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나 법은 다 있다. 조선시대에도 위대한 법전『경국대전』이 있었다. 그러나 그 법은 엿이었다. 늘이면 늘어났고 자르면 잘라졌다. 엿장수 마음대로 할 수있었다. 법은 있었지만 ‘rule‘이 없었던 거다. 어느 누구도 법을 똑같이 적용받는 규칙, 그 규칙이 조선에는 없었고 한국사회에도 없는 것이다. - P41
法(법)이란 글자를 통해 고대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글자의 원형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풀이를 한다.
고대 사회에서 시비가 있을 경우, 두 당사자를 물가에 앉힌다. 그리고 검은 양을 두 사람 등뒤에 세운 뒤 아무나 들이받게 한다. 잠시 후 재판 결과가 나타난다. 등을 받쳐 물 위에 엎어진 사람이 바로 범인이다. 재판관인 무당은 황당하기 그지없을 이 범인(?)을 자루에 넣어 물 속에 빠뜨린다. - P43
중국과 한국, 일본에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비판에서처럼 못난 모습을 허세로 커버해보려는 자격지심이 도사리고 있다. - P48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위치를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하지만 ‘민족‘을 사수하려는 반발이 기조를 이루는 역사 해석은 이미 해석으로서의 자격을 잃고 있는 것이며, 이를 토대로 이루어진 민족 정서 또한 하나의 허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 P48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국경이라고 그어진 그 선들로 우리들의 삶을 재단해야 하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 P51
국가며 혈통이며 법률이며 예술이며 상식이며 인간 관계라고 하는 것들이 결국은 차가운 북풍이 부는 훈춘의 능선에 세워진 저 초라한 초소만큼의 의미밖에는 없는 것이 아닐까? 언젠간 사라질 저 초소, 그리고 그 안의 보초는 정말 국경을 지키는 것일까? 아마 그토록 위대한 사명감보다는 교대 시간이 더 기다려지는 평범한 사내에 불과할지 모른다. - P52
무조건 넓은 땅은 다 우리 것이었고, 핏줄은 오로지 한 줄기였다는 ‘기대‘ 를 역사에 라면 수프처럼 뿌려넣는 한 국물은 탁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의 역사가 보일 리 없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 조상은 모두 왕손이고 양반이라는 한국인의 족보 자랑 정서 역시 어색한 콤플렉스의 발로임에 틀림없다. 누가 물었나? 또 바꾸어보면 우리나라에 있는약 200개의 성씨는 바로 그만큼 갈래가 일정치 않은 집단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된다. 더구나 그들 모두가 왕손이었음을 강조하면 할수록 말이다. - P52
역사를 자기중심주의적 입장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에 익숙한 중국인들에 대해 독일계 중국학자 에버하르트는 이렇게 비웃은 일이 있다.
"모든 시대의 중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중국 문화와 사회의 단일성을 주장해왔고, 외국의 학자들도 이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중국을 4,000여 년에 걸쳐 동일성을 유지해 온 세계의 유일한 문명으로 보고 싶어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 안에서 전통적인 나라들과 좀 근대화된 나라들에서조차 전형적인 국수주의의 강한 요소와 어떤 경우 인종차별주의의 요소까지 인식할 수있다." - P52
한국의 경우도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이 비판은 지식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식인들을 통해 세뇌된 한국인 모두가 이 비아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P53
동북아 일대의 문화적 역사적 다원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우리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자유스러워질 수있고,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먼 옛날 이 지역에 운신하던 수백 개의 부족들이 세운 문화는 모두 지역 문화(Local Culture)였다. 그리고 이들 지역 문화들은 다양한 접촉과 충돌을 통해 섞이고 혼합되었다. - P53
단군의 곰이 반달곰이었든지 북극곰이었든지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 곰의 쓸개에도 관심이 없고, 더구나 그 곰으로부터 수혈 받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그저 나는 단일민족의 역사에서 벗어나 조금은 홀가분해지고 싶을 뿐이다. 동양의 역사도 사랑하고 싶고, 서구의 문화와 역사와도 친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 P55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화적 폐쇄성에 있었다. 그것이 우월의식에서 비롯되었건 자격지심에서 비롯되었건 간에, 결과적으로 우리들 삶을 망가뜨리고, 새로운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만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P56
나는 IMF를 ‘자본‘ 운운으로 해석하는 민족적 울분에서 그 뒤에 숨어 있는 허탈과 두려움, 그리고 부끄러움의 콤플렉스를 읽는다. 분노는 수치심과 연결된 감정이라던가? 수치심을 감추기위해 미리 펄펄 뛰는 것이 분노라면, 우리의 민족주의적 구호가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들의 부끄러움도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 P56
정치인들, 당연히 그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본질적으로 유전자가 왜곡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한 입에서 두 가지 말을 아무런 혀 물림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요괴 인간들이다.
기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진실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청국장처럼 냄새가 풀풀 나는 현장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 없이 채팅하듯 기사를 뱉어내는 고급 룸펜들이다. 권력의 해바라기들이 되어 있는 편집 데스크의 심중을 충분히 헤아리면서 만들어낸 원고들을 기사랍시고 만들어낸다.
학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거짓과 위선으로 만들어진 가면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빙충이들이다. 그들이 논문에 써대고 강의실에서 뱉어내는 말들은 아무 곳에도 써먹을 수 없는 그들만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언제나 끼리끼리 만나서 자리를 나누고, 적당히 등록금과 세금을 연구비나 학술보조비 따위로 나누어먹으며 히히덕거리지만 돌아서기가 무섭게 서로를 물고 뜯고 비방하는 저열한 인간들이다. - P58
21세기 미래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이제 우리는 새로운 유목민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정보와 돈과 문화적 가치는 이제 한가하게 국경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것들은 시간과 공간의 벽을 뚫고 지구 어디로든지 치닫고 있다. 유목민들이 풀을 찾아 양떼를 몰았듯이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담보할 수 있는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야 하고,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런 지금 한가하게 그들을 향해 박수를 칠 시간이 어디있는가? 정치적 우울과 경제적 실연을 달래기 위해 마련된 3S(sports, sex, screen)의 구호품을 받아 정신적 삶의 한끼를 때워야 할 정도로 우리가 가치 없는 존재들일까? - P59
나는 나로 살고 싶다.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P59
이제 21세기의 열차는 빠르게 달리고 있다. 한번 탈락하면 다시는 올라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개방이 없으면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죽어버리고 만다. 영국이 영어의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주고 만 이유 역시 거만한 우월의식과 폐쇄성 때문이었다. - P60
폐쇄적 ‘민족적 아이덴티티‘는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더 우리를 불행하게할지 모른다. 오히려 열린 마음과 유연한 태도로 나의 문을 열고 타인의 문화와 공존할 수 있을 때, ‘우리 것‘이 나름의 생존 공간을 얻게 될 것이다. - P61
영어는 국제사회에서의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국제어인 영어를 이용해 자신들을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고 자신들의 몸값을 높인다. 하지만 누구보다 한국적인 나는 그 잘난 영어 몇 마디를 못해 실력이 평가절하되기 일쑤다. 결국 외부의 언어인 영어를 국제어로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문화적 정체성은 보호될 가능성과 기회가 훨씬 높은 것이다. - P61
우리 문화에 대한 적극적 해체는 자기 비하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제대로 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 P62
‘그려, 마음대로 햐아‘는 바로 있는 자의 여유 내지는 거드름이 아닐 수 없다. - P65
반면에 백제에게 근거지를 빼앗긴 마한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복자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을것이다. 하지만 마음까지 숙일 수야 없는 법, 그래서 찾아낸 화술이 바로 ‘거시기‘ 아니었을까? 나의 마음을 알리기 싫은 상대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꺼낼 때 ‘거시기, 아니 거시기‘ 만큼 좋은 암호도 없을 것이다. 결국 백제계의 충청에는 정복자의 느긋함이 서려있고, 마한계의 전라에는 고토 회복과 밀려난 자의 와신상담의 의지가 잠재해 있는 것이다. - P66
하바드 대학의 사무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지적하듯이, 종교 문화의 차이는 이데올로기적인 분할보다 더욱 근원적인 갈등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궁극적 충돌을 피할 수 없음이 사실이라면, 말(馬)귀신과 물(水)귀신과의 화해는 애초부터 글러버린 일일지도 모른다. - P67
문화적 습성은 단순히 뇌에 의해 기억되는 것이 아니고 말과 음식과 놀이 속에 숨어서 오래도록 유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조선시대에도 백제와 신라의 근원적 갈등은 모습을 달리해 드러나게 마련이다. 조선 500년이 지나고 다시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하듯이 말이다. - P69
조금 길게 역사를 살펴본 이유는 지역 감정의 봉합은 단순한정치적 이벤트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지역 감정이란 전 세계 문화권 어디에나 존재한다. - P70
인간이란 따지고 보면 참 웃기는 존재들이다. 양복을 입고, 핸드폰을 손에 들었지만 뇌는 여전히 청동기시대에서 멈추어 있다. 청동기, 철기시대부터 이어온 이 긴 애증의 역사와 함께 우리는 사이버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21세기로 들어가려 한다. 영남은 영남대로 ‘챠라!‘ 만을 내뱉지 마라. 호남은 호남대로너무 ‘거시기 하게 뭉치지 마라. - P72
사회심리학의 변별 이론은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 안에서 타인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의한다고 본다. 즉, 나는 무엇이다라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무엇이 아닌지를 통해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다는 의미다. - P73
일본 무술을 소개하면서 보이는 도복의 ‘태권도 글씨나 한복 밑에 어엿이 쓰여 있는 ‘KIMONO‘ 를 보고 그들의 무식을 욕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세상은 냉정하고, 우리의 애국적 분노를 들어줄 만큼 한가롭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 P74
중국이나 일본인의 그것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끼리 만들어놓고 우리끼리 의미부여해봐야 결국 서로 속고 마는 것이다. 이 점을 인정해야 다음 답이 나온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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