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어본 내용은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인 기와지붕이 있는 집의 지붕 아랫면에 있는 단청에 대한 것이다. 건축물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보일 수 있는데 우리나라가 속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에 좀 더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안에서 밖을 볼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깥 배경과 함께 지붕 아랫면에 있는 단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청에 칠해진 색깔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다.

뒤이어서 이집트 지역에서 기하학과 천문학이 발달한 이유가 나오는데 핵심은 홍수라는 것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홍수는 이집트인들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었기에 이에 대비하고 예방하기 위해 천문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고, 매년 홍수가 난 뒤 토지 구획을 자주 하다보니 기하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단순히 1차원적으로 그냥 이랬더라 하고 끝나면 독서의 의미가 반감될 듯 하고, 한 차원 더 확대해서 생각해본다면 학문이라는 것이 발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는 기초학문 응용학문 가릴것없이 학문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발전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집트에 홍수가 없었다면 과연 천문학과 기하학이 일정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었을까 되물어본다면 독자인 나는 절대로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이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굳이 귀찮게 규칙을 만들고 발견하는 일에 시간을 쓰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확장해보자면 유전자의 생존본능에 의해 학문도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쓰고보니 참 별거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것을 머리만이 아닌 마음으로 깨달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에서 건축물이 자연을 바라보게 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한다면, 서양에서는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건축이 되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존속되는 건축물이 적은 것이다. 잘 썩는 목재라는 재료 자체의 제약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동아시아에서는 ‘피라미드‘나 ‘하기아소피아 성당‘ 같은 거대한 크기의 덩어리를 갖는 건축물이 적다. 대신 건축물 안에서 바깥 경치를 구경하기 좋은 건물은 많다. - P78

외국인들에게 경복궁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게 해 주려면 ‘근정전‘이나 ‘경회루‘를 밖에서만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된다. 안에서 바깥 경치를 보게 해줘야 우리 문화의 진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처마에 예쁘게 색칠한 단청을 만든 것이다. - P78

창문 밖으로 경치를 보았을 때 시야에서 윗부분을 프레임하는 것이 서까래와 처마다. 처마 부분은 외부 자연 경관을 담는 액자의 프레임이니, 장식이 들어간다면 이 부분에 했어야 했던 것이다. - P78

재미난 것은 단청을 구성하는 색깔이다.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대부분이 녹색 계통이고 강하게 보색이 되는 자줏빛을 사용한다. 이 색깔은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자연을 더 확장돼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추측된다. 여름철에 처마에 서서 주변 산을 바라보면 자줏빛은 나뭇가지처럼 보이고, 녹색은 나뭇잎으로 보여서 주변 풍경이 연속되어 건축물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단청이 왜 그렇게 명도가 높은 색상으로 된 것인지도 이해가 된다. - P78

처음에 서양인의 시점으로 건물을 밖에서 바라보면 단청의 채도가 너무 눈에 띄게 높아서 거슬린다. 그러나 안에서 밖을 바라보게 되면 이해가 된다. 어두운 실내에서 밖을 보면 자연은 밝고 처마 부분은 그림자가 져서 어둡게 된다. 이때 녹색과 자줏빛을 채도가 낮은 차분한 톤으로 칠하면 그림자 진 상태에서 칙칙해 보이고 자연과 건축의 경계가 명확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단청 색깔처럼 채도가 높은 밝고 선명한 톤으로 칠하면 단청이 그림자에 들어가 있어도 밝은 바깥 경치와 연결돼 보인다. - P79

단청의 색깔만 보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건축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건축물이 자연에 흡수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건물 외부에 있는 객관적인 제3자의 시각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사람의 1인칭 시점에서 디자인적 판단을 내렸음을 알 수 있다. - P79

농업이 몇몇 품종을 선택해서 대량 생산의 생태계를 만든 것이라면 목축업은 몇몇 종의 동물을 집중해서 배양해 키우는 방식이다. - P81

장사는 서로 다른 물건을 가지고 있을 때 이루어진다. - P81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숫자의 십진법은 인도에서 개발되었지만 중동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많이 사용해서 아라비아숫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 P82

학자들은 천문학과 기하학이 이집트에서 발달한 이유가 나일강의 범람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일강 하구에 위치한 이집트 문명은 일 년에 한 번씩 반복된 범람을 경험했다. 주기적으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홍수가 나니 자연스럽게 시간의 순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홍수가 나는 시기를 모르면 농사도 못 하고 수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82

홍수가 나는 시기를 예측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계속해서 물에 잠겼다가 빠지는 땅은 변화를 알아내는 데 이용할 기준이 될 수없었다. 그래서 물에 잠기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의 위치를 보면서 별자리의 형태가 특정한 모습이 되었을 때 홍수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는 별자리를 통해서 홍수 시기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천문학이 발달했다. - P82

한 번 범람하고 나면 땅에 그었던 토지의 경계선이 다 지워져서 어디까지가 누구 땅인지 알기 어렵다. 범람이 잦아든 후 매년 토지 구획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측량술과 기하학이 발달했다. - P82

"수가 형태와 사고를 지배한다" - 피타고라스 - P83

피타고라스는 음계를 수학적으로 정의 내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첼로 같은 현악기에서 특정 줄의 음을 낸 후에 그 줄 전체 길이의 2분의 1지점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소리 내면 두 소리가 화성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3분의 1지점을 누르고 소리 내도 화성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이 음이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운 ‘완전 5도‘다. 우리가 음악에서 듣기에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숫자로 규명한 사람이 피타고라스다. - P83

플라톤은 "수학은 세계를 이해하고 기술하는 최적의 언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원자가 정사각형이나 정삼각형같이 기하학적이라고 믿었다. 플라톤은 원소인 물, 불, 흙, 공기가 모두 3차원 기하학 도형이라고 믿었는데, 흙은 정육면체, 공기는 정팔면체, 물은 정이십면체라고 믿었다. - P84

플라톤은 인류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인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해서 정치학, 윤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등 많은 철학적 논점에 대해서 가르쳤는데, 특이한 점은 이 학교에는 수학에 기초가 없는 사람은 입학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학교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 P85

현대 양자 이론의 대가인 카를로 로벨리의 저서《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 의하면 플라톤은 수학을 공부한 제자들에게 ‘하늘에서 보이는 천체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수학적 법칙‘을 발견할 수 있겠는지 물어 보았다고 한다. 플라톤의 이 제안을 받아들여서 플라톤 학파의 에우독소스Eudosox (BC 390~BC 337)가 연구했고, 여러 학자를 거쳐서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83?~168?)에 의해서 완성되어 비로소 수학적인 천문학 체계가 시작되었다. - P85

어찌 보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피타고라스의 수학이 만나서 만들어진 ‘변종 사고‘라 할 수 있는데, 수학적 사고가 그의 철학에 미친 영향은 ‘이데아‘의 개념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 P85

플라톤 철학의 정수로 평가받는《국가론》7권의 ‘동굴의 우화‘를 보면 플라톤 철학의 중심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이데아‘설이 나온다. 그 이야기를 좀 살펴보면, 현실에 사는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손과 발이 벽에 묶여 있고 목도 묶여 있어서 뒤나 옆은 못 보고, 앞만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사람은 머리 뒤쪽에 있는 횃불로 인해 만들어진 동굴 벽에 비친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만 볼 수 있는 것이다. - P85

플라톤은 이처럼 우리는 실체를 볼 수 없고 이 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현상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으며,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인식하는 것은 그 본질인 이데아의 현상일 뿐 실체는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철학적 이성을 통해서만 우리가 볼 수 없는 본질인 이데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 P87

플라톤의 머릿속에 있는 이데아 같은 관념적 완전성은 수학적 사고에서나 가능하다. 자연 속에는 완전한 기하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동그랗게 보이는 지구도 적도가 부풀어 오른 타원의 형태를 띠고 있고, 지구는 둥그런 구 형태이기 때문에 땅에 그려진 삼각형도 사실은 완전한 직선의 삼각형이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각의 합이 180도인 삼각형을 우리의 머릿속에서 상상하여 인식한다. 그리고 원이란 한 점에서 같은 거리의 점들을 연결한 선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이러한 수학적 개념은 다분히 현실 세상에서는 실존하지 않는 완전성이다. 이러한 수학의 완전성은 이데아의 개념적 완전성과 일맥상통한다. - P87

플라톤은 개념상 온전한 세상인 이데아를 상상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이성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적 이성에는 수학적 사고도 포함될 것이다. 이렇게 ‘완전한 이데아 + 이성(수학)을 통한 탐구‘는 유럽 정신세계의 기초가 되었다. - P87

데모크리토스는 21세기의 과학자들과 아주 유사한 사고 체계를 가졌다. 다른 말로 하면 무신론자고, 이성을 중시하며 신비함을 배척하는 사고 체계인 것이다. 그런데 로마가 국교를 기독교로 삼으면서 그의 무신론적 사고는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생각은 대가 끊기게 된 반면, 플라톤은 이데아 같은 이상향을 설정함으로써 신이 존재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과 세계 곳곳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이 둘은 방식이 약간 다르지만 어쨌든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상이다. 따라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로마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후 서양 사상의 근간이 되었다. - P88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공통점은 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은 수학으로 세상의 움직임을 보고 싶어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은 이성을 잘 개발하면 가장 좋은 상태까지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두 사람의 영향으로 서양의 문화는 수학을 통해서 완전하고 형이상학적인 ‘신神‘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 P88

바울은 예수 생전에 함께 다니던 제자가 아니다. 그의 직책은 ‘사도‘여서 사도 바울이라고 불린다. 사도는 ‘파견된 무리‘ 혹은 ‘~에게 사용되는 무리‘라는 뜻으로 당시에는 예수를 직접 만났던 사람만이 받을수 있는 직책이었다. - P91

성경의 첫 번째 장인 창세기를 보면 1장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나오는데, 그 구절 속의 ‘말씀‘이 헬라어로 ‘로고스(logos)‘다. 이 로고스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분이 예수라고 기독교는 말한다. 그리고 그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다. - P9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개역개정)

로고스를 통해서 천국에 가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 정리하면 ‘말씀(로고스)= 예수=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는 공식이 나온다. 따라서 ‘천국 가는 길 = 로고스‘ 즉, 천국에 가는 길은 로고스라는 말이다. - P93

‘로고스‘의 사전적 의미를 가톨릭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교와 고대 철학 사이의 접촉을 담당한 중심적인 하나의 학문적 개념. ‘로고스‘의 개념은 ‘말한다‘는 그리스어로부터 나온 말인데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 P93

① 그리스도교 신학에선 삼위일체의 제2위 곧 ‘예수‘를 가리키며, ‘하느님의 말씀‘을 뜻하고, - P93

② 철학적으로는 그리스철학의 경우, 만물을 이성적으로 관철하여 지배하는 법칙, 스토아학파의 경우는 숙명적 필연적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이법(理法) 즉 신을 말한다. 예를 들면, 헤라클레이토스의 우주의 모든 것을 지배 규제하는 우주이성(宇宙理性), 스토아학파의 우주혼(宇宙魂), 필로(Philo)의 신과 세계와의 중간체(中間體), 헤겔의 절대이념(絶對理念) 같은 것인데, 체제 속에 깃들어 있는 이념이며, 그 체제를 뜻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 바로 로고스다. - P93

③ 이성적인 지능에서 출발하여 표현된 여러 활동을 통틀어 로고스라고 지칭한다. 말로써 표현된 의미개념, 이론 또는 사상 내용을 가리키는 말인데, 때로는 유기적인 생명 또는도덕적인 태도 즉 그리스어 ethos와 대립되는 사상 혹은 이념의 범위 전체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고 - P94

 ④ 일반적으로는 흔히 말 · 의미 · 이유 · 논리 · 이성(理性) 따위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 P94

단어의 풀이를 살펴봤을 때 흥미로운 점은, 로고스라는 한 단어 안에 ‘논리적 이성‘과 ‘예수‘라는 뜻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사상과 그리스 철학에서 ‘천국 = 이데아‘, ‘예수 = 로고스(이성)‘로 놓고 문장에 대입하면 말이 되는 문장이 완성된다. ‘예수를 통해서 천국에 간다‘라는 말은 ‘이성을 통해서 이데아에 이른다‘와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이다. - P94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는 둘 다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가 있는 것으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그 둘을 바탕으로 한 서양의 사고방식에는 절대 진리의 세계가 있으며, 그곳에 이르는 길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 이 같은 사고방식이 있었기에 수학이 서양 문화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학문으로서 위치할 수 있었고, 그 토대 위에 과학혁명이 가능했던 것이다. - P94

수학의 대표 주자 피타고라스는 철학을 뜻하는 ‘philosophic‘이라는 말과 우주를 뜻하는 ‘Kosmos‘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학파는 현악기에 있는 줄의 길이와 음정의 관계를 처음으로 연구했는데, 그 이유는 만물의 아름다움에 수학적 해석이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수학이 아름다움을 만든다는 믿음이 시각적으로 적용이 된 것이 ‘황금비율‘이다. - P94

‘정량적 하모니‘, ‘숫자‘, ‘이성‘, ‘기하학‘은 서양 문화의 키워드 - P95

수학을 통해서 완전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세계관은 건축의 빈 공간에 나타나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부터 근대 이전까지 서양의 종교 건축물의 공간 구성은 기하학적 수학적 분석에 의해서 설계되어 왔다. 예를 들어서 ‘판테온‘ 의 빈 공간의 평면과 단면의 모습은 원이다. ‘하기아 소피아‘ 의 건축 공간 역시 여러 개의 원 조합으로 분석 가능하다. - P95

두 문화권(동양과 서양)은 여러가지 분야에서 차이점을 보이는데, 우선 이상향의 공간적 개념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살펴보자. 서양 기독교에서의 이상향은 천국이며 천국은 우리가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이는 마치 이데아에 절대로 가지 못하는 동굴에 묶인 사람과 같다. 절대적 공간은 있지만 인간은 갈 수 없다. 다만 상상할 뿐이다. - P97

하지만 동양의 이상향인 무릉도원은 다르다. 무릉도원 설화는 이렇다. 진나라 때 어느 어부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숲을 지나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낙원 같은 마을을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나온 후 다시 찾아가려고 했더니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동양에서의 이상향은 우리와 같은 세계에 존재하지만 다만 찾기 어려운 장소일 뿐, 우리가 절대로 갈 수 없는 세상은 아니다. - P97

선악에 대한 가치관에서도 차이점이 보인다. 서양 문화에서는 선악의 가치관이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서 십계명 같은 법은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같은 명확한 독립적인 명제로 선善을 규정한다. - P97

반면에 동양에서는 선악의 결정을 관계에 의해서 설명한다. 동양에서는 절대적인 선을 믿지 않는다. 동양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용中庸‘을 살펴보자. - P97

중용의 개념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쉽게 말해서 눈치 봐서 가운데에 서라는 말인데, 벼농사 사회의 공동체 내에서 튀지 않게 행동하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 P98

동양에서 최고의 덕으로 이야기되는 ‘중용‘은 절대적 선의 개념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과 관계에 따라서 변화하는 선의 개념이다. - P98

동양에서 도덕의 가장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효孝‘는 부모와 자녀라는 두 사람 간의 상대적인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충忠‘은 임금과 신하라는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선이다. 동양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선을 찾으려 했다. - P98

부모자식의 관계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피할 수 없는 관계다. 사람들은 존재하는 즉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동양에서는 그 관계 속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했다. 이는 집단 노동 방식으로 벼농사를 지으면서 만들어진 가치관이다. - P98

서양 근대 철학의 시작을 연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를 찾았는데, 사고의 근저를 계속 파내려 가다 ‘생각하는 나‘에 다다른 것이다. 이는 서양 철학은 독립적인 자아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혼자서 씨뿌리고 일하는, 밀을 경작하는 사람다운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다. - P99

사회에서 최소 단위를 개인으로 본 것처럼 과학에서도 최소 단위를 찾아서 수천 년을 연구했다. 서양 과학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최근 현대물리학에서 소립자 구성 입자인 쿼크quark를 발견할 때까지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찾아 왔다. 독립된 ‘개인‘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 서양 철학과 ‘원자‘를 찾으려고 노력해 온 서양의 과학은 일맥상통한다. - P99

동서양은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던 서양과는 달리, 동양은 특이하게도 사후 세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 P99

공자는 어느 날 제자 계로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 라고 질문하자, "사는 것도 모르는데 죽은 뒤를 어떻게 알겠는가?" 라고 답했다고 한다. - P99

『세계 종교의 역사』의 저자 리처드 할러웨이에 의하면 사후 세계에 대해서 무관심 혹은 의식적으로 무시하려는 것은 전 세계의 종교 역사를 통틀어서 중국 등 일부 나라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특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집트나 힌두 쪽 문명은 사후 세계에 상당한 관심을 갖는데 반해, 중국은 상대적으로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집단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벼농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갖는 생각답다. 당장에 내 눈앞에 닥친 집단 노동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문제가 더 급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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