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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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분류상 소설로 되어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좀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일인칭 단수라는 제목처럼 저자가 주인공이 되어 젊은 시절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풀어낸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 실제 사실과 더불어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허구적인 요소들이 혼재된 이야기들도 일부 나오는데, 어쩌면 이런 것들 때문에 소설로 분류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저자의 책을 쭉 읽어왔던 독자들이라면 하루키의 다른 책들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소재들이 다시금 반복되어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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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들어본 곡의 제목은 California Dreamin‘ 이고 The Mamas & The Papas 라는 밴드가 불렀다고 한다. 이 팀의 리더인 존 필립스(John Phillips)는 동종 업계 종사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에 걸맞는 남들이 갖지 못한 연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곡은 다수의 커버 버전이 나올 정도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다만 밴드 멤버들의 말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는 말에 살짝 안타깝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인생에 좋은 일도 있으면 좋지 못한 일도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문득 호사다마(好事多魔), 인생사 새옹지마(人生事 塞翁之馬) 같은 한자성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존 필립스는 자신의 60년대 중반 포크록 동년배들보다 적어도 10살 이상 많았다. 하지만 세월과 경험은 그의 작곡 실력을 연마해주었고,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교훈을 심어주었다. - P154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로스앤젤레스에 있었다면 안정되고 훈훈했을 텐데)." - P154

"How tears have filled the eyes / Of friends that you once had walked among (어찌나 눈물이 차오르던지 / 한때 함께했던 친구들의 눈에)." - P151

"Go ‘way from my window, go ‘way from my door (내 창문으로부터 떨어져, 내 문으로부터 떨어져)" - P148

헛수고한다는 의미의, "뉴캐슬에 석탄을 나른다"는 격언 - P146

"River Deep, Mountain High" - P144

"You never close your eyes anymore when I kiss your lips(내가 너의 입술에 키스할 때 넌 이제 더이상 눈을 감지 않지)" - P144

"all we need is music(우리에게 필요한 건 음악뿐)" - P142

"It‘s been a long, a long time coming / But I know a change gonna come / Oh yes it will (너무나 오랜 세월이 벌써 지났지 / 하지만 난 알아. 변화가 올 것임을 / 그럼, 그렇고말고)," - P141

"Desafinado" (음정이 맞지않는)" - P141

"E se domani"(그리고 어쩌면 내일) - P140

"E se domani / e sottolineo se / all‘improvviso / perdessi te / avrei perduto/il mondo intero /nonsolo te(만약 내일 / 정말 ‘만약‘에 말인데 / 갑자기 / 당신을 잃게 되면 / 난 잃게 될 거야 / 세상 모든 것을 / 단지 너만이 아니라)." - P140

"Lando"(그것은 이 곡[samba malato]에 쓰인, 독특하게 주저주저 절룩거리는 리듬의 명칭으로, 외설적 댄스에 쓰이기도 한다) - P138

파리의 표어인 라틴어 문구 ‘Fluctuat nec mergitur‘(‘파도에 흔들릴지언정 침몰하지 않는다) - P137

"Sapore di sale"(소금의 향미) - P135

"Taste of salt / Taste of sea / That you have on your skin / That you have on your lips / When you leave the water / And you come and lie down / Near to me (소금의 풍미 / 바다의 맛 / 네 살결 위의 / 네 입술 위의 / 네가 물속에서 나와 / 다가와 누울 때 / 내 옆 자리에)." - P135

("Where the world is different / Different from here (그 다른 세상 / 이곳과는 다른).") - P135

"roses they can‘t hurt you(장미꽃들은 널 아프게 할 수 없어)") - P134

("One fine day we‘ll meet once more / And then you‘ll want the love you threw away before (어느 화창한 날 우리는 다시 한 번 만나게 될 거야 / 그리고 넌 네가 전에 버렸던 사랑을 다시 한 번 원하게 될 거야)") - P132

브로드웨이는 뉴욕에 위치한 연극과 뮤지컬의 본거지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그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P130

(I‘ll always love you, darlin‘ / And I can see that you got some more tears to shed (항상 널 사랑할 거야, 달링 / 그리고 난 네가 아직 흘릴 눈물이 남아 있단 걸 알 수 있어)"). - P127

"저라는 사람같이 부를 뿐이죠" _레이 찰스 - P127

("I don‘t like you but I love you(난 네가 좋은 게 아니고 널 사랑해)") - P124

("When everybody‘s tryin‘ to sleep / I‘m somewhere making my midnight creep (모두들 잠들려 할 시간 / 난 어딘가에서 심야 잠입에 한창이지)) - P119

"She gives me quivers down the membranes (그녀를 보면 내 세포막이 떨려)." - P114

"Chaje shukarije" (로마니어로 "아름다운 소녀") - P110

("If he asks... can he take you home, you MUST tell him no(만일 그가 물으면… 당신과 오늘 밤 함께할 수 있냐고 물으면, 꼭 안 된다고 거절해야 돼)"). - P109

"You know you make me want to shout(너 때문에 난 소리치게 돼)!" - P103

음반이란 것은 이론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 P101

때때로 무엇을 연주하는지보다는 어떻게 연주하는지가 모든 걸 좌우한다. - P101

"Hangin‘ on Scotty, here we go (꽉 잡아 스카티 / 이제 간다)!" - P100

"Volare(날다)" - P99

"make the music easy and sad(조용하고 슬픈 음악을 들려줘)" - P96

"로큰롤‘은...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죠. 왜냐하면 단순하고 기본적인 리듬에 주안점을 두니까요… 바로 ‘리듬‘이 중요해요."
페기 리, 1958 - P95

"Quem nao sentiuo swing de Henri Salvador(앙리 살바도르의 스윙을 느껴보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 P93

"die young, leave a good-looking corpse (젊은 나이에 요절해 잘생긴 시체를 남긴)" - P93

진정한 사랑의 여정은 한 번도 평탄했던 적이 없다. 역대 가장 위대한 팝 러브 송 하나의 여정도 마찬가지였다. - P87

"I shot a man in Reno /Just to watch him die (난 리노에서 한남자를 쏘았지/그저 그가 죽는 것을 보고 싶어서)" - P79

"Ella"(그녀) - P78

란체라(싱어가 경험한 고난, 불운을 가사로 자세히 풀어나간다는 면에서 컨트리나 블루스와 유사한, 멕시코 대중가요 형태) 스타일 - P78

"가스펠 쇼에 나오면 5백 불을 받고, 컨트리 쇼에 나오면 2천5백 불을 받죠." - P78

"I find it very, very easy to be true (난 그게 진실이란 걸 너무 절실히 느껴)" - P76

"I keep a close watch on this heart of mine(난 내 마음을 항상 주의 깊게 살핀다네)" - P76

"I found my thrill (난 행복을 찾았네)..." - P75

"I walk a lonely street (난 외로운 거리를 걷지)." - P72

‘정말 거짓말 아닌("don‘t mean maybe")‘ - P72

("How I hate blue Monday / Got to work like a slave all day(난 우울한 월요일이 너무나 싫어 / 하루종일 노예마냥 일해야 하지)"). - P69

몇몇 곡은 그 음악 장르에서 앤섬으로 통한다. 레게에는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의 "One Love", 아프로팝에는 펠라 쿠티의 "O.D.O.O."가 있다. 그럼 두-왑의 하이라이트는 무엇일까? 플래터스의 "Only You (and You Alone)"라고 할 수 있다. - P67

‘컨셉트 앨범‘은 오늘에 와서 심하게 조롱받는 음악 상품으로 전락해버렸다. 대부분 지독하게 상업적인 과대포장의 도움을 받은, 도가 지나친 예술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주제나 분위기로 통합되고, 여기에 맞춰 수록 트랙을 계획하는 앨범이라는 개념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손을 거쳐 귀감이 될 만한 본보기를 낳았고, 시나트라는 이 포맷의 예술적 잠재성을 실현시켜 보인 최초의 싱어 가운데 한 명으로 남게 되었다. - P64

문자 그대로 ‘운명‘, ‘숙명‘이란 뜻의 파두(fado)는 포르투갈 특유의 민속음악이며, 대개 침울한 분위기가 감돈다. 오늘날, 역대 가장 위대한 ‘파디스타‘(파두 가수)로 인정받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이미 포르투갈에서 스타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어느 날, 무명 작곡가 알베르토 자니스Alberto Janes가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린다. 자니스는 자작곡 "Foi Deus (그것은 신이었다)"를 팔기 위해 끈질기게 매달렸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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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상황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그 상황을 스스로 변화시킬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그냥 순응하며 살아가는 고통을 견디는 것보다는 차라리 좀 힘들더라도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면 그에 따른 댓가를 치르면 되는 것이고, 만약 그 댓가를 치를 자신이 없다면 마음 한구석에 불만의 씨앗을 잠재운 상태로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이 두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사람들마다 우선순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어떤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노력과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눈앞의 상황을 ‘원래 그런 것‘으로 무조건 수용하든가, 아니면 처음부터 아예 거부하든가, 두 가지 선택지뿐이다. 포로를 취하지 않기로 합의한 전쟁과도 같다. - P157

우리는 한 장 한 장의 음반을 면밀히 채점했지만, 물론 그런 순위에 중요한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그건 덤으로 따라오는 놀이 같은 것이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에 대해 주고받는 심도 있는 대화, 열의를 품을 수 있는 무언가를 거의 목적 없이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 P166

"이 작품(슈만의《사육제》)은 어찌 보면 환락의 극치에 있는 음악이지만, 말하자면, 환락이 있기에 비로소 정신의 밑바닥에 생식生息하는 사악한 것들이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거야. 그들은 암흑 속에 있다가 환락의 음색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지." - P169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 카니발이고, 그리고 슈만은 사람들의 그런 여러 얼굴을 동시에 볼 줄 알았어ㅡ가면과 민낯 양쪽을.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 살던 사람이니까." - P169

"가면을 쓰고 있는 사이 얼굴에 들러붙어서 뗄 수 없어진 사람도 있을 수 있겠네." - P170

"하지만 설령 가면이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 아래 또다른 민낯이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아무도 그것을 볼 수 없을 뿐이고."
그녀는 고개를 젓고 말했다. "그게 보이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걸. 분명 어딘가에 있어." - P170

"하지만 그런 것을 볼 수 있었던 로베르트 슈만은, 결국 행복해지지 못했어. 매독과 분열증과 악령들 때문에."
"그래도 이렇게 환상적인 음악을 남겼잖아. 다른 사람들은 쓸 수 없을, 비범한 곡을 썼어."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크고 메마른 소리를 내면서 양쪽 손가락 관절을 하나하나 꺾었다. "매독과 분열증과 악령들 덕분에. 행복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야. 그렇지 않아?"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말했다. - P171

‘슈만은 미치기까지 했는데, 내가 다 소용없게 만들어버렸다‘ _블라디미르 호로비츠 - P171

내가 그녀와 자지 않았던 것은ㅡ실제로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ㅡ그 가면의 미추(美醜)보다는 오히려 그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두려웠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악령의 얼굴이건, 천사의 얼굴이건. - P172

많은 사람은 어째서인지 진부한 거짓말에 이끌린다. 혹은 거꾸로 그 진부함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사기꾼이 끊이지 않고, 사기에 걸려드는 사람 또한 끊이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패널들이 뭐라고 설명하건, 누구를 비판하건, 그것은 조수간만의 차처럼 명백한 사실이다. - P175

루빈스타인의 피아노는 사람들의 가면을 억지로 벗기려 하지 않는다. 그의 피아노는 가면과 민낮 사이를 바람처럼 부드럽고 경쾌하게 빠져나간다. - P178

말할 필요도 없이, 영원이란 매우 긴 시간이다. - P181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 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 - P181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읇는다. - P191

정확한 사실의 반복이야말로 진정한 예지로 가는 길이라고 - P191

"다른 원숭이들과는ㅡ물론 그들은 제 소중한 동포이긴 하지만ㅡ뭔가 잘 통하지 않았어요. 공통된 화제도 없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지요. ‘네 녀석 발성은 좀 이상하다‘면서 놀리기도 하고 따돌리기도 했어요. 암컷 원숭이들은 저를 보면 자기들끼리 쿡쿡 웃었고요. 원숭이는 작은 차이에도 무척 민감합니다. 그들 눈에는 제 거동에 어딘가 우스운 구석이, 혹은 불쾌감이나 짜증을 유발하는 부분이 비쳤겠지요. 그런저런 연유로 점점 같이 있기 거북해져서, 어느새 무리에서 벗어나 따로 생활하게 됐습니다. 이른바 ‘외톨이 원숭이‘입니다." - P196

"혼자 어떻게든 식량을 확보해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제일 괴로운 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원숭이와도, 사람과도 얘기할수 없어요. 고독하다는 건 정말 슬픈 일입니다." - P196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내 것으로 삼는다ㅡ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분명 성적 욕망이 깔린 악행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깨끗하고 플라토닉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저는 마음속에 있는 그 이름을 그저 남몰래 혼자 사랑할 뿐입니다. 마치 부드러운 바람이 초원을 가만히 훑고 지나가듯이." - P201

"그것은 어찌 보면 궁극의 연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궁극의 고독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동전의 양면인 셈이지요. 그 둘은 꼭 달라붙어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 P202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연료입니다.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에게 귀중한 열원이 됩니다. 만약 그런 열원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ㅡ그리고 원숭이의 마음도ㅡ풀 한 포기 없는 혹한의 황야가 되고 말겠지요. 그 대지에는 온종일 해가 비치지 않고, 안녕安寧이라는 풀꽃도, 희망이라는 수목도 자라지 않겠지요. 저는 이렇게 이 마음에 (라고 말하면서 원숭이는 털투성이 가슴에 손바닥을 댔다), 한때 연모했던 아름다운 일곱 명의 여자 이름을 소중히 품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저 나름의 소소한 연료삼아, 추운 밤이면 근근이 몸을 덥히면서, 남은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볼 생각입니다." - P203

주제? 그런 게 있을라고. - P207

아무리 선명한 기억도 시간의 힘은 좀처럼 당해내지 못한다. - P208

뭐,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는 법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장고 라인하르트가 코드를 틀리게 잡는 밤도 있고, 니키 라우다가 기어를 넣다가 실수하는 오후도 있다(아마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러니 더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P221

‘나중에 보니‘ 그렇더라는 결과론 - P221

뭔가 미묘하게 어긋난 느낌이었다. 나라는 내용물이 지금의 그릇에 잘 맞지 않는다. 혹은 마땅히 존재해야 할 정합성이 어디서부턴가 손상돼버렸다는 감각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 P223

나는 인생의 회로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버렸는지도 모른다. - P223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 P224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럴 수 없었다. 왜일까? 나는 아마 두려웠던 것이리라. 실제의 내가 아닌 내가, 삼 년 전 ‘어느 물가‘에서, 어떤 여자ㅡ아마 내가 모르는 누군가ㅡ에게 저지른 고약한 짓의 내용이 밝혀지는 것을. 그리고 또한 내 안에 있는 나 자신이 관지關知하지 못한 무언가가 그녀에 의해 눈에 보이는 장소로 끌려나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런 꼴을 당하느니 묵묵히 스툴에서 내려와, 이유 없는(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호된 비난을 달게 받으면서 자리를 뜨기를 나는 선택한 것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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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만나본 팝송은 The Jimi Hendrix Experience 라는 뮤지션이 부른 Fire 라는 곡인데, 처음 밑줄친 문장은 뭔가 정신적인 영역을 확장시키라는 메시지가 담겨서 철학적인 혹은 이성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두번째로 밑줄친 문장은 뭔가 본능적인 냄새를 더 강하게 풍긴다. Fire라는 제목처럼 뭔가 불꽃튀는 열정을 표현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몇 일 전에 올렸던 포스팅에서 토마스 하디의 작품인《테스》를 언급하면서 ‘본능이 이성을 이긴다‘는 말을 했었는데, 어쩌면 오늘 올린 이 포스팅과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본능을 상징하는 것이 뜨거운 불이라고 한다면 이성을 상징하는 것은 뭔가 차가운 얼음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반적으로 불과 얼음이 함께 있으면 불이 얼음을 녹여버리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본능을 상징하는 불이 이성을 상징하는 얼음을 이긴다는 말(본능이 이성을 이긴다)은 예외가 아예 없다고 섣불리 단정할 순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외없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능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참 힘이 쎈 듯하다.

‘의식 상태를 깨우고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소통하고, 자신을 분리시켜라(turn on, tune in, drop out)‘ - P206

"I have only one burning desire / Let me stand next to your fire(내 안에 타오르는 욕망은 단지 하나뿐 / 네 불 옆에 있게 해줘)" - P206

"저기요. 인생에선 말이에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돼요.
당신의 정신과 환상을 무한히 자유롭게 흐르고 또 흐르게 해야죠."
지미 헨드릭스, 1968 - P202

환각성 약물이 낳는 환각 작용에 대한 짓궂은 감상을 담은 "White Rabbit"은 루이스 캐롤의 오디세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끌어왔다. 캐롤의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앨리스, 쐐기 벌레, 붉은 여왕, 겨울잠 쥐)들을 언급함과 동시에, "Feed your head!"라는 외침과 그녀 세대를 위한 유행어를 고안했다. 그러나 슬릭은 "거기엔 뇌에게도 밥을 먹여야 한다는 의미도 있어요"라고 주장했다. - P201

"nothing is real, and nothing to get hung about" - P200

"All wrapped up in foil(은박에 온통 싸여 있는)." - P196

"Who thinks she‘s some man‘s son(대단한 이의 아들인줄 아는)." - P196

"Here they come now / See them run now... Chelsea Girls(여기 그들이 온다네 / 그들이 뛰는 것을 보기 위해 ・・・ 첼시의 소녀들)." - P196

"When I put a spike into my vein / Then I tell you, things aren‘t quite the same / When I‘m rushing on my run / And I feel just like Jesus‘ son(내 혈관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을 때 있잖아, 모든 게 달라 보여 / 약에 흥분할 때면 / 내가 마치 예수의 아들인 것처럼 느껴져)." - P196

보사 노바("새로운 트렌드"라는 의미의 포르투갈어) - P195

("Turn off your mind, relax and float downstream (생각을 멈추고 긴장을 풀고 흘러 내려가)"). - P194

"Was it real, was it in my dreams? I need to know what it all means (생시인가 꿈인가? 그 모든 것의 의미를 난 알아야만 해)." - P193

차트는 차트일 뿐이다. - P193

"And there ain‘t nothin‘ I can do about it(내가 어쩔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 - P193

"There‘s a crack up in the ceiling / And the kitchen sink is leaking / Out of job and got no money / A Sunday joint of bread and honey (천장에 틈이 있어 / 부엌싱크대는 새고 있지 / 직장도 돈도 없고 / 내 일요일 만찬은 빵과 꿀)." - P186

"전 로큰롤의 진정한 기준이 상스러움이라는 걸 마침내 깨닫게 되었습니다." 레스터 맹스가 이렇게 적었다. 그는 이 개라지 록 앤섬에서 영감을 얻어다 자신의 저서 「Psychotic Reactions and Carburetor Dung」을 완성했다. - P185

리드 싱어 아서는 처음에 다른 러브 멤버들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 선셋 대로의 콜로니얼 아파트 화장실에서 밥딜런 스타일의 포크송으로 이 곡(7 and 7 is)을 고안했다. "제 곡들은 새벽이 오기 바로 직전에 떠오르곤 했죠." 그가 후에 작가 필 갈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 꿈속에서 노래를 들어요." - P183

"In my lonely room I‘d sit, my mind in an ice-cream cone(난 외로이 방에 앉아 있곤 했지 아이스크림 콘에 머리를 담고)" - P183

"ice-cream cone"은 체벌용 바보 모자를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 P183

‘나자빠지는(wipe out)‘ 스타일 - P183

"El muerto vivo "(살아 있는 죽은 자들) - P179

"Mas que nada" (‘뭐야. 말도 안 돼‘ 정도의 뜻) - P178

카리오카(리오데자네이루 태생 주민) - P178

역사는 60년대가 낳은 위대한 밴드 중 하나에 관대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외모를 따진다. - P178

이것("God Only Knows")은 사랑에 대한, 그리고 사랑이 없을 때 느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에 대해 노래했다. - P176

"I may not always love you(너를 향한 내 사랑은 영원하지 않을지도 몰라)" - P176

"But long as there are stars above you / You‘ll never need to doubt it (하지만 당신 위에 별이 뜨는 한 / 그건 단 한시도 의심하지 않아도 돼)" - P176

신은 창조하는 만큼 파멸시킨다 - P176

("Back of my neck all dirty and gritty. Doesn‘t seem to be a shadow in the city (내 목 뒤는 온통 더럽고 까칠해. 이 도시엔 그림자조차 없는 듯 보여)") ...(중략)... "But at night it‘s a different world(하지만 밤엔 완전히 다른 세상)!" - P176

"한 싱글에서 다른 싱글로 넘어갈 때마다 완전히 전혀 다른 사운드를 선보이는 게 저희가 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죠." - P176

(I have to turn my head until my darkness goes(난 내 안의 어둠이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돌려야만 해)") - P175

"Tune on, Turn in, and drop out(흥분하라, 함께하라, 그리고 이탈하라)" - P174

("Nowhere is there warmth to be found / Among those afraid of losing their ground(어디서도 온기를 찾을 수 없네 / 뒤쳐질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 사이에서는)"). - P173

"I look all white but my dad was black(난 온통 하얀 피부지만 우리 아빠는 흑인이었어)" - P172

"I try going forward but my feet walk back(난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내 발은 뒷걸음치네)" - P172

("We outran our own shadows(우린 우리의 그림자보다 더 빨리 달렸지)") - P171

"I hope I die before I get old(나는 나이 들기 전에 죽었으면 좋겠어)" - P169

"Why don‘t you all f-fade away (너희들 모두 다 사, 사라져버리지 그래)" - P169

"말썽쟁이들이 손잡이를 훔쳐가서 물펌프를 쓸 수가 없어 ㅡThe pump don‘t work ‘Cause the vandals stole the handleㅡ평생 이 구절을 사랑할 겁니다."
로저 워터스, 1987 - P166

딜런은 자신의 우상 우디 거스리로부터 음악 재료를 훔쳐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거스리와 피트 시거의 "Taking It Easy"에서 가사들을 슬쩍해 와("Mom was in the kitchen preparing to eat / Sis was in the pantry looking for some yeast(엄마는 부엌에서 밥 먹을 준비를 하고 / 누이는 식료품 창고에서 이스트를 찾고 있어)"), 그만의 것으로 탄생시켰다. - P166

딜런의 가사이기에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려면 정말 뚫어져라 샅샅이 곡을 살펴보아야 한다. 주요 구절들은 도무지 의미를 모를 말들의 뒤범벅이며, 그 예로 자주 인용되는 구절 "You don‘t need a weatherman / To know which way the wind blows (꼭 기상예보관이 필요한 건 아니야 /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나를 아는 데에는)"가 있다. - P166

("I don‘t want your botheration, get away, leave me (네가 귀찮게 하는 게 싫어! 저리가. 날 내버려둬)!") - P166

그런지가 출현하기 훨씬 전, 미국 태평양 연안 북서부는 생산직 육체노동자적 로큰롤을 만드는 것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그들의 음악은 찬란하도록 근본에 충실했고 로스앤젤레스나 뉴욕과 같은 요란한 음악 업계 핵심지와는 거리를 두었다. 동족 업계 또래들과는 다르게, 이 지역밴드들은 지리적으로 고립된 덕에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착실히 키워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대규모 스튜디오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탓에 자신들만의 알아서 하기(D.I.Y.) 노동관을 고수해야 했다. 이것은 훗날 도래할 펑크 신의 시초였다. - P163

기차에 탑승할 수 없는 유일한 이는 바로 "모든 인류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만 챙기려는 구제 불가능한 죄인" 뿐 이라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밥 말리의 이목을 끈다. - P162

"Rolling Stone‘은 제가 쓴 곡 중 최고입니다."
밥 딜런, 1965 - P160

밥 딜런의 곡 중 최고를 꼽는 것은 반 고흐의 최고 명작을 뽑는 것만큼이나 쓸데없는 짓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딜런 팬들은 이미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거의 대부분 "Like a Rolling Stone"을 선택했다. - P160

("You used to ride on the chrome horse with your diplomat / Who carried on his shoulder a Siamese cat(넌 네 외교가와 함께 크롬 말을 타곤 했지 / 어깨에 샴고양이를 얹은 그 외교가)") - P160

"노래 한 곡 한 곡은 모두 어떤 생각을 담고 있어야 하고, 이야기를 전해야 하며, 무언가 의미를 가져야 한다."  _베리 고디 - P158

키스 리처즈(Keith Richards)는 자리를 잡고 앉아 부지런히 노래를 억지로 쓰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노래가 자신을 찾아오도록 유도하는 인물로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아무리 그런 리처즈라고는 하지만, "(I Can‘t Get No) Satisfaction"(1965)의 성공은 진정 (신성 개입이 아닌) ‘신성 만취‘다. - P156

(화음에 변화를 주지 않고 단일 코드에 초점을 맞춰 끌어가는 ‘드론(drone)‘을 도입부에 사용하는 수법은 마사 앤 더 반델라스의 "Dancing in the Street"과 같은 모타운 히트작에서 사용하던 것이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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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바로 딱 와닿지가 않아서 그 의미를 곱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각자 성향에 따라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사람들한테 상처받는 것이 싫다든가 이외 여러 이유들로 인해 의도적으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뭐가 옳고 그른지를 언급하고 싶진 않다. 단지 성향과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소설 속 인물이 언급한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정신질환‘이라는 워딩이 좀 마음에 걸렸다. ‘사람 좋아하는 게 정신질환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할 정도로 그렇게 심각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데 소설 속 인물이 이렇게 언급한 데는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본문을 좀 더 읽어나가면서 알아봐야 할 듯하다. 의문은 계속 유지한 채로 말이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정신질환이랑 비슷해." - P15

때로는 이름 몇 글자가 사람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어버리기도 한다. - P16

지금이란 때 / 때가 지금이라면 / 이 지금을 꿈쩍없는 / 지금으로 만들 수밖에 - P21

우리는 교차하는 두 줄의 직선처럼, 한 지점에서 잠깐 만났다가 그대로 멀어진 것이다. - P23

매우 신기하게도(어쩌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강한 밤바람에 휩쓸려, 그것들은ㅡ확실한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ㅡ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뿐이다. 아니, 기억조차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우리 몸에 그때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런 것을 누가 명확히 단언할 수 있으랴? - P24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 많다. - P32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남의 마음을 짓밟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내거나, 불쾌감을 안겨주거나 한다. - P40

"중심이 여러 개 있는 원." - P42

"중심이 여러 개, 아니, 때로는 무수히 있으면서 둘레를 갖지 않는 원." 노인이 이맛살을 한층 더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런 원을, 자네는 떠올릴 수 있겠나?" - P43

"정말로 중요한 건 학교같은 데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거든." - P44

"그런 원은 분명히 존재해. 하지만 누구의 눈에나 보이지는 않지." - P44

"알겠나. 자네는 혼자 힘으로 상상해야 돼. 정신 차리고 지혜를 쥐어짜서 떠올려보라고. 중심이 여러 개 있고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그렇게 진지하게 피나는 노력을 하고서야 비로소 조금씩 그게 어떤 것인지 보이거든." - P44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는가." ...(중략)...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 P44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중략)...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ㅡ그게 ‘크렘 드 라 크렘‘이야. 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 P45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하는 거야. 중심이 여러 개 있고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자네 머리는 말일세.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모르는 걸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있는 거라고. 비슬비슬 늘어져 있으면 못써. 지금이 중요한 시기거든. 머리와 마음이 다져지고 빚어져가는 시기니까." - P45

"나도 물론 그때는 무척 신경쓰였어." 내가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곱씹어보았지. 상처도 받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멀찌감치 물러나 바라보니 전부 아무래도 상관없는 시시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 인생의 크림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라고." - P48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 P49

어떤 것인지 대충 알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더 깊이 생각하다보면 다시 알 수 없어졌다. 그러기를 되풀이한다. 아마 그것은 구체적인 도형으로서의 원이 아니라, 사람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원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무언가에 깊은 연민을 느끼거나, 이 세상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거나, 신앙(혹은 신앙 비슷한 것)을 발견하거나 할 때, 우리는 지극히 당연하게 그 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게 아닐까ㅡ어디까지나 나의 막연한 추론일 뿐이지만. - P50

세상 사람들에게 유머감각이 결여된 건지, 아니면 내 유머감각이 워낙에 비뚤어진 건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 P56

듣기 전과 들은 후에 몸의 구조가 조금은 달라진 듯 느껴지는 음악ㅡ그런 음악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 P67

"물론 죽음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지." 버드가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완만한 것이기도 해. 자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프레이즈와 마찬가지야. 순식간에 지나가는 동시에, 한없이 잡아 늘일 수도 있지. 동쪽 해안에서 서쪽 해안만큼 길게ㅡ혹은 영원에 다다를 만큼 길게. 시간이란 관념은 그곳에서 사라지고 없어. 그런 의미로 보면, 나는 하루하루 살면서 죽어 있었는지도 몰라. 그래도 실제로 맞는 진짜 죽음은 철저하게 무거워. 그전까지 존재했던 것이 갑자기 통째로 사라져버리지. 완전히 무無가 되어버려. 그리고 내 경우, 그 존재는 나 자신이었어." - P68

"죽을 때 내가 뭘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아?" 버드가 말했다.
"내 머릿속에 있었던 건 그저 하나의 멜로디였어. 그걸 도돌이표처럼 언제까지고 머릿속으로 흥얼거렸지. 그 멜로디가 도무지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거든. 왜 가끔 그럴 때 있잖아? 멜로디 하나가 머릿속에 달라붙어버리는 거. 그게 뭔고 하니,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1번, 3악장의 한 소절이었어. 이런 멜로디야."
버드가 작게 허밍으로 그 멜로디를 읇조렸다. 나도 아는 멜로디였다. 피아노 솔로 파트다. - P69

"베토벤이 쓴 멜로디 중에서 최고의 스윙이라 할 수 있는 소절이야." 버드가 말했다. "나는 그 1번 콘체르토를 옛날부터 좋아했어. 셀 수 없이 들었지. 슈나벨이 연주한 SP 레코드로, 그래도 희한한 일이지. 이 찰리 파커가 죽을 때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흥얼거린 것이 하필이면 베토벤의 멜로디라니. 그러고는 어둠이 찾아왔어. 막이 내리듯이." 버드는 쉰 목소리로 작게 웃었다. - P69

당신은 이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믿는 게 좋다. 어쨌거나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까. - P71

한때 소녀였던 이들이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 서글프게 다가오는 까닭은 아마도 내가 소년 시절 품었던 꿈 같은 것이 이제 효력을 잃었음을 새삼 인정해야 해서일 것이다. 꿈이 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실제 생명이 소멸하는 것보다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때로 매우 공정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 P76

그곳에 있었을 중요한 메시지는 모든 꿈의 핵심들과 마찬가지로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 P77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큼직한 외투 주머니에 가만히 잠재워둔 따뜻한 새끼고양이처럼. - P79

그곳에는 음악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곳에 있었던 것은 음악을 포함하면서도 음악을 넘어선, 더욱 커다란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정경은 순식간에 내 마음속 인화지에 선명히 아로새겨졌다. 아로새겨진 것은 한 시대 한 장소 한 순간의, 오직 그곳에만 있는 정신의 풍경이었다. - P83

귀기울이면 거의 언제나 그들의 곡이 들려왔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비틀스의 음악은 우리 주위를 구석구석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꼼꼼하게 바른 벽지처럼. - P86

우리의 인생은 결국, 그저 요란하게 꾸민 소모품일 뿐인지도 모른다. - P87

거창한 오해에 거창한 화해가 뒤잇고, 몇 가지 장애물이 안개 걷히듯 해소되고, - P88

"질투심이 많으면 가끔은 무척 힘들어." - P89

‘의미 없는 질문‘이란 답의 옳고 그름을 논리적으로 판정하기 힘든(혹은 판정할 수 없는) 질문을 말한다. 작품을 쓴 작가 본인조차 과연 판정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 P97

문학에서 비교적 이치에 맞는다는 것이 과연 미덕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 P98

"불은 불로 다스린다. 뭐 그런 말도 있잖아." - P101

‘너는 굿바이라 말하고, 나는 헬로라 말하네.‘ - P114

내가 도쿄에서 만났던 한 여자는 그 종을 확실히 울려주었다. 그것은 논리나 이론을 따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 혹은 영혼의 훨씬 깊은 곳에서 멋대로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뿐, 개인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종류의 일이다. - P117

"자네가 그때 읽어준 아쿠타가와의 「톱니바퀴」에, 비행사는 고공의 공기만 마시기에 갈수록 지상의 공기를 견딜 수 없어진다…………… 뭐 그런 말이 나왔었잖아. 비행기병이라던가. 그런 병이 정말로 있는지는 몰라도, 그 문장이 지금도 기억나." - P118

사람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이 있다. - P129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 - P131

세상일 알 수 없다. - P135

반쯤 어이없는 듯, 반쯤 감탄한 듯. - P137

물론 지는 것보다야 이기는 쪽이 훨씬 좋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에 따라 시간의 가치나 무게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똑같은 시간이다. 일 분은 일 분이고, 한 시간은 한 시간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그것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시간과 잘 타협해서, 최대한 멋진 기억을 뒤에 남기는 것ㅡ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P147

"죄송합니다. 저기 이거 흑맥주인데요" - P148

자, 팀이 이기기를 빌어보자. 그리고 동시에 (남몰래) 지는 것에 대비해보자. - P148

추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 P153

관찰한 바에 따르면, 내가 아는 아름다운 여자 중 많은 이는 자신의 아름답지 못한 부분ㅡ인간의 신체 환경에는 반드시 그런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ㅡ이 불만스럽거나 거슬리는 탓에 항상 심적으로 시달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사소한 단점도, 잘 보이지도 않는 흠결 하나조차 그녀들은 그냥 넘기지 못했다. 어떤 경우에는 속앓이까지 했다. - P153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ㅡ혹은 못생겼다는 것을ㅡ나름대로 즐길 줄 아는 여자는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아름다운 여자에게도 어딘가 보기 싫은 구석이 있듯이, 어떤 못생긴 여자에게도 어딘가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녀들은 아름다운 여자들과는 달리 그런 부분을 기탄없이 즐기는 듯했다. 대체도 없거니와, 비유도 없다. - P154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은 종종 보는 시각에 따라 완전히 뒤바뀐다. 빛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림자가 빛이 되고, 빛이 그림자가 된다. 양이 음이 되고, 음이 양이 된다. 그런 작용이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본질인지 혹은 그저 시각적 착각인지는 내가 판단하기 버거운 문제다. - P154

혼자 콘서트를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는 보통 소소한 연대감 같은 것이 생긴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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