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제 잘못이에요." 시아버지가 탄식했다. "다 운명이지."
아창과 샤오메이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지면서 선가 수선집 앞이 다시 떠들썩해졌다.
떠들썩한 건 그래봐야 며칠이었을 뿐 가게는 금새 썰렁해졌다. 사실 아창과 샤오메이는 수선일을 계속할 마음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원해서 계속 가게에 앉아 있었다.
아창과 샤오메이가 돌아오자 아버지는 마음을 놓더니 얼마 뒤 침대에 드러눕고 말았다. 심지어 병세도 나날이 악화되고 기침도 갈수록 심해져 핏줄기가 입가에서 턱까지 이어지곤 했다.
그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아들과 며느리를 침대 앞으로 불러 장례를 당부했다.
그래도 관에는 신경을 좀 써달라며 곧고 오래된 삼나무를 써야 쉽게 썩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들과 눈물 흘리는 며느리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지금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하니 매사에 절약하거라."
그들은 문 옆의 간판을 치우고 수선 일을 그만 두었다.
그들은 여전히 시진에 살고 있었지만 시진은 더 이상 그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시진으로 돌아온 아창과 샤오메이는 과거에 파묻혔다. 이제 밝아오는 새벽은 그들의 새벽이 아니었고 저무는 황혼 역시 그들의 황혼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도 수선집처럼 휴업 상태에 들어간 듯 했다.
그래도 상처란 언젠가 아물고 슬픔도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한때 린샹푸와 두 번의 시간을 보냈고 한때 딸이 있었지만, 그건 모두 한때의 일로 다 지나가 버렸다.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뒤 처참하게 망가진 시진 거리에 덩치가 큰 북쪽 출신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등에 커다란 봇짐을 메고 봉황 두건을 씌운 갓난 계집애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그리고 짙은 북쪽 사투리로 시진 사람들에게 원청이 어디냐고 묻고 다녔다.
계집종이 커다란 봇짐을 멘 북쪽 남자와 갓난 아기, 모란을 입은 봉황 두건, 원청을 이야기 했을 때 샤오메이의 표정이 돌변했다. 계집종이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그때 샤오메이는 기억 속에서 린샹푸의 음성을 듣고 있었다. 아득히 먼 북쪽에서의 그 밤, 린샹푸는 그녀가 또 떠나면 딸을 안고 찾아갈 거라고, 세상 끝까지 가는 한이 있어도 꼭 그녀를 찾아갈 거라고 결연하게 말했다.
아창과 샤오메이는 서로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아창의 눈에는 당혹감만 가득하고 샤오메이의 눈에는 눈물밖에 없었다. 당황한 눈은 맞은 편의 눈물을 보지 못했고 눈물 속 눈은 맞은 편의 당혹감을 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우물과 강물처럼 처지가 달랐다. 한 사람은 우물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강물에 대해 생각했다.
한 사람은 우물의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은 강물의 말을 했다.
샤오메이는 자기도 모르게 정신이 혼미해졌다. 눈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일어났다가 앉는 아창이 그림자처럼 흐릿하게 느껴졌다. 반면 눈앞에 없는 린샹푸와 딸은 생생하게 와닿았다.
아창은 린샹푸에게 시진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원청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원청을 찾아갈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린샹푸는 시진에 왔다.
"우리 이름을 대면 집으로 찾아올 수 있을 거야."
샤오메이가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지은 죄니까." 아창은 샤오메이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녀를 쳐다보고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시진에 돌아오자는 네 말을 따르는 게 아니었어." 샤오메이가 대꾸했다. "시리촌으로 데리러 오질 말았어야지." 그 말에 아창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가슴속에서 슬픔이 냇물처럼 흐르고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가냘픈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그 옷과 신발, 모자는 딸을 위해서라기보다 그녀 자신을 위해 만든 거였다. 그리움을 손가락에 모아 한 땀 한 땀 새겨놓은 거였다. 그걸 만들 때 딸에게 입힐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샤오메이는 부엌문 앞에서 그들이 잠시 외지에 다녀오려 한다고 계집종에게 말했다.
샤오메이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 보였다. 샤오메이는 손에 들고 있던 아기 옷과 신발, 모자를 계집종에게 건네며 자신이 가지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그 북쪽 남자에게 주는 게 낫겠다고, 그 딸한테 딱 맞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 북쪽 남자에게 누가 주었는지는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린샹푸가 시진을 떠났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아창은 순간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샤오메이가 수선집 계산대 위에 봇짐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떠나지 않을 작정임을 눈치채고는 자신도 봇짐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린샹푸가 떠나자 아창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했다. 위험이 지나갔다는 생각에 이후 며칠 동안 그는 마당에 앉아 있다가 불현듯 입가에 웃음기를 띄곤 했다.
반면 샤오메이는 가슴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자신을 옭아매던 고뇌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이번에는 한없는 상실감에 빠졌다. 린샹푸가 딸을 바로 근처까지 데려왔건만 그녀는 한 번도 그들을, 특히 딸을 보지 못했다. 손꼽아보니 헤어진 지 어느새 여덟 달이 넘었다.
그녀는 거리로 나가 길모퉁이에 숨어 훔쳐보지 않았던 게 후회되었다. 딸이 자신을 보고 입을 열고 웃어주는 모습을, 그런 다음 린샹푸가 자신을 발견하고 비난하는 대신 너그럽게 웃어주는 장면을 자꾸 상상하게 되었다.
아창은 샤오메이의 고민이 뭔지 모르고 여전히 걱정한다고만 생각해 말했다. "점점 멀리 갈 거야. 원청을 찾아갈 테니까."
아창이 원청을 언급해 샤오메이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원청이 어디 있는데?"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 뜬구름같은 원청은 샤오메이에게 이미 아픔이 되었다. 원청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의미했다.
린샹푸는 점점 더 멀리 남쪽으로 내려갔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원청에 관해 묻지 않았다. 원청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자 아창이 말한 원청이 거짓 지명일거라고 눈치채서였다. 린샹푸는 지명이 가짜라면 아창과 샤오메이라는 이름도 가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툭하면 생각에 빠졌다. 앞으로 나아가는 몸과 달리 생각은 자꾸 뒤로 돌아가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시진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시진에서는 아이를 얼라라고 부르는 거였다. 시진 사투리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린샹푸는 남쪽으로 가면 갈수록 어투가 이상해지고 샤오메이와 아창이 쓰던 말과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되짚어보니 시진이 훨씬 아창이 말한 원청과 흡사했다. 그리고 문득, 당시 아창이 원청에 관해 말할 때 양쯔강을 건너 남쪽으로 600여리를 가면 된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시진이 양쯔강에서 거의 600여리 떨어져 있었다.
"그때면 이 옷에 얼라가 들어 있을 거예요."
린샹푸는 다리 위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시진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창이 말한 원청은 시진일 듯싶었다. 지금 그들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시진으로 돌아올 것만 같아서 그는 시진에서 1년, 2년 혹은 더 오랜 시간이더라도 기다리리라 마음먹었다.
초겨울 햇살 속에서 린샹푸는 몸을 돌려 북쪽을 향해 걸었다. 마차를 갈아타며 먼 길을 되짚어 흩날리는 눈발과 함께 시진으로 돌아갔다.
눈보라가 휘몰아칠 때 린샹푸가 딸을 안고 시진에 나타난 걸 아창과 샤오메이는 전혀 알지 못했다. 평소 매일 나가던 계집종도 눈이 얼어 붙으면서 대문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진의 점포도 전부 문을 닫았다.
원래 바깥출입이 거의 없었음에도 막상 폭설로 세상과 단절돼 사람 숨결을 느낄 수 없고, 심지어 그 죽음같은 적막이 계속 반복되자 아창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무척 어지러웠다. 계집종이 말했던 광경이 머릿속에 가물가물 떠올라서였다.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거리에 린샹푸가 딸을 안고 나타나 엽전 한 닢을 들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집 문을 두드린 뒤 젖을 먹이는 여자에게 엽전을 건네며 딸에게도 젖을 먹여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이었다.
거리에서 여자들이 수다를 떨다가 누군가 이미 떠난 북쪽 남자에 관해 말을 꺼내자 다른 여자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했다. 그런 다음 여자들은 북쪽 남자 품의 아기가 100집도 넘는 남의 집 젖을 먹지 않았겠느냐고 떠들었다는 거였다.
샤오메이는 계집종의 말을 듣다가 아기가 100집도 넘는 남의 집 젖을 먹었을 거라는 대목에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몸을 돌린 뒤 의아해하는 계집종을 남겨두고 위층으로 올라간 샤오메이는 침대에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린샹푸가 엽전 한 닢을 들고 젖동냥하는 모습과 딸이 여러 집의 여러 사람 젖을 먹는 모습은 이미 머릿속에 완전히 박혀버렸다. 샤오메이는 수시로 그 광경을 떠올리며 괴로워했고 그 비통함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줄기처럼 그녀 안에서 잦아들지 않았다.
속옷에 주머니를 만들어 딸의 배냇머리와 눈썹을 넣고 가슴에 밀착시키자 샤오메이는 이제 딸이 언제나 함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느낌과 함께 린샹푸도 바로 옆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에게 딸과 린샹푸는 바람과 바람소리처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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