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언어는 유전자 DNA의 언어와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모두 신경원神經元 또는 뉴런neuron 이라고 불리는 세포 속에 암호로 씌어 있다. - P551
뉴런은 굵기가 겨우 수백분의 1밀리미터인 현미경적 존재로서 아주 미세한 전기·화학적 스위치 회로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뉴런이 우리 몸속에 약 1000억 개 있다. 은하수 은하에도 대략 이 정도 수의 별들이 존재한다. 뉴런들 중에는 하나가 수천 개의 이웃 뉴런 세포들과 연결된 것들이 있다. 인간 대뇌 피질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연결을 총 10^14개가량 볼 수 있다. - P551
사람이 잠에서 깨어날 즈음 대뇌 피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전개 과정 ...(중략)...
(대뇌 피질) 여기저기에서 번쩍이는 점들이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대뇌 피질 전체가 수많은 번쩍이는 점들의 바다로 서서히 변해 간다. 한 사람이 잠에서 어렴풋이 깨어나면서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마치 명멸하는 별들이 은하수 은하의 전 영역에 걸쳐 멋진 우주적 군무를 펼치는 형국과 같다고나 할까. - P551
대뇌 피질 전체는 하나의 노래하는 커다란 베틀의 모습을 띤다. 수백만 개의 북들이 끊임없이 왕복하며 각종 문양들을 만들었다 지우고, 지웠다 만들기를 계속한다. 문양마다 고유의 의미를 지니겠지만 그 어느 문양도 반복되는 법이 없다. 그런가 하면 하나의 문양 속에 또 다른 문양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면서 나타난다. - P551
드디어 육신이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자, 찬란한 조화를 이루던 그 문양들은 어두운 트랙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더니 (뇌의 기저부로) 슬그머니 사라진다. 번쩍거리는 점들이 여러 가닥으로 연결되고, 그들을 연결하던 다양한 무늬는 위치를 서서히 옮기면서 대뇌 피질 여기저기에서 춤추는 연결망을 또다시 구축한다. 이제 육신은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서 새로운 하루를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 침대를 떠난다. - P552
잠을 자고 있는 중에도 뇌는 쉬지 않는다. 수면 중에도 뇌는 꿈과 기억과 추리의 기제를 통해 인간사의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쉬지 않고 정리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 P552
우리의 생각, 시지각, 심지어 환상까지도 따지고 보면 모두 물리적 실체를 동반한다. 생각한다는 행위 하나도 수백개에 이르는 전기·화학적 신호 자극의 결합체라는 실체가 있다. - P552
우리가 뉴런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볼 수 있다면 기기묘묘한 모습의 수많은 패턴들이 여기저기서 출현했다 사라지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 패턴들 중 어느 하나는 어릴 적 시골 길에서 맡아 봤던 라일락꽃 향기의 기억일 수 있다. 뉴런의 전광판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또 다른 패턴은 ‘내가 열쇠를 어디에 뒀던가?‘ 하는 애타는 마음일 수도 있다. - P552
정신 작용이라는 거대한 산에는 수많은 골짜기들이 있다. 골짜기란 다름 아닌 대뇌 피질의 울퉁불퉁한 구조를 뜻한다. 골짜기를 파서 제한된 부피 안에 되도록 넓은 표면이 들어갈 수 있게 해 놓음으로써, 대뇌 피질은 참으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P552
뇌의 전기 회로는 인간이 고안한 그 어느 회로보다 훌륭한 구조이다. 우리가 의식意識이라고 부르는 세련되고 격조 높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자연이 한 일은 10^14개의 신경망을 연결해 놓은 것밖에 없다. 그 이상의 무엇 때문에 의식 작용이 가능하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없다. 단지 뉴런들을 연결해 놓음으로써 그렇게 멋들어진 기능을 발휘케 한다니 참으로 믿기 어려운 자연의 조화이다. - P553
사람의 두뇌 도서관은 필요한 정보를 ...(중략)... 신경망에 저장하고, 그 신경망에서 모든 정보를 처리한다. 또 신경망을 이용하여 필요한 정보를 찾는다. - P553
생각의 세계는 크게 두 개의 반구로 나뉘어 있다. 대뇌 피질의 오른쪽 반구는 패턴의 인식, 직관과 감수성의 발동, 창조적 통찰 등을 주로 책임진다. 왼쪽 반구는 이성적, 분석적, 비판적 사고를 관장한다. 기본적으로 서로 상반된 기능을 수행하는 뇌의 양쪽 반구가 상호 보완함으로써 인간의 의식 작용을 특징짓는다. 한쪽에서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아이디어의 실효성을 검증하는 식이다. - P554
두 개의 반구 사이에는 무수한 신경 다발이 있으며, 이것을 통해서 양측이 정보를 끊임없이 교환한다. 신경 다발이 창조와 분석을 연결짓는 교량인 셈이다. 독창적 사고와 비판적 분석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이다. - P554
비트로 잰 인간 두뇌의 정보량은 뉴런 연결의 총수 정도이다. 즉 약 100조 비트(10^14비트)의 정보가 우리 뇌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 정보를 모두 영어로 기술한다면 대략 2000만 권의 책 더미가 쌓일 것이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의 장서량이 대략 이 수준에 이른다. 두뇌가 차지하는 공간은 협소하지만 뇌는 실제로 아주 거대한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 - P554
두뇌 도서관에서는 대부분의 책을 대뇌 피질에 보관한다. 뇌 도서관의 지하 공간에는 인류의 먼 조상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했던 근본적인 기능에 관한 책들이 소장돼 있다. 그 기능에는 공격성, 자식 양육의 욕망, 공포감, 짝짓기 같은 원초적 본능뿐 아니라,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려는 성향이 포함되어 있다. - P554
두뇌의 고차적 기능중에서 읽기, 쓰기, 말하기 등은 대뇌 피질의 특정 부위에 보관돼 있다. 그러나 기억은 대뇌 피질의 여기저기에 중복 기록돼 있다. 소위 텔레파시telepathy라는 것이 실재한다면 상대방 대뇌 피질에 보관된 정보를 내가 멀리서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 P554
사랑하는 이들이 대뇌 피질의 수준에서 정보를 읽어 내는 일은 아직 예술가와 작가들의 몫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 P555
두뇌는 기억 장치 이상의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의 두뇌는 비교, 합성, 분석, 추상화 같은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 살아 남기 위해서 우리는 유전자가 제공하는 것 이상의 정보를 미루어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두뇌 도서관의 규모가 유전자 도서관의 수만 배나 되는 것이다. - P555
겨우 걸음마를 뗄 줄 아는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해 보라. 사람의 알고자 하는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배우려는 열망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 - P555
인간의 감정이나 인간 행동의 관습적 유형은 마음 어딘가 깊숙한 곳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인간 본성의 일부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특성을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동물들도 감정을 표출한다. - P555
하나의 종으로 인간을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다. - P555
대뇌 피질이 사람을 동물적 인간에서 해방시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비나 도마뱀의 유전적 행동 양식에 더 이상 묶여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자신이 뇌 속에 집어넣은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 P555
각자는 한 사람의 성숙한 인격체로서 누구를 아끼며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하지, 파충류 수준의 두뇌가 명령하는 대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P555
(런던이나 시카고가 효율적인 도시로 재설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화재 사건이 있었다. 대화재 덕분에 상수도, 하수도, 전력 등의 시설을 모두 병렬로 구축할 수 있었다.) - P557
기존의 시스템을 새로운 목적에 그대로 활용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목적에 맞게 일부만 개량하여 사용하는 것은 토목이나 건축에서뿐 아니라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 P557
생존에 꼭 필요한 정보 전부를 유전자에 저장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양이 증가하자 진화는 서서히 두뇌를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월이 또 어느 정도 흘러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 년 전쯤부터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이 새로 만든 두뇌로도 쉽게 보관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진화가 그 다음에 택한 방책은 육체 바깥에다 필요한 정보를 저장해 두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유전자나 뇌가 아니라 별도의 공용 저장소를 만들어 그곳에 보관할 줄 아는 종은 지구상에서 인류뿐이라고 한다. 이 ‘기억의 대형 물류 창고‘를 우리는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 P557
잘 따지고 보면 책이란 결국 나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나무를 가공하여 유연하고 두께가 아주 얇은 종이를 먼저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종이 표면에 검정색의 꾸불꾸불한 선으로 그림이나 글자를 그려 넣는다. 이렇게 만든 종이들을 여러 장 함께 모은 것이 다름 아닌 책이다. - P558
책의 한 면 한 면을 우리는 ‘쪽‘이라고 부르지만 영어에서는 나뭇잎에 해당하는 ‘leaf‘ 라는 표현을 쓴다. 책의 기원이 나무에 있음을 여기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 P558
우리는 책을 한 번 슬쩍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죽은 지 수천년이 된 저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저자는 1,000년을 건너뛰어 소리 없이 그렇지만 또렷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의 머릿속에 직접 들려준다. - P558
글쓰기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글쓰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먼 과거에 살던 시민과 오늘을 사는 우리를 하나가 되게 했다. 책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 모두는 마법사가 된 것이다. - P558
인쇄 및 제책 기술에 관한 언급에 고려의 금속활자 발명이 빠지는 것을 볼 때마다, 무엇이든 발명 못지않게 그것을 키우고 가꿔 꽃피우는 일 또한 중요함을 실감하게 된다. - P559
책은 씨앗과 같다. 수세기 동안 싹을 틔우지 않은 채 동면하다가 어느 날 가장 척박한 토양에서도 갑자기 찬란한 꽃을 피워 내는 씨앗과 같은 존재가 책인 것이다. - P560
요즈음 세계의 대형 도서관들은 보통 수백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이 소장 자료 중에서 문자로 적힌 기록은 정보량이 10^14, 즉 100조 비트 정도이고, 그림에 실린 정보는 이보다 많은 1000조 비트에 이른다. 이것은 유전자 정보의 약 1만 배, 두뇌 정보의 대략 10배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 P560
책을 1주일에 한 권씩 뗄 수 있다면 한 사람이 평생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의 총수는 대략 수천 권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현대 도서관이 소장한 장서의 기껏해야 1,00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양이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몇 권을 읽는가보다 어떤 책을 읽는가에 달려 있다. - P560
책에 기술할 수 있는 정보는 그 정보가 태어날 때부터 완전히 확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며 새로운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정보의 내용 역시 점차 수정돼야 한다. 동시에 정보는 변하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도록 변신해야 한다. 이것이 정보가 갖는 속성이다. - P560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정보가 입에서 입으로 말로만 전해졌다면 우리가 과거에 대해 대체 무엇을 알 수있었을 것이며, 우리의 진보가 또 얼마나 느렸을까! 선대가 알아냈던 지식 중에서 어쩌다 얻어 들을 수 있었던 몇 마디의 이야기들만 후대에 전해졌을 것이다. 비록 전해졌다고 하더라도 그 정보의 정확도는 보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561
책은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해 준다. 책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조상의 지혜를 오늘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 P561
도서관은 인류가 이룩한 거대한 지식 체계와 위대한 통찰의 세계를 우리와 연결시켜 주는 고리의 구실을 한다. 도서관이 전해 주는 통찰과 지식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자연으로부터 숱한 고생 끝에 힘들여 발굴해 낸 고귀한 보물이다. 그들은 온 인류사를 거쳐 행성 지구의 전역에서 선발된 위대한 지성들이었다. 그들은 지칠 줄 모르는 정열로 우리에게 큰 교훈과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하나의 종으로서의 인류가 고유의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 P561
우리가 키워 온 문명이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냐는 우리 각자가 얼마나 충실하게 공공 도서관을 지원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공공 도서관이 인류 문화 창달의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깊이 숙고해 봐야 한다. - P561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이 휘두르는 폭력의 위력 - P562
진화의 초기에는 돌연변이의 작은 차이가 크게 문제될 바 아니지만 긴 진화의 과정을 통해 돌연변이의 작은 차이들이 누적된 결과는 엄청난 규모의 변화를 가져온다. 오래전에 생긴 사건일수록 그것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지대하기 마련이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생물 현상에서도 우연이 결정적인 차이를 초래한다. - P562
우리 손에 모두 다섯 개의 손가락이 달려 있는 것은 인간이 데본기 Devonian period에 번성했던 지골指骨이 다섯 개인 어류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지느러미에 뼈가 다섯 개 있는 어류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이야기이다. - P562
데본기는 고생대의 네 번째 기紀로서 지금으로부터 약 4억 년에서 3억 5000만 년 전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갑주어, 패어류를 비롯한 어류가 크게 번성했다. - P563
우리가 십진법을 쓰는 이유도 한 손에 다섯 개씩 모두 열 개의 손가락이 있기 때문이다. - P563
지구인의 계산법이 5 또는 10을 근거로 한다는 사실은 사람의 손가락 수가 한 손에 다섯씩 모두 열 개이기 때문에 아주 당연한 것이다. 손가락 수와 계산법의 관계를 우리는 그리스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인들의 "수를 센다."는 표현을 글자 그대로 옮겨 보면 "다섯으로 한다."였다. - P563
손가락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여러 다른 근원적 구조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를테면 유전적 재질,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반응, 신체의 형태, 자세, 각종 장기의 구조, 사랑과 증오의 감정, 열망과 절망의 염念, 상냥한 성격과 공격적 성향, 심지어 우리 인식의 분석 과정에까지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의 근본이 아니 근본의 적어도 일부분이 진화의 오랜 과정에서 겪었던 겉으로는 사소한 사건들의 누적된 결과인 것이다. - P563
석탄기Carboniferous period는 고생대 후기로서, 지금으로부터 약 3억 5000만 년에서 2억 7000만 년 전에 해당하는 시기다. 석탄이 주로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 P563
인과율이 초래한 진화의 결과는 얽히고설켜 있다. 우리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 앞에 스스로를 낮추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564
공룡 멸종의 원인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주적 요인의 이변을 멸종의 원인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태양에 가까이 있던 어떤 별이 폭발했기 때문에 공룡이 전멸했다는 주장이다. 별의 폭발에 관한 증거를 우리는 게성운이라 불리는 초신성 폭발의 잔해에서 찾아볼 수 있다. - P565
기후 변동의 실제 요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인간 생존의 근본 문제는 천문학 내지 지질학적 우연성에 이렇게 민감하게 의존한다. - P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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