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감사해
김혜자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배우 인터뷰를 자주 다니면서 '배우의 삶'을 고민했다. 솔까. 작품 속 캐릭터는 배우 자체라고 말하기 힘들다. 지독한 배우병 걸린 배우부터 진정성 있는 배우, 진정성 있는 배우를 또 연기하는 배우인 것 같은 배우도 있다. 아직 김혜자 배우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해갈되는 기분이 들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이후 20년 만에 나온 책이라 소중한 기분이다.


책은 배우의 연기 인생을 반추하는 자전적 기록이며, 맡았던 캐릭터에 관한 소회를 담았다. 말머리에 2021년~2022년 대면, 전화 인터뷰와 구술, 누구에게도 고백한 적 없는 평생 써 온 일기 형식의 들들, 신문 및 방송 등 여러 매체의 인터뷰 기사를 토대로 편집자가 초고를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이후 김혜자가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수정하며 추가하는 방식으로 마쳐 세상에 나왔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으니까. 할 뿐입니다.

이것이 가장 좋고, 언제나 가슴이 뛰니까." P33

6살 때부터 시작된 연기 인생(역할 이름이 혜자였단다)부터 최근 [우리들의 블루스]까지. 수많은 역할과 인간 김혜자를 통째로 체득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연기 방식도 의외였다. 쪽대본 나오는 드라마는 피하고 작품에 온갖 힘을 쏟아내고 허물 벗듯 탈진해 버린다.

때문에 연기를 하지 않는 때에는 무기력해지지만 작품에 들어가면 생기가 돌고, 끝나면 방전되는 삶을 지금까지 반복해 온 사람인 거다. 연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말하는 겸손한 사람, 꿈에서도 대본이 나올 지경이라는 집요한 사람이 김혜자다.


연기 철학도 남달랐다. 맡은 역할이 아무리 인생 속박에서 고통받더라도 그 속에서 바늘귀만 한 희망이 보이는가에 작품 선택 기준을 삼는다. 연기자로만 살아오며 뿌듯한 점은 '몰입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무언가에 평생 몰입하는 삶이 배우의 숙명일까 생각해 봤다.

평범한 이름. 성은 김이요 이름은 혜자다. 하지만 이 이름은 대한민국 배우, 엄마의 아이콘이 되었다. 고유명사가 된 김혜자는 [청담동에 살아요], [눈이 부시게]와 이름이 명확히 나오지 않았지만 혜자라 적혀 있던 영화 <마더>까지 세 번의 혜자를 연기했다.


책 속에는 [전원일기]의 김정수 작가와의 각별한 인연도 눈에 띈다. 자신을 가장 잘 알기에 가잘 잘 써주는 작가로 꼽는 둘의 사이. 김정수 작가는 마지막 작품에 꼭 김혜자를 주인공으로 하게 해달다며 약속했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대표 엄마를 연기했던 틀을 벗어나고자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 일화도 재미있다. 이로 인해 김혜자는 국민 엄마의 새로운 면모를 발산했고 한 단계 나아갈 수 있었다.

그밖에 아프리카 봉사 활동, 부유했던 어린 시절, 우울했던 유년 시절, 결혼 생활, 배우의 자세와 철학,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병헌과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던 에피소드 등. 배우와 드라마, 영화를 좋아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김혜자의 연기 방식과 삶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이야기뿐만 아니라, 업계 동향까지 한눈에 파악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 리뷰는 도서 지원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