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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문
서맨사 소토 얌바오 지음, 이영아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8월
평점 :
우리를 만든 건 우리가 내린 수많은 선택이다.
만약 그 선택을 지운다면, 나는 여전히 나일까?
본디 시간에는 경계가 없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을
빼고는, 유난히 추운 가을 아침, 이시카와 하나는 얇디얇은
한 켜의 피부로 그 경계를 만들어냈다. 이런 일에는 눈꺼풀이
유용하다. 눈을 꾹 감고있는 한, 그녀의 인생을 둘로 분리해둘
수 있다. 지난 21년의 세월, 그리고 눈을 뜬 후 앞으로 펼쳐질
모든 나날로.
도시오가 전당포를 운영하는 동안 제시간에 문을 열지 않은
날은 딱 이틀뿐이었다. 두 번 모두 손님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와 아버지가 그 이틀을 입에 올리는 일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그들의 전당포가 다이아몬드며 금이며
은을 거래하는 여느 평범한 전당포와 같았다면, 대대로 이곳을
운영해온 이시카와 가족은 몸이 안 좋은 날이나 주말에 휴무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가 도시오에게 훈련받은
것은 그보다 훨씬 더 귀한 보물을 감정하는 방법이었다.
다케다 님은 저 문밖의 세계에서 오셨지요. 제 딸과 저는
문안의 세계에 살고 있어요. 문밖의 세계의 사람들이 전당포에
찾아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랍니다. 손님들은 저마다
버거운 짐이 되어버린 선택을 마음속에 품고 계시지요.
저희는 손님들이 이 선택을 손에서 놓고 더 가벼운 마음으로,
흡족하게 문밖 세계로 돌아가시도록 도와드립니다.
인생에서 내린 모든 결정을 항상 품고 다니십니다.
이 선택도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그럴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이미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꿈이 없는 삶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무엇이 결핍됐든 일상으로
열마든지 메울 수 있었고, 계획만 잘 세운다면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까무룩 잠들기 전까지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백일몽이니, 빛 바랜 소망이니, 시시한 잡념이니 하는 것들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손님들은 저마다 다른 선택으로부터 풀려나게 되니, 저마다
생각하는 자유의 맛도 다르지요. 손님에게 자유란, 비 오는 날
좋아하는 장소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즐거움처럼 위안이 되고
따스할지도 모릅니다. 반면 다음에 들어오는 손님에게 자유는
용기와 비슷한 맛일수도 있어요. 마시면 취하는, 위험하게
달콤한 맛.
자유를 한번 맛본 새는 다시 붙잡히지 않으려고 무슨 짓이든
하기 마련이거든. 시간 자체를 되돌려서 운명을 바꾸는 거야.
목적에 대한 절대적 확신.
그 목적이 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답을 찾을 때까지
이 의문의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했다.
어떤 사람의 눈을 유독 잊을 수 없는 건, 그 생김새 때문만은
아니다. 그 눈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이다. 미나토 자키 게이신이 거짓말을 고백하는 순간 하나는
그의 눈을 잊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이토록 허심탄회하게
속내 비치는 눈을 잊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가설 하나 증명하겠다고 실험실 몇 시간씩 갇혀 있는데,
연못에 뛰어들기만 하면 답이 나온다니 얼마나 수월합니까.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인생 최고의 모험을 하게 되는 거고,
사실이 아니면 홀딱 젖는 거죠 뭐.
"꿈이라고 믿어야 이 세계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렇게 해요. 하지만 진실을 보고 싶다면 ···."
하나는 어머니의 안경을 게이신에게 건넸다.
"이걸 써봐요."
"새들을 수거하러 온 것이 아니다."
시쿠인의 입에서 새어 나온 이 공허한 음성에는 열 개가
넘는 늙고 젊은 목소리들이 뒤섞여 있었다. 마지막 단어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였지만, 그 엄숙함은 가장 늙은 목소리에
뒤지지 않았다.
악몽에서 깨어나는 경우도 있고, 깨어나기 악몽인 경우도 있다.
아침은 악몽을 멈출 힘이 없다. 하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게이신이 시쿠인에게 할퀴어진 팔에 피를 흘리며 요 위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뒤틀려
있었다.
비밀은 그 어떤 냄새보다 강하고 독특한 향을 풍기거든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비밀을 품고 있으니까요.
시간을 접는 거지. 그러니까, 내 아내가 잡혀간 날 아침으로
시간을 되접을 수도 있을 거야.
현실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하는 선택이 인생행로를 결정하곤
한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미하고 사소해 보여도 그 미세한
각도 변화로 인해 다음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손님들은 선택을 전당포에 두고 떠날 때 자기가 선택한 인생을
받아들일 기회도 포기하는 거예요. 결코 끝내지 못할 여정,
결코 끝내지 못할 여정, 결코 배우지 못할 교훈만 남긴 채요.
<원모어페이지>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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