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결혼생활 - 세상이 만든 대본을 바꾼 특별한 가족 이야기
샌드라 립시츠 벰 지음, 김은령.김호 옮김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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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평등한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 내용은 단순하지 않았다. 평등한 관계와 페미니스트적인 자녀 양육을 실천한 자전적인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아내와 남편에서 '파트너'가 되고, 아들과 딸이 '아이'가 되는 일과 가사 및 양육이 50:50인 결혼생활. 뿌리 깊은 가부장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책이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판타지가 현실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오로지 나를 위한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위로를 얻었던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1960년대 여성성과 남성성의 새로운 척도를 제시한 '벰 성 역할 검사'를 개발했으며,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은 젠더 양극화 연구에 업적을 남긴 페미니즘 학자가 1998년 쓴 결혼 회고록이다.

 

저자 '샌드라 립시츠 벰'이 1965년 스무 살에 당시 카네기 공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였던 여섯 살 연상 '대릴 벰'과 평등한 결혼 형태를 만들어 낸 뒤, 27년의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법적으로 이혼한 것은 아니지만 이내 헤어져 각각 동성 상대와 사귀기도 했다.

 

따라서 두 사람은 단순히 사회가 정한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로 규정할 수 없음을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길 섹슈얼리티나 젠더에 있어 문화적 구분에 딱 맞출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저자는 2009년 알츠하이머를 알게 된 뒤 2014년 대릴이 보는 앞에서 독이 든 와인을 먹고 사망했다. 죽음마저도 오롯이 자신이 결정하는 삶, 가족을 위한 희생이나 눈치를 보지 않는 인생이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이라 생각했다.

 

부부간의 평등이 지켜지고 성 역할이 고정되지 않은 결혼생활, 그리고 젠더 고정관념 없이 키우는 양육방식,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체계화되지 않았을 무렵에 목숨처럼 지켜왔고, 1967년부터는 공동 강연을 통해 미국 전역에 전파했다.

 

특히 두 사람의 완전히 다른 가풍으로 만들어진 인격은 서로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고, 사랑에 빠진다는 개념으로 상응할 수 없는 파트너십 관계를 만들어 냈다. 저자 샌드라는 엄격한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며 부모님의 잦은 싸움으로 어린 시절 불안한 유년 시절을 겪었다. 그로 인한 성격은 사춘기를 지나며 악화되었고, 독립의 욕구를 크게 불태운다. 하지만 독립하기에는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선택한 학교에서 큰 마찰이 있었고, 따라서 대릴의 존재는 자신을 구해 줄 생명줄 같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가족들이 주지 못했던 안전한 토대를 제공해 주면서도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부분을 채워주었다는 것이다.

 

대릴은 남성의 성공 때문에 여성의 커리어가 망가지게 놔두지 않았다. 일주일에 3일씩 나눠 집안일을 하고 샌드라의 커리어를 위해 대릴이 직장을 옮기기도 하며, 샌드라와 일하기 위해 엄청난 제안을 거절하기도 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일들을 벌인다.

 

두 사람은 이론과 강연으로만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일종의 실험이라 말해도 좋을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꾸리면서 겪었던 감정과 주변 상황을 정리해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음으로써 독박 육아 및 가사, 시월드와의 갈등, 여성의 전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틀이 얼마나 견고한지 깨닫는 계기도 된다. 진정한 실천으로 완성했던 샌드라의 삶을 통해, 여러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는 긍정적 미래와 다수와 달라 배척당하는 소수가 생기지 않는 사회를 잠시나마 꿈꿔 볼 수 있었다.

 

어차피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는 일은 나의 인생이다. 이를 두고 누구도 강요하거나 참견할 수 없지만 어쩐지 우리는 너무 쉽게 남의 말을 듣고 스스로 검열한다. 이것은 꼭 해야 한다, 결혼은 격식을 차려야 한다며 수백, 수천만 원 대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세태. 내 결혼식인지 부모님 결혼식이지 알 수 없는 보여주기 식 관행. 결혼 해서도 아내와 남편, 시가와 처가에서 서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온전히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아니기도 한 상황에서 이 부부의 실천기는 통쾌한 쾌감을 선사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결혼에 관한 다른 생각, 해보지 못한 관념들을 각성하며 다음 세대는 내 세대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길 고대하는 바이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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