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어본 내용은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인 기와지붕이 있는 집의 지붕 아랫면에 있는 단청에 대한 것이다. 건축물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보일 수 있는데 우리나라가 속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에 좀 더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안에서 밖을 볼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깥 배경과 함께 지붕 아랫면에 있는 단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청에 칠해진 색깔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다.

뒤이어서 이집트 지역에서 기하학과 천문학이 발달한 이유가 나오는데 핵심은 홍수라는 것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홍수는 이집트인들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었기에 이에 대비하고 예방하기 위해 천문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고, 매년 홍수가 난 뒤 토지 구획을 자주 하다보니 기하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단순히 1차원적으로 그냥 이랬더라 하고 끝나면 독서의 의미가 반감될 듯 하고, 한 차원 더 확대해서 생각해본다면 학문이라는 것이 발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는 기초학문 응용학문 가릴것없이 학문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발전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집트에 홍수가 없었다면 과연 천문학과 기하학이 일정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었을까 되물어본다면 독자인 나는 절대로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이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굳이 귀찮게 규칙을 만들고 발견하는 일에 시간을 쓰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확장해보자면 유전자의 생존본능에 의해 학문도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쓰고보니 참 별거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것을 머리만이 아닌 마음으로 깨달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에서 건축물이 자연을 바라보게 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한다면, 서양에서는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건축이 되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존속되는 건축물이 적은 것이다. 잘 썩는 목재라는 재료 자체의 제약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동아시아에서는 ‘피라미드‘나 ‘하기아소피아 성당‘ 같은 거대한 크기의 덩어리를 갖는 건축물이 적다. 대신 건축물 안에서 바깥 경치를 구경하기 좋은 건물은 많다. - P78

외국인들에게 경복궁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게 해 주려면 ‘근정전‘이나 ‘경회루‘를 밖에서만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된다. 안에서 바깥 경치를 보게 해줘야 우리 문화의 진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처마에 예쁘게 색칠한 단청을 만든 것이다. - P78

창문 밖으로 경치를 보았을 때 시야에서 윗부분을 프레임하는 것이 서까래와 처마다. 처마 부분은 외부 자연 경관을 담는 액자의 프레임이니, 장식이 들어간다면 이 부분에 했어야 했던 것이다. - P78

재미난 것은 단청을 구성하는 색깔이다.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대부분이 녹색 계통이고 강하게 보색이 되는 자줏빛을 사용한다. 이 색깔은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자연을 더 확장돼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추측된다. 여름철에 처마에 서서 주변 산을 바라보면 자줏빛은 나뭇가지처럼 보이고, 녹색은 나뭇잎으로 보여서 주변 풍경이 연속되어 건축물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단청이 왜 그렇게 명도가 높은 색상으로 된 것인지도 이해가 된다. - P78

처음에 서양인의 시점으로 건물을 밖에서 바라보면 단청의 채도가 너무 눈에 띄게 높아서 거슬린다. 그러나 안에서 밖을 바라보게 되면 이해가 된다. 어두운 실내에서 밖을 보면 자연은 밝고 처마 부분은 그림자가 져서 어둡게 된다. 이때 녹색과 자줏빛을 채도가 낮은 차분한 톤으로 칠하면 그림자 진 상태에서 칙칙해 보이고 자연과 건축의 경계가 명확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단청 색깔처럼 채도가 높은 밝고 선명한 톤으로 칠하면 단청이 그림자에 들어가 있어도 밝은 바깥 경치와 연결돼 보인다. - P79

단청의 색깔만 보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건축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건축물이 자연에 흡수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건물 외부에 있는 객관적인 제3자의 시각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사람의 1인칭 시점에서 디자인적 판단을 내렸음을 알 수 있다. - P79

농업이 몇몇 품종을 선택해서 대량 생산의 생태계를 만든 것이라면 목축업은 몇몇 종의 동물을 집중해서 배양해 키우는 방식이다. - P81

장사는 서로 다른 물건을 가지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 - P81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숫자의 십진법은 인도에서 개발되었지만 중동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많이 사용해서 아라비아숫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 P82

학자들은 천문학과 기하학이 이집트에서 발달한 이유가 나일강의 범람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일강 하구에 위치한 이집트 문명은 일 년에 한 번씩 반복된 범람을 경험했다. 주기적으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홍수가 나니 자연스럽게 시간의 순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홍수가 나는 시기를 모르면 농사도 못 하고 수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82

홍수가 나는 시기를 예측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계속해서 물에 잠겼다가 빠지는 땅은 변화를 알아내는 데 이용할 기준이 될 수없었다. 그래서 물에 잠기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의 위치를 보면서 별자리의 형태가 특정한 모습이 되었을 때 홍수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는 별자리를 통해서 홍수 시기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천문학이 발달했다. - P82

한 번 범람하고 나면 땅에 그었던 토지의 경계선이 다 지워져서 어디까지가 누구 땅인지 알기 어렵다. 범람이 잦아든 후 매년 토지 구획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측량술과 기하학이 발달했다. - P82

"수가 형태와 사고를 지배한다" - 피타고라스 - P83

피타고라스는 음계를 수학적으로 정의 내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첼로 같은 현악기에서 특정 줄의 음을 낸 후에 그 줄 전체 길이의 2분의 1지점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소리 내면 두 소리가 화성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3분의 1지점을 누르고 소리 내도 화성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이 음이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운 ‘완전 5도‘다. 우리가 음악에서 듣기에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숫자로 규명한 사람이 피타고라스다. - P83

플라톤은 "수학은 세계를 이해하고 기술하는 최적의 언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원자가 정사각형이나 정삼각형같이 기하학적이라고 믿었다. 플라톤은 원소인 물, 불, 흙, 공기가 모두 3차원 기하학 도형이라고 믿었는데, 흙은 정육면체, 공기는 정팔면체, 물은 정이십면체라고 믿었다. - P84

플라톤은 인류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인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해서 정치학, 윤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등 많은 철학적 논점에 대해서 가르쳤는데, 특이한 점은 이 학교에는 수학에 기초가 없는 사람은 입학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학교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 P85

현대 양자 이론의 대가인 카를로 로벨리의 저서《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 의하면 플라톤은 수학을 공부한 제자들에게 ‘하늘에서 보이는 천체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수학적 법칙‘을 발견할 수 있겠는지 물어 보았다고 한다. 플라톤의 이 제안을 받아들여서 플라톤 학파의 에우독소스Eudosox (BC 390~BC 337)가 연구했고, 여러 학자를 거쳐서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83?~168?)에 의해서 완성되어 비로소 수학적인 천문학 체계가 시작되었다. - P85

어찌 보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피타고라스의 수학이 만나서 만들어진 ‘변종 사고‘라 할 수 있는데, 수학적 사고가 그의 철학에 미친 영향은 ‘이데아‘의 개념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 P85

플라톤 철학의 정수로 평가받는《국가론》7권의 ‘동굴의 우화‘를 보면 플라톤 철학의 중심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이데아‘설이 나온다. 그 이야기를 좀 살펴보면, 현실에 사는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손과 발이 벽에 묶여 있고 목도 묶여 있어서 뒤나 옆은 못 보고, 앞만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사람은 머리 뒤쪽에 있는 횃불로 인해 만들어진 동굴 벽에 비친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만 볼 수 있는 것이다. - P85

플라톤은 이처럼 우리는 실체를 볼 수 없고 이 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현상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으며,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인식하는 것은 그 본질인 이데아의 현상일 뿐 실체는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철학적 이성을 통해서만 우리가 볼 수 없는 본질인 이데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 P87

플라톤의 머릿속에 있는 이데아 같은 관념적 완전성은 수학적 사고에서나 가능하다. 자연 속에는 완전한 기하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동그랗게 보이는 지구도 적도가 부풀어 오른 타원의 형태를 띠고 있고, 지구는 둥그런 구 형태이기 때문에 땅에 그려진 삼각형도 사실은 완전한 직선의 삼각형이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각의 합이 180도인 삼각형을 우리의 머릿속에서 상상하여 인식한다. 그리고 원이란 한 점에서 같은 거리의 점들을 연결한 선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이러한 수학적 개념은 다분히 현실 세상에서는 실존하지 않는 완전성이다. 이러한 수학의 완전성은 이데아의 개념적 완전성과 일맥상통한다. - P87

플라톤은 개념상 온전한 세상인 이데아를 상상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이성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적 이성에는 수학적 사고도 포함될 것이다. 이렇게 ‘완전한 이데아 + 이성(수학)을 통한 탐구‘는 유럽 정신세계의 기초가 되었다. - P87

데모크리토스는 21세기의 과학자들과 아주 유사한 사고 체계를 가졌다. 다른 말로 하면 무신론자고, 이성을 중시하며 신비함을 배척하는 사고 체계인 것이다. 그런데 로마가 국교를 기독교로 삼으면서 그의 무신론적 사고는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생각은 대가 끊기게 된 반면, 플라톤은 이데아 같은 이상향을 설정함으로써 신이 존재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과 세계 곳곳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이 둘은 방식이 약간 다르지만 어쨌든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상이다. 따라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후 서양 사상의 근간이 되었다. - P88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공통점은 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은 수학으로 세상의 움직임을 보고 싶어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은 이성을 잘 개발하면 가장 좋은 상태까지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두 사람의 영향으로 서양의 문화는 수학을 통해서 완전하고 형이상학적인 ‘신神‘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 P88

바울은 예수 생전에 함께 다니던 제자가 아니다. 그의 직책은 ‘사도‘여서 사도 바울이라고 불린다. 사도는 ‘파견된 무리‘ 혹은 ‘~에게 사용되는 무리‘라는 뜻으로 당시에는 예수를 직접 만났던 사람만이 받을수 있는 직책이었다. - P91

성경의 첫 번째 장인 창세기를 보면 1장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나오는데, 그 구절 속의 ‘말씀‘이 헬라어로 ‘로고스(logos)‘다. 이 로고스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분이 예수라고 기독교는 말한다. 그리고 그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다. - P9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개역개정)

로고스를 통해서 천국에 가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 정리하면 ‘말씀(로고스)= 예수=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는 공식이 나온다. 따라서 ‘천국 가는 길 = 로고스‘ 즉, 천국에 가는 길은 로고스라는 말이다. - P93

‘로고스‘의 사전적 의미를 가톨릭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교와 고대 철학 사이의 접촉을 담당한 중심적인 하나의 학문적 개념. ‘로고스‘의 개념은 ‘말한다‘는 그리스어로부터 나온 말인데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 P93

① 그리스도교 신학에선 삼위일체의 제2위 곧 ‘예수‘를 가리키며, ‘하느님의 말씀‘을 뜻하고, - P93

② 철학적으로는 그리스철학의 경우, 만물을 이성적으로 관철하여 지배하는 법칙, 스토아학파의 경우는 숙명적 필연적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이법(理法) 즉 신을 말한다. 예를 들면, 헤라클레이토스의 우주의 모든 것을 지배 규제하는 우주이성(宇宙理性), 스토아학파의 우주혼(宇宙魂), 필로(Philo)의 신과 세계와의 중간체(中間體), 헤겔의 절대이념(絶對理念) 같은 것인데, 체제 속에 깃들어 있는 이념이며, 그 체제를 뜻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 바로 로고스다. - P93

③ 이성적인 지능에서 출발하여 표현된 여러 활동을 통틀어 로고스라고 지칭한다. 말로써 표현된 의미개념, 이론 또는 사상 내용을 가리키는 말인데, 때로는 유기적인 생명 또는도덕적인 태도 즉 그리스어 ethos와 대립되는 사상 혹은 이념의 범위 전체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고 - P94

 ④ 일반적으로는 흔히 말 · 의미 · 이유 · 논리 · 이성(理性) 따위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 P94

단어의 풀이를 살펴봤을 때 흥미로운 점은, 로고스라는 한 단어 안에 ‘논리적 이성‘과 ‘예수‘라는 뜻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사상과 그리스 철학에서 ‘천국 = 이데아‘, ‘예수 = 로고스(이성)‘로 놓고 문장에 대입하면 말이 되는 문장이 완성된다. ‘예수를 통해서 천국에 간다‘라는 말은 ‘이성을 통해서 이데아에 이른다‘와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이다. - P94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는 둘 다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가 있는 것으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그 둘을 바탕으로 한 서양의 사고방식에는 절대 진리의 세계가 있으며, 그곳에 이르는 길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 이 같은 사고방식이 있었기에 수학이 서양 문화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학문으로서 위치할 수 있었고, 그 토대 위에 과학혁명이 가능했던 것이다. - P94

수학의 대표 주자 피타고라스는 철학을 뜻하는 ‘philosophic‘이라는 말과 우주를 뜻하는 ‘Kosmos‘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학파는 현악기에 있는 줄의 길이와 음정의 관계를 처음으로 연구했는데, 그 이유는 만물의 아름다움에 수학적 해석이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수학이 아름다움을 만든다는 믿음이 시각적으로 적용이 된 것이 ‘황금비율‘이다. - P94

‘정량적 하모니‘, ‘숫자‘, ‘이성‘, ‘기하학‘은 서양 문화의 키워드 - P95

수학을 통해서 완전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세계관은 건축의 빈 공간에 나타나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부터 근대 이전까지 서양의 종교 건축물의 공간 구성은 기하학적 수학적 분석에 의해서 설계되어 왔다. 예를 들어서 ‘판테온‘ 의 빈 공간의 평면과 단면의 모습은 원이다. ‘하기아 소피아‘ 의 건축 공간 역시 여러 개의 원 조합으로 분석 가능하다. - P95

두 문화권(동양과 서양)은 여러가지 분야에서 차이점을 보이는데, 우선 이상향의 공간적 개념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살펴보자. 서양 기독교에서의 이상향은 천국이며 천국은 우리가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이는 마치 이데아에 절대로 가지 못하는 동굴에 묶인 사람과 같다. 절대적 공간은 있지만 인간은 갈 수 없다. 다만 상상할 뿐이다. - P97

하지만 동양의 이상향인 무릉도원은 다르다. 무릉도원 설화는 이렇다. 진나라 때 어느 어부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숲을 지나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낙원 같은 마을을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나온 후 다시 찾아가려고 했더니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동양에서의 이상향은 우리와 같은 세계에 존재하지만 다만 찾기 어려운 장소일 뿐, 우리가 절대로 갈 수 없는 세상은 아니다. - P97

선악에 대한 가치관에서도 차이점이 보인다. 서양 문화에서는 선악의 가치관이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서 십계명 같은 법은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같은 명확한 독립적인 명제로 선善을 규정한다. - P97

반면에 동양에서는 선악의 결정을 관계에 의해서 설명한다. 동양에서는 절대적인 선을 믿지 않는다. 동양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용中庸‘을 살펴보자. - P97

중용의 개념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쉽게 말해서 눈치 봐서 가운데에 서라는 말인데, 벼농사 사회의 공동체 내에서 튀지 않게 행동하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 P98

동양에서 최고의 덕으로 이야기되는 ‘중용‘은 절대적 선의 개념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과 관계에 따라서 변화하는 선의 개념이다. - P98

동양에서 도덕의 가장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효孝‘는 부모와 자녀라는 두 사람 간의 상대적인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충忠‘은 임금과 신하라는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선이다. 동양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선을 찾으려 했다. - P98

부모자식의 관계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피할 수 없는 관계다. 사람들은 존재하는 즉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동양에서는 그 관계 속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했다. 이는 집단 노동 방식으로 벼농사를 지으면서 만들어진 가치관이다. - P98

서양 근대 철학의 시작을 연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를 찾았는데, 사고의 근저를 계속 파내려 가다 ‘생각하는 나‘에 다다른 것이다. 이는 서양 철학은 독립적인 자아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혼자서 씨뿌리고 일하는, 밀을 경작하는 사람다운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다. - P99

사회에서 최소 단위를 개인으로 본 것처럼 과학에서도 최소 단위를 찾아서 수천 년을 연구했다. 서양 과학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최근 현대물리학에서 소립자 구성 입자인 쿼크quark를 발견할 때까지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찾아 왔다. 독립된 ‘개인‘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 서양 철학과 ‘원자‘를 찾으려고 노력해 온 서양의 과학은 일맥상통한다. - P99

동서양은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던 서양과는 달리, 동양은 특이하게도 사후 세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 P99

공자는 어느 날 제자 계로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 라고 질문하자, "사는 것도 모르는데 죽은 뒤를 어떻게 알겠는가?" 라고 답했다고 한다. - P99

『세계 종교의 역사』의 저자 리처드 할러웨이에 의하면 사후 세계에 대해서 무관심 혹은 의식적으로 무시하려는 것은 전 세계의 종교 역사를 통틀어서 중국 등 일부 나라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특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집트나 힌두 쪽 문명은 사후 세계에 상당한 관심을 갖는데 반해, 중국은 상대적으로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집단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벼농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갖는 생각답다. 당장에 내 눈앞에 닥친 집단 노동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문제가 더 급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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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홀로 있을 때 생각은 자란다‘ 라는 소제목에 나오는 내용들로 시작한다. 처음 밑줄친 문장은 긍정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 님이 한 말이라고 한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본문을 읽다보면 저자는 원래 사교적인 사람이어서 젊은 시절에는 온갖 모임들을 주선할 정도로 모임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의 일을 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모임을 갖는 것도 좋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기자신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세상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는 게 좋아서 이제는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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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저자가 가지고 있는 습관(?) 혹은 태도 중에 ‘모든 것을 미리 하는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무슨 마감기한이 있는 프로젝트 같은 것이 있을 때 저자는 1주일 전에 미리 다 끝내놓고 진짜 마감기한까지 남은 기간 동안 틈틈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세부적으로 다듬어 간다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럼으로써 좀 더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또한 마음에 여유가 생기게 되어 다른 일을 하는데도 지장을 받지 않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미리 함으로써 시간관리가 잘 되다보니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일을 수락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게 단점인 것 같다는 저자의 고백(?)도 나오는데, 독자인 내가 보기에 이런 단점(?)은 행복한 고민처럼 느껴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단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절을 바꿔서 나오는 내용에서는 저자가 쓴 글에 대해 문학평론가들로부터 기승전결이 없다는 비판을 받을 때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부분은 몇 달전 읽었던 동 저자의 《최재천의 곤충사회》라는 책에서 비슷한 내용을 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먼저 여기서 글쓰기에 크게 두 종류가 있다는 점을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듯 하다. 크게 문학적 글쓰기와 과학적 글쓰기가 있는데, 문학적 글쓰기의 경우 위에서 평론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스토리의 구성이 기승전결로 명확한게 좋다고 한다. 이는 결론이 앞에서 나오지 않고 마지막에 나온다는 게 핵심적인 특징이다. 반면, 과학적 글쓰기는 보고서나 논문 같은 데서 요구되는 방법으로 글의 결론이 서두에 제시되어야 좋다는 게 정설이다. 보고서나 논문같은 것들은 원체 딱딱한 글이기에 읽는 사람이 앞에서부터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나가기에는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로 인해 맨 앞에서 핵심적인 결론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 이후에 서론 본론 결론을 다시 언급하는 게 좋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요즘 함께 읽고 있는《소통하는 보고서 최소원칙》이라는 책에서도 보고서를 쓸 때 결론을 먼저 언급하고 그 뒤에 서론 본론 결론을 재차 적어나가는 게 좋다는 얘기를 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걸 보면 독서라는 게 참 내용들이 얼키고 설켜서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정도의 기분좋은 짜릿함(?)도 느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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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에선 저자가 글을 쓰고 탈고하기 전까지 정말 수없이 자신이 쓴 글을 반복해서 읽어본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소리 내어 읽으며 어딘가 숨쉬기가 좀 불편하면 해당 문장을 뜯어고친다고 할 정도이고 이러한 작업은 문장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읽힐 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독자인 나는 다른 책들에 비해 이 책의 가독성이 엄청 좋다는 게 읽으면서 느껴졌다. 양질의 도서 중에서도 쭉쭉 읽혀서 진도가 잘 나가는 책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책도 있는데 최재천 교수님의 책은 적어도 내게는 전자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책이 출판되기 전에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은 저자의 보이지 않는 노고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의력은 혼자서 몰입한 시간이 만들어낸다." - P96

자기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고, 홀로 집중하며 만들어낸 작업을 사람들은 ‘창조적이다!‘라고 감탄한다고요. 혼자만의 시간이 쌓여 세상의 꼭짓점을 끌고 가는 아이디어나 결과물이 나오지요. - P96

제 의견이 받아들여질 때가 많았던 건 밤에 온전히 혼자 이것도 저것도 읽고, 이렇게 저렇게 뒤집어보며 생각을 정리한 덕이겠죠. - P96

 ‘저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하니 나는 그걸 좀 비틀어 말해볼까?‘ - P96

회의 중에 갑작스러운 순발력으로 짜낸 생각이 다수의 동의를 이끌기는 힘듭니다. - P96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라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지 못하고 ‘고독‘과
‘고립‘을 혼동합니다. - P97

‘고독‘이란 ‘자발적 홀로 있음‘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이 홀로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고요. 내가 나와 온전히 함께하면서 내 안에 스며든 세상의 요소도 바라보도록 안내하지요. 혼자 있는 시간은 세상과 연결된 적극적 나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시간이 아닐까요? - P97

‘자발적 홀로 있음‘이라는 표현이 참 좋네요. 시인 황동규 선생님은 그걸 ‘홀로움‘이라 부르셨죠. - P97

모든 걸 미리 하는 태도 - P101

5일 후에 마칠 일을 5일 전에 끝낸다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5일이라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했어요. 미리 끝내고 틈날 때마다 리포트를 다시 들여다보며 조금씩 고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질이 좋아질 뿐 아니라 돌발 변수가 생겨도 대처할 시간이 있다고요. - P102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 일‘은 ‘1주일이나 2주일 전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됐어요. 미리 다 해놓습니다. 남은 기간 저는 다른 일을 하다가 갑자기 30분 정도 여유가 생기면 그때 다시 그 일을 살펴봅니다. 한 번 더 읽어 보고, 조금 고치고, 파일을 저장하죠. - P102

시간을 두고 다시 보면 내가 나를 코칭하듯이 객관화가 되죠. - P102

미리 하지 않으면 저는 기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래서 더 철저하게 미리합니다. - P104

마감에 쫓기며 무언가를 생산하는 많은 사람이 긴장을 조절하지 못해 힘든가 봐요. 고무줄에 비유하면,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고 이완시키지 않으니 어느 순간 철사처럼 굳어져 자기를 찌르는 거 같습니다. - P104

저도 미리미리 하는 습관을 들이는 중인데, 오랫동안 스스로를 벼랑으로 모는 습관을,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 P104

저에게 다들 묻습니다. 도대체 그 많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느긋할 수 있느냐고요. 제 답은 하나죠. 마감 1주일 전에 미리 끝냅니다. 마음에 엄청난 평안을 줘요. 결과물의 질을 높일 수도 있고요. 딱 한 가지 나쁜 건, 시간 관리가 된다는 자신감이 넘쳐 너무 많은 일을 수락한다는 겁니다. - P104

읽은 내용을 기억해서 베끼는 게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문장이 탄생합니다. - P108

‘친숙함을 낯설게 하는 전략‘ - P109

익히 아는 것을 자연에 빗대어 뒤틀어놓으니 익숙함이 낯설어진다 - P109

‘과학적 글쓰기는 결론부터 써야 한다‘ - P111

문학적 글쓰기와 과학적 글쓰기가 충돌하던 시절 - P111

"지면 비워놓았다." - P112

요즘 글쓰기 관련 책에서 많이 하는 조언이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쓰라‘입니다. - P113

글을 잘 쓰는 두 가지 방법은 ‘일단 미리 쓴다. 계속 검토하면서 물 흐르듯이 넘어갈 때까지 손본다‘네요. - P115

읽는 사람이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살랑살랑 넘어가서, ‘맞아, 그렇지‘ 하게끔 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요. - P115

제가 뜻밖에 자주 하는 행동이 있는데요. 읽다가 ‘재미없네. 뭔가 밋밋하네‘라는 생각이 들면 문단 순서를 바꿉니다. 가끔 기막힌 맛이 살아납니다.  - P115

저는 독자를 함정에 살짝 빠뜨려놓고 ‘제가 요렇게 이야기할 줄 알았죠? 아니에요. 저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라는 식으로 쓴 글들을 좋아합니다. - P116

계속 읽으면 멋진 한 문장이 탄생하는 수가 있습니다. 단어 한두 개를 바꾸면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문장, 사람들이 안 좋아해도 스스로 감탄하는 문장이 탄생합니다. - P116

‘이제는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말해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 P116

저는 답장을 안 하는건 거절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서 거절 답장이지만 보내죠. 놀랍게도 거절 답장을 받있는데도 굉장히 호의적으로 응답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 P119

저도 섭외 편지를 많이 보내는데요. ‘당신이 이렇게 좋은 기획을 제안하고 꼭 답하고 싶은 질문들을 보내주었는데 내가 얼마나 바쁘면 인터뷰를 거절해야 할까요!‘라는 답장을 받고는 ‘세상에 기여하는 당신에게 감사하며 늘 응원하겠다‘라고 거절 감사 답장을 보내요. - P120

피터에게 가장 먼저 배운 영어 표현이자 ‘삶의 수업‘이 "Younever know until you try"예요. "우리는 해보기 전에 절대알 수 없어"라면서 미국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이라고 설명했죠. - P120

저는 전략을 가지고 갔어요. - P123

"리포트는 너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뭐 했다고 쭉 써내는 것은 리포트가 아니다." - P126

제가 미국에서 동물행동학 Ethology을 가르칠 때, 학생들은 수요일 저녁에 학교에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봐야 했어요. 참석도 평가에 들어가고 소감도 써서 내야 했습니다. 매주 별도의 토론을 하고 그에 관한 글도 썼습니다. 거의 매주 책 한 권을 읽고 독후감도 제출해야 했습니다. - P127

"대한민국 교육을 내 손에 쥐어주면 지금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속된 표현으로 오줌을 지릴 정도로 만들어놓겠다" - P127

어차피 우리는 국제 시장에서 돈을 벌어 와야 하는 시대에 살아요. 우리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고, - P130

"살다 보면 열한 개 중에서 열 개만 해도 될 때가 있는데, 이때 열 개를 하는 사람이 유리할까 아니면 최선을 다해 열한 개를 다 하는 사람이 유리할까?" 열한 개 하는 사람이 유리하죠. 실수한 하나를 뺄 수 있으니까요. - P131

‘남의 생각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감성을 동원해서 내 생각을 찾아가는 과정‘ - P131

"인생이 그렇다. 설마 우리 인생이 ‘쟤가 내 경쟁 상대지‘
그러면서 상대를 뭉개고 방해하고 나 홀로 득세하는 방식일까? 내가 관찰한 일상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평소에는 동료로 같이 도우면서 뭔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같이 평가를 받는데, 그런 와중에 쟤는 평가를 잘 받고 나는 못 받는다. 아마 다 같이 못 받은 것보다 더 억울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동료를 뭉갠다고 내가 올라가지 않으니 같이해야 하는 일은 하고, 동료가 잠시 쉴 때 나는 돌아앉아서 또 일하는 거다. 내 친구들이 잘 때 일어나서 조금 더 한 그 시간으로 판가름이 난다." - P132

제 수업의 점수 절반은 동료와 같이해서 얻는 점수이고, 절반은 혼자 해서 얻는 점수예요. - P132

삶이란 게 그래요. 함께하는 일을 열심히 해도 자기 일을 못 챙기면, 나중에 상대가 나보다 더 잘나갈 때 상대에게
"너는 노력을 더 해야겠다"라는 말을 듣는 험한 꼴을 당할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 것은 열심히 챙기면서 같이 일할 때 얌체처럼 굴면 동반추락하고요. 이 둘을 어떻게 잘 조율하느냐가 인생이죠. - P133

책 읽기에 대해 강연할 때 저는 코끼리가 똥 누는 사진을 화면에 띄웁니다. 코끼리 똥 실제로 보신 적 있으세요? 어마어마합니다. 들어간 게 있어야 나오지 않겠습니까? - P134

많이 읽은 사람들이 글을 잘 써요. 읽은 내용을 기억해서 베끼는 게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문장이 탄생합니다.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사례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 P134

책 읽기는 저자와의 대화 같아요. 저자가 제안하는 내용을궁리하게 되고, 내 눈으로, 내 속도로 읽으면서 생각도 정리되고요. - P134

"웃기지? 너희들 생각에 얘가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지? 그런데 얘는 다 듣고 있거든. 얘한테 매일 ‘우르르 까꿍‘만 하는 것은 시간 낭비니까 책을 읽어주고 세상 이야기를 해줘" - P135

그날부터 아기가 눈 뜨고 있는 시간에는 둘이 번갈아서 책을 읽어줬어요. 어느 날은 너무 졸려서 책을 읽다 잠이 들었는데, 누가 책을 읽고 있더라고요. 아들이었습니다. 책을 다 외운 거죠. 그림을 보면서 줄줄 읊었어요. - P135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 지문도 과학 기사나 국제 뉴스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데, 영어 단어를 몰라도 아는 내용이면 풀 수 있죠. GRE도 마찬가지고요. 내용을 파악하며 답을 유추할 수 있으니까요. - P136

결국 많이 읽은 사람을 당해내기란 어려운 거죠.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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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질문에 물리학이 ‘별에서 왔지‘라고 답한다는 얘기를 했었다. 이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말이 좀 길어지는 관계로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밑줄친 부분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 하다. 그래도 여기서 핵심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환경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원자가 지구 밖에서 왔다는 정도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듯 하다.

오늘은 위에서 잠깐 언급한 ‘별에서 왔지‘라는 문장 안에 있는 별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별의 생애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사람과도 비슷하다는 얘기를 전하는데 읽으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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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p.231에 밑줄 친 내용 중에 초신성超新星이라는 뜻을 가진 supernova라는 단어가 나왔다. 우연한 타이밍인지는 몰라도 이 단어는 최근 인기 아이돌 그룹인 에스파의 노래 제목이기도 해서 독자인 나는 이 노래 후렴부분의 멜로디만 어렴풋이 알고 있다가 문득 노래의 가사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가사 중에 ‘우린 어디서 왔나‘ , ‘불러낸 내 우주를 봐봐‘ , ‘내 모든 세포 별로부터 만들어져‘ , ‘원초 그걸 찾아‘ 등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아마 이 노래를 작사하신 분도 우주에 존재하는 별에 대한 배경지식들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었기에 이러한 가사들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볼 수 있었다. 사소해보일수도 있지만 이렇게 책에서 읽어봤던 내용들을 실생활에 적용되는 것들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니 조금이나마 더 우주나 별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태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태양도 별의 한 종류라는 말과 함께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태양이라는 게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물론 본문의 내용에 근거하자면 한 50억년 정도 후에 사라진다고 하니 우리 생애에야 영원하다고도 볼 수 있을진 몰라도, 그냥 이론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에 있다는 건 인간이나 태양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게 정설이라고 한다. p.234 에 밑줄친 문장인 ‘우리는 우주의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말은 문득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 우주상에서 참으로 작디작은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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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불교와 양자역학 간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어느 물리학자의 말을 인용하는데 여기서의 핵심은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불교와 양자역학 간의 교집합적인 부분을 얘기해보자면 어떤 대상들 간의 상호의존 관계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p.237에 밑줄 친 내용에서 저자는 경전의 내용을 글자하나 틀리지 않은 진리라고 주장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최초의 원문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의미의 왜곡이 발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기독교나 불교나 관계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독자인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해당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과 저자간의 의견 충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쨌든 이 책은 저자가 쓴 책이니 여기서는 저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게 맞다고 본다. 사람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세계관이 다들 다를 것이기에 뭐가 옳고 그르냐는 식의 가치 판단은 독자 개개인의 몫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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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막판에는 ‘유물변증법‘이라는 것이 살짝 나오는데 저자가 청년시절에 읽었다고 하는 책에 나온 명제들은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본 듯 한 문장들이어서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다음 포스팅에서 관련 내용을 조금 더 다뤄보겠다.




별도 태어나고 죽는다. 저마다 주어진 시간이 있다. 절정기에는 스스로 제어하지 못할 에너지를 내뿜는다. 짧고 장렬하게 최후를 맞기도 하지만 생애의 마지막이 길고 초라한 경우도 있다. 사람과 닮았다. - P229

우리 모두가 ‘별에서 온 그대‘라면, 별은 언제 왜 생겼고 우리는 어떻게 별을 떠나 지구에 왔을까? - P229

모든 것은 한 점에서 출발했다. 138억 년쯤 전에 밀도와 온도가 매우 높은 한 점이 폭발하면서 우주가 탄생했다. ‘빅뱅‘이다. - P229

빅뱅이 일어난 시점을 어떻게 알아냈는가? 모든 천체가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속도를 역산했다. 증거가 있는가? 여러 증거가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은 우주 전역에 존재하는 주파수 약 160기가헤르츠의 전자기파다. - P230

빅뱅 직후 매우 뜨거웠던 우주에서 나온 빛이 우주 전체로 퍼져 나갔다. 처음보다 파장이 1,000배 넘게 길어진 상태로 지구에 도달한 그 빛을 ‘우주배경복사‘ 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라고 한다. - P230

빅뱅 직후 양성자와 중성자를 비롯한 입자가 생겼다. 그 입자들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서 주기율표 첫 주기의 수소와 헬륨이 되었다. - P230

우주가 팽창하면서 온도가 떨어진 탓에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는 합성하지 못했다. 빅뱅 때 만들어진 가스와 먼지가 중력으로 뭉쳐 별이 되었고, 별에서 원자번호 3번 다음의 원소들이 태어났다. 질량이 큰 별일수록 온도와 압력이 높았다. - P230

태양보다 수십 배 무거운 별들은 수백만 년 동안 수소를 융합해 헬륨을 생산하다가 수소가 소진되어 온도가 내려가자 중심부를 향해 수축했다. 그로 인해 중심부 온도가 상승하자 헬륨 핵을 융합해 탄소를 제조했다. 헬륨이 소진된 뒤 중력으로 더 수축했고 더 높은 온도에서 더 무거운 원소의 핵을 융합했다. 나트륨·네온·마그네슘·황·실리콘이 차례로 생겼다. 마지막 생산물은 양성자 26개와 중성자 30개를 가진 원자번호 26번 철(Fe)이었다. 별은 남은 원자핵을 모두 태워 철을 합성하고 폭발해 ‘스타의 일생‘을 마감했다. - P231

별의 이름은 인간의 시선을 반영한다. 신성新星(nova)은 갑자기 밝아진 별이고 그중에도 유난히 밝아진 별이 초신성超新星(supernova)이다. 초신성은 하루 사이에 몇만 배 밝아지기도 한다. 육안으로 우주를 관측하던 시대에 그 별이 새로 나타났다고 생각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 P231

그러나 그 별(신성新星)들은 장렬한 최후를 맞는 중이었다. 우리가 관측한 시점에는 이미 죽고 없었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때 수백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폭발한 그 별들이 내뿜은 빛을 본 것이다. 성능 좋은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멀리 볼수록 우리는 더 오래된 과거를 만난다. - P231

별의 시신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다. 철로 가득한 별의 시신은 자체 중력으로 계속 수축한다. 중심부의 밀도와 온도가 상승해 물질이 내부에서 부서져 튀어나온다. 그 반작용으로 중심부는 더욱 수축해 철보다 무거운 원소를 생성하고 폭발해 물질을 우주 공간에 흩뿌린다. - P231

어떤 별의 시신은 내부가 중성자로 가득했다. 중성자별은 다른 중성자별과 충돌해 초신성이 폭발한 때보다 더 무거운 원소를 만들었다. - P231

태양은 젊은 별이다. 빅뱅 이후 90억 년도 더 지나서 태어났다. 태양이 보내는 온기 덕에 지구는 생명의 행성이 되었다. 태양은 약 45억 년을 살았고 그보다 조금 긴 생애를 앞두고 있다. 빅뱅과 초신성 폭발, 중성자별 충돌 등으로 뿌려진 물질이 우주 구름으로 회전하다가 중력으로 뭉쳐 수소핵융합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태양은 다른 별과 다르지 않다. - P232

우주 구름이 뭉쳐 태양이 될 때 떨어져 나간 물질 가운데 수소 · 헬륨 · 메탄 · 암모니아처럼 가벼운 것은 멀리서 모여 가스형 행성인 목성 · 토성 · 천왕성 · 해왕성이 되었다. 철 · 니켈 · 알루미늄처럼 무거운 원소들은 태양 가까운 곳에서 바위형 행성인 수성 · 금성 · 지구 · 화성을 만들었다. - P232

지구는 중력 수축으로 중심부가 뜨거워졌지만 핵융합을 할 만큼은 아니었다. 형성 초기에 큰 행성과 부딪친 충격으로 자전축이 공전 면에 대해 약 23.5도 기울어져 사계절이 생겼고 떨어져 나간 물질은 달이 되었다. 수억 년 동안 유성이 비처럼 쏟아져 물이 끓었다 식기를 되풀이했다. 유성우가 그쳐 바다가 어느 정도 안정 상태에 들어가자 최초의 생명이 출현했고, 이후 35억 년이 지나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다. - P232

우리는 떠나온 별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 몸의 원자들을 만든 별은 죽고 없다. 태양이 생애를 마칠 때까지는 지구에 머물러야 한다. 다른 별처럼 태양도 죽는다. - P232

태양은 온도와 압력이 높은 중심부에서 매초 수소 4억 톤을 융합해 헬륨을 만든다. 핵융합의 결과 수소 핵 4개가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이루어진 헬륨 핵이 되는데 그 과정에서 질량의 극히 일부가 에너지로 바뀐다. - P233

중심부의 수소는 앞으로 50억 년 정도 지나면 바닥난다. 수소 핵융합이 멈추면 태양은 온도가 내려가면서 자체 중력으로 수축한다. 중심부의 온도와 밀도가 높아지면 헬륨을 융합해 탄소와 산소를 만든다. - P233

태양은 표면에 남은 수소를 마저 융합하면서 적색거성赤色巨星(red giant star)으로 부풀어 오른다. 껍데기가 흩어지면서 수성과 금성을 삼키고 지구를 껴안는다. 그것이 지구의 종말이다. - P233

중심부의 헬륨을 소진하고 나면 태양은 수축하다가 마지막 핵융합을 일으키며 폭발한다. 열기가 남아 있는 동안은 백색왜성白色矮星(white dwarf)으로 희미하게나마 존재를 알리지만 온기를 완전히 잃으면 흑색왜성黑色矮星(black dwarf)으로 우주를 떠돈다. - P233

‘태양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은 틀렸다. 태양도 영원하지 않다. - P233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The sad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 bye to the ones you love 이라는 사프카 노래의 도입부와 "모든 것은 바람에 날리는 먼지"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라는 캔자스 노래 후렴구 가사는 들을 때마다 마음에 와닿는다. - P233

우리는 우주의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 P234

불교는 인격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독교나 이슬람과 다르다. 우주의 모든 것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범신론汎神論, 자연법칙을 신의 자리에 올려두는 이신론理神論에 가깝다. - P234

석가모니는 종교를 창시하지 않았다. ‘스스로 깨달은 사람‘ 이었을 뿐이다. 그는 존재의 이유와 삶의 의미를 탐색한 끝에 인간 이성과 자연법칙 말고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결론에 도달한 철학자였다. - P234

범신론과 이신론에 가까운 종교는 다른 종교나 과학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들은 불교철학이 양자역학과 통한다고 한다. 근거가 없지는 않다. 둘은 분명 닮은 데가 있다. - P235

세상의 많은 종교와 윤리 도덕 강령 중에서 과학적 진리와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불교의 연기법緣起法 이다. 연기법은 붓다가 깨달은 보편적 진리로 그 자체가 과학이다. 시공간의 모양과 물질의 분포는 어느 쪽이 먼저 결정되고 그에 따라 다른 쪽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서로를 결정한다. 둘은 상호의존 관계다. 이것을 불교적으로 해석한 것이 바로 연기법이다. 어떤 사물도 다른 것과의 관계를 떠나 독립해서 존재할 수는 없으며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의미를 가진다. - P235

과학은 어떤 경우에도 종교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는 필요에 따라 과학을 배척하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한다. 무엇도 배척하지 않고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아야 훌륭한 것 아니겠는가. - P236

불교철학과 양자역학의 논리적·역사적 연관성을 확인할 수 없으니 둘이 닮은 것을 우연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어떤 점이 닮았는지 생각하다 보면 깨달음을 얻는 것 같기도 하다. 예컨대 불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문장이 그렇다. - P236

「반야심경」은 당나라 승려 현장이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중국 글자 270자로 압축한 텍스트다. - P236

기독교든 불교든, 우리말로 옮겨 놓은 경전의 내용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은 진리라고 주장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의 언어는 절대 진리를 담지 못한다. - P237

석가모니와 부처는 산스크리트어 샤키아모니(샤키아의 성자)와 붓다(깨달은 사람)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중국 글자 말을 우리 식으로 읽어 한글로 적은 것이다. - P237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그가 죽기 전에 남겼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법(진리)을 등불로 삼는 것은 관습과 미신이 아니라 이성의 힘으로 산다는 뜻이다. 세상에 끌려다니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라 했으니 석가모니는 분명 깨달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무신론자이고 유물론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P238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석가모니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문장이라고들 한다. 기계적으로 옮기면 간단하다. ‘색과 공은 같다.‘ 문제는 ‘색‘과 ‘공‘이 무엇이냐는 것인데, 불교 철학자들은 ‘현상과 실체‘, ‘존재와 변화‘, ‘물질과 마음‘, ‘존재와 무無‘, ‘물질과 에너지‘ 등 갖가지 해석을 제시한다. - P238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정확하게 어떤 뜻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리를 담고 있다는 증거도 없다.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게 당연하다. 이 문장을 양자역학과 연결하려면 ‘색‘과 ‘공‘을 ‘존재‘와 ‘무‘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 P238

우리가 감각으로 인지하는 세계는 물질로 꽉 차 있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비어 있는 것 같지만 지구행성의 모든 공간은 공기로 가득하다. 달과 지구, 지구와 태양, 태양과 다른 별, 은하와 은하 사이에도 물질이 존재하지않는 공간은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그 역逆도 성립한다. ‘겉보기는 꽉 찼으나 실제로는 텅 비어 있다.‘ 원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면 이 말을 수긍하게 된다. 석가모니가 그런 뜻으로 말했다는 게 아니다. 그가 원자의 구조를 알았을 리 없다. 우연일 뿐이다. 그래도 흥미롭긴 하다. - P239

세상은 원자로 꽉 차 있고, 원자는 모두 텅 비어 있다. 존재와 무를 어찌 구분할 것인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양자역학과 엮으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 P240

지구는 태양에서 약 1억 5,000만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태양을 출발한 빛이 ‘빛의 속도로‘ 달려도 지구까지 약 8분 걸린다. 둘 사이에는 수성과 금성뿐, 공간은 대부분 비어 있다. 태양계의 마지막 외행성에 이르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이 띄엄띄엄 있을 뿐이다. 태양계가 유난히 한적한 곳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다른 곳보다는 뭐가 많은 편이다. - P240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 ‘알파 센타우리‘까지 거리는 약 4.25광년이다. 빛의 속도로 4년 3개월 걸린다는 말이다. 1977년 지구를 떠난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7만 년을 달려야 하는 거리다. 우리 은하는 별이 촘촘한데도 그렇다. 우주여행은 사실 볼거리가 없다. 가도 가도 어둠뿐이다. 지구의 천문대에서 보든 우주선에서 보든 다를 게 없다.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 수백만 년, 수억 년 전에 별을 떠난 빛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우주 전체가 텅 비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 P240

원자는 왜 안정되어 있을까?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빈 곳을 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질은 왜 뒤섞이지 않는가? 힘 때문이다. 세 가지 힘이 텅 빈 원자를 꽉 찬 물질로 보이게 한다. - P241

우주에는 네 가지 근본적인 힘이 있다.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이다. - P241

중력은 우주를 뭉치게 한다. 중력이 있어서 지구는 태양 주변을 돌고 태양은 우리 은하에 묶여 있으며 우주는 은하계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를 유지한다. 그러나 원자 규모의 미시세계에서 중력은 아무 힘을 쓰지 못한다. - P241

원자의 구조를 결정하고 원자를 결합해 물질을 형성하는 힘은 핵력과 전자기력이다. 핵력은 강력强力과 약력弱力 두 가지가 있다. - P241

강력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뭉쳐 원자핵을 만든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근본입자가 아니며, 둘이 주고받는 ‘파이 중간자‘ 도 마찬가지다. 그 입자를 만드는 쿼크가 글루온이라는 입자를 교환하면서 강력을 만든다. - P241

약력은 ‘원자핵의 베타 붕괴‘에 관여한다. 베타 붕괴는 원자핵의 중성자와 양성자가 전자나 양전자를 방출하고 양성자와 중성자로 바뀌는 현상이다. 약력은 정말 약하지만 미시세계인 원자핵 안에서는 중력보다 세다. - P241

과학자들은 물질을 더 작은 것으로 끝없이 나누는 환원주의 연구 방법을 통해 미시세계를 파악했고 우주의 탄생시점을 알아냈으며 우주의 종말을 예견하기에 이르렀다.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어디까지 가서 무엇을 더 밝혀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 P242

석가모니는 관찰과 사유를 통해 존재와 부재 사이에 경계가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을 것이다. 양자역학은 석가모니가 얻은 결론이 물질세계의 근본원리와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게 전부다. - P242

종교와 과학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 P242

인문학에는 그럴법한 이야기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나눌 기준이 없다. - P242

‘물질이 관념에 우선한다.‘ ‘세계의 본질은 운동이다.‘ ‘사물은 대립물의 통일이다.‘ ‘변화의 동력은 대립물의 투쟁이다.‘ ‘양적 축적은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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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공작의 꼬리 깃털이 효율성을 중시하는 진화론적인 관점으로는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내용이 나왔었는데, 오늘은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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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저자는 ‘진화 심리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이와 엉덩이의 접점을 찾아간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새롭게 느껴졌던 견해는 사람들이 큰 엉덩이를 선호하는 이유가 생물학적으로 유리하다는 이유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 나온 다양한 견해들은 특정인의 주장정도로만 봐주시길 바란다. 이게 정설이다 같이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점 참조해주시길 바란다. 아, 저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만 봐주시면 좋겠다.)

하지만 더 읽다보니 진화적인 관점을 지칭하는 (이 책의 용어로) ‘적응주의‘ 적인 시각이 아닌 관점으로도 엉덩이라는 것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들도 등장한다. 맨 위에서 언급했던 공작의 꼬리 깃털이든 엉덩이든 굳이 거창하게 진화적인 측면을 들이대기보다는 그냥 순수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이끌려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처음엔 진화론과 연관된 관점으로 서술이 되는 줄 알았는데, 꼭 진화론적인 관점으로 엉덩이를 분석해야 한다는 이유도 굳이 없다는 게 저자가 1장에서 하고싶었던 말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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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에서는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세라 바트먼 이라는 아프리카 코이족 여성이었다.
코이족의 특징들이 몇 가지 나오는데 이 책의 주요 소재가 엉덩이라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코이족 여성의 특징 중에 커다란 엉덩이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바트먼이 살던 당시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는 시기여서 아프리카 인들을 노예처럼 부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구체적인 얘기들을 다 할 순 없지만, 대략적인 것들만 논해보자면 이 바트먼이라는 여성을 유럽인들이 공연에 출연시켜서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부분은 다소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기에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책 내용과는 다소 무관할 수도 있는 얘기를 잠깐 해보자면 이런 것들을 보면서 결국 모든 문제는 다 돈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 자체가 물론 나쁜 것은 절대 아니지만, 돈을 버는 방식 혹은 그 과정들이 뭔가 좀 정직하지 못하다면 정확히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좀 아니다 싶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꼰대같은 발상인지도 모르겠으나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본문을 읽으면서도 그런 약간은 불편한 느낌이 들었고, 요즘 무슨 유튜버들이 상대방의 약점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등의 대가로 돈을 갈취한다든가 하는 등의 행태들을 보다보면 뭔가 그냥 느낌이 그렇다. 돈이 진짜 뭐길래 하는 생각도 들고 뭐 그렇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행태는 과연 괜찮은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남들의 부도덕함을 손가락질하면서 나 자신의 부도덕함에는 관대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보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를 포함해 인간이라는 건 결국 어쩔수 없는 것들인가 싶기도 하고, 그냥 인간의 한계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도덕함에 대해 손가락질하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관대해져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결론은 일단 ‘나부터나 잘 하자‘ 이게 맞는것 같다. 남들한테 뭐라 왈가왈부할 거 없이 그냥 ‘나나 잘하자‘ 이게 맞지 싶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에서는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여 생존하고 번성할 가능성이 큰 종이, 재생산 가능성도 더 크다고 말한다. 유전 가능성이 크고 생존에 유용한 특질이 있다면,
다음 세대 구성원에게 높은 비율로 전달된다. 이런 식으로 임의적인 유전적 돌연변이들이 쌓여가면, 환경에 잘 적응해 살도록 진화한 개체들이 만들어진다. 이를 적자생존이라고 한다. - P58

이처럼 유리한 특질을 지닌 동물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더 크다면, 한눈에도 불필요해 보이고 심지어 반생산적인 장식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P58

다윈이 ‘이차적 성 특질‘이라고 부른 유전 가능한 특질들은 개체를 짝에게 더 매력적 (다윈주의 진화론에서는 이성 간 짝짓기를 전제로 한다)으로 보이게 해주므로, 따라서 개체를 더 적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 P59

인간의 경우, 이차적 성 특질로 간주되는 여성의 골반과 엉덩이와 가슴은 남성의 선호로 인해 지금과 같은 모양을 지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말은, 인간 남성들이 오랜 시간 자기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엉덩이를 지닌 여성과 짝짓기하기로 선택한 것이, 엉덩이가 진화할 방향을 정하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했을 거라는 의미다. - P59

당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므로 우리가 당을 갈망하듯이, 내가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큰 엉덩이를 갈망하는 이유가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은연중에 주장한다. 빵빵한 엉덩이를 보고 성적으로 흥분하는 건 자연스러우며, 생물학적으로도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 P61

진화 심리학자들은 성과 끌림에 관련된 대중적인 주제를 자주 다룬다. - P61

엉덩이는 대중 미디어에 출연하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특히 자주 건드리는 소주제다. - P62

목표는 여성 엉덩이에 대한 성적 갈망의 진화적 기원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 P63

연구자들에 의하면 허리가 45도로 굽은 가임 여성은 식량을 채집하려고 몸을 굽힐 때 더 큰 회전력을 얻었으며, 이는 스스로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고 아기에게 젖을 잘 먹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남성에게는 가족에게 가장 많은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짝을 선택하는 게 유리했다. 뒤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엉덩이는 여성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는 시각적 신호였다. - P63

진화 심리학 연구를 뒷받침하는 사고방식이 "원래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 P64

호프 교수에 따르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흔히 설문 데이터를 활용해서 결과를 설명하는 이론을 만드는 반면, 대니얼 리버먼 같은 진화 생물학자들은 실험 연구와 화석 기록에 의존한다고 한다. - P64

진화 심리학의 또 다른 문제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가정에 자주 의존한다는 것이다. - P64

생물학자들은 조류 세계의 다양성을 모든 면에서 살펴보며 깃털 색소의 물리학을, 후두의 유형에 따라 달라지는 새의 노랫소리를 이해하고자 한다. - P67

암컷 공작이나 인간이 잠재적 짝의 신체 특징에 끌리는 이유가 전적으로 생물학적 요소(건강·힘·재생산 능력)라고 주장할 때, 우리는 인간이 서로를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풍부하고 다양한 방식들을 지우고, 아름다움에 대해 던질수 있는 질문의 문을 닫아버린다. - P68

어떤 끌림이 진화적으로 "맞거나 틀렸다는" 주장은 취향과 선호의 서사적 다양성을 앗아간다. 물론 실제 사람의 (혹은 새의) 끌림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 P69

가장 매력적인 엉덩이 유형이 있다거나 가장 적합한 엉덩이 유형이 있다는 등 보편성의 낌새가 느껴지는 전제는 거의 틀렸다고 해도 좋다. 잘 살아갈 능력을 결정하는 환경과 문화와 개인의 맥락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개체마다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호프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죽이지 않은 엉덩이는 다 적당히 괜찮은 겁니다." - P69

크고, 작고, 납작하고, 빵빵한 엉덩이들은 그냥 그렇게 생긴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는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런 엉덩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진화나 생물학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 P70

적응주의 사고방식을 겨냥한 굴드와 르원틴의 비판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며, 호프는 말한다. "누구나 선호하는 게 있잖아요. 예를 들어 저는 마블 영화를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진화 얘기까지 끌어울 필요는 없어요" 엉덩이도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 P70

엉덩이는 우리가 끌리는 지점이자 혐오하는 지점이고, 인종과 젠더의 연상과 뗄 수 없이 엮인 신체 부위지만, 이런 의미들은 엉덩이의 생물학적 실재를 구성하는 뼈와 근육과 지방의 층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단지 우리가 그 위에 얹은 의미와 역사에서 나올 따름이다. - P70

조르주 퀴비에 Geore Cuvier는 19세기 초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비교 해부학자로서 19세기와 20세기에 정밀한 생물학적 발견들을 해냈다. 퀴비에는 고생물학이라는 학문을 만든 사람이자 다윈진화론이 등장할 길을 닦은 사람이며, 오늘날 대니얼 리버먼과 리처드 프럼 같은 생물학자들도 그의 발견을 기틀로 삼고 있다. - P74

우리는 모두 동물이라고. 살아 있는 모든 게 하나의 가족이라고. - P75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동물이라고. - P75

내가 파리에 온 건, 인간의 위계를 정하려 했던 퀴비에의 프로젝트에 자기 몸과 엉덩이를 내준한 여성의 삶과 유산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다. 퀴비에는 1816년에 그 여자의 시신을 이 박물관에 가지고 왔다. 그리고 당시 많은 사람에게 "호텐토트"라고 불린, 18세기와 19세기에 오늘날의 남아프리카 지역에 살던 코이족의 주요 견본으로 이를 전시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세라 바트먼, - P77

코이족이었던 바트먼은 1770 년대에 남아프리카 시골의 네덜란드 식민지 지역에서 태어났다. 코이족은 본디 아프리카 남서부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원주민으로서, 남자들은 양과 소를 쳤고 여자들은 베리류와 곤충을 채집했다. 그러나바트먼이 태어났을 즈음에 코이족은 식민화와 부족 간 갈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위협당하고 있었다. 바트먼이 태어나기 수십 년 전부터 식민지 탐험가들은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유럽 본국으로 보고서를 보냈는데, 보고서에 코이족 여자들은 길게 축 늘어진 음순과 게으른 태도, 끊임없이 담배를 태우는 습관을 지녔다고 묘사되었다. 또한 유럽인들의 머릿속 코이족의 가장 유명한 특징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큰 엉덩이였다. - P78

공연을 본 사람 중에 스코틀랜드에서 온 사업가 기질이 충만한 군의관 알랙산더 던롭 Alexander Dunlop이 있었다. - P79

던롭은 이국적이라면 뭐든 매혹되고 마는 본국의 분위기를 이용해 큰돈을 만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P79

던롭은 당시 잉글랜드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엉덩이에 환장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 P80

지난 몇 세기 동안 여성의 (반드시 엄청 크진 않더라도) 둥그런 엉덩이는 여성성 및 아름다움의 동의어인 관능적 실루엣의 요소 중 하나였다. 그 유래를 찾자면, 구석기 시대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랑과 풍요와 아름다움과 번영의 로마 여신 비너스를 따서 ‘비너스‘형이라고 불린 이런 조각상들은, 한 신체 부위에 집중하기보단 전체적으로 여성적인 이미지를 놓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추앙했다(눈에 띄는 하나의 예외로 "아름다운 둔부를 지닌 비너스"라는 뜻의 베누스 칼리피게 Venus Callipyge가 있다). - P80

19세기 초 런던에서는 엉덩이에 관한 열광이 그 이상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런던 사람들은 한마디로 엉덩이에 집착했다. - P81

던롭의 계획은 런던 사람들에게 엉덩이가 큰 "호텐토트" 여자의 전형을 산 채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확장하는 제국과 하이퍼 섹슈얼한 아프리카인의 상징이었다. 던롭은 그를 통해 큰돈을 만질 꿈에 부풀었다. - P81

바트먼을 만화풍으로 그린 포스터가 런던 곳곳에 나붙었다. 상점, 길모퉁이, 신문 가판대 등 옆모습을 그린 그림 속에서 그는 커다랗고 둥글며 높게 올라붙은 어마어마한 엉덩이를 자랑하고 있다. 코이족 풍의 장식품 몇 개를 걸치고 가슴을 팔로 가렸을 뿐, 그는 거의 전라다. 입에 문 파이프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포스터에서는 커다랗고 대담한 글자들로 공연을 홍보했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막 도착한 호텐토트 비너스: 이 나라에 전시된 최고의 경이. 메트로폴리스 런던, 오래 머물진 못합니다." - P83

첫 공연은 피커딜리 225번지에서 열렸다. 피커딜리는 런던 사람들이 알비노 어린이, 이른바 ‘샴‘ 쌍둥이, 거인 등이 출연하는 "프릭 쇼Freak Show" 를 통해 확장하는 세계의 기이함과 새로움을 경험하러 오는 동네였다. 과학과 외설이 하나 되는 장소이자, 바트먼 같은 사람을 비하하기 위해 청소부로 일하는 가난한 아일랜드인 이민자부터 금융계 거물들까지 한데 모여든 장소였다. 피커딜리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이 뒤섞인 공공 공간으로도 기능했다. - P83

당시 노예해방론자 대부분은 기독교 도덕론의 전통적 구속을 동력으로 삼고 있었고 성과 신체 노출, 악덕에 대해서도 강경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바트먼은 노예였지만, 동시에 노골적인 성적 유혹이기도 했다. - P86

재판 기록에는 국가축 공증인이 바트먼에게 "희망봉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잉글랜드에 머물고 싶은지 물었고, 그는 머물고 싶다고 답했다"라고 적혀 있다. - P88

법원에서는 바트먼이 "갇혀 있지 않고 잉글랜드에서 만족하고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 덕분에 무상으로 홍보 효과를누린 바트먼의 공연은 겨우내 매진 행렬을 벌였고, 던롭과의 재정적 합의 내용이 세세하게 대중에게 알려지자 바트먼을 그린 만화에는 금화더미와 돈주머니가 추가되었다. - P89

파리에서도 공연은 역시 대흥행이었다. 프랑스도 아프리카에 식민지가 있었고, 프랑스 사람들은 상상 속의 섹슈얼한 아프리카 원주민에 관해 열띤 호기심을 지니고 있었다. - P90

런던에서 노예제는 불법이었으며 뿌리 뽑아야 마땅한 악이었다. 반면 파리에서 노예제는 기본적으로 허용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이후 엄밀한 의미에서는 불법이 되었지만) 인간을 사고, 팔고, 소유하는 일이 도덕적 측면에서 비판받는 일은 적었다. 바트먼이 자유인인지 묻는 사람도 더는 없었다. 바트먼은 그냥 S. 로라는 이름의 남자 소유였다. - P91

로는 파리 과학협회에 연줄을 가진 동물 조련사였다. 그는서로 다른 종이 유전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관심 갖는비교 해부학자들에게 해부하고 연구할 동물 사체를 팔았다. 바트먼의 공연은 언제나 과학의 경계에 살짝 걸쳐 있었다(던롭과 시저스는 그를 대놓고 아프리카성의 표본으로, 인간과 유인원의 살아 있는 연결고리로 팔아먹었지만). 로는 파리의 과학자들이 바트먼을 연구하는 데 관심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고, 마침내 어느 날 두둑한 돈을 받고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서 퀴비에와 그의 조수, 화가 세 사람을 앞에 둔 채 바트먼이 포즈를 취하도록 자리를 만들었다. - P91

해부는 말하자면 과학의 이름을 한희롱이었다. 보고서 말미에 그(퀴비에)는 바트먼이 "인간보다는 유인원의 친척에 더 가까웠다"라고 결론짓는다. - P93

퀴비에의 박물관에 서서 바트먼의 유해가 전시되었던 진열장을 들여다보며, 나는 한때 그곳에 있었던 것들을 상상한다.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사진으로만 봐도 기분이 끔찍했다. 커다란 유리 진열장 안에, 유리병에 담긴 신체 부위들이놓여 있었다. 잔인한 피투성이 역사를 말쑥하게 다듬어서 보여주는 박물관의 전략이다. 그러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분노를 곱씹을수록, 나는 내 안에서 또 다른 감정을 발견했다. - P94

나는 먼 과거의 일과 내가 살아가는 시대, 나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고 싶었다. 바트먼의 시신을 이렇게 능욕하는 건, 나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박물관 큐레이터와 방문객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원시적인 행동일 거라고 믿고 싶었다. 우산으로 바트먼의 몸을 찔러보려고 1실링을 더 낸 런던사람들이 나랑은 근본적으로 다른 생물체라고, 내가 사는 시대에 그들은 완전히 낯선 존재라고 믿고 싶었다. - P94

물론 1810년과 2020년은 여러 면에서 딴판으로 다르다. 하지만 세라 바트먼의 이야기가 중요한 건 단순히 19세기 초에 학대당한 엉덩이 큰 여자가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그의 삶과 전시와 해부가 수 세기가 지난 지금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 P94

여성의 엉덩이에 대한 서구 백인들의 이해는 세라 바트먼이 잉글랜드에 도착한 순간 바뀌었고, 그 상태로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엉덩이, 그중에서도 큰 엉덩이는 이국적이고에로틱한 것과 강력한 연상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런 연상은 오늘날도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 P95

바트먼이 생전에 누린 큰 인기는 세상을 떠나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이어졌고, 진화했고, 왜곡되었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남지 않을만큼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전시당하고 해부당한 그의 몸이 남긴 유산은 엉덩이만의 방식으로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그러니까 농담 속에, 암시 속에, 시각적 반향 속에. - P95

올버니 대학에서 여성,젠더,섹슈얼리티를 연구하는 저넬 홉슨Janell Hobson 교수는 흑인 여성의 아름다움과 신체, 현재와 과거에 흑인 여성의 엉덩이가 지닌 의미, 세라 바트먼에 관해 폭넓게 글을 써왔다. - P95

홉슨은 당시 바트먼의 공연이, 직전 두 세기 동안 펼쳐지고 있던 두 개의 대규모 인종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주었다고 설명한다. 그 두 프로젝트란, 식민주의와 노예제의 지속이었다. 대중문화와 과학 양쪽에서 바트먼을 호출해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럽인보다 더 원시적이며, 따라서 기독교 유럽의 도덕적 지도가 필요하다는 증거로 써먹었다. 이는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은 유럽 국가들이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들먹인 주된 논리였다. - P96

바트먼의 몸은 또한 아프리카 여성이 태생적으로 백인 여성보다 섹슈얼하다는 거짓된 믿음의 증거로 쓰였다. 바트먼이런던에 등장한 1810년에 유럽과 미국에서 이 믿음은 대단히 중요했다. - P96

1807년에 노예무역이 금지되자, 노예제로 이득을 보고 있던 많은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새로 노예를 들이지 않으면서 노예제 관습을 이어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수입되는 아프리카 노예의 공급을 끊었는데, 아메리카에서 노예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면, 남은 건 다음 세대의 노예를 생산할 방법을 찾는 것일 테죠. 그래서 남북아메리카에서는 노예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전부 노예라고 법으로 정했습니다. 근본적으로 강간을 합법화하는 법이었죠" - P96

홉슨은 세라 바트먼을 섹슈얼한 아프리카 여성의 표본 (과학 논문과 대중문화 기록에서 그의 엉덩이를 묘사할 때 반복적으로 강조했다)으로서 대중 앞에 세운 것이, 노예 여성 강간을 합리화할 때 사용된 ‘타고나길 섹슈얼한 흑인 여성‘ 논리를 뒷받침하는 일종의 증거였다고 말한다. "그게 기독교를 믿는 노예주들이 성폭력을 저지르고 스스로 용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 P96

바트먼의 몸은 널리 퍼진 인종차별적 관점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짐작건대 피커딜리나 팔레 루아얄을 찾아 바트먼을 희롱한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 공연을 우스운 볼거리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더 넓은 함의를 온전히 고려하지 못한 채 바트먼의 몸을 빤히 쳐다보고 비웃었을 것이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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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는 부분은 6장 ‘중력 거스르기‘ 라는 부분인데 어떤 내용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는 혼자 힘으로 공중을 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다. 태양의 서커스단 단원이 그리하는 걸 본 적이 있다. -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방송작가)

어둠 속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느낌

황금의 13인은 그들을 끌어내리는 중력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중력을 거스르고 솟구쳤다.

"어깨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꼭 성공하겠다고 결심했다."

극복하기가 불가능해보이는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는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너무 어렵다. 우리를 가로막는 힘이 너무 강하다. 이런 때에 우리는 남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극복하라는 조언을 받는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숨은 자신감과 지식을 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바깥으로 눈을 돌려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함으로써 숨은 잠재력을 발견하고 개발하게 된다.

승산이 낮을 때, 자신을 벗어나 바깥으로 시선을 집중해야 지상에서 이륙할 수 있다.

버거운 과제에 직면하면 능력과 자신감 둘 다 필요하다.

우리가 지닌 기량과 기대수준을 높이는 역량을 갖추려면 우선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장애물을 위협으로 보면 항복하고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증거가 많다. 장벽을 극복해야 할 난관으로 취급하면 분연히 떨쳐 일어서게 된다.

장애물을 극복할 난관으로 보려면 성장하겠다는 마음가짐(진전을 이루는 자신의 역량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성장을 믿는 마음가짐은 이를 지탱할 임시 구조물 없이는 별 소용이 없다

운이 따라주지 않아 임시 구조물을 건네줄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스스로 임시 구조물을 조립해야 할지 모른다. 바로 여기서 자구책(bootstrapping)이 필요하다.

자력은 이미 존재하는 재원을 동원해서 궁지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힘이다. 이 용어(bootstrapping)는 말을 타고 가다가 말과 함께 늪에 빠진(그리고 땋아 늘린 자기 머리를 밧줄 삼아 늪에서 탈출한) 한 남작에 대한 민화에서 비롯되었다. 나중에 이 이야기는 남작의 머리카락이 신발 끈(bootstrap)으로 바뀌었다.

자구책은 보통 개인적인 역량으로 여긴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는다. 장애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기가 신은 신발의 끈을 당겨 올리는 주체가 바로 여러분 자신이다. 개인주의를 거칠게 표현한 용어처럼 들린다. 독자적인 행위다. 그러나 장애물을 극복할 역량과 자신감을 얻으려면 자구책에 상호 의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혼자서 만든 자구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든 자구책이 가장 튼튼하다

지식이 풍부한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면 성장을 촉진한다

어느 팀이 최고의 성과를 올릴지 예측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인은 동료들이 서로 얼마나 자주 상부상조하는지다.

가르치는 행위를 통해 배우기도 한다

가르치는 행위는 놀라울 정도로 막강한 학습 방법이다.

가르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일수록 더 많이 배웠다.

뭔가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르치는 방법이다. 상기하면 더 잘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설명한 내용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교습 방법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누군가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불편한 느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만 들어도 여러분의 학습 효과가 급상승한다.

자기는 잘하지 못하지만 가르침으로써 가르친 내용을 자신도 터득하게 된다.

가르쳐서 지식을 공유하는 행위를 통해 가르치는 행위를 하는 이들의 능력이 향상되었다. 그들은 서로 협력해 더 튼튼한 자구책을 만들었다.

남에게 가르친 내용은 오래 기억되었다.

최상의 해법에 대해 합의에 다다르면 그들은 서로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서로에게 퀴즈를 내고 막 습득한 지식을 모두가 공유할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 실력이 향상된다. 본인의 자신감을 높이려면 다른 사람을 지도해봐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격려하면 본인의 동기도 유발된다.

나는 이를 지도효과(coach effect)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지도한 후에 장애물을 극복하는 본인의 역량에 대해 훨씬 자신감을 얻게 된다.

조언을 받기보다 조언을 준 후에 더 동기가 유발되었다.

자신 안에서 해답을 찾아라

자신이 뭘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해도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지도 효과는 교습 효과와는 다르다. 교습 효과는 우리가 습득하고자 하는 바로 그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학습하는 게 초점이다. 지도 효과는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동기를 다른 이들에게 유발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동기가 유발되는 방법을 포착한다.

지도하기는 우리가 이미 지닌 도구들을 우리 스스로 상기시킴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지도는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 보통 하는 행위의 정반대다.

괴거에 자신이 남에게 했던 조언을 돌이켜보거나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연락해 그들에게 조언하면 도움이 된다.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남에게 하는 조언이 보통 내게 필요한 조언이다.

받기보다 주는 게 훨씬 더 동기 유발된다

받는 행위는 수동적이다. 늘 지도를 받기만 하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 주는 행위는 능동적이다. 다른 사람을 지도하면 여러분이 뭔가 남에게 해줄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여러분이 스스로 힘으로 해낼 만큼 강하다는 자신감을 준다.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도왔으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역량을 믿지 않는 상황에 놓이면 포기하거나 달아나버리기 쉽다.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은 성장을 저해하는 독특한 장애물이고 이를 극복하려면 독특한 종류의 임시 구조물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를 걸면 말이 씨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잠재력을 믿으면 우리가 오를 사다리가 된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과 기대는 우리가 더 높은 열망을 품게 하고 더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게 해준다.

직장에서 관리자가 직원들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면 직원들이 보통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배우고 업무 수행도 더 잘하게 된다는 수십 개의 연구 결과가 있다.

높은 기대는 우리가 정상을 오르는 지지대가 되어주고 낮은 기대는 우리의 전진을 방해한다. 마치 납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있는 느낌을 준다. 이를 골렘 효과(Golem effect)라고 일컫는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과소평가하면 우리의 노력과 성장도 제약을 받는다. 이처럼 말이 씨가 되는 상황은 특히 걸핏하면 낮은 기대에 직면하는 낙인찍힌 집단에게서 두드러진다.

다른 사람들의 낮은 기대를 여러분의 장점으로 전환 가능한 때가 있다. 남들의 기대가 낮다고 해서 제자리에 머물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낮은 기대를 지렛대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기대가 발휘하는 효과는 기대하는 주체가 누군가에 달려 있다. 높은 기대가 가열찬 노력과 과제 수행 결과의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기대가 그 과제에 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에게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러나 관찰자가 신뢰할만한 사람이 아니고 해당 과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 효과는 역전된다. 즉 그런 관찰자가 격려하기보다 의구심을 표할 때 사람들은 한층 더 열심히 하고 훨씬 더 잘한다.

여러분이 이미 목표 추진에 착수했는데 전문가들이 여러분에게 의구심을 보인다면 이는 위협이다. 전문가는 신뢰성은 있을지 모르나 그들은 여러분의 잠재력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여러분이 진전을 이루도록 도와줄 코치는 아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믿지 않으면 여러분은 금방 자신감을 잃는다. 그들이 여러분을 미덥지 않아 하면 여러분의 자신감이 무너지고 성장을 저해한다. 말이 씨가 된다.

미덥지 않아 하는 주체가 식견이 없다면 그들의 낮은 기대감은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그들의 확신을 깨부수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게 된다. 누르모하메드는 이를 약자 효과 (underdog effect)라고 일컫는다.

초보자들이 여러분을 미덥지 않다고 여기면 여러분의 도전 정신이 불타오르게 된다.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낮은 기대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기대를 거스르겠다는 동기가 유발된다. 내가 증명해보이겠다. 여러분의 자신감을 무너뜨리는 그들의 의구심이 오히려 자신감을 강화하는 시련이 된다. 예상을 깨고 성공할 약자같은 기분이 든다.

일단 부정적인 시각을 극복하고, 그러한 경험을 자신에게 되새기면 다른 사람들이 틀렸음을 증명할 여러분의 역량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강해진다.

"여러분 자신이 만든 제약은 여러분을 옥죄는 한계가 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만든 제약은 격파해야 할 한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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