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의 말 - 위버멘쉬 위의 위버멘쉬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계토피아 편역 / 팬덤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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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 위의 위버멘쉬


'시인들은 비유와 궤변을 늘어놓는다.'라고 일침은

놓았던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도 학자이면서 시인이었다.

그런 만큼 <차라투스트라도 이렇게 말했다>에도 시인

차라투스트라의 비유와 궤변, 그리고 역설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지만, 솔직히 니체의

다른 책보다 독자의 입장이나 경험에서 축적된 내공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해도 좋은 책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차라투스트라를 만나애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는 우리가 현재 살고있는, 이 오류와 대립 투성인 세상에

대한 다른 시각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쓰고 차갑고 매정한 조언을

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따뜻한 조언이 위선이거나 거짓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인간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게. 차라리 그들에게서

얼마간을 빼앗아 그들과 나누어 가지시게. 그것이 오히려

인간들에게 도움이 될 거야.


일찍이 영혼은 몸을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최고의 경멸이었다. 영혼은 몸이 마르고

추해지고 굶주리기를 바란다. 그렇게 영혼은 몸과 대지에서

달아나고자 애쓴다. 그러나 영혼 자신도 마르고 추해지고

굶주렸다. 잔혹함. 그것이야 말로 영혼이 즐기는 쾌락이다.


아이는 순진무고함이며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놀이이며,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이며, 최초의 움직임이며 신성한 긍정이기

때문이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아이가 갖고 있는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비로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있다.


신앙과 도덕에 반기를 들면서 새로운 삶을 추구한 니체는

사자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니체는 궁극의 정신인 아이가

되기 위해서, 차라투스트라를 창조해냈다. 우리의 삶도 니체의

그것과 결단코 다르지 않다. 궁극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용과도 대적할 사자의 담대한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자신의 고통에서 눈을 돌리고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것,

고통받는 자에게 그것은 도취적 쾌락이다.


감각과 정신의 뒤에 존재하는 자아는 감각의 눈으로 찾고

정신의 귀로 듣는다. 자아는 지혜보다 앞선 이성이다.

자아는 몸 속에 존재하기에 우리는 고통을 느끼고, 쾌락을

느끼고, 기뻐할 수 있으며, 사유를 할 수 있다.


그대가 벗을 위해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하지 않다. 그대는 벗에게 초인을 향해 날아가는

하나의 화살, 초인을 그리워하는 동경이어야 한다.


고독은 자신에게 무작정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며, 고독은 자신의

사랑하는 길을 가는 방법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덕은 덕을 가장 사랑하는 자의

진정한 자아이며, 덕을 행하는 모든 일은 껴져가는 별에

빛을 밝히는 것과 같으며, 영혼이 밑바닥에서 나오는

진리와 같다.


지혜는 나에 대해서 나쁘게 말할 때, 내 삶을 제대로

눈 뜨게 만든다. 저 깊은 내면의 심연 속에서 올라오는

진정한 정신의 소리가 된다. 이제 비로서 지혜는 냉철한

이성이 된다.


자발적 고독은 주체적 행위이며 능동적 선택이며, 영혼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그래서 삶에서 외로움보다

고독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혼자된 마음은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한다는 마음이 만들어낸 소외감이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_fandombooks_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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