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체적인 내용 구성이 굉장히 짜임새 있게 느껴졌다. 또한 동일한 시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앞에서는 린샹푸의 관점에서 뒤에서는 샤오메이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내용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앞에서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뒤에서 퍼즐처럼 맞춰지는 전개도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때는 겨울. 시진에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눈이 계속 내리자 사람들이 성황각에 모여서 눈이 그치고 햇빛을 보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낸다.

원래는 제사를 지내는 실내장소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이 개인적인 기도까지 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지체되자 뒤늦게 온 사람들은 장소가 뭐가 중요하냐면서 티격태격 대다가 그냥 밖에서 기도하기로 한다. 그 중에는 아창과 샤오메이 그리고 계집종도 포함되어 있었다.

린샹푸는 때마침 그 제사를 드리는 장소를 지나다가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다만, 거기에 샤오메이가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이후 샤오메이는 구이민이 이끄는 상인회의 주관하에 시산의 어느 후미진 곳에 묻힌다.
.
.
.
이야기가 전환되어 소설 앞부분에 나왔던 토비와 싸우다가 전사한 린샹푸가 톈다 형제들에 의해 관에 실려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운명의 이끌림인지는 몰라도 린샹푸는 샤오메이가 묻혀 있는 장소로 옮겨진다.

딸의 이름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부르는 동안 샤오메이는 마음속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바깥에서 끝없이 내리는 눈송이를 잊을 수 있었다.

그날 누가 문을 두드리면서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타인의 숨결이 집으로 돌아왔다.

상인회에서 파견나온 그 사람은 성황각에서 눈을 그치고 햇볕을 내려달라는 천제를 올리려 한다고 알려주었다.

집 밖에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안에 있는 아창과 샤오메이, 계집종은 햇살이 조금씩 비쳐드는 기분이 들었다.

제사가 사흘 째로 접어들었을 때 샤오메이가 성황각에 가자고 하자 아창이 고개를 끄덕이고 계집종도 끄덕였다. 그들 모두 성황각에 가고 싶었다.

샤오메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날씨를 위해 기도한 뒤 린샹푸를 위해 빌었다. 린샹푸가 딸을 안고 그 먼 길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너무 아프고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린샹푸에게 말했다.
‘다음 생애도 당신 딸을 낳아주고 그때는 아들도 다섯을 낳아줄게요..... 다음 생에 당신 여자가 될 자격이 없다면 소나 말이 되어, 당신이 농사를 지으면 밭을 갈고 당신의 마부가 되면 마차를 끌게요. 채찍질해도 돼요.‘

샤오메이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린샹푸가 자기 앞에서 말하는 걸 보고 있었다.

그때 샤오메이의 눈에 입을 벌린채 자신을 향해 방긋방긋 웃는 딸이 보였다. 하얀 앞니가 두 개 자라나 있었다. 샤오메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 두 줄기 눈물이 그녀 몸에 남은 마지막 열기였다.

성황각 천제가 사흘 째 진행되던 날, 린샹푸는 딸을 안고 그곳을 지나가다가 바깥 공터에 꿇어앉은 100여명의 남자와 여자를 보았다. 그들은 성황각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린샹푸는 처음으로 천융량 집에 찾아가 한참을 머물렀다. 평생에 걸친 그와 천융량의 우정이 그때 시작되었다.

천융량 집을 나와 다시 성황각을 지나갈 때 린샹푸의 눈앞에 재난이 펼쳐졌다. 공터에 꿇어 앉아 있던 수많은 사람이 동사한 거였다. 망자들은 여전히 꿇어앉은 상태였지만 그들 입에서 나오던 입김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숨결도 움직임도 없었다. 린샹푸는 묘지를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얀 눈에 뒤덮인 그들의 꿇어앉은 몸이 빽빽하게 서 있는 묘비 같았다.

성황각 공터에 시신 여섯 구가 남았다. 아무도 데려가지 않아 무척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휘날리는 눈발 속에 서있던 린샹푸는 저 멀리에 있는 그 망자 여섯 명 중에 샤오메이와 아창이 있는 걸 몰랐다. 휘날리는 눈송이 때문에 시야가 흐려져 멀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샤오메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샤오메이는 그때까지도 눈을 뜨고 있었다. 단지 눈빛만 잃었을 뿐이었다.

린샹푸는 마지막 시신을 도사 두 명이 들고 얼어붙은 공터에서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그녀의 두 다리를, 다른 사람은 어깨를 들었는데 머리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텅 빈 허탈감이 휘날리는 눈송이처럼 린샹푸를 감쌌다.

린샹푸는 샤오메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은 두껍게 쌓인 눈에 거의 닿을 정도로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투명하게 조각난 샤오메이의 아름다운 얼굴은 눈밭 위에서 떠다니듯 멀어졌다.

냇물이 1년 내내 흐르면서 오솔길마저 끊기는 그곳은 시산의 북쪽 언덕에 위치해 온종일 해가 들지 않고 이끼가 무성한 데다 수풀이 흑녹색으로 짙게 우거졌다. 선가의 선산인 그곳에 ‘선쭈창과 지샤오메이의 묘‘ 라고 새겨진 묘비가 들어서면서 묘비가 모두 일곱 개로 늘어났다.

샤오메이와 아창을 염할 때 구씨 집안의 하인들은 붉은 쌈지에 든 갓난아기의 배냇머리와 눈썹 그리고 비단 보자기에 싸인 은표를 발견했다.

하녀는 붉은 쌈지를 열어 갓난아기의 배냇머리와 눈썹을 구이민에게 보여주고는 시신을 닦을 때 복부에서 임신했던 흔적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구이민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구이민은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게 틀림없으니 밖으로 누설하지 말라고 하인들에게 일렀다.

구이민은 하인에게 목수를 불러 관 두개를 짜라고 하면서 목재에도 신경을 썼다.
"목재는 버드나무 말고 송백을 쓰라고 하게. 송백은 장수를 상징하는데 버드나무는 씨를 맺지 않아 대가 끊기는 불길함을 상징하니까."

구이민은 그렇게 말한 뒤 아창과 샤오메이에게 이미 후사가 없다는 걸 떠올렸다. 그런데 무슨 대가 끊길 걸 걱정하나 싶어 그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지만 번복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송백으로 만들게."

그렇게 샤오메이가 땅에 묻혔다. 생전에 청나라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설립을 겪었던 그녀는 죽어서 군벌의 혼전과 토비의 난무를 피하고 도탄과 파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샤오메이가 그곳에서 영면에 들어 하루 또 하루, 한 해 또 한 해를 보내는 동안 린샹푸는 한번도 그곳에 가지 못했다. 그는 시산에 한두 번 간게 아니었다. 천융량과 함께 올라가 시진을 내려다보았고 린바이자를 품에 안고 갔다가 손을 잡고 가고 더 나중에는 딸을 앞세우며 여러차례 올랐지만, 그 후미진 곳까지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샤오메이는 17년을 기다린 뒤에야 그곳에서 린샹푸와 만났다.

톈씨 형제들이 수레에 관을 싣고 시진 북문을 나선 날 아침, 천융량 대오와 장도끼 무리가 왕좡에서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톈씨 형제들은 감히 앞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을 돌아갈 길이 없는지 물었다. 그 사람은 시산으로 가는 오솔길을 가리키며 시산쪽에서 나가면 앞쪽의 왕좡을 피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관 뚜껑을 열었다가 그림자가 들어가면 혼백이 관에 갇히니까 토비도 감히 열지 못할 거예요."

톈얼은 무릎을 꿇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전 다리에서 힘이 풀렸을 때 관에서 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톈다가 린샹푸위로 굴러갔다가 톈싼이 건너와 도로 들어 올렸을 때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톈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을 닦고 수레에 대고 말했다.
"큰 형, 도련님, 죄송해요."

잠시 쉬고 나서 네 형제는 다시 수레를 메고 영차영차 가장 좁은 길을 지나갔다. 이후에도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힘겹게 나아가다가 점심때쯤 샤오메이가 묻힌 곳에 이르렀다. 그들은 묘비 일곱개를 보았고 오솔길이 거기서 끊어지는 것도 보았다.

그들은 수레를 샤오메이와 아창의 묘비 옆에 세웠다. 지샤오메이의 이름은 묘비 오른쪽에 있고 린샹푸는 관 왼쪽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좌우로 지척에 있게 되었다.

톈우가 "여기는 물이 다네요." 라고 말했다.
세 형들도 물이 달다고 생각해, 고향 마을의 우물물은 쓴맛이 좀 나는데 여기 물은 달다고 말했다.

"산을 나가면 인가에서 하얀 천을 구할 수 있는지 봐야겠어. 흰 천을 사서 길게 잘라 수레에 묶고 지붕에도 매달면 한눈에 영구차라는 게 보일거야. 그러면 토비도 강도질을 못 하겠지."

청명한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아래, 시산은 한없이 평온했다.

바퀴소리가 멀어지면서 톈씨 형제들의 말소리도 멀어졌다. 그들은 정월 초하루 전에 큰형과 도련님을 집으로 모셔가야 한다며 날짜를 꼽아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즐라탄이즐라탄탄 > 신뢰성의 원천을 소비자에게 아웃소싱한 햄버거 광고 사...

1년 전 오늘 밑줄 쳤던 문장 중에 ‘시나트라 테스트‘라는 것이 나온다. 처음엔 무심코 넘겼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굉장히 중요한 개념으로 느껴졌다. 밑줄친 문장에도 간단히 나오지만 간략히 다시 언급하자면 이것은 ‘뉴욕에서도 성공한 것이라면 미국의 다른 어떤 도시를 가도 성공할 수 있을 거야‘와 같이 자신이 가진 어떤 능력이 큰 무대에서 성공하고 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자신감 같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내용은 ‘스틱‘ 책에서 강조하는 6가지 개념 중에 신뢰성과 관련이 있는 내용인데, 한 예로 사업분야에 적용해본다면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은 사업가는 그 시장말고 다른 지역에 가서 똑같은 사업을 해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신뢰감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요즘 뭐 축구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관련된 논쟁과는 별개로 예를 들어 손흥민이 세계최고의 축구리그인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데 거기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한다면(이미 증명한지 오래지만..) 이 선수는 세계 어느 리그를 가더라도 톱 클래스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식의 얘기로도 풀어볼 수 있을듯 하다.

또한 책이나 출판업계와 관련해서 예를 들어보자면 어떤 작가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유명해지면 그 작가는 그때부터 믿고보는 작가가 되어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게 되는 것도 동일한 이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에 몇 가지 예를 들었는데, 이외에도 내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이러한 ‘시나트라 테스트‘를 통과하여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쌓아 나가는 것이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어느 분야든 간에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이러한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소위 말하는 진짜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번 포스팅에 이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샤오메이가 시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자 시아버지는 이것도 다 운명이라며 샤오메이를 애써 위로한다.

얼마 뒤 샤오메이의 시아버지도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죽음을 앞두게 된다. 그는 죽음을 직감하고 아창과 샤오메이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전한다.

아창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창과 샤오메이는 수선집 일을 접는다. 수선집을 접은 뒤 두 사람은 시진에서 쥐죽은듯 조용히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의 집에서 일하던 계집종이 밖에서 린샹푸가 시진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샤오메이에게 전한다. 아창과 샤오메이는 순간 멘붕(?)에 빠진다.

아창은 자신이 과거에 린샹푸의 금괴를 훔쳤던 것 때문에 처벌받는 것이 두려워 그와의 만남을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 하고 있고 샤오메이는 자신과 아창간의 관계가 린샹푸에게 들통날까봐 조심하는 모양새다. 단지 자신들의 계집종을 통해 린샹푸와 그 딸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그들은 계집종에게 집을 잠시 맡긴 뒤 잠깐동안 선뎬으로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떠나기 전 샤오메이는 자신이 예전에 자신의 딸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아이용 옷가지와 신발을 린샹푸에게 전해주고자 계집종을 시켜 전달하는데 계집종이 돌아와 말하길 린샹푸가 시진을 떠나 남쪽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아창과 샤오메이는 더 이상 도피할 이유가 사라지자 선뎬으로 도망칠 계획을 즉각 취소한다.

한 고비를 넘긴 두 사람. 아창은 안도하지만, 샤오메이는 또다른 상실감에 괴로워한다. 좋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딸을 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그녀안에 깊은 상처가 된 듯 하다. 아창은 그녀의 이런 속도 모르고 린샹푸가 멀리멀리 떠났을 거라며 위로하지만, 샤오메이에게 그것은 위로가 아닌 아픔이었다.

한편 시진을 지나 남쪽으로 향하던 린샹푸는 자신에게 아기옷을 주었던 젊은 여자의 말투를 곰곰이 곱씹다가 그것이 샤오메이가 예전에 했던 말투와 비슷함을 눈치채고 아창이 말한 원청이라는 곳이 시진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발걸음을 시진 쪽으로 돌린다.

한편 린샹푸가 시진에서 엽전 한 닢을 주면서 100여 집이 넘는 곳에서 딸 아이의 젖동냥을 한다는 소문을 들은 샤오메이는 억장이 무너지는 쓰라림을 경험한다.

샤오메이는 과거 린샹푸와 함께 있을 때 보관해두었던 딸의 배냇머리와 눈썹을 간직한 채 자신의 딸과 린샹푸를 생각한다.

"전부 제 잘못이에요."
시아버지가 탄식했다.
"다 운명이지."

아창과 샤오메이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지면서 선가 수선집 앞이 다시 떠들썩해졌다.

떠들썩한 건 그래봐야 며칠이었을 뿐 가게는 금새 썰렁해졌다. 사실 아창과 샤오메이는 수선일을 계속할 마음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원해서 계속 가게에 앉아 있었다.

아창과 샤오메이가 돌아오자 아버지는 마음을 놓더니 얼마 뒤 침대에 드러눕고 말았다. 심지어 병세도 나날이 악화되고 기침도 갈수록 심해져 핏줄기가 입가에서 턱까지 이어지곤 했다.

그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아들과 며느리를 침대 앞으로 불러 장례를 당부했다.

그래도 관에는 신경을 좀 써달라며 곧고 오래된 삼나무를 써야 쉽게 썩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들과 눈물 흘리는 며느리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지금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하니 매사에 절약하거라."

그들은 문 옆의 간판을 치우고 수선 일을 그만 두었다.

그들은 여전히 시진에 살고 있었지만 시진은 더 이상 그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시진으로 돌아온 아창과 샤오메이는 과거에 파묻혔다. 이제 밝아오는 새벽은 그들의 새벽이 아니었고 저무는 황혼 역시 그들의 황혼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도 수선집처럼 휴업 상태에 들어간 듯 했다.

그래도 상처란 언젠가 아물고 슬픔도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한때 린샹푸와 두 번의 시간을 보냈고 한때 딸이 있었지만, 그건 모두 한때의 일로 다 지나가 버렸다.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뒤 처참하게 망가진 시진 거리에 덩치가 큰 북쪽 출신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등에 커다란 봇짐을 메고 봉황 두건을 씌운 갓난 계집애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그리고 짙은 북쪽 사투리로 시진 사람들에게 원청이 어디냐고 묻고 다녔다.

계집종이 커다란 봇짐을 멘 북쪽 남자와 갓난 아기, 모란을 입은 봉황 두건, 원청을 이야기 했을 때 샤오메이의 표정이 돌변했다. 계집종이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그때 샤오메이는 기억 속에서 린샹푸의 음성을 듣고 있었다. 아득히 먼 북쪽에서의 그 밤, 린샹푸는 그녀가 또 떠나면 딸을 안고 찾아갈 거라고, 세상 끝까지 가는 한이 있어도 꼭 그녀를 찾아갈 거라고 결연하게 말했다.

아창과 샤오메이는 서로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창의 눈에는 당혹감만 가득하고 샤오메이의 눈에는 눈물밖에 없었다. 당황한 눈은 맞은 편의 눈물을 보지 못했고 눈물 속 눈은 맞은 편의 당혹감을 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우물과 강물처럼 처지가 달랐다. 한 사람은 우물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강물에 대해 생각했다.

한 사람은 우물의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은 강물의 말을 했다.

샤오메이는 자기도 모르게 정신이 혼미해졌다. 눈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일어났다가 앉는 아창이 그림자처럼 흐릿하게 느껴졌다. 반면 눈앞에 없는 린샹푸와 딸은 생생하게 와닿았다.

아창은 린샹푸에게 시진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원청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원청을 찾아갈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린샹푸는 시진에 왔다.

"원청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우리 이름을 대면 집으로 찾아올 수 있을 거야."

샤오메이가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지은 죄니까."
아창은 샤오메이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녀를 쳐다보고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시진에 돌아오자는 네 말을 따르는 게 아니었어."
샤오메이가 대꾸했다.
"시리촌으로 데리러 오질 말았어야지."
그 말에 아창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가슴속에서 슬픔이 냇물처럼 흐르고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가냘픈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그 옷과 신발, 모자는 딸을 위해서라기보다 그녀 자신을 위해 만든 거였다. 그리움을 손가락에 모아 한 땀 한 땀 새겨놓은 거였다. 그걸 만들 때 딸에게 입힐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샤오메이는 부엌문 앞에서 그들이 잠시 외지에 다녀오려 한다고 계집종에게 말했다.

샤오메이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 보였다. 샤오메이는 손에 들고 있던 아기 옷과 신발, 모자를 계집종에게 건네며 자신이 가지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그 북쪽 남자에게 주는 게 낫겠다고, 그 딸한테 딱 맞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 북쪽 남자에게 누가 주었는지는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얼라한테 입히세요."

린샹푸가 시진을 떠났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아창은 순간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샤오메이가 수선집 계산대 위에 봇짐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떠나지 않을 작정임을 눈치채고는 자신도 봇짐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가마가 필요 없어졌으니 돌아가라고 해."

린샹푸가 떠나자 아창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했다. 위험이 지나갔다는 생각에 이후 며칠 동안 그는 마당에 앉아 있다가 불현듯 입가에 웃음기를 띄곤 했다.

반면 샤오메이는 가슴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자신을 옭아매던 고뇌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이번에는 한없는 상실감에 빠졌다. 린샹푸가 딸을 바로 근처까지 데려왔건만 그녀는 한 번도 그들을, 특히 딸을 보지 못했다. 손꼽아보니 헤어진 지 어느새 여덟 달이 넘었다.

그녀는 거리로 나가 길모퉁이에 숨어 훔쳐보지 않았던 게 후회되었다. 딸이 자신을 보고 입을 열고 웃어주는 모습을, 그런 다음 린샹푸가 자신을 발견하고 비난하는 대신 너그럽게 웃어주는 장면을 자꾸 상상하게 되었다.

아창은 샤오메이의 고민이 뭔지 모르고 여전히 걱정한다고만 생각해 말했다.
"점점 멀리 갈 거야. 원청을 찾아갈 테니까."

아창이 원청을 언급해 샤오메이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원청이 어디 있는데?"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 뜬구름같은 원청은 샤오메이에게 이미 아픔이 되었다. 원청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의미했다.

린샹푸는 점점 더 멀리 남쪽으로 내려갔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원청에 관해 묻지 않았다. 원청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자 아창이 말한 원청이 거짓 지명일거라고 눈치채서였다. 린샹푸는 지명이 가짜라면 아창과 샤오메이라는 이름도 가짜일 거라고 생각했다.

긴 여정은 시작만 있고 끝이 없었다.

그는 툭하면 생각에 빠졌다. 앞으로 나아가는 몸과 달리 생각은 자꾸 뒤로 돌아가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시진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시진에서는 아이를 얼라라고 부르는 거였다. 시진 사투리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린샹푸는 남쪽으로 가면 갈수록 어투가 이상해지고 샤오메이와 아창이 쓰던 말과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되짚어보니 시진이 훨씬 아창이 말한 원청과 흡사했다. 그리고 문득, 당시 아창이 원청에 관해 말할 때 양쯔강을 건너 남쪽으로 600여리를 가면 된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시진이 양쯔강에서 거의 600여리 떨어져 있었다.

"그때면 이 옷에 얼라가 들어 있을 거예요."

린샹푸는 다리 위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시진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창이 말한 원청은 시진일 듯싶었다. 지금 그들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시진으로 돌아올 것만 같아서 그는 시진에서 1년, 2년 혹은 더 오랜 시간이더라도 기다리리라 마음먹었다.

초겨울 햇살 속에서 린샹푸는 몸을 돌려 북쪽을 향해 걸었다. 마차를 갈아타며 먼 길을 되짚어 흩날리는 눈발과 함께 시진으로 돌아갔다.

눈보라가 휘몰아칠 때 린샹푸가 딸을 안고 시진에 나타난 걸 아창과 샤오메이는 전혀 알지 못했다. 평소 매일 나가던 계집종도 눈이 얼어 붙으면서 대문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진의 점포도 전부 문을 닫았다.

원래 바깥출입이 거의 없었음에도 막상 폭설로 세상과 단절돼 사람 숨결을 느낄 수 없고, 심지어 그 죽음같은 적막이 계속 반복되자 아창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무척 어지러웠다. 계집종이 말했던 광경이 머릿속에 가물가물 떠올라서였다.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거리에 린샹푸가 딸을 안고 나타나 엽전 한 닢을 들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집 문을 두드린 뒤 젖을 먹이는 여자에게 엽전을 건네며 딸에게도 젖을 먹여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이었다.

거리에서 여자들이 수다를 떨다가 누군가 이미 떠난 북쪽 남자에 관해 말을 꺼내자 다른 여자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했다. 그런 다음 여자들은 북쪽 남자 품의 아기가 100집도 넘는 남의 집 젖을 먹지 않았겠느냐고 떠들었다는 거였다.

샤오메이는 계집종의 말을 듣다가 아기가 100집도 넘는 남의 집 젖을 먹었을 거라는 대목에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몸을 돌린 뒤 의아해하는 계집종을 남겨두고 위층으로 올라간 샤오메이는 침대에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린샹푸가 엽전 한 닢을 들고 젖동냥하는 모습과 딸이 여러 집의 여러 사람 젖을 먹는 모습은 이미 머릿속에 완전히 박혀버렸다. 샤오메이는 수시로 그 광경을 떠올리며 괴로워했고 그 비통함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줄기처럼 그녀 안에서 잦아들지 않았다.

속옷에 주머니를 만들어 딸의 배냇머리와 눈썹을 넣고 가슴에 밀착시키자 샤오메이는 이제 딸이 언제나 함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느낌과 함께 린샹푸도 바로 옆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에게 딸과 린샹푸는 바람과 바람소리처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립백 콜롬비아 몬테 블랑코 퍼플 카투라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1월
평점 :
품절


포장 개봉시 풍성하게 느껴지는 라즈베리향에 한 번 취하고 뜨거운 물에 내린 뒤 마시면서 느껴지는 패션후르츠향과 버터크림의 조화가 일품인 커피입니다. 가격이 좀 비싼 게 아쉬운데 맛과 향이 특별한 건 부정할 수 없을듯 합니다. 물은 가급적 적게 넣고 마셔야 맛과 향을 온전히 느낄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