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핸디북 세트 - 전10권 태백산맥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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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전에 나와 많은 이들이 읽었고 많은 평이 있고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책을 나는 참 뒤늦게야 읽었다. 잠깐 들었다가 도저히 안 읽히는 1권에 항복하고 내려놓은 게 어연 10여 년 전, 그런데 이번엔 술술 읽히는 것은 역시 그때는 읽을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 문득문득 손에서 놓고 한숨 쉬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혼자서 종주한다고 찾았다가 큰코 다쳤던 지리산이 떠올랐다. 참 좋구나 생각하며 돌아보았던 그 산새마다 많은 사람들의 피가 스며들었겠지. 그땐 그저 산을 보느라, 산을 오르고 걷느라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뒤늦게 마음이 숙연해지고 아팠다. 

염상진, 김범우, 정하섭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이 있고 주관이 뚜렷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심재모와 하대치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소화와 외서댁에게 가장 몰입했으며, 제일 흥미로웠던 사람은 이근술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순사 노릇을 하다 해방을 맞아 움츠러들었다가 미군정에 의해 다시 경찰이 되고, 인간적인 도리로 내린 판단 때문에 겨우 죽음을 면하고 뻥튀기 아저씨가 되었다가 서민영 선생의 부름으로 야학에 들어간 사람. 비중은 작은 조연이지만, 내가 소설 속 상황에 실제로 살았다면 이근술 같은 행동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랑받는 게 최고였던 외서댁이 모진 시련을 다 겪고 빨치산이 되었을 때는 참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의 인생이 안타까웠지만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모습은 통쾌했고, 그렇지만 또 슬프고.... 인생사가 그런 것일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건 소설보다 현실이 더 그러하니.

그리고 한편으로,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피눈물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구나 하는 분노와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서글픔을 느끼며,

세상이 왜 이 모양일까 입으로만 분노하지 말자는 다짐도 하게 된다.

내가 사는 시대가 난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세상은 늘 난세였다.

결국 삶이란 투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죽은 이들의 생은 절대 허무하지 않다. 

글이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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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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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황정은 <상류엔 맹금류> 조해진 <빛의 호위> 최은영 <쇼코의 미소>가 좋았다. 황정은의 글은 그 서늘함에 울컥했고, 조해진과 최은영 것은 읽으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즐거운 작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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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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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까, 인간은 진정 변할 수 있을까...? 추리 소설의 여왕 크리스티의 미공개 작품이 출간되었다. 배경은 악천후로 발이 묶인 호텔, 등장인물은 주인공 혼자일 뿐이고 별다른 사건도 전개되지 않는데 읽는 내내 마음이 서늘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성공한 남편과 세 자녀를 둔 부인이 딸의 집에 갔다 집으로 돌아온다. 집, 가정, 익숙하고 편한 작은 천국. 그곳으로 무사히 돌아온 것이다. 예정보다 길어진 체류기간 동안 마음이 어지러웠지만 그럼에도 무사히, 변함없이. 

크리스티가 추리 소설의 대가인 건 기발한 트릭이나 예상치 못한 범인 등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무엇보다 인간의 내면을 너무나도 잘 파악했다. 할머니 탐정 미스 마플이 작은 시골 마을에 살면서도 사건을 꿰뚫어보고 범인을 지목할 수 있던 것도 그와 같다. 판이하게 다른 것 같지만 그 가장 깊은 곳을 들어가면 결국 대부분이 거기서 거기인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 비밀을 알아버렸기에 그가 쓴 소설을 매력적이지만 그의 인생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나와 타인의 가장 약하고 추한 면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인생은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크리스티의 새 작품을 본 것은 큰 즐거움이지만 그의 삶은 다시금 나에게 의문을 던진다. 어쩌면, 책을 덮으며 나는 과연 어떤가 돌아보면서도 그 한편에는 너무 깊이 알지 않기를, 나의 행복을 깨뜨리지를 않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마음인지. 이 얼마나 가련한 인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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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도정일 산문집 도정일 문학선 1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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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씨네21에 쓰신 칼럼 중 <바람의 비밀>이 있었어요. 도시에 막 발을 내딘 시골아이에게 큰 위로가 되었죠. 스크랩해놓고 그뒤로도 가끔 읽곤 했는데 책으로 보게 되다니 정말 기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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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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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갑자기 난독증에 걸린 것처럼 글자들이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책벌레는 아니어도 삶의 순간순간을 채워준 것이 책이었는데, 어찌하여 나는 책과 서먹하게 겉돌고 있는가 풀리지 않는 의문만 커져 가는데 답은 모르겠고. 꾸역꾸역 책장을 넘기기는 했지만 어느 글자 하나 두개골조차 넘지 못했다.

왜 그렇게까지 힘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지금까지와 다른 변화가 있었다. 그로 인해 내 삶이 변하고 있었고 그 과정은 즐거운 만큼 혼란스럽고 때로 힘들었다. 언제나 심심한 적 없던 나였는데 무엇 하나 즐겁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찌질한 인간이었나 혹은 내가 미친 걸까 같은 생각만 머리에 꽉 차서 사실은 무척 우울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 탓인 건가 싶으면서도 전에는 그런 적 없으니 한편으로 억울했고 누굴 탓하자니 그 대상도 마땅치 않았다. 나는 백수였을 때가 인생의 제일 밑바닥을 헤엄쳤을 때라고 생각했는데 삶이란 늘 놀라움을 안겨 준다. 널을 뛰는 감정을 스스로도 어찌할 줄 몰라 아예 놔버려야 하나 고민만 가득하던 중, 물론 지금도 그 고민이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이 책을 읽었다. 처음 읽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리 울었을까. 어째서 글자 하나하나가 그토록 아련하게 새롭게 다가왔을까. 아마 그건 영원히 알 수 없겠지.

작가는 다시 이런 책을 쓸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 속에는 다시 쓸 수 없을 거라는 서글픔이 배어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청춘처럼, 다시 겪을 수 없는 그때가 아니면 의미 없는 일들이 있으니까.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감정을 나는 다시 느낄 수 없겠지. 그 순간은 단편적인 것만 기억날 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청춘이라는 화려한 불꽃놀이에서는 한걸음 멀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나이고, 이 순간도 다시는 만날 수 없고, 지금 이 기분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테니까. 뭐라고 쓰고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이 혼란이 조금은 가시고 있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스무살 무렵 서른 살 이후의 삶을 생각할 수 있었더라면 삶이 조금 달라졌을 거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게 우리의 스무살이었고, 그렇기에 스무살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느 순간 저만큼 멀어진 작가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은 여전히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지만 그 고마움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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