 없었다면 아무리 배짱 좋고 태평한 나라도 어쩌면 침울해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는 확실한 실감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그다음은 시간의 손에 맡기면 됩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성을 대할 때와 똑같은 일이지요.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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