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 아마추어냐 프로냐 하는 것은 바로 구별할 수 있다. 헉헉, 하면서 짧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은 초보자이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것은 베테랑이다. 그들의 심장은 천천히, 생각에 잠기면서 시간을 새겨 나간다. - P131
우리는 거리에서 서로 스치면서 서로의 호흡의 리듬을 들으며, 서로의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마치 작가들이 서로 상대의 어법을 교감하는 것처럼. - P131
근육은 기억하고 인내한다. 어느 정도 향상도 된다. 그러나 타협은 하지 않는다. 융통성을 부리지도 않는다. - P132
사람은 모두 공평하게 나이를 먹어간다. - P133
나는 나의 목적지를 향해서 계속 달린다. - P133
살결에 닿는 감촉과 향기와 방향으로 우리는 계절의 추이를 명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런 실감을 동반한 흐름 속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가 자연의 거대한 모자이크 속의 미세한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바다를 향해 흘러가다 다리 밑을 지나는 강물처럼 교환 가능한 자연현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P140
테이퍼링 tapering (점점 줄이는) - P141
그녀들에게는 그녀들에게 어울리는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나에게는 나에게 적합한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그것들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며,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것이다. - P146
어제는 롤링 스톤스의 《베거스 뱅큇Beggar‘s Banquet》을 들으면서 달렸다. <심퍼시 포 더 데빌sympathy For The Devil>의 예의 ‘후후 woo woo‘라고 하는 펑키풍의 백코러스는 달리는 데 실로 안성맞춤이다. 그 전날에는 에릭 클랩튼의《렙타일Reptile》을 들으면서 달렸다. 어느 쪽이나 흠잡을 데 없는 음악이다. 마음에 와 닿고, 몇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특히《렙타일》은 달리면서 꽤 여러 번 들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렙타일》은 천천히 러닝을 하는 아침에 듣기에 딱 좋은 앨범이다. 강요하는 듯한 느낌과 부자연스러움이 티끌만큼도 없다. 리듬은 항상 명료하고 멜로디는 한없이 자연스럽다. - P147
소설을 쓴다는 것이 불건전한 작업이라는 주장에 나는 기본적으로 찬성하고 싶다. 우리가 소설을 쓰려고 할 때, 다시 말해 문장을 사용해 이야기를 꾸며 나가려고 할 때는 인간 존재의 근본에 있는 독소와 같은 것이 좋든 싫든 추출되어 표면으로 나온다. 작가는 다소간 그런 독소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위험을 인지해서 솜씨 좋게 처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같은 독소가 개재介在되지 않고 참된 의미의 창조 행위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묘한 예를 들어서 미안하지만, 복어는 독이 있는 부위가 가장 맛있다고 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건전한‘ 작업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P149
예술 행위라고 하는 것은 애당초 성립부터 불건전한 반사회적 요소를 내포한 것이다. - P149
작가(예술가) 중에는 실생활 그 자체의 레벨부터 퇴폐적으로 전락하고, 또는 반사회적인 의상을 걸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 P149
참으로 불건전한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되도록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150
건강한 것과 건강하지 못한 것은 결코 대극점對極點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립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건강한 것과 건강하지 못한 것들은 서로를 보완하고, 어떤 경우에는 서로를 자연스럽게 감싸 안을 수 있는 것이다. 때때로 건전함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건전한 것만을 생각하고, 불건전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불건전한 것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편향은 인생을 진정으로 내실 있는 것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 P151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라는 것은 훨씬 자발적이고 구심적인 것이다. 거기에는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활력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 소설을 쓰는 것은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고, 길고 격렬한 격투끝에 정상에 오르는 작업이다. 자신에게 이기든지, 아니면 지든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같은 내적인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나는 언제나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 P152
말할 것도 없이 언젠가 사람은 패배한다. 육체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쇠잔해간다. 빠르건 늦건 패퇴하고 소멸한다. 육체가 시들면 (우선 아마도)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만다. - P153
외국어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꾸며 나가려고 하면 나에게 주어진 언어의 선택지와 가능성이 필연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에(영어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영어 회화는 꽤 서투른 편이다) 그만큼 도리어 편한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다. 어차피 외국어인데 어쩔 수 없지 않나, 하고. 그것은 아주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 P154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일시적으로나마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 P155
달리는 것은 연설문 같은 것을 암기하는 작업에 적합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움직이면서, 머릿속에서 순서대로 단어를 늘어놓는다. 문장의 리듬을 가늠하고, 단어의 울림을 연상한다. 그렇게 해서 의식을 어딘가 다른 데 두면서 달리노라면 무리 없이 자연스런 속도로 긴 시간 조깅을 계속할 수 있다. - P155
<아메리카 더 뷰티풀> (미국의 비공식 국가. 미국을 ‘신이 내린 나라‘로 규정하고 있다) - P156
미래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 P161
내일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그것은 내일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 P162
지브롤터 해협(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해협, 15세기 콜럼버스가 이 해협을 지나 대서양 항해에 나서,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다) - P165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은 인내하며 묵묵히 달려 나갈 수밖에 없다. 강한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려고 하는 급진적인 혁명의회를 당통Jacques Danton이나 로베스피에르Robespieme 같은 이들 (프랑스 혁명을 이끈 자코뱅파의 지도자들로 혁명 이후 급진적 공화주의를 주장하며 공포정치를 펼쳤다)이 변론을 구사해서 설득하는 것처럼, 나는 신체의 각 부위를 열심히 설복한다. 격려하고 매달리고 치켜세우기도 하고 질책도 하며 고무도 한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될 일이 아닌가, 지금은 어떻게든 참고 힘내다오, 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ㅡ하고 나는 생각한다ㅡ결국은 두 사람 다 목이 뎅강 날아가 버렸잖아. - P170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 P170
만약 내가 피도 살도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허물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 P170
나라고 하는 존재는 확실히 여기 있다. 그에 따라 자기라고 하는 의식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이 순간에 있어서는 그 모든 것들은 이른바 ‘편의적인 형식‘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것은 기묘한 사고방식이며 기묘한 감각이었다. 의식이 있는 것이 의식을 부정하려 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무튼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기無機적인 장소로 몰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 이외에 달리 연명할 길이 없다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 P171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이 말을 머릿속에서 만트라처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글자 그대로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그리하여 자기가 감지하는 세계를 되도록 좁게 한정하려고 애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겨우 3미터 정도 앞의 지면으로, 그보다 앞은 알 수 없다. 내가 당면한 세계는 기껏해야 3미터 앞에서 끝나고 있다. 그 앞의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늘도, 바람도, 풀도, 그 풀을 먹는 소들도, 구경꾼도, 성원도, 호수도, 소설도, 진실도, 과거도, 기억도, 나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물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3미터 앞의 지점까지 다리를 움직인다ㅡ그것만이 나라고 하는 인간의, 아니 아니지, 나라고 하는 기계의 작은 존재 의의인 것이다. - P171
나는 걷기 위해서 이 레이스에 참가한 건 아니다. 달리기 위해 참가한 것이다. - P172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 P172
그 뒤로부터는 아무것도 특별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도록 하자‘라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 - P173
나타난 흐름을 자동적으로 어렵사리 계속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거기에 몸을 맡겨놓고 있으면 어떤 힘이 나를 자연스럽게 앞으로 이끌어주었다. - P173
이상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는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조차 머릿속에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나는 그 이상함을 이상함으로 느낄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는 달린다는 행위가 거의 형이상학적인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행위가 먼저 거기에 있고, 그 행위에 딸린 것 같은 존재로서 내가 있다. 나는 달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P175
끝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우선 한 단락을 짓는다는 것뿐으로, 실제로는 대단한 의미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끝이 있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존재라는 사물의 의미를 편의적으로 두드러지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또 그 유한성의 에두른 비유로서, 어딘가의 지점에 다른 일은 젖혀놓고 우선 종착점이 설정되어 있을 뿐이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 P176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 P177
의식 같은 건 특별히 대단한 것은 아닌 것이다 - P177
‘위험스러운 일을 자진해서 맡아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 나갈 만한 힘이 내 안에도 아직 있었구나‘ 하는 개인적인 기쁨이며 안도감 - P180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듯이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성해간다. 다시 고쳐 씀으로써 사색을 깊게 해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문장을 늘어놓아도 결론이 나오지 않고, 아무리 고쳐 써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경우도 물론 있다. 가령 지금이 그렇다. 그럴 때에는 그저 가설을 몇 가지 제시할 수밖에 없다. 혹은 의문 그 자체를 차례차례 부연해갈 수밖에 없다. 혹은 그 의문이 지닌 구조를 뭔가 다른 것과 구조적으로 맞대어 비교하든지. - P185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 P187
겨우 하프 마라톤을 적당한 속도로 달린 정도로 지쳐버린다면, 마라톤 풀코스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 P194
매일매일의 힘든 연습을 벗으로 삼는 장거리 주자에게 있어서 무릎은 항상 부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부위다. 달리고 있으면 착지할 때마다 체중의 세 배가 되는 충격이 발에 가해진다고 한다. 그것이 하루에 1만 번 가깝게 되풀이되는 것이다. 딱딱한 콘크리트 노면과 가공할 만한 하중의 증가 사이에서(그 사이에 슈즈의 쿠션이 있다고는 하지만) 무릎은 침묵을 지키며 참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보통은 거의 그런 일을 생각도 하지 않지만ㅡ문제가 생기지 않는 편이 오히려 문제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무릎이라는 것도 때로는 불평을 하고 싶을 것이다.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뛰는 것도 좋지만 조금쯤은 내 생각도 해주세요. 한 번 못 쓰게 되면 대신할 것이 없잖아요"라고. - P196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 눈을 돌리도록 하자. - P198
우리의 의식이 미로인 것처럼 우리의 몸 역시 또 하나의 미로인 것이다. 도처에 어둠이 있고, 도처에 사각死角이 있다. 도처에 무언의 암시가 있고, 도처에 이중성이 기다리고 있다. - P202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경험과 본능뿐이다. 경험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뭔가를 더 생각해본들 소용없다. 이제는 당일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본능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딱 한마디, ‘상상하라‘ 라고 하는 것이다. - P203
나는 눈을 감고 상상한다. 브루클린에서, 할렘에서, 미드타운으로, 수만 명의 주자들과 함께 뉴욕의 거리를 달려 나가는 내 모습을. 몇 개인지 모를 거대한 강철의 현수교를 내가 넘어가고 있는 것을. 번잡한 센트럴파크 사우스를 따라 달리면서 결승점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의 기분을. 레이스를 완주한 후에 먹으러 가는, 호텔 근처의 고풍스런 스테이크 하우스를. 그런 광경은 온몸에 조용한 활력을 가져다준다. - P203
나는 이제 더 이상 캄캄한 어둠의 세계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것을 그만둔다. 침묵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그만둔다. - P203
버넌 듀크Vernon Duke가 작곡한 청아하고 아름다운 발라드 <뉴욕의 가을> - P204
덧없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그저 이국적인 풍경에 한숨을 내쉴 거야 이것이 뉴욕의 가을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Dreamers with empty hands May sigh for exotic lands It‘s autumn in New York It‘s good to live again - P204
당연히 달려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것이 마라톤 레이스인 것이다. - P205
레이스용 사이클은 페달을 힘주어 콱 밟는 것과 동시에 발을 들어 올려야 한다. 힘껏 밟고 바로 발을 들어 올리는 동작에 의해 스피드를 올려간다. 그런 발의 회전을 되도록 원활하게 유지한다. 특히 긴 오르막길을 빠른 속도로 넘기 위해서는 이 ‘발을 들어 올리는‘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발을 들어 올리는 데 필요한 근육은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근육이어서 사이클 연습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그 근육에 피로가 쌓여 퉁퉁 부어오른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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