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어릴적부터 자신만이 생각하는 ‘특별한 사랑‘이라는 것을 꿈꾸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와 연애도 하고 결혼까지 하면서 그것이 다 이루어진 줄로만 알았는데, 결혼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한계들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 같은 것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공허감이라는 게 어떤 건지 독자인 내가 1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문맥상으로 유추해본다면 저자가 꿈꿨던 이상향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보통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들보다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또한 오늘 처음 밑줄친 부분을 통해 살펴보면 자신이 생각했던 궁극의 목적과 수단이 바뀌어 있었던 것 같다. 비록 독자인 나는 저자의 글을 지면만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그의 깊은 고뇌가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난 그동안 내 꿈이 ‘특별한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 꿈은 그것이 아니었다. 내 꿈은 이기적인 나의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이었다. ‘특별한 사랑‘이 나에게 그것을 가져다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한 사랑‘이 목적인 줄 알았더니 수단이었다. 난 새로운 수단을 찾아봐야 했다. - P121

빈 공간을 없앨 방법이 없어지자 나는 할 수 없이 이 빈 공간을 마주해야 했다. 이 빈 공간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처음으로 무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알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어지자 그제야 알고 싶어졌다. - P122

‘난 뭘 위해 살아야 하는 걸까??
‘난 왜 태어났을까??
‘날 누가, 왜 만든 걸까?? - P122

나는 내 삶의 시작과 끝, 즉 출생과 죽음에 대해 모르기에, 그 출생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삶의 의미도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 P122

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알아야 했다. - P123

What is the Truth? - P123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죽음 뒤엔 무엇이 있는지, 내가 찾고 있던 것에 대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철학의 이름으로 답을 제시해 놓았다. 하지만 내가 찾고 있던 건 나와 같은 한계를 가진 인간의 대답이 아닌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대답이었다. 음악에 비유해 예를 들자면, 내가 음악을 만들어 발표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뒤에 숨겨진 의미나 의도를 추측하지만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우주와 인간을 직접 만든 창조주가 말하는 답을 듣고 싶었다. - P126

만일 그런 창조주의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나는 그냥 내 생각대로 다시 살아갈 생각이었다. 나보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고 해도 결국은 나와 같은 한계를 지닌 인간이기에, 그가 나에게 완전한 진리를 말해줄 확률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127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면서 내가 느낀 건 인간이 지금까지 밝혀낸 사실, 아니 밝혀냈다고 믿고 있는 사실들이 인간이 아직 모르는 사실들에 비해 형편없이 적다는 것이다. 심지어 밝혀냈다고 믿고 있는 그 사실들조차도 언제라도 뒤바뀔 수 있는 불안한 것들이다. - P127

난 우선 종교 경전 중 창조자가 등장하는 책을 찾아봤다. 여러 책을 비교해보며 공부해보려고 했었는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우주와 인간을 만든 창조자가 등장해서 그것을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세히 써놓은 책은 성경 한 권밖에 없었다. - P127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 - P127

‘태초, In the beginning‘라는 말은 시간을 의미하고 ‘하늘과 땅, the heaven and the earth‘은 공간을 의미한다. 이 시간과 공간 전체를 우린 우주라고 부른다. - P127

(Universe의 정의를 찾아보면 ‘All of time and space‘라고 나온다.) - P127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기준은 죄가 ‘많고 적고‘ 혹은 ‘크고 작고‘가 아니다. 죄가 ‘있고 없고‘이다. - P128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한없이 사랑하고 계신 아버지이다. 하지만 동시에 만물을 정의롭게 다스리는 왕같은 분이셔서,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고 해도 그의 죄를 못 본 체 넘어가실 수는 없다. 죄가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사시려고 하는 하나님은 죄가 하나라도 있는 죄인과는 함께 살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은 죄가 ‘있고 없고‘ 인데, 인간들은 죄가 ‘많고 적고‘ 혹은 ‘크고 작고‘를 가지고 선악의 기준을 삼는다. - P129

인간이 평생 아주 작은 죄 하나도 안 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행위와 상관없이 완벽히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준비해주셨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이 자식의 모든 잘못을 대신해 벌을 받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 벌을 받으시려고, 자신의 분신인 예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어 인간 전체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게 하셨다. 미래를 모두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인간이 저지른 죄 뿐만아니라, 앞으로 지을 죄까지 모두 담당하신 것이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고 이 사실을 깨닫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신다. - P129

성경에 관한 많은 자료들과 해석들을 찾아보았고, 종파와 상관없이 다양한 목사님들을 만나 말씀을 들어보았다. 나는 매일 열 시간 이상씩 성경을 붙들고 씨름했다. - P133

성경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비교할 때 나의 기준은 하나였다. ‘논리적 일관성.‘ 성경을 만일 하나님이 쓰셨고,
그 하나님이 지금도 계신다면, 그 내용이 변질되지 않도록지켜야 한다. 성경 내용이 왜곡되거나 변질되어버리면 인간이 진리를 알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실 수가 없다.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와서 ‘성경 내용이 변질되어 잘못 알았습니다‘라고 변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33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_베드로후서 1장 20~21절 - P133

여기서 말하는 ‘논리적 일관성‘은 사실의 일관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여러 저자들이 쓴 책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저자에 따라 동일한 사건의 세부 내용을 약간 다르게 기록해놓은 부분들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한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자 그렇게 하신 것인데, 이런 것이 하나님의 원칙의 일관성에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 P134

나는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인 일관성을 갖췄다는 전제하에 논리적 충돌이 가장 적은 해석들을 선택했다. 어떤 해석이 올바르다면 성경 전체에서 논리적으로 충돌하는 구절이 한 구절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 P134

성경은 논리적 일관성만 포기하면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 자신의 해석과 논리적으로 충돌하는 구절이 나오면 성경이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면 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이 나오면 비유라고 말하거나 시대적 특수성 때문이라고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많은 목사님들이 이 방법을 택한다. - P134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_이사야 55장 8~9절 - P134

융통성이라는 것은 발휘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기준을 잃어버리게 된다. 불완전한 저울을 가지고 아무리 재어보아도 그 정확한 무게를 알 수 없듯이 말이다. - P135

논리적 일관성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공부해본 성경의 내용은 이러했다.

1.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며 우주를(시간, 공간, 인간)창조하셨다. - P135

2.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선택한 인간들의 영혼을 움직여 성경을 기록, 편집, 번역, 유지하셨다. - P135

3. 하나님은 원래 우주와 그 속의 모든 걸 영원하도록, 썩지 않도록 창조하셨고, 그 창조의 목적은 인간과 함께 영원히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다. - P135

4.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모두 자유의지가 있어야 하므로 인간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 자유의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두 개의 선택을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선‘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악‘. - P136

5. 영원한 존재였던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선택을 하여 정의로우신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는 죄인이 되었다.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이때부터 죽는 존재, 썩는 존재가 되었고, 인간의 피에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성이 생겼다. 그 뒤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이 죄성을 물려받아 태어나,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때 온 우주도 썩는 우주로 바뀌었다. - P136

6. 미래를 다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선택을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인간의 귀로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라는 자신의 분신을 미리 준비해 이 ‘말씀‘을 통해 인간을 구원할 계획을 세워놓으셨다. 이 말씀을 ‘아들‘이라 부르고 그에게 자신의 모든 권한을 넘겨 창조를 포함한 모든 일을 그 ‘아들‘ 즉, ‘말씀‘을 통해 하셨다. - P136

7. 이 ‘말씀‘이 2천 년 전에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온 것이고, 그게 바로 예수님이다. - P137

8.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대신 뒤집어씌우고, 그를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게 함으로써 인간에게 죄를 완전히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이것을 복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한다. - P137

9. 이 사실을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을 통해 인간들에게 전하였고, 이것이 완전히 믿어진 사람들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한 죄사함의 수혜자가 되어 ‘의인‘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는데, 이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 P137

10. 이 ‘완전한 죄사함‘이 믿어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죄가 모두 없어졌기에 정의로운 하나님 앞에 가도 죄인이 아니며,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다. - P137

하나님은 인간이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성경에 인류의 역사, 특히 유대인의 역사를 미리 다 예언놓으심으로써 자신이 시간 바깥에 있는 창조주임을 증명하신다. 우선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이 ‘I AM THAT I AM‘ (출애굽기 3:14)이라고 말씀하신다. - P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_히브리서 13장 8절 - P138

하나님은 누구에 의해 창조되신 적이 없고, 처음부터 존재하셨다는 것이다. - P138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의 책 《형이상학》에, ‘부동의 동자‘ (Unmoved mover 혹은 prime mover) 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썼다. 이것을 후대의 철학자들은 ‘제1원인‘ (1st cause)이라고 표현하게 되는데, 모든 것의 원인을 추적해 올라가다 보면 어떤 원인도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 P138

원인 없이 원래부터 그냥 존재하면서 다른 모든 것의 원인이 된 존재, 이것이 바로 ‘I AM THAT I AM‘이 갖는 의미이다. - P138

시간 바깥에 계신 하나님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다. 따라서 ‘I was‘나 ‘I will be‘라는 표현은 하나님에게 있을 수 없다. 언제나 ‘I AM‘인 것이다. 그와 반대로 인간에게는 ‘현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나 행복해" 라는 말이 입에서 떠나는 순간 사실 "나는 1초 전에 행복했었다"라는 뜻이 돼버린다. - P139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_고린도후서 12:2 - P139

첫째 하늘은 대기권, 둘째 하늘은 우주를 의미하는데, 이 우주 바깥이 시간 밖의 영역인 ‘셋째 하늘‘이고, 하나님은 이곳에 계시는 시간을 초월한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계속 설명하신다. - P139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_이사야 41장 4절 - P140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_요한계시록 1장 8절 - P140

성경이 정말 진리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성경에 쓰여 있는 수많은 예언들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해보면 된다. 특히 하나님이 자신의 증인으로 택하신 유대인의 역사를 보면 된다. - P14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_이사야 43장 10, 12절 - P140

내가 예로부터 처음 일들을 알게 하였고,
내 입에서 그것들이 나갔으며,
또 내가 그것들을 듣게 하였고,
내가 홀연히 행하여 그 일들이 이루어졌느니라.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예로부터 네게 알게 하였고, 이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네게 듣게 하였느니라.
그것을 네가 듣게 하여 네가 이것을
"내 신이 행한 바요 내가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명령한 바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_이사야 48장 3~5절 - P141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_아모스 3장 7절 - P141

하나님은 심지어 인간들에게 미래를 맞히지 못하는 신을 왜 믿느냐고 나무라신다. - P142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하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 혹 앞으로 올 일을 듣게 하며 뒤에 올 일을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신들인 줄 우리가 알리라 (.....) _이사야 41장 21~23절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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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단 스타트를 끊었다. 이 책의 일러두기란을 보니《라스트 울프》는 모든 문장이 쉼표로 이루어져 있으며 맨 마지막 문장에만 마침표가 찍혀 있다는 말과 함께 이것이 저자가 의도한 장치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 얘기를 보자마자 개인적으로는 재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욘 포세의 작품들이 문득 생각났다. 그의 작품을 이미 읽어보셨던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마침표가 거의 없고 그대신 거의 모든 문장들의 끝에 쉼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욘 포세의 작품을 읽었을 때 독자인 나는 삶과 죽음이 끊어져 있지 않고 이어져있다는 것을 작가가 은연중에 시사하기 위한 도구로써 쉼표를 활용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오늘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는 어떤 의도로 저자가 쉼표를 사용한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본문을 읽다보면 스페인 지명이 자주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스페인 지명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지 않은 관계로 다소 생소함을 많이 느꼈다. 인터넷에 지명들을 검색해보니 정확히 어딘지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실제로 존재하는 곳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스페인 지역에 대한 지리적인 배경지식이 어느정도 있는 독자라면 본문 내용이 조금이라도 더 익숙하게 느껴질 것 같긴 하다.

한편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물론 어떤 의미도 있겠으나 표현이 굉장히 신박하게 느껴져서 적어보았다. ‘의도라는 악취가 원자 하나하나에까지 배어들었다‘는 표현을 어떻게 쓸 수 있었는지 참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저자가 과학 분야에도 어느정도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런 표현이 나올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신박한 표현과는 별개로 본문에 나온 문장들이 전반적으로 약간씩 난해하게 느껴지는 건 문화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은 해보겠지만 말이다.

다만 오히려 어둑한, 악마 같은 의도가 개입되듯, 무언가가 일들의 핵심 속에 깊이 박혀 있어, 일들 사이를 엮고 있는 관계의 편제 속에, 그들의 의도라는 악취가 원자 하나하나에까지 배어들었다, 이는 저주였다, 지옥살이의 한 형태, - P30

세상은 멸시감의 산물이라, 생각하기 시작하는 이의 뇌를 두드려대었다, 그리하여 그가 더 오래 생각할수록,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고 깨우치게 된 것이었다, - P30

사상가로 출발했던 사람은 삶의 매분 매초에 허무함과 멸시감을 영원토록, 의식하고 있어야 하였다, 반대로 생각을 다 접고 단순히 사물들을 바라만 보려 해도, 생각은 새로운 형태로 돌연히 나타나니, 다른 말로,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든지 혹은 생각을 하지 않든 달아날 길은 없었다, 왜냐면 그는 어느 쪽이든 생각의 포로로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 P31

되는대로 두었다, 제 좋을 대로 흐르면 흐르는 거지, - P31

사건들이 어떻게든 전개되는 대로 내버려두자, 어쨌거나 일이 정확하게 그런 식으로 돌아갔다, - P31

핀카finca는 스페인어로 대농장, 핀크fink는 독일어로 되새, 불량배, 지저분한 아이라는 뜻이다. - P34

끔찍했다, 무서우리만치 징글징글했다, 누군가는 정말 이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계속 이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오직 하나 끔찍이도 통탄스러운 점은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 데 한 가지 길밖에 없다, 세상을 안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빌어먹을 생지옥을 인정하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비록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엑스트레마두라에 있는 모든 것, 땅, 사람, 모든 것이 다, 저주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식이 부족하고,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앞날에 어떤 일이 기다리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 P40

갑자기 저 둘, 도밍게스 찬클론과 늑대는, 진정으로 서로에게 속해 있다고 갑자기 느꼈다, 왜냐면 거기, 늑대가그의 사냥감을 자랑스레 가리키고 있는 사냥꾼의 자부심만 채워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부심이 똑같이 둘 모두에게서 뿜어져 나오기라도 하듯, 사냥꾼과 사냥감, 그들은 같이 묶인 존재들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 P45

늑대가 거기 있을때 가장 절실히 두려운 게 아니라, 아직 도달하기 전의 시간이 두렵다고, 늑대들이 내려와 도착할 조용한 사잇길 외에 아무것도 안 보일 때가 두렵다고 했다, - P61

늑대는 한 지역을 일단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고 나면 영원히 거기 머문다, 그들이 이곳의 주인이라, 저기 50헥타르까지 내 영역이로다 주장을 하면, 그러고 나면 그들은 이를 떠날 수 없다, 왜냐면 그게 그들의 법이다, 늑대의 법, 그런 천성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 이유로 결코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떠날 수가 없었다. 지속적인 위험을 의식한다고 해도, 그들이 자신의 영역을 떠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계속해서 경계를 표시하고 다니는 자신들의 영역을 떠나다니, 못 한다, 그들에게는 불가능했다, - P63

그는 늑대들의 법칙은 상당한 자존심으로 이뤄졌다고 전적으로 확신하였다, 그러니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들이 떠나는 걸 가로막는 것이 자존심이라고 가정해도 무방할 것이었다, 왜냐면 늑대들은 아주 자부심 높은 동물이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 P63

"El amor de los animales es el único amor que el hombre puede cultivar sincosechar desengano", 동물의 사랑은 인간이 결코 실망하지 않고 키워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다. - P65

하지만 이제 그는 그때, 그곳에서, 그 당시에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의 불안감이 그의 존재 자체를 이루던 공허감보다, 그가 익숙하던 차분하고 완전히 느긋한 이 존재의 공허감보다, 더욱 강렬하고 더욱 끈질기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겁에 질렸다, - P74

수년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피하지는 못했다. - P76

어떤 노력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 P89

인간이란 모든 것에, 복잡하고 모르는 것은 전부, 그 자체의 용감무쌍한 단순성으로 기세를 꺾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 P91

그는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부서지기 쉬운 평화도 아니고, ‘심장이 내리는 진정한 분부‘도 아님을 저릿하게 깨달았다. 왜냐면 그 모든 것은 그저 저 아래 온통 꿈틀대는 ‘핏빛 혼돈에 뒤엉킨 대중‘을 가리는 투명한 막에 지나지 않았다. - P95

이제껏 자신을 법의 폭압에 족쇄처럼 채우던 충의에 대해 반발심이 일었다. 그는 이제 인간의 계산을 넘는 더 높은 법칙이 있어야만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아마 그가 영원히 혼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경계를 넘어서 버렸다. - P95

그가 느끼는 마음의 짐을 나눌 만한 사람은 없으리라 깨달았다. 그의 악몽에서 이런자각(‘인과응보의 응징을 내릴 테다‘)으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생각의 흐름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 P96

Selbstschuss(젤브스트츄스), 독일어로 자동발사라는 뜻의 스프링 발사장치. - P97

이런 숙고의 시간이 최근에는 한층 더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특히나 마지막에 놓은 덫에... 무언가 자신 속에서 부서진 것 같아서, 마치... 갑자기 거의 힘이, 그의 정의감을 먹여 살리며 부지시키던 힘이 모조리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아서였다. - P102

덫에 벌써 몇 명이나 아이들이 걸렸다는 말을 듣자, 그는 ‘잘못된 냄새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자신의 두 손으로 ‘어둠 속에서 눈이 멀어 휘두르듯‘ 살육을 벌이도록 내몰리고 있었다니, 자신은 ‘지금까지 그들에게 현혹된 것에 대한 대가를 되갚아주려는‘ 사람이라는 믿음에서, 그 응보의 행동으로 해오던 일인데. 하지만 이제 사흘째 곱씹어보니 더 이상 외면하며 뒤로 미룰 수 없이, 그는 그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해야만 했다. - P102

‘누락된 질서‘를 복구하는 대신에 아마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나무좀처럼 내부에서부터 먹혀 들어가며, 최종적으로 와해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날카로운 통증이 갑자기 그의 어깨를 찔렀고 그가 앉은 곳의 어둠이 갑자기 무시무시해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이 달음질하는 생각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도 이미 감지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생각들을 무엇보다 먼저 정리해야 한다. 다시 한 번 허겁지겁 달아나는 단어들의 대혼란 속에서 체계를 세우고, 위협적인 붕괴를 미리 방지하고, 그의 내부에서 자라는 나약함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 P103

반응할 필요가 없었다. 한번 든 의문은 이미 바위처럼 단단한 그의 결심도 단 한 방으로 박살을 내버렸으니까. 마땅한 어구를 찾으려는 노력도 소용이 없었다. ‘신도 용서할 수 없을‘ 잘못을 저질렀다, 불쑥불쑥 고개를 치미는 생각을 이제는 그저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보류하던 최종 심판처럼,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 P103

그는 갈수록 배기기 힘들게 짓누르는 어깨 위의 짐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왜냐면 지금 무감각하게 얼얼한 무거운 죄의식 대신에, 그는 끝없이 탁 트인 눈부신 자유 공간에 도달했다고 느껴져서였다. 거기는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심장이 내리는 진정한 분부‘가 또렷하게 들렸다... - P103

잠깐 머리가 어찔해서 눈을 꼭 감자 고요한 숲속 오솔길에 다시 한번 발을 내딛고 눈이 사부작 내리는 옛날 정찰로를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런 홀가분하게 트인 공간에 그는 즉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다. 그 속에서 은혜의 징후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죄인의 눈으로 보니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정확하게 동일한 무게, 중요성을 지녔구나・・・ - P104

아드 에세 아드 포세(가능성에서 현실로 다가오나니) - P108

‘이 주변에서는요, 아가씨… 더 이상 신성시되는게 없어요. 하늘도 없고 법도 없는 세상이에요. 사람들은 돈을 펑펑 써요, 아주 물 쓰듯 허비해요.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도 못 하실 거예요. 게다가 모두들 무슨 토끼들마냥, 어, 들입다 날뛰고. 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 더 이상은 말씀 못 드리겠어요.‘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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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라고, 어제는 동 저자의《사탄 탱고》, 오늘은 이《세계는 계속된다》를 시작해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생소한 헝가리 국적의 작가님이다보니 어떤 그들 고유의 문화나 분위기 같은 것들이 쉽사리 적응되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문장 한 문장 읽다보면 국적을 불문하고 다 같은 사람들이기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제목과 목차만 보고 나름대로 추측해보자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세계를 도피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화자의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이 세계는 계속된다는 명백한 진리를 깨닫는 뭐 그런 류의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보게 된다. 물론 이런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얼마전 한강 작가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깊이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소설을 읽어나갈 때 뒤에 나올 내용들을 나름대로 예상하면서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그 책에 대한 몰입도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예측의 정확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소설 초반부에는 누군진 모르겠으나 화자가 자꾸 떠나야만 한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아마도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현실 또는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인다.

떠나, 지금 당장 떠나, 생각하지 않고 즉시 떠나, 그리고 돌아보지 마, 그저 미리 결정된 행로를 따라가, 시선을 앞으로만 고정하고, 물론 제대로 된 방향에 고정하고, 그렇게 고통스러울 정도로는 어려워 보이지 않는 선택, - P12

오른쪽으로 갈 수 있지, 그러면 실수하지 않으리라, 왼쪽으로도 갈 수 있지, 그런들 실수가 되지 않으리라, 서로 180도로 반대인 양쪽 방향 모두, 우리 내면에 있는 이 실용적 감각에 따르면 완벽하리만큼 좋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으므로, 그리고 여기에는 아주 좋은 이유가 있는데, 완전히 180도 정반대인 두 방향을 가리키는 이 실용적 지식은 욕망에 의해 판가름되는 프레임워크 안에서 작동하니까, 다시 말해, "오른쪽으로 가라"는 "왼쪽으로 가라"와 다름없는 말, 이런 두 가지 방향 모두, 우리의 욕망이라는 관점에서는 가장 먼 곳, 여기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키기 때문에, 그러니까 어느 방향으로 가든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은, 더는 실용적 지식, 감각 혹은 능력이 아니라, 욕망, 그저 욕망으로만 결정되어, 현재 위치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것뿐만아니라, 가장 위대한 약속의 땅,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갈망, 확실히 평온이 가장 주된 요소일 것,
이것이야말로 한 사람이 그렇게 욕망하는 거리 속에서 찾으려 하는 것일 테니, - P14

그의 현재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시작점을 떠올릴 때마다 그를 사로잡는 억압적이고, 고통스러우며, 광기 어린 소요로부터 벗어나는 평온,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무한히 낯선 땅이며, 그는 그곳에서부터 떠나야 하니, 여기의 모든 것은 참기 어렵고, 차갑고, 슬프며 황량하고, 치명적이기에, - P14

사람들은 그가 정말로는 빙빙 돌고 있을 뿐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시계의 분침처럼 지구를 돌고 있을 뿐임을, - P16

그는 시곗바늘과는 달라서 아무것도 가리키지 못했기에, 그는 아무것도 의미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이 세계를 가장 성가시게 했던 것은, 그 무엇이 과연 세계를 성가시게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사람이 가치 없다는 것일 테니, 그는 그저 지나갈 뿐이고 이 세계에 아무런 가치도 없었으므로, 그가 이 세계를 돌아다니는 때가 오자, 사실상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그는 사라져버렸으니, 물질 수준에서 실질적으로 증발해버렸으니, 세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무無가 되어버렸으니, 즉 사람들은 그를 잊어버렸으니, 물론 그것이 그가 현실에서 부재한다는 뜻은 아닌데, 그는 여전히 거기에 남아 있었기에, 그는 지치지도 않고 미국과 아시아 사이,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를 다녔기에, 그저 그와 세계 사이의 연결이 깨져버렸을 뿐이고, 그는 이런 식으로 잊히고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이와 함께 그는 영원히 고독하게 남았고, - P17

수백 년 동안이나 지속된 것만 같았던 그의 헤맴의 여정 속에서, 영원히 떨구었던 고개를 들기만 했더라면, 딱 한 번만이라도 그랬더라면, 그는 자신이 여전히 거기 서 있었다는 것을 보았을 텐데, - P19

그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은 뭐가 되었든 없으니, 그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거기 서 있어야 하기에, 그의 손발이 동시에 옳은 두 방향에 묶여 있기에, 그는 거기 시간이 끝나는 바로 그때까지 서 있어야 하니, 그곳이 그의 집이기에, 그곳이 정확히 그가 태어난 곳이기에, 그리고 거기가 언젠가 그가 죽어야 할 곳이기에, 거기 집에서, 모든 것이 차갑고 슬픈 곳에서. - P20

모든 것은 확실히 서쪽부터 동쪽으로 움직여가기에, - P22

세계의 움직임에 반하는 것은 정확히 최악의 선택임을 깨달아버렸는데, - P22

내가 처음부터 맞게 생각한 대로 지구는 관념이기 때문,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관념보다 더 빨리 움직이고 싶어지고, 그걸 뒤에 두고 떠나기를 바라고, 그것이 별안간 나의 목표가 되고, - P25

거대한 거시적 전체성 속에 있는 작은 미시적 전체성, 어느 경우라도 나는 지구의 속도에 나의 속력을 더하기만 하면 되어서, 나는 그렇게, 되도록 빨리 뛰었고, 밤에서 새벽으로 변하는 거대한 하늘 아래서 발을 쿵쿵 내딛는데, 머릿속에는 모든 것이 원래 되어야 할 그대로 되었다는 감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나는 그저 내 몫의 속도를 지구의 몫에, 내 속도를 지구의 속도에 기여한다는 생각뿐, - P26

내가 맞는 방향으로 계속 간다면, 내가 그저 움직이기만 한다면, 그저 신선한 새벽 공기를 뚫고 계속 걸어간다면, 나는 마음먹은 일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 P27

우리는 외부의 도움 없이 자기 뜻대로 모든 것에 도박을 걸어 날려버렸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한다. 외부의 힘이나 운명을, 혹은 저 멀리에 있는 악의 어린 영향을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한다. - P29

신들과 이상을 다 쫓아버리고 죽였다. 잊고 싶다. 품위를 끌어모아 씁쓸한 패배를 받아들일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지옥의 담배와 지옥의 알코올이 그나마 있던 특성을 야금야금 갉아먹었기 때문에, 사실 담배와 싸구려 술은 이전에 형이상학적이었던 여행자들이 천상의 영역을 향해 품었던 동경의 잔해일 뿐이기 때문이다. 갈망이 남긴 유독한 담배 연기, 광기 어린 집착을 담아 사람 미치게 하는 묘약에서 남은 구역질 나는 술. - P30

역사는 끝나지 않았고, 그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이 끝나버렸는지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속일 수는 없게 되었다. 그저 어떻게든 유지해나가면서 계속할 뿐이다. 무언가는 계속되고, 무언가는 살아남는다. - P30

어쨌든 아무리 원한다 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오직 역사에 대해서만, 인간 조건에 대해서만, 본질상 오로지 기분 좋게 자극하는 적절한 불변의 특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 P31

바로 분야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세상이라는 주장. - P34

"사실, 그 둘이 서로에게 속해있다. 윤리는 삶의 대들보이고, 도덕적인 인간은 삶이라는 영역에 사는 진정한 시민이다." _토마스 만 - P39

토리노에서 니체가 일으킨 드라마는 도덕 법칙의 정신에 따라 살아간다는 건 전혀 명예를 누릴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암시하는데, 나는 그 반대를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 저항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풀어낼 수 없는 끈으로 도덕에 묶어놓는 신비롭고 진정으로는 이름도 붙일 수 없는 힘으로부터 내가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게 내가 한 일이라면, 내가 도덕에 저항해서 산다면, 나는 인류가 발달시킨 사회적 존재 안에서 내 길을 찾을 수 있었을 테고, 그리하여 니체의 표현대로, 그다지 불쌍해할 것도 없는, "사는 것과 불공정한 것은 하나이며 동일"한 삶을 살 수 있겠지만, 나는 몇 번이고 내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갈망의 한가운데에 떨어지고 마는 불가해한 딜레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 P40

내가 이 인간 세계의 일원인 이상, 나는 또한 뭐랄까, 알 수 없는 이유로 내가 더 위대한 전체라고 부르는 무언가의 일원이기도 하다. 정언명제를 논하는 칸트에게 경의를 표하는 표현으로 말하자면, 이 커다란 전체는 내 안에 이것과 정확히 이런 명령을 심어놓았다. 자유의 우울한 권한에는 법을 깰 자유도 따라온다. - P40

나는 새로운 언어가 없이는 이 새로운 시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 P47

완전한 어둠이 방 안을 채울 때, 오직 한 가지만이 완전히 확실해졌으니, 그것이 풀려나버렸다는 것, 그것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것이 벌써 여기에 있다는 것. - P49

하지만 이 고래야말로 다른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사실상, 고래 그 자체가 다른 무언가의 대체품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거대한 시체는 전달자인 동시에 전갈 그 자체일 수 있었죠....... - P56

사실상 이 고래가 숨기고 있는 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깊은 지옥에서부터 이 시장 광장으로 돌아온 것이라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 P58

사실 우리 목을 조이는 건 분개심이 아니라 지루함, 그리고 그런 거짓말의 추잡한 수준입니다. - P58

‘근본적인 것‘을 향한 길이 우울을 통과할 수 있다 - P63

폰스 에트 오리고(fons et origo, 근원과 기원) - P63

처음 시작했을 때는 자기 관심의 목표를 이 세계의 본질로 삼았다고 할 수 있죠. 그 세계는ㅡ후에도 여전히 믿었듯이ㅡ천사와 악마가 함께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처음 이런 본질을 향해 손짓할 때, 처음으로 그런 의도가 일 때, 우울이 즉시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 P65

우울이란 한편으로는 볼 수 없게 방해하는 궁극의 장애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후의 땅거미 속에서 갈망하여 기다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것말고도 또 뭐가 있을지 누가 압니까? 모두 서로 번갈아가며 쌓여 있는 것이지요. - P66

그리고 어쨌든, 정말로, 태양 아래 새로운 게 하나도 없는 때, 내가 무슨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 P67

결국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그리고 정리를 위해 다시 요점을 요약하려고 하는 이 우울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것입니다. 그건 삶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세 가지 근원으로부터 삶을 망가뜨릴 수 있지요. - P67

맨 처음, 그리고 절대 소진되지 않는 근원은 자기 연민입니다, 아이들의 동요에서조차도 "구린내 난다"라고 해버릴 그런 유의 연민이 아니라, 딱히 적절한 이유가 없이도 자기 자신을 연민하는 데서 일어나는 유의 것이죠. - P67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상태도 괜찮죠, 고요 속에 앉아 있을 뿐입니다. 비 내린 후 적적한 공원에 홀로, 해외의 아늑한 방에, 새벽이나 어둠이 내리기 전, 이런 연민이 기습해서 가장 무례한 방식으로 놀라게 하고 먹어치우며 필연적인 것이 됩니다. 바로 이때야말로 그를 이해하지 않고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때니까요. - P68

두 번째 근원은 음악에서 단음계로의 변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이런 순간을 느낄 때마다, 어떤 악곡에서 장조가 단조로, 가령 A장조에서 C단조로 바뀔 때면, 음악이 즉시 내 심장을 가르고, 마치 그게 나를 특별히 골라서 일어난 것처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고통 어린 기쁨에 사로잡힌 듯 얼굴은 찌푸려 일그러지죠, 한마디로 나는 우울에 풍덩 뛰어들고, 거기 앉아 들으며 생각하게 됩니다, 아, 아름답구나, 그것이 오로지 우울일 뿐인데도요. - P68

하지만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심오한 우울은 사랑에서 솟아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항목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그 주제를 상세히 부연한다면 크게 놀라운 일이 뒤따를 리없기 때문이죠. - P68

위험을 법의 작동 과정에 도입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향한 일종의 공격을 개시하기로 결정하는 것이죠. 그 공격이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 P78

오늘에서야 제가 어디서 실수를 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만, 이 실수를 똑똑히 본다는 것이 물론 그 실수를 되돌릴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요. - P82

무제한의 권력이란 이 무제한의 권력이 즉각적이고 절대적인 효과를 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그 천민은 사회가 보장한 최소한의 보호, 권리, 자원까지 박탈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무제한의 권력은 부랑자가 경찰을 무시하고 고통스럽게 찡그린 얼굴로 방뇨를 이어가면서 갑자기 모든 효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부랑자가 이 수심에 찬 얼굴을, 약간이지만 확실히 우리 쪽으로 돌리는 한편, 경관은 이 모욕적인 무대에서 무시당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자신의 무제한적인 권력이 어떻게 단순한 무력감으로 변해버렸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지요. - P89

그러나 추적에도 불구하고, 또 도주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은 10미터의 간격을 건널 수가 없었죠. 그10미터는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되었다는 편이 더 맞겠죠. 경관이 마침내 그 부랑자를 체포하려는 순간, 거의 동시에 도착한 열차가 포효를 내지르며 역으로 들어와서 허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내 눈에는 그 10미터는 극복불가능함을 증명한 것만 같았습니다. 단순한 경찰 용어로 말하자면, 제 눈이 이 추적과 이 도주에서 본 것은 선은 절대로 악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간극으로 거기에는 그 어떤 희망도 없으니까요. 저의 마음을 깊이 흔든 건 이 점이었습니다. 슬금슬금 도망가며 몸을 떠는 부랑자도 아니고, 바람처럼 민첩하게 축지법을 쓰며 날아간 경찰도 아니었지요. - P91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는 저는 보통 잠깐 뜸을 들이며 되도록 오래 미루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지만지금 이 순간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이 몹시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시간 끌어봤자 아무 소용 없다고. - P91

악은 존재한다. 그리고 슬픈 말이지만 선은 절대로 그것을 따라잡지 못한다. - P91

반란이란 늘 전면적이지, 갑자기 맑은 정신이 퍼뜩 들면서 저는 불 밝힌 역 뒤에 또 다른 역이 스쳐 날아가는 광경을 빤히 보다 내 앞에서 바로 그 부랑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게 되었죠. 그에게는 그저 거울과 플랫폼의 1.5미터가 금지되었던 곳이 아니라, 그의 금지 구역은 전체 플랫폼, 계단, 거리, 건물, 지상과 지하에 있는 것, 그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 P93

떠나는 사람은 청중을 필요로 하지 않죠, 혹은 이 청중은 떠나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같이 나눌 게 더 없으니까요. - P96

저는 여러분이 제게 원하는 것엔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의도에는 관심이 없고, 여러분이 무엇에 작별을 고하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별사에 대한 우리의 상대적인 해석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할뿐더러, 우리의 고별사의 내용도 절대 동일하지 않을 테니까요. 힘주어 말하건대, 여러분이 이 사실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 P97

여러분은 세계의 예측성, 즉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 자신의 안전에 관해 무척이나 신경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제게는 별 접점없는 관심사일 뿐입니다. 반면, 제가 신경을 쓰는 건 제가 다시 세계로 나갈 수 있게 되는 단계의 순서입니다. 제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실로 확실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말을 논박하려는 것이 아니고, 저도 견디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신사 여러분이 이 우주에서 안전의 부재를 통탄하는 동안, 저는 인간 세계에서 아름다운 의미의 부재를 통탄합니다. - P100

우리가 환멸로써 우리의 차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여러분의 환멸은 소위 우주를 구성하지만, 저의 환멸은 소위 인류라는 것에 한정되어 있죠. 이 말의 뜻이 무엇인가 하면, 여러분은 사실 우주로 들어가는 열쇠를 발견하지 못해 실망하지만, 이 우주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죠. 반면 저는 우주를 여는 열쇠가 평범한 매춘이라는 걸 깨달은 이래로 인간 지성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기에,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채로 남아버렸죠. - P100

지금 지성인이 한 주제를 선택하는 관습적인 과정은 이전의 경험과 뒤따른 재앙적 트라우마가 지나간 자리를 뒤따르며, 인간 우주에 관한 체념을 넘어선 그 인간 지성체가 단조로운 절망감의 수렁에 빠진 이 세계에 물려버린 나머지, 그를 초월해서는 마침내 뒤로하고 떠나면서 이 특별한 주제를 불가해할 정도로 위엄 있는 태도로 규명해내는 것입니다. 해독 불가능하고 신비로운 장엄함, 즉 우주에 있는, 아니, 우주의 신성에 있는 속성이죠. - P101

여기서부터ㅡ이런 말을 해서 안타깝지만, 예언적으로 덧붙일 수밖에 없네요ㅡ그 지성체는 번영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흥미가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흥미를 보이는 주체로서 이 지성체는 영원히 자기 자신이 지키는 죄수로 갇혀 있게 됩니다. 그건 우주에서의 자신의 특별한 지위만큼도 우주에는 관심도 없어요. 자신이 선택받을 가능성에 대한 관심만큼도 우주의 신성에 관심이 없죠. 한마디로 이 주제는 신성하지만 후회스러울 만큼 성취할 수 없는 목표죠, 하지만 흥미를 보이는 주체의 순위나 가치와는 대조적으로, 이 주제의 위엄과 거기 보이는 높은 수준의 흥미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겁니다. - P101

즉, 무언가 이제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갑자기 깨닫게 되면, 그 무엇도 자기가 소유했던 적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는 거죠. - P109

제가 여러분께 거의 아무것도 약속드릴 수 없는 이유는 제가 약속을 할 만한 걸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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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어떤 내용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냥 첫 이미지만 보면 사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지는 몰라도 뭔가 고통스러운 게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일단 시작해본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 _F.K. - P5

유리창에 갑자기 불분명한 물체가 보이더니 점차 사람의 꼴을 갖춰갔다. 처음엔 그게 누구의 얼굴인지, 놀란 두 눈을 볼 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윽고 그가 알아본 것은 자신의 초췌한 면상이었고, 순간 놀라고 당황한 것은 비가 창유리 위의 얼굴을 지워내듯이 세월이 그에게도 똑같은 일을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그 모습엔 무언가 엄청나고 낯선 궁핍이 어려 있었다. 수치와 자부심 그리고 두려움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그에게로 다가들었다. - P27

"이제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걸 보게 될 거야." - P35

아, 그리고 남편 말이, 돈은 훔쳐가려면 맘대로 하래요. 그런 건 우리한테 아무것도 아니래요. 그렇게 말했어요. 남편 말이 옳지요. 숨어 다니고 시치미 떼고 밤잠도 못 자고... 우린 그러고 싶지 않거든요. - P38

"짜증 내지 말라고. 보란 듯이 잘살 수 있게 될 테니까! 홍청망청 마음껏 즐기며 살 거야!" - P38

어지러운 생각들이 몇 분 동안 소용돌이치다가 허약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쓸모없는 문장들이 만들어져 나온다. 그것은 급조된 다리처럼 세 걸음만 걸으면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그다음 내딛는 마지막 발걸음에 와장창 무너지는 것이어서, 결국에는 지난밤 관인이 찍힌 소환장을 처음 받았을 때 빠져들었던 소용돌이 속으로 거듭해서 휘말려 들고 마는 것이다. - P42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잖아." - P46

"지나간 일은 잊어주기로 하지. 단, 당신들이 미래에 관한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말이야." - P56

"저희에게도 권리란 게 있습니다" - P57

"어떤 법이냐고?" 대위의 얼굴이 음울하게 변한다. "강한 자의 법이지."  - P58

"빌어먹을 일은 그만 잊어버리는 편이 낫겠어!" - P62

"왜냐하면 시작한 건 끝을 봐야하는 법이거든." "그렇지. 흐리멍덩하면 안 되거든." - P66

"농부들은 언제나 뭔가를 쟁여두고 있지." - P70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관대하게 넘기는 일은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벌주지 않으면 나중에 그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되는 이치였다. - P82

산만함이나 부주의로 저지른 실수는 일의 위험성을 높여 예상보다 심각한 결과를 불러왔다. 불필요한 동작 너머에는 안정함이 숨어 있지 않은가. - P82

관찰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완성된 것은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친 작업의 결실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자신을 닦아세우며 스스로를 벌주고 철회하는 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첫 시기의 불안정함과 때때로 찾아든 의심이 야기한 혼란이 지나간 다음에는 더 이상 자신이 개별적인 동작들을 통제할 필요가 없는 단계로 들어섰다. 그렇게 사물들은 마침내 최적의 위치를 찾게 되었고, 그는 자신의 행동을 별다른 생각 없이도 아주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착각이나 과대망상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만들었음을 자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P83

시도는 무언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욕구의 은밀한 현시거나, 혹은 기억력 쇠퇴의 증표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가 몰두한 것은 주변의 외적인 몰락에 맞서 자신의 기억력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 P87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것ㅡ집들과 담장들, 나무와 들판, 공중에서 하강하며 나는 새들, 배회하는 짐승들, 육신을 가진 인간들, 욕망과 소망들ㅡ을 파괴하고 소멸시키는 힘에 맞설 수는 없었다.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는 인간의 삶에 대한 위협적인 공격에 헛된 저항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음험한 몰락에 자신의 기억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의 모든 것, 벽돌공이 쌓고 목수가 만들고 여인들이 바느질한 모든 것이, 남자들과 여자들이 애써 이룬 모든 것이 저승의 물살에 어지러이 휩쓸려 형체가 불분명한 액체로 화한다 해도 오로지 기억만은, 그가 맺은 계약이 깨져 죽음과 몰락이 그의 뼈와 살을 공격하기 전까지는 살아 있을 것임을 그는 믿었기 때문이다. - P88

그는 모든 것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하찮은 세부라도 놓쳐선 안 되었다.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고 간과하는 것은 몰락과 질서 사이에 놓인 흔들리는 다리 위에 아무런 대책 없이 서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P88

하지만 정직하게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우두커니 기억만 하는 것은 무력하고 무능하므로 그것으로는 과업을 수행할 수 없었다. 기호들을 의미 있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연결할 방법이 있어야만 기억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간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 P88

‘관찰 대상을 늘리는 일은 최소화하는 게 좋겠군.‘ - P88

그는 갑자기 연속적인 시간에서 빠져나온 자신이 점처럼 왜소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자각했다. 자신이 지각의 요동에 무방비하게 방치된 무력한 희생자처럼 느껴졌다. 그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시간이 가라앉은 대양과 솟아나는 산악의 말 없는 투쟁 사이에 내맡겨진 것이었다. - P93

고통의 증거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일이 없다고 그는 믿고 싶었다. - P95

비겁하게 행동하는 것은 자존심뿐 아니라 존재 자체에 상처를 내는 일이었기에, - P120

오히려 그는 자신을 향해 공허하게 고정된 농부의 시선을 뜻 모를 위협으로 느끼며, 자기가 책임을 질 만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는지 기억 속을 훑었다. 이처럼 숨 막히는 순간에 괴로워하며 자기 인식의 심연으로 던져진 그가 깨달은 것은, 뇌리를 스치고 가는 그의 파란만장한 쉰두 해의 삶이 불타는 집에서 피우는 담배연기처럼 사소하고 무의미하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짧고 공연한 죄책감은 그를 깊숙이 뒤흔들어놓기도 전에 곧 사라져버렸다(그건 과연 죄책감이었을까? 죄책감이란 한번 혜성처럼 작열하고 나면, 이후엔 여명처럼 희미한 의식의 불편함 정도만 남기는 것이다).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죄책감은 히스테리를 일으켜 입과 목구멍, 식도, 위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P123

누군가에게 확신을 불어넣고 그의 덧없는 실존을 온전한 존재로 고양시키는 기억은, 어떤 사태로부터 기억 자체의 질서에 따라 실마리를 끄집어내고 기억과 인생 사이의 거리를 단지 그 기억을 지니고 있다는 경직된 만족감으로써 무마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 P128

성장과 몰락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 P132

그는 꿈을 정말로 이루려면 언제 어디서나 참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주의한 한마디의 말, 잘못된 한 번의 계산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때때로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휩쓸리는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손해를 보았다. - P136

그는 원대한 꿈을 이루는 데 있어 바탕이 되어온 자신의 타고난 기질에 만족했다. 그는 젊다 못해 어렸을 때부터 주위의 증오와 혐오로부터 취할 수 있는 이득을 세세하게 셈할 줄 알았다. 그런 이치를 알게 된 다음부터는 그도 남들과 똑같은 실수를 범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때때로 그런 감정에 휩쓸릴 것 같으면 그는 창고로 퇴각하여 아무도 지켜보는 이가 없는 곳에서 흥분을 가라앉히곤 했다. - P136

그에게 제값을 치르게 하려면 말이 아니라 힘이 필요했다. - P137

일이 잘되려면 아주 간단하게 이뤄지는 법이니까. - P138

세상엔 법이란게 있다고! - P138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여러 사람이 애를 써야만 알아낼 수 있는 법이었다. 거듭해서 조금씩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어보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진실은 빛 아래서 낱낱이 드러나고, 사건들을 돌이켜 검토하면 원래 이야기에서 어떤 순서로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 P145

어차피 운명의 책에 쓰여 있는 정해진 일이다. - P146

"이겨야 해. 알곘어, 멍청아?" - P170

에슈티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빨간 담뱃불이었다. 그것은 하늘의 혜성처럼 잠깐의 흔적을 남긴 뒤에 그 궤적마저 밤의 암흑 속으로 스러져버리는, 별이 최후에 발하는 희미한 빛과도 같았다. - P185

한 주 두 주가 가고 한 달 두 달이 지나는 동안 거듭해서 패배를 겪고 계획들은 혼란에 빠져 사그라지며 해방에 대한 소망은 끝없이 쪼그라드는 것, 가장 두려운 위험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오히려 똘똘 뭉치고 의지력을 발휘하기도 하니까. - P196

누군가는 계획을 준비하고 필요한 일들을 조직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일에 총대를 메야만 했다! - P200

일은 절차대로 진행돼야 하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질 수는 없는 법인데... - P200

오랜 경험을 통해 그는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 P201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 P208

‘언제까지나 머리 위에 펼쳐져 있을 거대한 천구天球도 결국은 어딘가에서 끝이 나겠지. 이곳의 모든 것이 유한한 운명을 가진 것처럼‘ - P209

‘우리는 이 세계라는 돼지우리 속에서 태어나 갇혀 있지.‘ . ..(중략)... ‘그리고 오물 속에 뒹구는 돼지들처럼 뭐가 어찌된 건지도 모르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젖꼭지를 향해 아우성치지. 사료 통으로 빨리 가려고, 밤이 되면 침대로 돌아가려고 허둥대는 거야.‘ - P210

그는 끈질기게 찾아오고 또 찾아드는 욕망에서 간절히 해방되고 싶었다. - P210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의심도 품지 않고 따라서 이해할 수도 없는 저 두려운 작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구원의 손길, 도망칠 가능성 같은 건 없었다. - P210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어느 날 돌연히 땅에 얼굴을 처박고 어둠 속 냄새나는 늪에서 벌레들과 함께 영원을 보내야 하는 걸까? 대체 누가 그런 생각을 납득할 수 있을까?‘ - P211

물론 후터키를 혼자 놔둬도 되겠지만, 같이 있어주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악마는 결코 잠을 자지 않기 때문‘이었다. - P211

운이 없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 P219

바닥없는 어리석음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법, - P219

차르다시 : 헝가리 민속 춤곡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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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신장재편판 15 - 북산 전국대회 데뷔!
이노우에 타케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5권에서는 전국대회에 처음 진출한 북산과 지난 전국대회 8강에 빛나는 풍전과의 치열한 혈투가 벌어진다. 지난 14권에서 강백호가 감독인 안 선생님에게 1:1지도를 받아가며 슛 연습을 했었는데, 오늘 풍전과의 경기에서 그 연습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물론 강백호의 천재적인 재능도 없진 않았겠지만 1주일간 2만개의 슛을 연습할 정도로 열심히 노력했던 강백호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어떤 결과물을 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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