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는 못 한다. 네 앞가림은 알아서 해야지." - P161
나는 흑인 선수들이나 남미 선수들과 어울릴 때 마음이 가장 편했다. 이쪽 출신 선수들은 다른 선수를 질시하는 경우가 적고, 마음이 느긋해서 함께 있으면 훨씬 즐거웠다. - P162
감독에게 무슨 평가를 받든지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를 막을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 P164
"너 실력 좋아?" "공도 제대로 못 만져봤어!" "상대 팀 팬들이 너한테 야유 보내고 비웃고 그러지?" "그거야 그렇지." "그럼, 실력 좋은 거네." 나는 그가 한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상대 팀 팬들에게 욕지거리를 듣고 야유를 당하는 선수는 실력이 좋다는 얘기다. 축구란 그런 것이다. - P164
보통 ‘스네이크snake(뱀)‘라고 불리는데, 이 동작을 제대로 수행하면 뱀 한 마리가 옆에서 스르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이도가 만만치 않은 동작이다. 공 뒤쪽에 발등을 대고, 공을 재빨리 오른쪽으로 쿡 찌르고 나서 다시 발끝으로 공의 각도를 왼쪽으로 획 틀면서 슉, 슉 빠르게 움직이되 아이스하키 선수가 스틱에 퍽을 딱 붙여서 달고 다니는 것처럼 공이 발에서 떨어지지 않게 컨트롤해야 한다. - P166
절대 미리 계획했던 말이 아니었다. 나는 할 말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다. - P166
"처음에 왼쪽으로 가니까 그 선수도 왼쪽으로 오더군요.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니까 그 선수도 오른쪽으로 왔죠. 그리고 또 왼쪽으로 가니까 핫도그 사러 갔는지 안 보이더라고요." - P166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이를테면 ‘난 즐라탄이야!‘ 하고 혼자 만족해서 고개 쳐들고 다니지 않는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필름이 돌아가듯 나는 반복해서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했어야 했나. 아니 저렇게 했어야 했나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린다. - P168
나는 다른 선수들도 관찰한다. 저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뭘까? 내가 저지른 실수도 검토하면서 더 나은 대안들과 비교해본다. 무엇을 개선할 수 있을까? 시합을 하든지 훈련을 하든지 나는 항상 거기서 뭔가를 배우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 만족하지 않았고 그런 태도가 나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 P168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집에서 벽을 보고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다 머저리처럼 보였다. - P169
한 시즌은 절대 짧지 않다. 한 경기로 승부가 나는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단번에 승부를 보려고 했다. 아약스에 오자마자 내가 지닌 기술을 전부 펼쳐 보이려다가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내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기 때문이었고, 어떤 상황도 이겨낼줄 알았지만 나는 아직 중압감을 다루는 법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8500만 크로나는 무거운 짐이 되어 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고, 나는 디멘에 있는 숙소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 P170
축구가 잘 풀리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라도 혈기를 풀어야 했다. 내게는 돌파구가 필요했고, 차를 몰 때는 맘껏 질주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 P171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게 있다. 나는 살면서 돈이 제일 중요했던 적은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얼간이 같은 이민자 꼬꼬마로 여겼다는 사실, 나를 기만하고 속여서 한몫 잡아볼 심산이었다는 게 참을 수가 없었다. - P173
지금은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꿰고 있다. 더는 사기를 당하거나 이용당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협상을 할 때도 상대보다 한 수 더 내다보려고 노력한다.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저들이 바라는 게 무엇일까. 또 감추고 있는 전략은 뭘까? 그리고 모든 정보를 기억해둔다. 나를 속인 이들은 뼛속 깊이 새겨둔다. - P175
나는 끊임없이 해결책을 강구했다.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주 까먹지만 나는 온실에서 화초처럼 자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순풍에 돛 단 듯이 유럽에 진출한 선수가 아니었다. 온갖 불리한 상황을 뚫고 유럽까지 왔다.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부모와 감독의 반대를 무릅썼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 P177
즐라탄은 드리블만 할 줄 안다고 사람들은 불평했다. 즐라탄은 이런 놈이니 저런 놈이니 마음대로 규정하면서 즐라탄이 잘못하고 있다고 나를 비난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드리블을 했다.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되, 줏대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지는 않았다. 나는 아약스 문화를 파악하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플레이 스타일을 배우려고 애를 썼다. - P177
더 좋은 선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는 열심히 훈련하고, 다른 선수들을 보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스타일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 누구도 경기를 풀어나가는 나만의 방식을 교정할 수는 없었다. 내가 고집불통이나 문제아라서 말을 안 들은 게 아니었다. 좀 과격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내가 그라운드에서 싸우는 방식이고 내 특징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만큼 남들에게도 똑같이 요구한다. - P177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저들에게 내 능력을 보여주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밤낮으로 이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다른 구단으로 팔려 가는지 안 가는지 그건 모르겠고, 솔직히 다른 대안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했다. 문제는 벤치에 붙들려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내 실력을 입증하느냐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캐치-22(조셉 헬러의 소설 제목으로, 주인공인 요사리안을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만드는 부대 내의 규정을 가리키는 표현)였다.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 P181
난 내가 꽤 멋진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P185
내 차는 내 자부심이었다. 그것이 내 원칙이었고, 페라리를 몰고 다니면 멋진 놈이 된 듯 기분이 좋았다. - P188
우리 말썽쟁이들은 서로 돕고 지내야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참기만 할 수는 없었다. - P192
나는 사생활이 아니라 축구 실력으로 주목받고 싶었다. 축구와 관련해 나에 대한 긍정적인 기사를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 P192
두 감독은 기존 선수들에게 너무 의지하고 어린 선수들에게는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런 법 아닌가. - P194
시즌을 시작하면서 전략을 하나 세웠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지 걱정하지 말고 그냥 내 할 일만 하기로. 그렇게 목표를 세웠지만 처음에는 별반 소용이 없었다. - P194
헬레나는 고상한 여자였다. 그녀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생선 칼은 어떻게 생겼는지, 와인은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말이다. 그 시절 나는 고급 와인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홀짝거리며 마셔야 했다. 나는 헬레나를 만나고 나서야 그런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문화가 쉽게 몸에 배지는 않았다. - P202
내가 진짜 축구 선수로 날개를 펴고 나를 무시했던 이들에게 시원하게 한 방 먹일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로 가고 나서부터였다. - P207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하지만 듣기 좋은 콧노래도 한두 번이지 갈수록 그 소리가 싫어졌다. 나는 제2의 판 바스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즐라탄은 즐라탄일 뿐이었다. "싫어, 그선수 이름은 더 이상 들먹이지 마. 그 이름은 신물 나게 들었으니까"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 P208
그는 진짜 멋진 사람이었다. 판 바스텐은 자기 주관대로 일을 처리했고, 윗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줏대가 있는 남자였다. - P209
"수비하느라 힘을 낭비해서는 안 돼. 넌 공격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고, 후미에서 기력을 소모하는 것보다는 전방에서 공격하며 골을 넣는 것이 네가 팀에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이야." 골을 넣기 위해 힘을 아껴라. 이것도 내가 그에게서 배운 여러 교훈 중 하나였다. - P210
"거기는 여기보다 훨씬 더 거칠거든. 여기서 네가 한 경기에 대여섯 번의 득점 기회를 잡는다고 치면, 이탈리아에서는 한두 번 얻는다고 보면 돼. 그러니까 그 기회를 확실하게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해." - P212
"직접 만나면 우위를 점할 수가 없어. 그랬다간 모자 벗고 공손하게 서서 맞이해야 하거든." - P216
‘그래, 이거야. 나도 이제부터는 고급스럽게 행동해야지‘ - P217
"내가 스무 골을 넣었다면 우리 엄마라도 계약을 성사시켰을 겁니다." - P218
"당신이 차고 있는 금시계나 고급 재킷, 포르쉐를 보고 내가 ‘오, 이사람 대단한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죠? 미안하지만, 전혀 아니에요. 우습기만 합니다." - P219
"당신은 세계 최고 선수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엄청난 돈을 벌면서 이런 차림으로 한량처럼 놀러 다니고 싶습니까?" - P219
"좋아요. 세계 최고가 된다면 다른 것들도 자연히 얻게 될 겁니다. 하지만 돈만 많이 벌 생각이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 P219
"있잖아요. 난 기다리는 거 딱 질색입니다. 당장 함께 일하고 싶어요." - P219
"좋아요. 하지만 나와 함께 일하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물론이에요." "그럼 당신이 소유한 차량들을 처분하고, 시계들도 팔고, 지금보다 세 배는 더 열심히 훈련하도록 해요. 경기 기록이 쥐뿔만도 못하니까." - P220
나는 훈련에 전력을 다했다. 한계점에 달할 때까지 온힘을 쏟으면서 미노가 지적한 것들이 다 맞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도취해 나를 과시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잘못된 태도였다. - P220
골을 많이 넣지 못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었고, 너무 나태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지적도 맞는 소리였다. 나를 끌어줄 강력한 동기도 품고 있지 않았다. 미노의 말이 맞았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나는 훈련을 하든지 시합을 치르든지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뀌기는 어렵다. 작심삼일이라고 처음에는 기를 쓰고 덤비지만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다행히 나는 게으름을 부릴 기회조차 없었다. 미노가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나를 감시했기 때문이다. - P220
"사람들이 당신더러 최고라고 말하면 듣기 좋지 않아요?" "그렇죠, 뭐."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당신은 최고가 아니거든요. 당신은 쓰레기예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쓰레기는 당신이지. 잔소리밖에 할 줄 모르면서, 당신이나 갈고 닦으시지." "엿 먹어." "당신이나 엿 먹어." - P221
우리 사이에는 살벌한 분위기가 자주 연출된다. 우리 둘 다 험악한 환경에서 자랐고 또 ‘쓸모없는 선수‘라느니 하는 식의 말투도 사실은 내 태도를 고치려는 그의 전략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작전은 성공했다. 나 역시도 그런 말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즐라탄, 넌 쓸모없는 놈이야. 쓰레기라고. 네가 생각했던 실력의 절반도 못 돼! 더 열심히 훈련해야 해." 이런 말들은 투지를 불태우고, 강렬한 승부근성을 키우는 자극제가 되었다. - P221
나는 훈련 중에나 경기 중에 전력을 다했고, 연습 경기는 물론 아무리 시시한 시합이나 대회에서도 지고 싶지 않았다. - P221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랐지 내 몸이 망가지기를 원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지속할 수는 없어, 이 친구야. 부상을 입은 채 계속 경기에 뛸 수는 없다고." - P222
"이 친구 여태 팡팡 놀면서 건들거리기나 했어요. 이제 파김치 될 때까지 뛰면서 훈련 맛 좀 봐야죠! 빡빡하게 굴려주세요." - P222
2주간 고강도의 회복 훈련을 받았는데, 이상하게도 훈련이 마냥 힘들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고통 속에서도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한계치까지 나를 몰아붙일 수 있는 그 시간이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나는 새로운 단계에 올라섰고, 이전까지의 몸 상태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복귀한 나는 그라운드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경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 P223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즐라탄, 신의 아들"이라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가 곳곳에 나붙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연호했다. 나는 갈수록 경기력이 좋아졌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사라는 게 누군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선수들 사이에는 이미 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관계자들 눈에 띄어 빅클럽으로 팔려 가고 싶어 하는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만만치 않았다. - P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