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서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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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금이라도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을 갖고 있다면 서점에서 눈길 한번 안줄지도 모르는, 분위기의 책. 판타지를 많이 읽었다고 할 순 없지만, 몇가지 이야기를 읽은 후에 느낀것은, 항상 그게 그거인 것 처럼 보이는 세계관과 쏟아져나오는 판타지소설들. 그 풍파속에서 순수문학이나, 이야기의 힘이 아닌, 언어자체의 힘을 가진 책들을 많이 접했던 독자라면, 이런 책에 흥미를 갖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또한 예외는 아니다. 물론 기억속에서, 예전에 봤던 여러가지 판타지소설들은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 줬었다. 이 '영웅의 서'도 그런 책인가? 그래. '판타지소설 같은거' 라고 누군가 말해도 그것들은 말그대로 재미있었고, 각기 나름의 깊은 울림과 사색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결국, 완간될때까지 그 호기심과 기다림을 간직하지 못해 결국 내팽겨쳤던 몇몇 판타지소설들. 아마 <영웅의 서>의 2권이라는 분량이 다른 1권의 책들에 비해선 다소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책의 사이즈 그 자체 때문인지 큰 부담까지는 없이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왈가왈부를 한다고 해도 판타지는 판타지일 터. 그저 한번 보고 상상의 끝을 달리고, 그 종착지에서 마지막 문장을 읽어내고 책을 덮기전에, 나는 잠시 현실세계를 완벽히 떠났다 돌아오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가볍게 책을 들면 될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유리코가 '엉터리 사전'인 아쥬를 만나고 실제적인 이야기의 썰이 풀어지기 전 까진. 

유리코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초등학생이다. 어느날 그 평범한 나날을 깨는 비보를 듣게된다. 그의 오빠인 히로키가 동료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한명이 목숨을 잃고, 한명은 크게 다친 것. 그리고 그 히로키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일상속에서 어떤 순리를 갖고 차근차근 파생되는 것이 아닌, (미스터리, 추리물등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할줄아는 작가인만큼) 격정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히로키의 돌발행동으로 유리코를 포함한 가족들은 깊은 시름에 잠긴다. 그러던 중 유리코는 어떤 검은 형체에 무릎꿇은 듯한 오빠의 형상을 보게되고, 그걸 계기로 오빠의 방에서 책 한권을 발견한다. '의사소통'할 수 있는 그 책은 유리코를 많은책들이 모여있고, 이야기를 진전시키는데 핵심이 되는 작은할아버지의 별장으로 데려간다. 여기서부터 수난은 시작된다.  

유리코는 거기에 있는 '생명을 지닌' 책들에게서 히로키에 대한 자초지종을 다소나마 들을 수 있게되고, 오빠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여기서부터 등장한다. 주인공인 유리코보다 더 독자를 혼란스럽게, 혹은 간단한 여러가지 이론과 개념들. 

여기서부터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한, 어찌본다면 말장난과도 같은 갖가지 혼란스러운 개념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서 모두 이해하지 못한 것들은 미스터리의 요소를 간직한 채 <영웅의 서> 이야기의 말미에서 보충해 주기도 한다.

일단 유리코가 사는 곳을 '테두리' 로 명명할 필요가 있다. 세계란것은 인간세상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천체, 자연,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든 곳이다. 그에비해 유리코와 같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테두리'란 곳은 인간이 그 '세계를 해석하려 하는 순간 태어난 것이다. 인간세상은 그 테두리 안에 속해있으며, 그 테두리는 세상보다 커지기도 했다. 

아마 나처럼 머리나쁜 독자는 초등학생인 유리코와 같은 혼란에 빠질수도 있다. 다만 한페이지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중간에 그것들의 개념이 보충설명되기도 하며, 다른예로 그려지기도 한다. 

'영웅'이란 모든 위업의 원천이 되는 이야기다. 인간이 알고있는 테두리 안의 영웅의 모습은 원천인 '영웅'이라는 이야기에서 생겨난 복사본이다. 유리코의 오빠인 히로키는 그 영웅에 홀려, '엘름의 서'라는 책을 쥐게 됨으로써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만큼 인간은 '영웅'을 원하고 있어. '황의를 입은 왕'의 부정함을 알면서도 기다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거지. 그 또한 인간의 업. 천성이라고" (2권 339p)

그리고 나아가, <영웅> 이라는 존재를 과연 '선'그 자체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애초에 태양이 비치는 곳의 반대편에는 그림자가 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빛이 강력할 수록 어둠이 짙어지는 이치다. 인간은 그 영웅의 좋은 모습만을 바라보고 흉내내려 하지만, 그 방법적인 면에서 영웅의 악한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히로키는 그 영웅의 사악한 부분에 홀렸던것이다. 물론 제 스스로는 그런 영웅적인 면모를 갖추고선 현실을 타파하기를 바랬다. 

어쨌든, 그렇게 히로키를 찾아나선 유리코는 아슈외에도 소라, 애시 등의 동료를 만나며, 이야기와 영웅의 근원과 진실을 파헤치며 점점 앞으로 나아간다. 유리코는 황의를 입은 왕을 저지하고, 오빠를 무사히 구해낼 수 있을까?

숱한 개념들이 다양하게 설명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판타지 성장 드라마다. 모든것이 혼란스럽고,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나이에 어른들이 세계에 발을 하나 들여놓는 것이 아닌, 이야기의 근원과 배경을 탐구하고 도전한다. 

그럼에도 이 <영웅의 서>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과 그 이야기가 갖는 양날의 검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산재해있다. 아니 책에 따르면 이야기는 어떤 이름없는 땅에서 무한대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인간세계로 들어오며, 그리고 다시 왔던곳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런 이야기들은 '자아내는 자' 를 통해 현실에서 어떤 형태를 띄게되고, 인간이 거기에 열광할수 있게된다. 그리고 곧 그것은 인간의 업이 되기도 한다. 자아내는 자 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그 삶을 살아감으로서 이야기를 엮어낸다. 그러니깐 굳이 자아내는 자의 손을 빌려 이야기가 허구적으로 탄생되지 않더라도, 인간이 자연적으로 사는 그러한 삶 자체가 이야기가 된다는 것.  

"그걸 돌이킬 수 있다고 속이고, 뒤집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이야기의 힘이야. 그것이 '테두리'의 이치야. 그것은 아름답고, 따뜻하고, 때로는 사람 마음의 진실과도 상통하지.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테두리'의 이치를 이야기하는 '자아내는 자'들은 죄업을진 자로 불리는 거야. (2권 260p)

살아간 흔적이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 순리인데, 때때로 인간은 이야기를 앞장세우고 그 '있어야 할' 이야기 들을 모방하기도 한다. 그것들은 정의, 승리, 정복, 성공이라고도 부른다 한다.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있어야 할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인간은 그 방법적인 고민을 제쳐두게되고, 오로지 그 목표만을 향해서 나아가게된다. 그런 와중에 죄를 짓고, 업을 쌓게된다. 자아내는 자 들은 그런 있어야 할 이야기들을 만들기때문에 업을 떠안지만, 따뜻한 이야기또한 만들어 내기때문에, 그 업을 지고 살아가는것을  용서받는다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그 자체가 걸어온길이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자아내는 자 와 아닌 자를 구분할 필요없이 제 몫의 업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책은, 이야기의 근원과 철학을 판타지라는 장르를 차용하여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다. 얼핏 '선'으로 보이는 영웅의 모습은 그것을 따라가는 인간들이 악을 만들기도 하며, 의도치않게 악을 행한다. 어쩌면, 성인들의 문화인 폭력과, 성, 혹은 책이 아니라 영화, 게임, 만화 등으로 발전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인간이 처음에는 의도치않았던 악을 만들기도 하는 듯 싶다. 이야기는 공기처럼 어디에도 존재한다. 한장의 일러스트, 한장의 사진또한 따지고보면 개별적인 이야기를 갖는다 할 수 있다. 게다가 작가는 정의가 무너지는 사회일수록 인간이 요구하는 '영웅'의 모습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선망을 경계하기를 바라고 있다. 모든 만물은 빛 아래서 탄생하고, 그 빛은 필연적으로 그림자를 발생시키니깐. 공기같이 둥둥 떠다니는 이야기들을 인간이 어떻게 해석하고, 자아내느냐 에 따라 그것은 인류를 풍요롭게도, (극단적으로 말한다면)쇄락으로도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란 뭐지, 유리?" 하고 애시는 물어왔다.  

-중략- 

"'자아내는 자'만이 창작자는 아니야. 인간은 모두 살아감으로써 이야기를 엮어내지." 

"그러니깐 이야기는 인간이 가는 걸음 뒤에서 따라와야 하는 거야. 인간이 지나간 뒤에 길이 생기도록."  (2권 331p)

이야기는 먼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글에서 보면 자음과 모음이 결합되어 글자가 만들어지고, 문장이 만들어지면서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끝없이 파생될 수 있다. 그것은 '자아내는 자'가 만들어내는 문장이기도 하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행동'으로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인간이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하고, 기록하느냐에 따라 셀수 없는 이야기가 탄생된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들었던 책을 무겁게 내려놓는다. 어쩌면 난, 유리코보다 더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시간성'을 아주 아름답고, 넘치는 상상력으로 표현해냈던 '모모'가 떠오른다. '이야기'의 근원과 철학, 그리고 고정됐던, 혹은 생각조차 해보지못했던 이면을 이렇게 흥미진진한 판타지로 엮어놓은 책이 어디 흔할까. 저자는, 이야기가 탄생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엄청난 상상력으로 풀어나가면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그녀는 펜을 통해 이야기를 짓는, 업을 지닌 '자아내는 자'이며, 우리또한 이 책을 읽는 행위에 의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자아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아마 인류가 행동을 통해 만들었던 이야기서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 지혜를 물려주고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했던 벽화들을 통해 이야기는 단 한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인류의 역사는 곧 이야기의 역사라 봐도 무방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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