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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처음으로 죽음을 공부했습니다
김진향 지음 / 다반 / 2025년 12월
평점 :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내가 1형 당뇨를 앓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명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병은 마치 오래 참아 온 감정처럼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몸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제 그만 달려. 멈춰야 한다.
네가 살아 있다는 걸 기억해."
말이 닿지 않는 부재 앞에서조차 우리는 여전히 말하려
애써야 한다. 침묵은 슬픔의 모양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는 부서지면서도 다시 이어져야 하고,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꿰매어져야 한다. 그 불가능한 시도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죽음뿐 아니라 '살아 있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다.
죽음은 개인의 상실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기억을
다시 쓰게 한다.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기억의 형태로 남아 있는 삶의
또 다른 방식이다. 세상은 그 이름을 부르며, 애도를 통해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죽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건 단 하나, 삶을 미루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든 살아
내야 한다.
아픔은 죽음을 미리 배우게 하는 스승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려는 순간, 우리는 이미 조금 더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사랑한다는 것 또한 좋은 것입니다. 사랑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과해진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죽음을 사유할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혁명이었다. 죽음을 멀리 두지 않고 가까이 두는 일,
그것이야말로 철학의 출발이었다.
죽음을 배운다는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 아니라,
완성의 가능성을 배우는 일이다.
보카치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죽음은 막을 수 없지만,
이야기는 죽음을 견디게 한다. 웃음과 위로, 풍자와
해학은 죽음의 공포를 약화시킨다. 죽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다.
"죽음은 존재의 끝이다. 우리가 죽으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좋은 것들을 빼앗아 간다." 죽음을 단순히 사라지는
사건이 아니라, 삶의 가능성이 통째로 닫혀 버리는 일이다.
삶은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그 이유를 잃어버린 순간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죽음은 두려움의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존재를
되찾는 자리다.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삶의 진실이
선명해진다.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 표현을 통해 인간됨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쇼펜하우어는 "동정은 도덕의 유일한 근거이며,
모두 선한 행위의 원천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감은
언제나 눈물이나 언어처럼 명시적인 표시로만 확인되지
않는다.
기억은 곧 생명이다. 이름을 불러 주는 일, 노래를 건네는
일, 그것이 곧 사랑의 다른 형태다. 우리가 서로를 기억할
때,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davanbook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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