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 수 있었다. 독자인 나는 이제껏 소설을 쓰는 작가가 어떤 작품을 자신이 맨 처음에 기획했던대로 끝까지 쭉 써내려가는 게 아닐까라는 섣부른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작가가 작품을 쓰다보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반드시 나오기 마련인데, 그 캐릭터의 특정한 언행이 시발점(?)이 되어서 작가가 기존에 기획했던 범위를 뛰어넘는 추가적인 이야기들을 쓰게끔 만든다는 게 독자인 내가 오늘 본문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실제로 저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음을 본문에서 고백하기도 한다. 처음엔 단편으로 기획했던 소설이 등장인물의 한 마디 말로 인해 내용이 이래저래 덧붙여져서 장편소설이 되었다는 얘기는 독자인 나의 뇌리에 아주 강하게 내리 꽂혔다. 독자인 나는 실제 사람이든 소설 속 캐릭터든 간에 사람의 일은 아무리 예측을 하려고 해도 그 예측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걸 보면서 소설을 쓰는 행위라는 게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도 본질적으로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이라는 것도 살아가다보면 애초에 미처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발생하게 되고 그 이후에 변화된 상황에 따라 행동하다보면 기존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또다른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쓰면서 문득 생각난 말인데, ‘인생이 소설이고, 소설이 인생이다‘ 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의식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내 소설 속 캐릭터들은 작자인 나를 다그치고 격려하고 등을 떠밀어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 P252

내가 말하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설가는 소설을 창작하는 것과 동시에 소설에 의해 스스로 어떤 부분에서는 창작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P253

지극히 일반적인 의미에서도 ‘지금 이곳의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바라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현재진행형의 나 자신은 웬만해서는 파악하기 어려워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다양한 사이즈의 내 것이 아닌 구두에 발을 밀어 넣고, 그것으로 지금 이곳에 있는 나 자신을 종합적으로 검증해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삼각법으로 위치를 측정하는 것처럼. - P256

나를 위해서 쓴다, 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P259

내 안에 존재하는 몇 가지 이미지를, 나에게 딱 감이 오는, 납득이 가는 단어를 사용하고 그 말을 적절히 조합해 문장의 형태로 만들어간다... - P260

모든 창작 행위에는 많든 적든 스스로를 보정補正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 - P260

즉 자신을 상대화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지금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형식에 끼워 맞추는 것을 통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다양한 모순이나 뒤틀림, 일그러짐 등을 해소해나간다ㅡ혹은 승화해나간다ㅡ는 것입니다. - P260

내가 글을 쓰면서 즐거우면 그것을 똑같이 즐겁게 읽어주는 독자가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 수는 별로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지 않은가. 그 사람들과 멋지게, 깊숙이 서로 마음이 통했다면 그걸로 일단은 충분하다, - P261

‘그냥 쓰면서 즐거우면 그걸로 좋지 뭐‘ - P262

기분 좋다는 게 뭐가 나빠? - P262

쓰면서 나 자신이 기분좋고, 동시에 정면 돌파적인 힘을 가진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이미지를 단편적이고 감각적으로 문장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아이디어나 의식을 좀 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문장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 P263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나대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선행하는 그러한 작품에 담긴 파워를 구체적인 예로 염두에 두면서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것을 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 P264

‘그렇다면 내가 즐기기 위해 쓰는 수밖에 없다‘ - P269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쓰든 결국 어디선가는 나쁜 말을 듣는다‘ - P269

‘뭐든 상관없어. 어차피 나쁜 말을 들을 거라면 아무튼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자‘ - P269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없다면 나 혼자 즐기는 수밖에 없지
_리키 넬슨이 만년에 발표한 노래 <가든파티> - P270

"내가 할 말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된다는 거야.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건 생각할 것 없어. 연주하고 싶은 대로 연주해서 너를 세상에 이해시키면 돼. 설령 십오년, 이십 년이 걸린다고 해도 말이야."
_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멍크 - P270

최소한의 지지자를 획득하는 것도 프로로서 필수 조건입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만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다‘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즐겁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란 아무리 살아봤자 별로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 P271

중요한 것, 교환 불가능한 것은 나와 그 사람이 이어져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 P272

소설이란, 스토리란, 남녀와 세대 간의 대립이나 그 밖에 다양한 스테레오타입의 대립을 누그러뜨리고 그 날카로운 칼끝을 완화하는 기능을 가진 것 - P280

독자와 나 사이에 굵고 곧은 파이프를 연결하고 그것을 통해 직접 주고받는 시스템을 시간을 들여 구축해왔다 - P283

어떤 말들을 하건 모른 척 흘려들으면 됩니다. - P300

어떤 세계에서나 똑같지만, ‘사람 망치는 칭찬 세례‘만큼 무서운 것도 없으니까요. - P300

돌아가는 형세를 계산해가며 자기 좋을 대로 확실한 근거도 없이 발언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항상 일정한 수만큼 있는 법 - P301

애초에 소설이란 어디까지나 신체의 내측에서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는 것이지 그렇게 전략적으로 홱홱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조사 같은 것을 해서 그 결과를 보고 의도적으로 내용을 분류해가며 써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일천한 지점에서 태어난 작품은 수많은 독자의 지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지지를 얻는다 해도 그런 작품이나 작가는 오래갈 수도 없고 금세 잊힙니다. - P301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을 짧은 기간 동안 속이는 건 가능하다. 몇몇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일 수는 없다‘라고. 소설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시간에 의해 증명되는 것, 시간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이 이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 P302

‘영어로 된 원고라면 읽을 수 있다‘ - P303

사회 기반 · 구조의 급격한 변동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품고 있던 리얼리티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개변을 요구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현실 사회의 리얼리티와 스토리의 리얼리티는 인간의 영혼 속에서(혹은 무의식 속에서) 피할 수 없이 그 근저에서 상통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대에도 대변혁이 일어나 사회의 리얼리티가 크게 교체될 때, 그것은 스토리의 리얼리티의 교체를, 마치 반증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요구합니다. - P305

스토리란 본래 현실에 대한 메타포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들은 변동하는 주변 현실의 시스템을 따라잡기 위해, 혹은 거기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내적인 장소에 앉혀야 할 새로운 스토리=새로운 메타포 시스템을 필요로 합니다. 그 두 가지 시스템(현실 사회의 시스템과 메타포 시스템)을 제대로 연결하는 것에 의해, 다시 말해 주관 세계와 객관 세계를 오고 가면서 상호 간에 제대로 적응하도록 하는 것에 의해, 사람들은 불확실한 현실을 겨우겨우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 P305

무엇보다 텍스트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는 번역은 그저 성가신 ‘일거리‘가 될 뿐입니다. - P310

새로운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의욕을 항상 간직한다는 것은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 - P311

하나의 포지션, 하나의 장소(비유적인 의미에서의 장소)에 안주해서는 창작 의욕의 신선도는 감퇴하고 이윽고 상실됩니다. - P311

어떤 기치를 목표로 내건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몇 살이 되더라도, 어떤 곳에 있더라도. - P314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가의 역할은 단 한 가지, 조금이라도 뛰어난 텍스트를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텍스트라는 것은 하나의 ‘총체‘, 영어로 말하면 whole입니다. 말하자면 ‘블랙박스‘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덩어리의 텍스트로서 기능합니다. 텍스트의 역할은 각각의 독자에게 저작詛嚼되는 데 있습니다. 독자는 그것을 원하는 대로 마음껏 풀어서 저작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만일 독자의 손에 건너가기 전에 저자에 의해 풀리고 저작된다면 텍스트로서의 의미나 유효성이 대폭적으로 손상됩니다. - P320

이야기=스토리라는 것은 인간의 영혼 밑바닥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 밑바닥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과 사람을 근간에서부터 서로 이어줍니다. - P326

나는 내가 쓰는 소설에 대해 별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비교적 강하다. 자작自作에 대해 말하다 보면 아무래도 변명하거나 자랑하거나 자기변호를 하게 되기가 쉽다. 그럴 생각이 없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여버리는‘ 면이 있다. - P330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지속적으로 표현한다는 것 - P332

100명의 작가가 있다면 100가지의 글쓰기 방식이 있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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