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가라사대, 우리는 모두 별이다 - 2024 뉴베리 아너상
에린 보우 지음, 천미나 옮김 / 밝은미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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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에게, 당신들은 모두 별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매번 똑같은 질문이다.

우리더러 왜 국립 전자파 제한 구역으로 왔냔다.

무슨 이유가 필요하다는 듯, 아니, 인터넷도

안 되고 휴대 전화도 안 되고 티브이도 안 나오고

라디오도 안 되는 동네를 마다할 사람도 있나?


당연히 사연은 있다. 그래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이렇게 답한다. 우리 가족은 알파카 때문에

오마하에서 쫓겨났다고.


큰 성당이 있다는 말은 아빠를 위한 일자리도

있다는 소리니까. 게다가 난 오마하 사건으로부터

도망칠 수만 있다면 화성으로라도 떠났을 사람이다.


또 있어, 우리 엄마가 '도살장 아들들'을 샀거든.

오래된 장례식장 알지? 농담 아니야.

그 장례식장 이름이 진짜 그래.


너 사이먼이지, 전학생. 난 아게이트야.

내가 먼저 말할게. 인간의 속눈썹에만 살도록

적응한 모닝진드기. 지금 네 속눈썹에도 있어.

집 먼지의 90퍼센트는 사람의 피부야.


좋아. 네 차례. 가장 역겨운 거?

역겨운 것들을 내가 몰라서가 아니라 

그 후보를 좁히기가 어려운 게 문제다.

시체 방귀. 많이 뀌어, 실제로.


엄마의 일을 보조하는 커티스 아저씨는

그앤베에서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요소중

하나다. '예쁜 가시'처럼 이 집과 함께 딸려 왔다고

해야 하나, 공교롭게도 마을 화장장 주인인 허셜

그룹시크의 조카이 아들이기도 하다.

문제는 커티스 아저씨가 일을 진짜 못한다는 거다.

그냥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꽝이다.


좋다. 지금까지 난 '가짜 외계인 메시지를 만들기

대작전'이라는 그 대작전에 장단만 맞추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이걸 나의 '사이먼 가라사대'

모드라고 부른다.


망원경이지만 이렇게 코앞에서 본 적은 처음이다.

마을에서 봤을 땐 이쑤시개로 만든 망원경 갔더니,

바로 앞에서 보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거대하다.

그앤베 사람들은 통해 듣기로는 '매우 큰 전파 망원경'

-현지인들은 '큰 귀'라고 부른다.


반려동물로 준 건 아니에요. 우리 집에서 도우미견

프로그램으로 강아지들을 키우거든요.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사회화가 필요해서요.

이 강아지는 수컷이고 사이먼의 트라우마와 불안에도

좋을 거예요.


음, 그런데 말이다, 아게이트. 이건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 아저씨가 아줌마하고 먼저 의논을 해 보고.


에뮤 초원과 거대 망원경 사이에서 아게이트와

단둘이 있을 땐 외계인 애기가 아주 이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여기선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난 지금이란 결코 없을 것 같다.

언제까지나 지금 이전과 지금 이후만 존재할 것 같다.


목줄을 차고 겅중거리는 헤라클레스를 데리고

우리는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갔다. 뭐랄까, 우리는

특별히 조심스럽게 걷는 중이었다.


2년 전, 나는 문이 하나밖에 없는 3층 교실에 갇혀

나올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걷고 있다.

우리는 걷고 있다.


살다 보면 그냥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갑자기 여름 날씨가

되어 버린 오늘처럼.


그 총기 난사 사건? 2년전, 이글 크레스트 초등학교?

"그거 나였어."


"거기 한 아이가 있었어. 그 반에. 반 아이들이 교실

뒤 비품함에 다 숨어 있었는데. 범인이 그 문을 열자

우르르 바닥으로 쏟아져 나왔어. 그중에 맨 밑에

깔린 애가 한 명 있었는데 ···, 그 애는 죽은 척했어.

죽지 않고 산 아이가 있었어."


"사이먼, 너 지금 공황발작 온 거지?"

사이렌 소리는 어마어마하게 요란하다. 너무 커서

나를 삼켜 버릴 것만 같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공기가 파랗고도 기이하게 느껴진다.


어벤져스 합체 기념 첫 임무로 우리는 케빈네 집

전자레인지를 훔쳤다.


아게이트가 발끝으로 서서 퉁퉁거리며 말했다.

"전파 천문학자들 난리 나겠다! 내일이 되면!"

내일이 되면.

모든 게 완벽하다.


실종된 시신, 드디어 발견

성 바르바라 성당의 다람쥐들

끈질긴 비극의 희생양이 된 지역 고등학생

내 이야기다.


그런데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삶의 장면 같은 건

없었다. 둘 다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스카이다이버들

처럼 서로를 붙잡았다. 손목과 손목을, 손에 손을.

그리고 우리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balgeunmirae1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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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나는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이서원 지음 / 나무사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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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살겠다는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나의 답이다.


사람의 일생은 고통과의 싸움이다. 고통이 선행되지

않는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었다.

이런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려면 자신만의 인생

공식이 필요하다.


오십 이전이 남의 이유로 남의 삶을 사는 시간이라면

오십부터는 나의 이유로 나의 삶을 사는 시간이다.

20대에 남들이 감탄하는 가장 예쁜 옷을 입었다면,

30대는 남들과 다른 개성있는 옷을 입었고, 40대는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


나의 삶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못 사는 것처럼

보여도 나답게 살아왔기에 후회가 없고 충만하다.


마음의 주인이 되는 시기의 감정은 잔잔함이다.

특별히 즐거운 것도 괴로운 것도 없이 담담해진다.

오십 이전에는 무슨 일이 생겨야 즐겁지만 오십

이후에는 무슨일이 생기지 않아야 편안하다.

행복의 조건이 정반대가 된다.


인생 2막에서 가슴 셀레는 삶을 살 것인가,

약해지는 몸을 한탄하며 살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어떤'이 지닌 의미가 무겁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떤'이다.


강사로서 삶의 철학은 하나였다. 내가 경험하고

깨달은 것만으로 강의한다. 아는 척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책을 읽는 세월이 쌓여가다가 어느 순간 책은

현실의 이야기와 어우러지며 나만의 삶에 대한

원리로 변환되었다.


사람이 할 일이 없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아 늙는다. 시야를 넓히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는 해야만 하는 일에서

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때다. 이제는 더이상 남의 일을 하지 않고, 남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황금기에 당도한 것이다. 그것을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는 얼마나 일에 대해 열린

시선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로 정해진다.


나는 교수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건 평소

나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 때문이었다.

세 가지 질문은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필요로 하지만,

누구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다.


나는 나에게 친절하다. 자기 친절은 남과 세상에

친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행복은 남을 대할 때 나처럼 그도 행복하기를 빌며

상대방에게도 친절하게 대한다.


지금 현실이 힘들어도 내일은 조금 나아질 거라는

희망과 기대를 품고 오늘을 버티고 견디는 것이

사람이다.


서로의 행동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지옥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서로의 행동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순간 천국에서 살기 시작한다.


무엇이 혼자 있는 것을 즐겁게 할까, 그건 자기를

좋아하고 자기에 대해 궁금해하면 된다. 

자기 자신은 평생 그 속을 들여다보아도 질리지

않는 유일한 존재다.


감정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다.

눈물로 감정을 살릴 때 감정도 우리 몸과 마음을

살려낸다. 잘 울어야 잘 웃을 수 있다.


하고 싶은 말만 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나면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궁금해지면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의 결과가 좋은 말이다.


사랑이란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저는 내일만 바라보고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여기 사는 40년간 하루도 걱정과 불안 없이 지낸

적이 없었는데 캐나다 사람들은 저랑 달라요.

여기 사람들은 오늘만 바라보고 살아요.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련이 남지

않고 후회가 남지 않는 하루를 사는 것이다.


선택은 내 삶에서 나만의 길을 만든다. 틀린 길은

없다. 서로 다른 개성의 길이 있을 뿐이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tree42book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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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의 시작
치카노 아이 지음, 박재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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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소재, 신선한 감각


빨간 입술에서 한숨과 함께 연기가 천천히

뿜어져 나왔다. 너무 조심스레 연기를 뱉어내니까

선생님은 빨아들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뱉고

싶어서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예전에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소문을 내는 동급생들의

얼굴에는 선생님에 대한 혐오감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흥미로운 뉴스처럼 받아들였다.


왜 성매매업소를 관두고 교사가 되었을까?

3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그런 게 궁금해진

이유는 엄마가 출장 성매매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혼처라기보다는 돈벌이할 곳, 지금까지 나를

위해 성매매를 해온 엄마가 이번에는 나를 위해

누군가의 아내가 되려고 한다.


엄마의 직업에 신경 쓰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황금연휴가 끝나고 학교에 갔을 때, 쇼가

모멸에 찬 눈으로 칠판을 가리켰다.

심장이 철렁했다. 시선을 사진에서 종이로 겨우

돌린 순간, 또다시 심장이 크게 크게 고통쳤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을 쥐어짜는 듯 숨이 막히고 토할 것만 같았다.


"미안해"

잠긴 목소리로 사과하는 말을 들으니 울음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눈물이 복받쳐

흘러넘치기 전에 아직 덜 녹아 딱딱한 젓가슴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필사적으로 빨아 먹었다.

엄마는 더럽다. 그 아들인 나도 더럽다.


나의 남부럽지 않은 생활은 성매매 덕분에

유지되었고, 나는 그 사실을 닭튀김과 함께

목구멍으로 삼켰다.


결국 나는 내가 엄마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해한 척하며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면 모처럼 말을 꺼내려던

용기가 꺽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문제로

친구를 잃은 일, 엄마가 업소를 그만둔 일,

종이학을 접는 일, 하지만 다시 생계를 위해서

업소로 되돌아간 일, 선생님은 내말을 한 번도

자르지 않았다.


생일날마다 생각났다. "나 따위를 낳지 말았어야지"

라는 내 말과 둥글게 움츠린 엄마의 등. 그때 나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내가 상처 입은 만큼

엄마가 상처 입을 만한 말을 찾았다.


어떤 미안함도 지금은 아직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생일날에는 낳고 키워줘서

고맙다고 말할 것이다. 무당벌레 컵 세 개를 사서

언젠가 꼭 그렇게 하리라.


처음에는 누런 봉투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일부를

팔아버린 것 같은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일에 대한 긍지도,

일하는 보람도, 아무것도 없다.


차갑고 딱딱한 손끝이 빰을 스쳤다. 손을 뿌리친

아빠가 뿌리쳐진 나보다 더 상처 입는 듯한,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더러워, 만지지 마."

조용한 목소리에는 확실한 혐오감이 배어 있었다.


성매매 여성에게 "왜"는 없다. 자살해도 "역시",

사건을 일으켜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불상사가

일어났다 해도 일반인처럼 "그 사람이 왜"라고 하지

않았다. 이유는 "성매매 일 따위를 하니까 그렇지"로

완결 되었다.


3년 전에는 불안정한 지반 위에 혼자 서있지 못해

도망쳤다. 하지만 이제는 이 종이학을 펼치면 연락

할 상대가 있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종이학을 지갑

속에 소중히 간직했다.


우리는 타인이다. 과거도 미래도 공유하지 않는,

오직 '지금'만 존재하는 관계다. 그가 나에게 한

이야기나 내가 그에게 한 이야기도 진실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익명의 관계이기에, 원하면 언제든

끊을 수 있는 관계이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친민한 타인이다.


배 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날뛰기 시작했다.

슬픔인가, 억울함인가, 분노인가, 그 덩어리는

몸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여러 번 딱은 눈가가

따끔거렸다. 누구 탓일까? 누구 때문에 내가 이런

일을 겪는 걸까?


난 그냥··· 나 같은 사람 옆에 있고 싶었을 뿐이야.

모든 사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옆에 누군가가 없으면 불안한 사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아무리 대화를 나눠도 그 골은

메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말이 오갈수록 그 골은

점점 더 깊어졌다.


단골이 된 그는 나를 만나러 올 때마다 호타루는

내 도피처고, 내가 의지할 곳이라고 했다.

나는 만족감을 느꼈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세계에서 한 발이라도 나가면 두 번 다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돈 때문이 아니다. 편해서도 아니다. 그저 나 같은

애를 필요로 해주고 내가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을 뿐이다.


이 아이가 태어나면 넓은 집으로 이사 가야지.

누군가가 해주기를 바랐던 일과 해주지 않은 일도

전부. "처음으로 사는 게 기대됐어요."


아, 그렇구나. 나는 계속 구해다라고 말하고 싶었구나!


우린 모두가 주름투성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협하고 서로 양보하며, 이해한 척하기도

하고 뭔가에 매달리거나 손을 놓기도 하고, 수많은

그런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wedonbooks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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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원소로 읽는 결정적 세계사 - 세상 가장 작은 단위로 단숨에 읽는 6000년의 시간
쑨야페이 지음, 이신혜 옮김, 김봉중 감수 / 더퀘스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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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가장 작은 단위로 단숨에 읽는 

6000년의 시간


에스파냐인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아메리카로

향한 이유는 '황금'이라는 단어의 저주에 결렸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폰 엥겔스>


금 약탈이라는 광기에 휩싸인 식민지 지배자들

앞에서 규칙이란 약육강식의 법칙을 설명하는

단어에 불과했다.


도대체 금에 어떤 마력이 있기에 수많은 사람을

이토록 미치게 했을까? 바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문명이 금을 최고 권력의 상징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을 찾아내고 많은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았다.


발보아, 신대륙에서 수년간 정복 전쟁을 치른

용맹한 인물은 인디언의 독화살이 아니라

반역죄하는 명목으로 수하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금의 저주는 계속되었다. 금 때문에 목숨을 잃는

발보아와 멸망한 잉카 제국처럼 피시로와 

알마그로의 운명 역시 금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539년에 알마그로는 전리품을 공평하게

분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사로와 사촌 형에게

살해당했다. 2년 후,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알마그로의 심복이 피사로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귀금속은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루테늄, 로듐,

팔라듐, 은, 오스뮴, 이리듐, 백금, 금, 총 여덟 개의

원소를 가리킨다. 이 금속들은 지구에서 보기 드물고

채구하기도 어려워 자연스럽게 귀한 대접을 받는다.


금은 쉽게 썩거나 부식되지 않아 여러 산업 부문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지만 가장 독특한 능력은 따로 있다.

모든 원소 중에서 외부의 충격에 깨지지 않고 늘어나는

성질인 가단성이 제일 뛰어나다.


인류 문명에 관한 이야기할 때 구리는 빠트릴 수 

없는 원소다. 구리는 물질이 다른 물질과 반응하는

정도인 활성도가 금, 은보다 훨씬 높다.


구리의 뛰어난 능력 덕분에 오랫동안 묻혀 있던

대형 청동솥들은 표면이 산화되어 특유의 

푸른빛으로 변한 것을 제외하면, 모양이 변형되거나

깨지지 않고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청동은 합금이라는 글자 그대로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원소로 만들어진 물질로서 그 속에는

적어도 한 개 이상의 금속 원소가 들어 있지만

원소들 사이에서는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바위는 규소라는

원소와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규소는 지구 지각 내 원소 존재비가 27퍼센트에

달해 산소 다음으로 흔한 원소다.


유리는 어떻게 투명해지는 걸까? 금속과 달리

규소 원자와 산소 원자로 이뤄진 구조에서 전자는

가시광선과 같은 진동수로 진동하지 않는다.

햇빛을 받은 유리에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유리는 자외선을 흡수하지만 인간의

눈에 자외선이 보이지 않아서 아무 변화도 보지

못할 뿐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모든 섬유는 탄소 원자로 구성된

유기 고분자다. 탄소는 지구상에서 풍부하기는 커녕

상위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원소다. 그런데도

탄소가 상대 원자 질량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 것은

화학적 성질이 매우 특수하기 때문이다.


휘발유와 경유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연료유는

대부분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유기화합물인

탄화 수소에 속한다. 탄화수소가 공기와 접촉해

산화하면 수소 원자는 물로 바뀌고 탄소 원자는

이산화탄소로 바뀐다.


타이타늄이 없었더라면 고성능 초음속 비행기

제작도 불가능했으리라. 타이타늄 합금은 가볍지만

단단해서 비행기 동체 표면, 날개 골격, 날개 표면,

착륙장치, 꼬리 날개 보호덮개 부품, 앵커 볼트,

베어링부터 자석 간격 조절을 위해 사용하는 좌석

가이드 레일까지 비행기의 거의 모든 부분에 사용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엔진에 타이타늄이 

사용되면서 비행기 산업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바닷물을 이겨내는 금속 중에서 타아타늄만

유일하게 선박 제조에 사용 할 수 있다. 지구 지각 내

원소 존재비가 아홉 번째에 이르는 타아타늄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납, 아연, 구리보다 양이 많다.


오늘날에는 매년 수백만 톤의 타이타늄이 인체 

삽입물로 가공될 정도로 타이타늄 합금 인공관절

치환술은 매우 흔한 수술 방법이 되었다.


과학자는 본인 한 사람의 생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수천 명의 지혜를 종합해낼 줄 알아야 한다.

<어니스트 러더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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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부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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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와 공포,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란포 세계’, 각 장을 마칠 때마다 기괴한 전율이 

당신과 함께한다.


독한 악인도 죽을 날이 가까워져 오면 착한

사람이 되나 봅니다. 제가 만일 그 죄를 자백하지

않고 죽는다면 제 아내가 너무도 가엾습니다.


그 것보다 더 전에 또 한 사람을 죽인 일이 있습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참으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건 바로 제 형입니다.


저는 마침내 제 육체를 들여다보는 것도 두려워

졌습니다. 죽은 형과는 주름 하나, 근육 하나까지도

똑같은 이 육체가 너무도 무서워졌습니다.


저와 똑깥이 생긴 쌍둥이의 목을 휘감아 죽을힘을

다해 미친 듯이 졸랐습니다. 마침내 새빨갛게

불어오른 목이 반쯤 제 쪽으로 돌아오자, 허옇게

뒤집힌 눈가로 제 얼굴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그 얼굴은 죽어도 못 잊을 겁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혈육을 증오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 감정에 대해서는 소설책 같은 데서도 자주 나오는

걸 보면 오직 저 혼자만 느끼는 감정은 아닌 것 같은데,

타인에 대한 그 어떤 증오보다도 한층 더 견딜 수 없는

종류인 것 같습니다.


=====


유희라는 것은, 갑작스런 말씀이라 놀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 살인입니다. 전 그 유희를 발견

하고는 지금까지 오로지 권태로움을 털어버리고자

무려 100여 명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린애들 모두 말입니다.


절대로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살인, 셜록 홈즈라도

알아낼 수 없는 살인이라니, 정말 눈이 번쩍 뜨이도록

더없이 근사한 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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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 만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내는 바람둥이였습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 모습을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려면 지금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준비해 둔

송곳을 아내의 향기로운 목덜미에 있는 힘껏 

찔러 넣었습니다.


내 눈앞에 놓인 유리관 속에는 여자의 얼굴이

들어있었다. 앞니를 다 드러내고 방긋 웃고 있는

그녀. 밀랍으로 세공된 소름 끼치는 종기 속에..


=====


한마디로 의자가 한 사람의 방이 된 셈이지요.

전 셔츠만 걸치고 밑바닥에 장치한 출입구를 열고

의자 속으로 기어 들어 갔습니다. 

참으로 기묘하더군요.


캄캄한 절벽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가죽 속 세상.

아 얼마나 야릇하고 매력적인 곳입니까! 그곳에서는

사람이란 것이 평소 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생물처럼 느껴집니다. 목소리, 콧소리, 발소리,

옷 스치는 소리, 그리고 몇개의 둥글둥글한 탄력 있는

살덩이로 이루어진, 단지 그것뿐인 생물 말입니다.


의자 속 사랑! 그게 얼마나 짜릿하고 매력적인지

들어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오직 감각과 청각,

그리고 얼마 안 되는 후각만의 사랑이고, 어둠 속

세계의 사랑입니다. 결코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악마가 사는 세상의 애욕이 아니겠습니까?


=====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병석에서 일어난 듯 핏기

없이 초췌한 그녀의 추악한 얼굴이 드러났다.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내 눈은 저절로

그녀의 허리께로 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니다 다를까, 뼈만 남은 굶주린 개처럼 금방이라도

접힌 듯이 폭삭 꺼져버린 그녀의 납작한 배가 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


"아아, 숨바꼭질을 하고 계셨군요. 정말 유치한 

장난을 다 하시고 ···, 그런데 어째서 이 자물쇠가

잠겨버렸답니까?"

그녀는 쇠고리를 풀어 뚜경을 쌀짝 들어 올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원래대로

꾹 누르면서 재차 자물쇠를 걸어버렸다.


훗날 무참한 남편의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오세이를

가장 괴롭했던 것이 바로 이 뚜겅을 들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약하기 이를 데없던 남편의 손힘

이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thebooks.garden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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