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抱天) 5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만약, <포천>이 극화체의 만화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무척 진중한 분위기의 만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포천>은 결코 예사롭거나 가벼운 만화가 아니다. 더 나은 조선,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염원하던 점술가와 그의 동료들이 펼치는 한편의 드라마는 어찌보면 조금은 가벼워보이는 분위기 안에 녹아있다고 할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 안에 이야기가 결코 가볍지 않음은 분명하다. 아마도 이 <포천>을 제대로 읽어본 독자들은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리라.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전 내가 이 <포천>을 읽는 것을 보고, 한 중년남성(되는분이 말씀하시길;) '재밌게는 생겼는데 그림체가 너무 개그스럽다' 라고 얘기했던 것. 내가 이 <포천>을 처음만났던건 작년 서울국제도서전 때 였다. 사려고 생각했거나(호시노 유키노부의 책과 같은) 크게 세일했던 책들은 부스에서 대부분 다 팔렸던지라, 얼결에 추천받아 산것이, <포천> 1막과 2막 이었다. 대부분 사극만화들은 극화체로 그려지며 분량도 꽤 많아서 아직 만화책을 본격적으로 다시 탐독하지 않았던 그때에(지금은 그 서울국제도서전 가서 '우라사와 나오키' 작가의 <몬스터>9권 세트를 한번에 지르고 온;) <포천>이 극화체였다면 구매를 재고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특이하게 SD캐릭터로 그려진 <포천>은 그 겉모습으로 인해 조금 가볍게(사실은 모으기에 부담되지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생각하고 산게 맞을 것이다. 그때 몇권까지 나웠던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게 2막으로 끝나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리고 아마 2막까지 읽고 잠깐 그 존재를 잊고 있었으려나? 그랬던 것이, 이러구러한 계기로 다시 만화책을 본격적으로 보기시작한 올해, 얼마전에 출간된 <포천>5막 까지 만나게 된 것이다.

 

 

 

왜 다시 이 개그스러운(!) 만화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느냐. 하면 답은 간단하다. 재밌다. 그게 얼마나 재미있느냐면, 무릎을 칠 정도로 재밌다. 물론 그런 표현을 써가며 보고 읽는 것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이 <포천>처럼 그 '무릎을 친다' 란 표현이 어울렸던 적이 있었나. 주인공인 이시경(위 사진)처럼 포천은 겉으로는 가벼운 모양을 지니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하지만 칼이 아닌, 점술로 그 대업을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는 조선 역사의 팩트위에 작가가 만들어놓은 픽션이 기막히게 조합되고, 거기다 현대의 상황들까지 치밀하게 이어맞춰 이야기를 끌어나감으로써 그 재미가 가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그 재미만 무릎칠만한가? 극화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부족할 수 있겠지만(사실이것은 부족의 개념이 아니고 선택의 개념이지만) 그것을 상쇄시키고도 차고 넘칠, 이시경을 통해 우리가 보게되는 '인간사'에 대한 '깨달음'이야말로 진정 무릎을 칠만한 대목들이다. 조선시대에서 현대, 나아가 인간사 전체를 꿰뚫는 이 만화가 주는 깨달음들이 그 예상보다 훨씬 깊고, 정교하게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물론 그것들이 늘 어떤 깨달음 앞에서 우리가 하게되는 '끄덕거림' 보다는 (아무래도) 그 배경이 늘 조선인지라, 갓 쓰고 선비처럼 앉아 무릎을 치는 그림이 가장 잘 어울리기도 할 터.

 

내게 이 <포천>은 이미 이 모습으로 충분하다. 당연히 다른 모습으로 존재했을수도 있겠지만, 그것에 대한 필요성을 정말 단 한번도 느낀적이 없다. 물론 새삼 생각해보니 극화체로 이야기가 펼쳐지면 어떤 분위기일까 궁금하기도 하다가.. 단행본 뒤에 실린 축전들을 생각해보니... 그냥 <포천>은 지금 이대로가 어울린다. 겉으로는 속세에 약간 찌들어있게도 보여지는, 하지만 정말로 원조 '딸 바보'인 이시경의 지금 모습이 좋다.

 

혹시 정말로, 이 만화의 그림체를 갖고선 외면하는 이가 있다면,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무릎 치며' 볼 수 있을만큼 대단한 만화라고.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고.

 

 

이제 5권에 대해서 짤막하게 이야기 해보겠다.

 

지금까지 정가의 협박으로 인해 팔도를 돌아다니며 스승 전우치를 찾으려 했던 이시경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된다. 전우치, 그리고 그 이전에 화담 서경덕 선생 아래서 함께 수학했던 사형들과 뜻을 모아서 정가의 반란에 본격적으로 맞서게 된 것! 4권까지 읽은 독자라면 정가 파 와 이시경 파 가 제대로 맞붙는 5권을 무척 기다렸으리라

 

활빈당의 힘을 등에 업고 정가와 대립한 이시경, 하지만 역시 정가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밀고 밀리는 격전 끝에 최후/최고의 꾀를 내고, 그들이 결코 예상할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한다. 과연 이 둘 세력의 싸움에서 '얻는 자'는 누구일까? 어쨌든 그리 호락호락 끝날성 싶지는 않은데.

 

.. 이시경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며 그 행보의 변화를 꾀하는, 그 와중에도 여전히 역사 인물들과 한데 어우러지는 <포천>의 강점이 여전한, 5막이올시다!

 

민초들을 선동하거나 혹은 착취하여 사욕을 챙기려는 놈은 정가뿐만이 아닐 터. 재주를 가진 넌 이를 알고도 모르쇠 놓을 테냐! 되고 안되고는 하늘의 뜻이라지만, 하고 안하고는 자신의 뜻이겠지.

(105)

 

머리를 치는 스승의 이 말에, 되고 안되고를 떠나, 하고 안하고를 선택했던 백만석 을 떠올리는 이시경. 정가와의 싸움은 다시한번 제대로 몰아붙을 것이지만 이시경은 이제 어제와는 다르다. 붓을 잡을 결심을 한 이시경과 정가의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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