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고, 어제는 동 저자의《사탄 탱고》, 오늘은 이《세계는 계속된다》를 시작해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생소한 헝가리 국적의 작가님이다보니 어떤 그들 고유의 문화나 분위기 같은 것들이 쉽사리 적응되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문장 한 문장 읽다보면 국적을 불문하고 다 같은 사람들이기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제목과 목차만 보고 나름대로 추측해보자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세계를 도피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화자의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이 세계는 계속된다는 명백한 진리를 깨닫는 뭐 그런 류의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보게 된다. 물론 이런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얼마전 한강 작가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깊이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소설을 읽어나갈 때 뒤에 나올 내용들을 나름대로 예상하면서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그 책에 대한 몰입도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예측의 정확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소설 초반부에는 누군진 모르겠으나 화자가 자꾸 떠나야만 한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아마도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현실 또는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인다.

떠나, 지금 당장 떠나, 생각하지 않고 즉시 떠나, 그리고 돌아보지 마, 그저 미리 결정된 행로를 따라가, 시선을 앞으로만 고정하고, 물론 제대로 된 방향에 고정하고, 그렇게 고통스러울 정도로는 어려워 보이지 않는 선택, - P12

오른쪽으로 갈 수 있지, 그러면 실수하지 않으리라, 왼쪽으로도 갈 수 있지, 그런들 실수가 되지 않으리라, 서로 180도로 반대인 양쪽 방향 모두, 우리 내면에 있는 이 실용적 감각에 따르면 완벽하리만큼 좋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으므로, 그리고 여기에는 아주 좋은 이유가 있는데, 완전히 180도 정반대인 두 방향을 가리키는 이 실용적 지식은 욕망에 의해 판가름되는 프레임워크 안에서 작동하니까, 다시 말해, "오른쪽으로 가라"는 "왼쪽으로 가라"와 다름없는 말, 이런 두 가지 방향 모두, 우리의 욕망이라는 관점에서는 가장 먼 곳, 여기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키기 때문에, 그러니까 어느 방향으로 가든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은, 더는 실용적 지식, 감각 혹은 능력이 아니라, 욕망, 그저 욕망으로만 결정되어, 현재 위치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것뿐만아니라, 가장 위대한 약속의 땅,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갈망, 확실히 평온이 가장 주된 요소일 것,
이것이야말로 한 사람이 그렇게 욕망하는 거리 속에서 찾으려 하는 것일 테니, - P14

그의 현재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시작점을 떠올릴 때마다 그를 사로잡는 억압적이고, 고통스러우며, 광기 어린 소요로부터 벗어나는 평온,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무한히 낯선 땅이며, 그는 그곳에서부터 떠나야 하니, 여기의 모든 것은 참기 어렵고, 차갑고, 슬프며 황량하고, 치명적이기에,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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