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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시스터스
코코 멜러스 지음, 심연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나의 족쇄이자 나의 생명줄인 남은 자매들에게
"블루 시스터스"는 엄연한 가족 이야기다. 하지만 동시에,
가족 안에서 우리가 많이 말하지는 않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 중독이란 것이 대를 이어 어떻게 나타나는지,
슬픔이 어떻게 우리를 갈라놓는지, 또 어떻게 하나로 모으기도
하는지, 그리고 부모의 방임을 각 자매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자매는 친구가 아니다. 원초적이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자매라는
관계를 지극히 평범하고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친구라는
관계로 줄여버리려는 욕망을 그 누가 설명할 수 있으리.
그런데도 친구란 말은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의미하는 수단으로
줄기차게,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다.
탯줄을 떠올려보자. 질기고 구불구불하며 볼품없지만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 아니던가. 그걸 화사한 색실로 엮은 우정
팔찌와 비교해 보라. 그게 바로 자매와 친구의 차이다.
원칙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에야 비로소 원칙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말이 있다. 에이버리야말로 그 말에 딱 들어맞는 예다.
그녀는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라서 종종 불편을 느꼈다.
시인이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될 수도 있었으련만, 서른셋의
나이인 지금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소명이 있으면 다른 이들과 차별점이 생긴다.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이것이 정말로 나의 소명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니에겐 복싱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러키는 현재 스물여섯 살이고 인생에서 길을 잃었다. 사실, 남은
자매들 다 그랬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살아 있는 한, 반드시 그 길을 찾는 날은 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니키가 죽은 뒤에 이 번호로 전화를 건 게 처음은 아니었다.
언니와 통화하고 싶고, 언니가 없는 삶이 어떤지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끊임없이 일었다. 죽은 언니에게 전화를 거는 건
마치 다리를 절단한 환자가 아직도 다리가 있다고 믿으면서
계속 일어서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러키의 아름다움은 그녀가 버는 돈의 원천이자 수치심의
원천이기도 했으니까. 러키는 모델 말고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자신이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기분에 시달리며
살았다. 대놓고 인정한적은 없지만, 자유로운 클리프가
부러웠다.
에이버리가 남몰래 부모님에게 뜨거운 분노를 품었다는 걸,
그 분노는 세심한 배려 아래 들끓는 마그마와 같다는 걸.
러키와 보니 둘 다 청소년기부터 부모님을 대신할 사람들을
바깥에서 찾으며 살았다.
복싱이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간의 가장 깊은 본능을
억누르고 모든 걸 바치기를 요구하는 스포츠다. 결국, 고통을
감수해야 고통을 줄 수 있는 법이다.
훈련하던 시절, 그녀는 반응과 대응의 차이가 뭔지 배웠다.
대응은 배운 기술을 사용해 경기 계획에 맞춰 공격을 냉정하고
무감하게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응은 순전히 아드레날린의
힘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보통은 계속해서 해를 입게 한다.
새벽의 햇살이 비쳐 드는 텅 빈 거실에서, 보니는 망가진 신발과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니키가 죽은 후 처음으로, 엉엉 울었다.
니키의 장례식 이후, 시간을 멈추도록 돈을 쓴 것도 에이버리였다.
그녀는 지난 1년간 뉴욕 아파트의 대출금을 부담했고, 니키의
물건을 그대로 남겨둔 채 아파트를 비웠다. 하지만 시간은 돈보다
강했다. 그 점을 에이버리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걸. 하지만 결말을 맞이 할 준비가 아직도 안 되어 있었다.
천사 같은 미모 때문에 내면의 어둠이 복잡해진 동시에 그 미모로
어둠을 숨기고 살아온 러키와 달리, 치티는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여자였다. 그녀는 부드럽고, 반짝반짝 빛나며, 우아하고
또 강인했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과 같은 결로, 치티는 영원히
아름다운 존재였다.
언니는 엄마 같았다. 러키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에이버리가 뭐라고 말했지만, 물소리와 귀를 울려대는
소리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소리는 마치
이렇게 들리는 듯했다. 넌 죽으면 안 돼. 너도 그러면 안 돼. 안 돼.
네 자매에 속해 사는 것은 참으로 마법같이 신비롭고 멋진 일
같았다. 보니는 그걸 깨닫자마자 이 세상 역시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 없어요. 동생이 세상을 떠난 건 엄연한
사실이고, 이제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죠.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에요. 여기엔 이유도 없고 숨겨진 교훈도 없고
감사하는 자세 같은 것도 없어요. 동생은 죽었고, 나는 아직도
살아 있죠.
"네가 뉴욕으로 왔다면 니키를 구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
잘 들어. 내 말 명심해.
엄마는 에이버리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격하게 속삭였다.
"넌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야."
<원모어페이지>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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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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