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조나탕이 아내인 뤼시에게 하는 말로 시작한다. 지난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조나탕은 자신이 반드시 극복해내야 할 것(두려움 또는 기존의 안락한 환경같은 것)이 있다는 취지로 말을 했었는데, 뤼시가 이에 대해 궁금해하자 조나탕은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싶었었는지 또는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세한 건 알려고 하지 말라는 식으로 단호하게 말한다.

살다보면 어떠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내가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무슨 일을 시작하려 할 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어떤 큰 뜻이나 목표 혹은 그 동기)에 대해 궁금해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말하기보다는 행동과 결과로 내가 품은 뜻을 증명해내고자하는 마음으로 인해 가급적 말을 아끼려는 경우들이 있는데 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조나탕의 모습을 통해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만약 내가 조나탕이였더라도 비슷한 식으로 반응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경험상 저런 상황일 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주변에서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오히려 뭔가를 자꾸 더 궁금해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내린 마음의 결정을 자꾸만 뒤흔드는 것은 도움이 되기는 커녕 당사자에게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그 사람을 방해하려는 악의적인 목적이라면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그냥 그 결정을 존중해주면 되는 것이다. 설령 그가 나중에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채 실패를 하고 돌아오더라도 그것은 당사자의 책임일 뿐 주변 사람의 책임은 아닌 것이 되기에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
.
.
뒤이어 읽다가 개미의 유형에 관한 내용들이 나온다. 특별히, 생식 능력이 없는 일개미와 생식 능력을 가진 개미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각자 전문적인 분야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나는 여기서 생식능력의 유무보다는 각자 전문적인 분야가 있다는 말에 좀 더 포인트를 두고 보고 싶었다. 이 책에 나온 개미를 사람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본다면, 사람마다 자기가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있기 마련인데, 이는 어찌보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어느정도는 정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흔히 나오는 논쟁 중 하나로 ‘성공에 필요한 것은 재능이냐 노력이냐‘ 하는 것이 있다. 이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에디슨의 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 말은 해석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해석이 뒤바뀔 수 있는데, 적어도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본다면 1%의 영감이 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언급하는 1%의 영감이라는 것은 후천적인 요인인 99%의 노력에 상대되는 개념으로써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을 지칭한다고 생각한다. 선천적인 것이 없으면 후천적으로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천재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정 수준의 레벨까지는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1%의 영감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의 경우에는 후천적인 노력 99%를 한다면 천재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이 차이가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미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1등과 2등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는 천재적인 1%의 영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99%의 노력을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기에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 거로 알고 있고, 나도 그 이야기에 일정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읽은 본문에서만큼은 타고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맞다는 게 내 생각이다. 누구는 일개미로 태어나고 누구는 수개미나 여왕개미로 태어나서 말그대로 생긴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내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노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게 살다가 가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현상유지하는 것조차도 어려워질 수 있기에 설령 현실을 살면서 좌절하거나 낙심되는 순간이 올지라도 끊임없이 노력은 하면서 살아가는 게 맞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과는 좀 다른 느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찌보면 더 중요한 생각일 수 있기에 두서없이 끄적여보았다.

위에 끄적인 말들을 곱씹어 생각해보다가 떠오른 말이 있다. ‘노력은 선택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의무다.‘ 설령 1등은 못할지언정 적어도 살고자 한다면 말이다. 또다른 말도 떠오른다. ‘노력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자 도구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위와 같은 나름의 결론을 얻었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하나 더 추가하자면 ‘노력은 영원한 나의 친구다. 죽는 날까지 함께 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반대로 해석해보면 ‘노력하지 않는 자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 정도로 바꿔볼 수도 있겠다.

‘노력은 생존이다.‘

1% 영감의 중요성을 얘기하다가 생각의 흐름이 어느순간 99% 노력 쪽으로 흘렀고 그 결과 위와 같이 단순해보이지만 그 뜻은 결코 단순하지 않은 문장이 탄생했다. 설령 최고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역시 노력만이 살 길이라는 점은 불변의 진리인 듯싶다.
.
.
.
계속해서 읽어나가다가 고참 병정개미가 신참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느낀 여기서의 핵심은 모든 전투 또는 싸움이라는 것은 그것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 결과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실제로 결투를 벌이는 것은 이미 결정된 결과를 단지 확인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며,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당사자의 마음먹기에 달려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얘기는 정확히 어딘지는 잘 몰라도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봤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오늘 독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익혀보는 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을 듯하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가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얘기를 좀 더 보태보자면, 위에서 언급한 마음먹기라는 것은 결국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신감은 내가 사전에 준비된만큼 비례해서 커지는 것이기에 싸우기에 앞서 체력적인 것이든 또는 정신적인 것이든 아니면 실력적인 것이든 평소에 잘 단련해 놓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학생이라면 다가오는 시험이라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학습량을 늘리거나 실전 연습을 통해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직장인이라면 프레젠테이션을 잘 해내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 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작은 동굴까지 그들을 찾아올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곳에서 그들은 마치 어머니 배속의 난소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미안해. 하지만 당신 알아야 할 게 있어. 이 지하실은 나하고만 상관있는 거야. 이건 내 일이고, 내가 갈 길이야. 아무도 끼어들어선 안 돼. 내 말 알아듣겠어?

답을 찾으려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단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답을 찾아내지 못할 거야.

구원은 지진이라는 뜻하지 않은 모습으로 찾아왔다.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

위험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때로는 가장 안전하다

호감은 가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용기를 발휘하기보다는, 싫어도 내가 아는 사람을 위해 비겁자로 처신하는 게 더 나을 때가 가끔은 있는 법이지요.

개미들도 모든 것을 견디어 내지. 1945년 핵폭발이 있었을 때, 개미와 전갈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네. 개미는 그것에조차 적응을 했던 거지.

곤충들은 우리처럼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다네. 바깥 기온이 18도이면 곤충의 몸속도 18도이지. 날이 뜨거워지면 곤충의 피도 부글거리게 되는 거야. 곤충들은 그것을 참아 낼 수가 없지.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마냥개미들은 야영할 둥지를 파고 그 안에서 날씨가 서늘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짧은 겨울잠과도 같은 것이지. 겨울잠은 추위 때문에 꼼짝을 못 하는 것이고, 그것은 더위 때문에 꼼짝을 못 하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말일세.

사람들은 저마다 대화의 상대방을, 치료비 안 받는 정신과 의사 정도로 생각하고 그를 이용하려고만 든다. 그래서 평행선처럼 서로 만나지 않는 독백들을 늘어놓을 뿐이다.

묻는 사람은 잠깐 바보가 되지만 묻지 않는 사람은 평생 바보가 된다

일개미들은 생식 능력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난다. 할 일이 많은 일개미들이 성적인 충동 때문에 한 눈을 파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생식 능력은 모두 생식만을 도맡아 하는 전문가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수개미와 암개미, 다시 말하면 개미 문명의 왕자와 공주만이 생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생식 능력을 가진 개미들은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 태어나고 그것을 위한 특별한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교미하기에 편리하게끔 여러가지 오묘한 기관들을 지니고 태어난다. 날개가 그렇고, 추상적인 감정을 주고받는 더듬이가 그러하며, 적외선을 감지하는 홑눈이 그렇다.

외부에서 침입해 온 자는 죽여 버려야 하는 것이다.

방법은 완전 소통밖에 없다.

어째서 어떤 알은 수정이 되고, 어떤 알은 수정이 되지 않는 걸까? 아마 온도 탓일 게다. 20도 이하에서는 여왕의 저정낭(貯精囊)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왕은 수정이 안 된 알을 낳게 된다. 그러니까 수개미들은 추위의 산물인 셈이다. 죽음이 추위의 산물이듯이.

두 개의 뇌 사이에는 늘 갖가지 오해와 거짓이 생기게 마련이니라.

두 생각이 혼인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관념을 부호로 만들고 해독할 필요가 없다. 관념들은 이미지, 음악, 감정, 향기와 같이 원래 그대로의 단순한 상태로 전달되는 것이다.

개미에게는 시간이 상대적이다. 날씨가 더울 때는 시간의 길이가 아주 짧다. 날씨가 추울 때는, 시간이 축축 늘어지고 무한히 길어져, 마침내는 동면을 하면서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까지 된다.

시간에 대한 지각이 이렇게 탄력적인 까닭에, 개미는 사물의 속도를 지각하는 데서도 우리와 사뭇 다르다. 사물의 운동을 규정할 때, 곤충들은 단지 공간과 소요시간만을 고려하는 게 아니라, 제3의 요소인 온도를 덧붙인다.

텔레비전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거야. 우리 머릿속에 갖가지 획일적인 심상을 심어 넣지. 온갖 방법으로 별별 얘기를 다 한단 말이지.

내버려 둬. 그거라도 보면서 위안을 찾아야지.

날 믿어줘. 난 끝까지 가야 돼. 난 미친 게 아냐.

몸은 늙어가지만, 머리는 젊어지고 있어.

나중에 다시 올라올 수 있으려면 더 아래로 자꾸자꾸 내려가야돼..... 수영장 같은 거지.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힘을 얻으려면 바닥을 디뎌야 하는 거야.

가장 어린 생명들은 언제나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 <알은 촉촉하고 따뜻하게, 고치는 보송보송하고 따뜻하게.> 이것이 훌륭한 2세를 만들기 위한 개미 세계의 오랜 비방이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이다. 신경 조직, 호흡기, 소화기, 감각 기관, 딱지......

조용히 하게,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네.

일에는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일보다는 생명을 보전하는 일이 우선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미는 사회성을 타고난다.

개미와 인간은 둘 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종이며, 살아가는 방법을 혼자서 터득할 줄도 모르고 터득할 수도 없다.

어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의 약점이다. 그러나 그 의존성이 또 다른 진화를 가져온다. 지식 추구가 그것이다. 어린 개체들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터에, 생존 능력을 지닌 성숙한 개체들이 곁에 있으니, 어린 개체들이 처음부터 성숙한 개체들에게서 지식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개미들은 전혀 한 눈을 팔지 않고 일에 몰두해있다. 자기들이 보살피는 버섯 사이에 잡초 하나, 기생 곰팡이 하나라도 끼어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느타리에는 미르미카신이 배어 있었다. 보통 희석시켜서 제초제로 사용하는 아주 강렬한 산(酸)이다.

겨레 안에 미쳐 버린 세포들이 있다.

모든 것은 접전을 벌이기 전에 결정이 나 있는 것이다. 위턱으로 공격을 하거나 개미산을 쏘는 것은, 이미 두 교전자가 인정하고 있는 승부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전을 벌이기 전에 이미 이기려고 마음을 먹은 자와 패배를 받아들이려는 자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전투란 그렇게 역할을 나누는 문제일 뿐이다. 각자 자기의 역할을 선택하고 나면, 승리를 결심한 자는 겨냥을 하지 않고 쏘아도 과녁의 한가운데를 명중시킬 수 있을 것이고, 패배를 생각한 자는 제 위턱을 아무리 휘둘러도 상대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해줄 수 있는 충고는 단 하나.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법. 승리하는 것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인 자를 그 무엇이 당할 수 있으랴.

이왕 태어났으니, 되도록 오래 살아야죠.

이건 어쩌다 맞닥뜨린 인생의 고비일 뿐 끝은 아니야. 그저 하나의 고비일 뿐이라네. 게다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분명히 있다네.

사람은 언제나 한결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한다. 세계를 언제나 똑같은 진부한 방식으로 파악하지. 그걸 사진 찍는 것에 비유하자면 언제나 광각 렌즈 하나만 가지고 사진을 찍는 것과 같지. 그것도 현실의 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그건 하나의 시각일 뿐이야.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적들이 지리를 훤히 아는 구역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적이 나보다 강할 때는 적의 의표를 찌르라.

이 작은 동굴까지 그들을 찾아올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곳에서 그들은 마치 어머니 배속의 난소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동료에게 뭔가를 나누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존스턴 기관 : 더듬이의 흔들마디에 있는 감각기로서, 곤충이 정지하거나 운동할 경우에 몸의 여러 부위가 적절한 방향을 잡거나, 몸 전체가 중력에 대해 적절한 방향을 잡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들을 위해 아침이 찾아온다.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강점을 공고히 하는 편이 낫다

무엇이든 되풀이되면 익숙해지는 법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