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점의 시작
치카노 아이 지음, 박재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격적인 소재, 신선한 감각


빨간 입술에서 한숨과 함께 연기가 천천히

뿜어져 나왔다. 너무 조심스레 연기를 뱉어내니까

선생님은 빨아들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뱉고

싶어서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예전에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소문을 내는 동급생들의

얼굴에는 선생님에 대한 혐오감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흥미로운 뉴스처럼 받아들였다.


왜 성매매업소를 관두고 교사가 되었을까?

3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그런 게 궁금해진

이유는 엄마가 출장 성매매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혼처라기보다는 돈벌이할 곳, 지금까지 나를

위해 성매매를 해온 엄마가 이번에는 나를 위해

누군가의 아내가 되려고 한다.


엄마의 직업에 신경 쓰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황금연휴가 끝나고 학교에 갔을 때, 쇼가

모멸에 찬 눈으로 칠판을 가리켰다.

심장이 철렁했다. 시선을 사진에서 종이로 겨우

돌린 순간, 또다시 심장이 크게 크게 고통쳤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을 쥐어짜는 듯 숨이 막히고 토할 것만 같았다.


"미안해"

잠긴 목소리로 사과하는 말을 들으니 울음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눈물이 복받쳐

흘러넘치기 전에 아직 덜 녹아 딱딱한 젓가슴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필사적으로 빨아 먹었다.

엄마는 더럽다. 그 아들인 나도 더럽다.


나의 남부럽지 않은 생활은 성매매 덕분에

유지되었고, 나는 그 사실을 닭튀김과 함께

목구멍으로 삼켰다.


결국 나는 내가 엄마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해한 척하며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면 모처럼 말을 꺼내려던

용기가 꺽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문제로

친구를 잃은 일, 엄마가 업소를 그만둔 일,

종이학을 접는 일, 하지만 다시 생계를 위해서

업소로 되돌아간 일, 선생님은 내말을 한 번도

자르지 않았다.


생일날마다 생각났다. "나 따위를 낳지 말았어야지"

라는 내 말과 둥글게 움츠린 엄마의 등. 그때 나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내가 상처 입은 만큼

엄마가 상처 입을 만한 말을 찾았다.


어떤 미안함도 지금은 아직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생일날에는 낳고 키워줘서

고맙다고 말할 것이다. 무당벌레 컵 세 개를 사서

언젠가 꼭 그렇게 하리라.


처음에는 누런 봉투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일부를

팔아버린 것 같은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일에 대한 긍지도,

일하는 보람도, 아무것도 없다.


차갑고 딱딱한 손끝이 빰을 스쳤다. 손을 뿌리친

아빠가 뿌리쳐진 나보다 더 상처 입는 듯한,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더러워, 만지지 마."

조용한 목소리에는 확실한 혐오감이 배어 있었다.


성매매 여성에게 "왜"는 없다. 자살해도 "역시",

사건을 일으켜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불상사가

일어났다 해도 일반인처럼 "그 사람이 왜"라고 하지

않았다. 이유는 "성매매 일 따위를 하니까 그렇지"로

완결 되었다.


3년 전에는 불안정한 지반 위에 혼자 서있지 못해

도망쳤다. 하지만 이제는 이 종이학을 펼치면 연락

할 상대가 있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종이학을 지갑

속에 소중히 간직했다.


우리는 타인이다. 과거도 미래도 공유하지 않는,

오직 '지금'만 존재하는 관계다. 그가 나에게 한

이야기나 내가 그에게 한 이야기도 진실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익명의 관계이기에, 원하면 언제든

끊을 수 있는 관계이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친민한 타인이다.


배 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날뛰기 시작했다.

슬픔인가, 억울함인가, 분노인가, 그 덩어리는

몸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여러 번 딱은 눈가가

따끔거렸다. 누구 탓일까? 누구 때문에 내가 이런

일을 겪는 걸까?


난 그냥··· 나 같은 사람 옆에 있고 싶었을 뿐이야.

모든 사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옆에 누군가가 없으면 불안한 사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아무리 대화를 나눠도 그 골은

메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말이 오갈수록 그 골은

점점 더 깊어졌다.


단골이 된 그는 나를 만나러 올 때마다 호타루는

내 도피처고, 내가 의지할 곳이라고 했다.

나는 만족감을 느꼈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세계에서 한 발이라도 나가면 두 번 다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돈 때문이 아니다. 편해서도 아니다. 그저 나 같은

애를 필요로 해주고 내가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을 뿐이다.


이 아이가 태어나면 넓은 집으로 이사 가야지.

누군가가 해주기를 바랐던 일과 해주지 않은 일도

전부. "처음으로 사는 게 기대됐어요."


아, 그렇구나. 나는 계속 구해다라고 말하고 싶었구나!


우린 모두가 주름투성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협하고 서로 양보하며, 이해한 척하기도

하고 뭔가에 매달리거나 손을 놓기도 하고, 수많은

그런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wedonbooks

@chae_seongmo


#시작점의시작 #치카노아이

#책읽는수요일 #소재 #감각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성매매 #엄마 #아내 #선생님

#전업주부 #모멸 #용기 #상처

#미안함 #죄책감 #혐오감 #왜

#관계 #타인 #진실 #분노 #필요

#책 #도서 #독서 #철부지아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