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겨울. 시진에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눈이 계속 내리자 사람들이 성황각에 모여서 눈이 그치고 햇빛을 보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낸다.
원래는 제사를 지내는 실내장소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이 개인적인 기도까지 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지체되자 뒤늦게 온 사람들은 장소가 뭐가 중요하냐면서 티격태격 대다가 그냥 밖에서 기도하기로 한다. 그 중에는 아창과 샤오메이 그리고 계집종도 포함되어 있었다.
린샹푸는 때마침 그 제사를 드리는 장소를 지나다가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다만, 거기에 샤오메이가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이후 샤오메이는 구이민이 이끄는 상인회의 주관하에 시산의 어느 후미진 곳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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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전환되어 소설 앞부분에 나왔던 토비와 싸우다가 전사한 린샹푸가 톈다 형제들에 의해 관에 실려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운명의 이끌림인지는 몰라도 린샹푸는 샤오메이가 묻혀 있는 장소로 옮겨진다.

딸의 이름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부르는 동안 샤오메이는 마음속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바깥에서 끝없이 내리는 눈송이를 잊을 수 있었다.
그날 누가 문을 두드리면서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타인의 숨결이 집으로 돌아왔다.
상인회에서 파견나온 그 사람은 성황각에서 눈을 그치고 햇볕을 내려달라는 천제를 올리려 한다고 알려주었다.
집 밖에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안에 있는 아창과 샤오메이, 계집종은 햇살이 조금씩 비쳐드는 기분이 들었다.
제사가 사흘 째로 접어들었을 때 샤오메이가 성황각에 가자고 하자 아창이 고개를 끄덕이고 계집종도 끄덕였다. 그들 모두 성황각에 가고 싶었다.
샤오메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날씨를 위해 기도한 뒤 린샹푸를 위해 빌었다. 린샹푸가 딸을 안고 그 먼 길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너무 아프고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녀는 속으로 린샹푸에게 말했다. ‘다음 생애도 당신 딸을 낳아주고 그때는 아들도 다섯을 낳아줄게요..... 다음 생에 당신 여자가 될 자격이 없다면 소나 말이 되어, 당신이 농사를 지으면 밭을 갈고 당신의 마부가 되면 마차를 끌게요. 채찍질해도 돼요.‘
샤오메이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린샹푸가 자기 앞에서 말하는 걸 보고 있었다.
그때 샤오메이의 눈에 입을 벌린채 자신을 향해 방긋방긋 웃는 딸이 보였다. 하얀 앞니가 두 개 자라나 있었다. 샤오메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 두 줄기 눈물이 그녀 몸에 남은 마지막 열기였다.
성황각 천제가 사흘 째 진행되던 날, 린샹푸는 딸을 안고 그곳을 지나가다가 바깥 공터에 꿇어앉은 100여명의 남자와 여자를 보았다. 그들은 성황각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린샹푸는 처음으로 천융량 집에 찾아가 한참을 머물렀다. 평생에 걸친 그와 천융량의 우정이 그때 시작되었다.
천융량 집을 나와 다시 성황각을 지나갈 때 린샹푸의 눈앞에 재난이 펼쳐졌다. 공터에 꿇어 앉아 있던 수많은 사람이 동사한 거였다. 망자들은 여전히 꿇어앉은 상태였지만 그들 입에서 나오던 입김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숨결도 움직임도 없었다. 린샹푸는 묘지를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얀 눈에 뒤덮인 그들의 꿇어앉은 몸이 빽빽하게 서 있는 묘비 같았다.
성황각 공터에 시신 여섯 구가 남았다. 아무도 데려가지 않아 무척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휘날리는 눈발 속에 서있던 린샹푸는 저 멀리에 있는 그 망자 여섯 명 중에 샤오메이와 아창이 있는 걸 몰랐다. 휘날리는 눈송이 때문에 시야가 흐려져 멀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샤오메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샤오메이는 그때까지도 눈을 뜨고 있었다. 단지 눈빛만 잃었을 뿐이었다.
린샹푸는 마지막 시신을 도사 두 명이 들고 얼어붙은 공터에서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그녀의 두 다리를, 다른 사람은 어깨를 들었는데 머리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텅 빈 허탈감이 휘날리는 눈송이처럼 린샹푸를 감쌌다.
린샹푸는 샤오메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은 두껍게 쌓인 눈에 거의 닿을 정도로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투명하게 조각난 샤오메이의 아름다운 얼굴은 눈밭 위에서 떠다니듯 멀어졌다.
냇물이 1년 내내 흐르면서 오솔길마저 끊기는 그곳은 시산의 북쪽 언덕에 위치해 온종일 해가 들지 않고 이끼가 무성한 데다 수풀이 흑녹색으로 짙게 우거졌다. 선가의 선산인 그곳에 ‘선쭈창과 지샤오메이의 묘‘ 라고 새겨진 묘비가 들어서면서 묘비가 모두 일곱 개로 늘어났다.
샤오메이와 아창을 염할 때 구씨 집안의 하인들은 붉은 쌈지에 든 갓난아기의 배냇머리와 눈썹 그리고 비단 보자기에 싸인 은표를 발견했다.
하녀는 붉은 쌈지를 열어 갓난아기의 배냇머리와 눈썹을 구이민에게 보여주고는 시신을 닦을 때 복부에서 임신했던 흔적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구이민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구이민은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게 틀림없으니 밖으로 누설하지 말라고 하인들에게 일렀다.
구이민은 하인에게 목수를 불러 관 두개를 짜라고 하면서 목재에도 신경을 썼다. "목재는 버드나무 말고 송백을 쓰라고 하게. 송백은 장수를 상징하는데 버드나무는 씨를 맺지 않아 대가 끊기는 불길함을 상징하니까."
구이민은 그렇게 말한 뒤 아창과 샤오메이에게 이미 후사가 없다는 걸 떠올렸다. 그런데 무슨 대가 끊길 걸 걱정하나 싶어 그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지만 번복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송백으로 만들게."
그렇게 샤오메이가 땅에 묻혔다. 생전에 청나라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설립을 겪었던 그녀는 죽어서 군벌의 혼전과 토비의 난무를 피하고 도탄과 파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샤오메이가 그곳에서 영면에 들어 하루 또 하루, 한 해 또 한 해를 보내는 동안 린샹푸는 한번도 그곳에 가지 못했다. 그는 시산에 한두 번 간게 아니었다. 천융량과 함께 올라가 시진을 내려다보았고 린바이자를 품에 안고 갔다가 손을 잡고 가고 더 나중에는 딸을 앞세우며 여러차례 올랐지만, 그 후미진 곳까지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샤오메이는 17년을 기다린 뒤에야 그곳에서 린샹푸와 만났다.
톈씨 형제들이 수레에 관을 싣고 시진 북문을 나선 날 아침, 천융량 대오와 장도끼 무리가 왕좡에서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톈씨 형제들은 감히 앞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을 돌아갈 길이 없는지 물었다. 그 사람은 시산으로 가는 오솔길을 가리키며 시산쪽에서 나가면 앞쪽의 왕좡을 피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관 뚜껑을 열었다가 그림자가 들어가면 혼백이 관에 갇히니까 토비도 감히 열지 못할 거예요."
톈얼은 무릎을 꿇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전 다리에서 힘이 풀렸을 때 관에서 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톈다가 린샹푸위로 굴러갔다가 톈싼이 건너와 도로 들어 올렸을 때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톈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을 닦고 수레에 대고 말했다. "큰 형, 도련님, 죄송해요."
잠시 쉬고 나서 네 형제는 다시 수레를 메고 영차영차 가장 좁은 길을 지나갔다. 이후에도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힘겹게 나아가다가 점심때쯤 샤오메이가 묻힌 곳에 이르렀다. 그들은 묘비 일곱개를 보았고 오솔길이 거기서 끊어지는 것도 보았다.
그들은 수레를 샤오메이와 아창의 묘비 옆에 세웠다. 지샤오메이의 이름은 묘비 오른쪽에 있고 린샹푸는 관 왼쪽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좌우로 지척에 있게 되었다.
톈우가 "여기는 물이 다네요." 라고 말했다. 세 형들도 물이 달다고 생각해, 고향 마을의 우물물은 쓴맛이 좀 나는데 여기 물은 달다고 말했다.
"산을 나가면 인가에서 하얀 천을 구할 수 있는지 봐야겠어. 흰 천을 사서 길게 잘라 수레에 묶고 지붕에도 매달면 한눈에 영구차라는 게 보일거야. 그러면 토비도 강도질을 못 하겠지."
청명한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아래, 시산은 한없이 평온했다.
바퀴소리가 멀어지면서 톈씨 형제들의 말소리도 멀어졌다. 그들은 정월 초하루 전에 큰형과 도련님을 집으로 모셔가야 한다며 날짜를 꼽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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