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의 대각선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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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집단의 힘을 믿는 니콜,

뛰어난 개인의 힘을 믿는 모니카,

세계를 이끄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식당 한쪽 구석에 켜져 있는 TV 스크린 위로

참사 현장의 이미지들이 끝없이 지나간다.

감염병이지,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감염병.

군집이 커질수록 악화되는 병.


전쟁 상황에서 살인자들은 적을 향한 증오심과

희생자들의 고통이 야기한 집단적 감정을 이용해

눈에 띄지 않게 살인을 저질러요. 대중의 관심이

전투와 대량 학살에 쏠려 있는 것을 교묘히

이용하는 거죠.


그녀는 군중을 죽음으로 모는 방법만 아는 게

아니라 살리는 방법 또한 알고 있어요.


난 알이야, 인간은 게임하는 동안에만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게임에 집중할 때는 유년기의 상처도,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아픈 몸에 대한 걱정도도

다 사라져. 오직 게임 그자체만 남아.


믿을 수 없어. 그가 이럴 리 없어. 더군다나

상대가 ··· <그 여자>라니. 웬만하면 감정에

휘들리지 않는다고 자신해 오던 니콜 오코너가

지금 이 순간은 동물적 분노에 휩싸인다.


다 연출이었어. 사진. 텅 빈 호텔. 열려 있던

방문. 내가 함정에 걸려든 거야.

내가 그렇게 순진하게 행동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


감정은 마약이나 다름없어요. 화학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죠. 웃음이든 분노든

오르가즘이든 간에 모든 감정에는 티핑 포인트가

존재해요.


감각 박탈. 가장 악독한 심리 고문이지.

외부에서 유입되는 감각 정보를 모두 차단하는

거야.


이게 다 그 망할 모니타 탓이야. 여기서 나가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고통이 뭔지 알게 해주지.

이제 우리 싸움은 체스 게임에서 끝나지 않아.

망할 계집애, 널 짓밟아 버리겠어. 복수하고 말겠어.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에요. 그녀는 집단에게 미래가 달렸다고

믿는 반면 나는 개인에게 미래가 달렸다고 믿으니까.


지금은 감정적으로 굴 때가 아니야. 니콜은 소피를

죽였고 나는 니콜의 아버지를 죽였어. 우리는 

상대방에게 소중한 말을 하나씩 잡은 셈이야.

그러니 게임은 이제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거지.


상대를 심리적으로 제압하는 게 우선이야. 일단

상대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어 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해야 돼.


진정한 권력은 이름도 계급장도 제복도 필요

없어요. 눈에 뜨지 않고 은밀하게 존재할 뿐이지.

그래도 굳이 하나 꼽으라면 시선일 거야.


앞이 보이지 않자 당황한 니콜이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겨 총을 난사한다. 그사이 모니키는

절뚝거리며 니콜의 옆을 지나 타고 온 말 등에

오른다.


예나 지금이나 그녀는 내 행동의 유일한 동기야.

<복수하려면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있지.

난 몇 년 동안 기다릴 만큼 기다렸어. 이제 허기를

느껴. 그녀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어.


난 백퀸이야. 양 떼를 인도하는 양치기지.

누가 도살장으로 향하고 누가 절벽 밑으로 

떨어질지 정하는 사람은 바로 나야.


사람의 물결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황토물이

흐르는 강이라고 생각하자.


물컹한 느낌에 이어 딱딱한 표면이 감지되는

순간 니콜의 눈에서 피가 솟구쳐 오른다. 

니콜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비명을 지른다.


나한테는 한 개인에 대한 복수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어. 앞으로 인류를 위해 내가 해야만

할 일이 많아. 다시는 복수심 때문에 길을 잃지

않겠어.


죽음의 천사가 앞에 서 있나 싶어 모니카가

놀란 눈으로 그의 손을 내려다본다. 낫이 들려

있지는 않다.


누가 이기는지 보자. 개인이 이길지 ··· 

집단이 이길지.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openbooks21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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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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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집단의 힘을 믿는 니콜,

뛰어난 개인의 힘을 믿는 모니카,

세계를 이끄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에게나 <네메시스>라고 부를 만한 분신이

한 명씩 있다. 이 사람은 영혼의 형제가 아니라

영혼의 적이다. 둘은 만나는 순간 서로를 알아보고

상대를 파괴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야.

지금 내 앞에 있는 어른은 어차피 나는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는 다 안다고 생각할 테니까.


동류 인간들의 호들갑과 소란스러움은 참아 내기

힘들어.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 치고 해보라지.

난 혼자 조용히 있는 게 좋아.

저런 멍청이들의 존재를 <견딜 수가 없어>.


아빠도 너랑 똑같아, 니키. 아빠 역시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늘 주변에 사람이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져. 북적북적한 게 좋아. 그리고 

이 애긴 너한테 처음 하는 건데, 지금까지 

아빠가 이룬 모든 것은 개인주의를 배척하고

집단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어.


고립된 개개인의 뛰어난 능력보다, 함께하는

집단의 숫자에서 나오는 힘을 믿어야 한단다.


둘 이상 모이는 순간 사람들은 바보가 돼요.

그 집단의 어리석음을 못 참겠어요.

숨이 막혀요.


니콜이 들고 온 토끼 인형을 바다 쪽으로 힘껏

던진다. 개가 벌떡 일어나 절벽을 향해 뛰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니콜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울타리 밖으로 나온 양들이 개를 뒤따라 사라진다.

암석 해안이 일순간에 짐승들의 사체로 뒤덮인다.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뒤따른다는 걸 알아야지.

사소한 행동이 막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

많은 사람이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래.


세상은 본래 모순 투성이야. 가난한 사람들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건 아이러니하게도

부자들이지. 과거 로베스파에르나 레닌 같은

위대한 혁명가들, 그리고 오늘날 마오쩌둥이나

피델 카스트로 같은 혁명 지도자를은 모두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어. 하지만 그들은 피착취 계급을

단결시켜 착취 계급을 굴복시키게 만들었지.


너도 봤지, 모니카. 창의력과 독창성을 지닌 인물

하나가 국제 지정학 판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거

말이야.


기도가 막히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도 당혹감이나

공포, 분노 같은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니콜은 생각한다.

은회색 눈동자가 거울처럼 맑은 아이야.

이왕 죽을 바에 이런 완전무결한 미모의 소유자에게

죽는 게 낫겠지.


장난 테러 협박 때문에 엄마가 죽었어.

엄마가 그들의 발메 밟혀 죽었어.

엄마를 타고 넘고 밟고 간 사람들··· 그리고 가짜

폭탄 테러 협박한 그놈. 모니카가 길에 우뚝

멈춰 선다.


열여덟 살에 벌써 양도 사람도 죽여 봤다는

생각이 들자 니콜이 뿌듯한 표정이 되어

가느다란 한숨을 내뱉는다. 마치 양 떼를

이끄는 목동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도망치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야. 그 근원에서

부터 매듭을 풀어야 하는 문제도 있어.


그 여성이 독창적인 테러 전술을 제안했어요.

상대의 허를 찔러 테러인지조차 모르게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모니카는 집단적 공격성과 어리석음이 만들어

낸 종말론적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무력감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


니콜이 이 장면을 지켜보며 눈을 감는다.

놈에게 남아 있는 생명의 기운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듯 숨을 깊이 들이쉰다. 누군가의 생명을 거두는

순간 묘한 쾌감이 느끼는 이유는 뭘까.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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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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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여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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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날의 추억


실은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이 절에 시집을

비치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시집?


시가 좋은지 어떤지, 나는 그런 건 모르지요.

하지만 젊은 사람이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간

글을 읽는 건 아주 재미있군요. 내일, 나한테도

한권 가져다주세요.


치후네는 경도 인지장애를 앓고 있다. 일상생활에

딱히 지장은 없지만, 이따금 기억이 뭉텅

빠져나가곤 한다. 자신의 장애를 잘 아는 그녀는

소소한 일상도 최대한 꼼꼼히 기록해 두려고 했다.

그래서 행동 기록장인 노란 수첩은 몸에서 한시도

떼어 놓지 않고 지니고 다녔다.


"물론 돈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읽고 싶은 분에게

드리는 게 더 중요해요." 유키나가 방긋이 웃으며

말했다. 천사의 웃음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라고

레이토는 생각했다.


"기념···이라고 해도 너는 모르겠네. 녹나무 안에서

기원을 올릴 때 쓰는 거야."

"아, 그거! 누나가 애기해 줬어요. 월향신사이

녹나무에 기원을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근데 그거, 미신이죠?"


녹나무의 기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예념과

수념이다.  예념은 초승달이 뜨는 초하후 무렵에

행한다. 녹나무 안에 들어가 밀초에 불을 켜고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 염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염원이 녹나무에 새겨진다.

염원을 받는 것을 수념이라고 하는데, 보름달이

뜨는 날에 행한다. 예념한 이와 혈연관계인

사람이 녹나무 안에서 밀초에 불을 켜고 예념자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그 염원이 전해져 온다.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가지는 사방으로 넓게 

뻗어 나갔고 나무 기둥 둘레는 5미터가 넘는다.

게다가 큰 뱀처럼 굵고 구불구불한 뿌리가

땅바닥을 기어가고 있다. 처음 마주 했을 때.

레이토는 그 장엄함과 박력에 압도되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휴, 강도 사건으로 체포된 사람이 그 아저씨

였다니." 역시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었구나,

라고 레이토는 생각했다. 지난번 그 200엔도

결국 가져오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명백히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넋을 잃은 사람처럼도 보였다. 녹나무의 힘에

압도된 것인지 아니면 염원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둘

다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처음으로 기념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반응이다.


"나도 잠깐 읽어 봤어, 그 시집의 독후감이더라고."

시집, 아주 좋았습니다. 시 한 편 한 편에 감동

했습니다. 정확히는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기운이 나는 시였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겠다, 노력해서 제대로 된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띠지도 풀지 않은 신권 100만 엔과 1만 엔짜리

지폐 두 장, 도합 102만 엔이었다. 그리고 동봉한

한 장의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모리베 도시히코의 머리를 내리치고 현금을

빼앗은 사람은 나다. 구메다 고사쿠 씨는 관계가

없다.


혹시 내가 범인으로 몰려 교도소에 가게 되더

라도 그 아이만 무사하다면 괜찮다. 여태까지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남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내가 누군가를 구해 줄 수 있는 기회

라고는 앞으로 평생 없을지도 모른다.


잊기 쉬운 정도가 아니라 저 아이의 경우에는

아예 기억 자체가 사라져요. 오늘 여기서 이렇게

우리를 만난 것도 아마 내일은 전부 잊어버릴걸요.


과거의 나는 재미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정말

그럴까. 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오늘의 나는 여기까지. 내일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긴다. 잘 자.


광장해요. 녹나무를 이런 이미지로 떠올려 본

적은 없지만, 이 그림을 보니까 완전히 딱 맞는

거 같아요. 맞아, 그 녹나무는 여신이야, 하고

깊이 공감하게 돼요.


나도 하루하루 버티면서 가까스로 살고 있어.

앞날을 생각해 볼 여유 따위는 없어. 내 앞에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생각하면 불안하기만

해.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어요. 모토야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게 무엇인지. 녹나무가 알려 주기 전에

우리 둘이 미리 알았어야 했어요.


후지오카는 사에코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힘주여 대답했다. "그래, 같이 해보자."

그 순간에 한때 부부였던 두 사람의 인연의 끈이

다시 맺어졌다고 레이토는 생각했다.


행복하다, 라고 생각했다. 이제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미래 같은 건 필요 없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런 건 상관없다. 그런 건 몰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지금이다.


꿈이 아니야. 실제 있었던 일이야. 네가 직접

체험한 거야. 그리고 그걸 보여 주는 건 내가

아니라 너 자신이야. 모두 다 모토야, 너의 

추억이야.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somymedia_books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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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y
강진아 지음 / 북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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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실종된 친구이 시체가

발견되었다.


"개랑 절대 놀지 마. 애가 아주 까졌어."

세 달 전 개학식날, 변민희의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나는 엄마의 말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느낀바, 까진 애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었다. 누구를 괴롭힌다든지 돈을

뺐는다든지 때린다듣지. 하지만 변민희는 친한

몇몇과 몰려다닐 뿐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 없어

보였다.


사실 변민희가 맞는 걸 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달에 형제축산에서도 개 아빠한테

맞고 있는 걸 봤다. 학교가 아닌 개인적인 공간에서

폭력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더 놀라운

것은 변민희의 반응이었다. 자기 아빠가 막대기를

제대로 쥐기 위해 시선을 돌렸을 때, 고개를 뒤로

젓히며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것은 하품이었다.


두려움의 이유는 엄마의 안광 때문이 아니었다.

내 몸을 움켜잡은 엄마의 손, 정확하게는 그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엄마의 손은 거의 항상 차가웠는데 화낼 때는 더욱

차가워져서 얼음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몸에

닿으면 소스라칠 정도로, 그 선명한 감각과 함께

나는 매번 새롭게 깨달았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후에야 엄마는 나를

묶었던 매듭이 절대 풀리지 않는 매듭이었음을

실토했다. 일할 시간을 벌기 위해 그런 짓까지

했다고 그 끝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

엄마는 언제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겼다. 엄마가

다른 존재를 딱하게 여긴 적은, 내 기억으로는

단 한번도 없었다. 딸인 나조차도 엄마 세계에서는

엄마를 불쌍하게 만든 가해자였다.


고개를 들었더니 변민희의 두 분이 나에게 꽃혀

있었다. "못 본 척 해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관자놀이

쪽으로 올라간 눈꼬리가 내려가더니 입술이

벌어지며 잇몸이 훤히 드러났다. 어제 보았던

그 미소다, 그렇게 생각 했을 때 변민희는 몸을

돌려 교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분명 두 발로

걷고 있었는데도 꼭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엄마는 빨려 들어갈 것처럼 냉동고 안으로

상체를 깊숙이 넣을 뿐이었다. 꿈쩍도 하지 않는

문손잡이를 흔들며 나는 계속 엄마를 불렀다.

몇 초 후에야 소리를 들었는지, 엄마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공포에

질린 엄마의 얼굴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몇 가지 룰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 금지, 엄마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기, 이 룰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질문을 참기 어려워서가

아니다. 그건 차라리 쉽다. 엄마가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그러니까 엄마의 마음을

알아채기가 의외로 어렵다.


"딸이 죽었는데 다 뭔 소용이겠냐?"

"죽어? 변민희가 죽었대?"

목소리가 너무 크게 나와서 나도 놀랐다.

"소문이 그렇잖아."


나는 변민희의 실종과 무관하고 한정철의

불행과도 무관하다. 의지를 다지듯 속으로

여러 번 반복했다.


'백골이 된 변민희 향, 15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가.' 헤드 카피는 이랬다. 금영산에서

아파트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시신은 변민희였다.


인식하기 시작하자 변민희는 걷잡을 수 없이

증식했다. 나를 바라보던 변민희의 눈, 

쩍 벌어지며 하품하던 입술, 미화부장의 빨간

mymy, 볼에 커다란 점이 있던 남자, 변민희와

남자가 탔던 오토바이 ..


사진 속 시커먼 뼈의 모양이 두 눈에 박혔다.

양팔이 등 뒤에서 만나고 있었고 손으로 짐작되는

부위에는 굵은 밧줄이 엉켜 있었다. 이걸 보고

자살이라거나 사고사라는 말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렇구나, 살인이구나.


"너는 양심이라는 게 아예 없구나?"

나는 양심이 없는 게 아니라 재능이 있는 거야,

속아 넘어간 선배는 재능이 없는 거고.


민희 아빠는 그날 가게에 없었다는 거거든?

승완 오빠랑 민희 아빠, 둘 중에 하나가

거짓말한다는 거잖아. 너는 누가 범인같아?


엄마가 있다는 사실 외에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만 있으면 돼. 그래,

엄마만 있으면 다 괜찮은 거야. 스스로에게

가르쳐주듯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 혼자 아무 죄도 없는 엄마를 지키겠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일을 벌인 건 아닐까?


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인

거라고.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vook_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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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
서정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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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직접 해주는 위로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림은 좋은 대안이 됩니다. 사람보다 더 좋은 점도

있습니다. 언제든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위로 받을

수 있고, 또 나를 위로해주었다고 보답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프리다 칼로가 탄 버스의 기사가 운전 미숙으로

교차로에서 도심 전차와 충돌해 튕겨 나가는

대형 사고를 냅니다. 이 사고로 프리타 칼로는

꼼짝없이 3개월 동안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으며, 척추가 여러 군데 탈골되는 바람에 9개월

동안 석고 보정기를 끼고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다 극복하고 현실에 맞섭니다.

사고의 순간을 그리기로 한 것이죠.


<자화상-시간은 날아간다>

그녀에게는 시간이 빨리 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머리 바로 왼쪽에 자명종

시계를 그려놓았습니다. 이는 시간을 뜻합니다.

그녀는 머리 위에 프로펠러가 담긴 비행기도 하나

그렸습니다. 파란 하늘 위에 비행기가 급부상합니다.

둘을 합치면 '시간은 날가간다'입니다.


프리다 칼로는 '나는 특별하고, 나이도 어리니 남편이

딴 여자에게 눈을 돌릴 수 있겠어?'라며 자신감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디에고 리베라는 자신이

누구인지 바로 인식시켜줍니다. 또 다른 여자와 연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죠.


크리스티나는 칼로와 친밀하게 지내던 바로 아래

여동생이었습니다. 둘의 관계는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세 번이나 유산을 한 직후에 알게 된 일입니다.

그 이후 프리다 칼로는 육체적 고통을 더해 마음의

통증까지 겪어야 했고, 그 심정이 그려진 작품이

<추억(심장)>입니다.

그림 속의 여자는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냐고요? 심장이 너무 아파 몸 밖으로 

빼놓고 싶은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칼로

심장을 잘라 꺼내버렸습니다.


<두 명의 프리다>이 작품이 소개 되었을 때 

미술 전문가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대단한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어떻게 미술 중심지도

아닌 멕시코에서 활동하던 여류 화가가 최신 유행인

초현실주의 작품을 이토록 독특하게 그릴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이죠.

오른쪽에 그려져 있는 프리다 칼로는 현재의

프리다 칼로를 위로하는 프리다 칼로입니다.


<숲속의 두 누드>가 그려진 1939년은 프리다

칼로에게 가장 슬픈 해였을지도 모릅니다.

디에고 리베라와 이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혼의 원인은 그의 끊임없는 배신입니다.


<우주, 대지(멕시코), 디에코,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멕시코 신화에 의하며 우주는 두 가지로 나뉘어서

순환되고 있습니다. 낮과 밤, 태양과 달입니다.

프리다 칼로는 이 그림의 가장 바같 부분에 

우주를 그렸습니다.


내 인생에는 두 번의 큰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어린 시절 겪은 전차 사고고, 하나는 디에고

리베라를 만난 것이다. 디에고 리베라는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그림 가운데에 구릿빛 철제 침대가 있습니다.

하얀 시트만 깔려 있는 그 위에는 선홍빛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벌거벗은 여자가 있습니다.

1932년 7월, 프리다 칼로는 유산을 했습니다.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뒤섞인 것이 이 작품

<헨리 포드 병원>입니다.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따라 미국에 도착한

프리다 칼로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습니다.

조용하던 멕시코와는 다르게 소란스럽고,

화려하고 역동적인 미국 풍경에 깜짝 놀란

것입니다. 그때의 당혹감과 혼란함을 캔버스에

옮긴 작품이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선 위에

서있는 자화상>입니다.


프리다 칼로가 37살에 그린 <부러진 척추>는

그녀가 자신이 겪은 육체적 고통을 그린 것입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그녀의 육체적 고통을 상상으로

느껴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화가들이 그녀를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말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그녀의 작품은 매우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릴 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을 하며 그렸기 때문에 많은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zozo_woom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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