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판단
한나 아렌트 지음, 서유경 옮김 / 필로소픽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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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 니더작센 주의 주도인 하노버의 자치구인 린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유대인으로, 부친은 그녀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사망했습니다. 모친은 열렬한 사회민주당원으로 매우 진보적인 인사였습니다. 베를린에서 중등 교육을 마친 아렌트는 독일 마르부르크에 위치한 공립 연구 대학인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그 유명한 마르틴 하이데거의 지도를 받았고 특이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지도 교수인 하이데거와 연애를 시작합니다. 1929년이 되자, 그녀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하이델베르크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 당시의 지도 교수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 카를 야스퍼스로, 그에게도 역시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4년 뒤인, 1933년에 아렌트는 '반유대주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혐의로 당시 비밀 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투옥되기는 했으나, 곧 풀려나왔고 이때 그녀는 독일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하게 됩니다. 유럽의 급격한 정치적 변화로 말미암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고 이때 바로 독일군에 의해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구금되지만, 곧 그녀는 탈출하게 됩니다. 그녀가 수용되어 있던 강제 수용소는 프랑스 남부의 캄프 베르네로, 당시 프랑스 남부 지역에 들어선 비시 정권의 혼란으로 그녀는 극적인 탈출을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툴루즈와 몽토방을 거쳐, 1941년 5월 22일 그녀는 거의 맨몸으로 미국 뉴욕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곤궁한 생활을 경험한 그녀는 계속 글쓰기에 매진하고 싶어서 독일계 유대인 공동체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게 되는데요. 이런 활동으로 1941년 11월, 뉴욕의 독일어 유대인 신문인 아우프바우 (Aufbau)에서 일하게 됩니다. 1950년대에 들어서자, 아렌트는 1951년에 '전체주의의 기원'을, 1958년에는 '인간의 조건'을 출판하고, 1963년에는 '혁명론'을 연이어 내보냅니다. 이 즈음에 아렌트는 우연히 마르틴 하이데거와 재회하게 되고 이로부터 2년 동안, 그를 만나게 됩니다. 1961년에는 그녀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뉴요커 (The New Yotker)에 실린 그녀의 보도 기사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970년에 심장마비로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한나 아렌트는 미국 사회에서 독특한 이방인으로 이는 독일인과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한데 섞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제3자의 입장에서 그녀는 미국 사회를 비평할 수 있었고, 또한 신대륙에서조차 유대인이라는 이방인의 정체성은 스스로 학문적 성취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Responsibility And Judgement"로 지난 200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에 초도 번역되었습니다. 제가 구입한 판본은 2022년에 출판된 3쇄본입니다.

서두에 소개된 옮긴이의 설명대로 한나 아렌트의 이 논저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은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유 불능'에 대해, 그녀 스스로 오랫동안 숙고하고 성찰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뒤에 본격적으로 나오겠지만 어떤 한 인간이 자발적으로 성찰하지 못하는 그런 '도덕적 불능'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누구보다 큰 관심을 기울였던 철학자였습니다. 그런 이 책은 한나 아렌트 생전의 열렬한 조교였으며, 현재 미국 뉴스쿨 대학의 한나 아렌트 센터 소장인 제롬 콘이 그녀의 생전 마지막 10년의 시기, 여러 강연록과 논문 등을 묶은 일종의 선집이기도 합니다. 이 선집은 아주 단순하게, 1부 '책임'과 2부 '판단'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여기에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소위 '서구 사회의 도덕적 성찰'의 부재와 그것의 역사철학적 연유, 그리고 그러한 배경에서 독일 제3제국의 나치즘과 유대인들에 대한 잔혹한 인종 살해는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를 고찰해보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미리 약간의 개인적 감상을 늘어놓자면, 이 책의 후반부인 7장인 '심판대에 오른 아유슈비츠'와 8장 '자업자득'에서 드러난 '히틀러 졸개들'에 의한 잔혹하고 충격적인 유대인들의 학살 증거들이 낱낱이 드러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말았는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악인들은 보이는 대로 멸절시키는 수밖에 없다는 어느 유명인의 언급이 떠올라 복잡한 심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인류의 죄악인 아우슈비츠를 비롯, 이들 '절멸 수용소'의 동시대 독일인들은 역사에서 결국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이러한 크나큰 죄업이 어떤 연유로 비롯되었는지 명확히 알고자 하는 노력이 전무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는데요. 여러분이 이 글의 7장을 끈질기게 일독하다보면 제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쉽게 알게 되실 겁니다. 아렌트의 이 글로 인해 일전에 읽었던 하랄트 얘너의 서사는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잔혹한 독재 정권에서 삶을 영위한 일반 사람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인지적 가능성은 어디에서나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일 겁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자신들의 '게르만주의'를 분리한다면 특히 슬라브인들과 여타 유대인들, 이들이 분류한 국적 불명의 수많은 무고한 피해자들에게는 순수한 악(惡) 그 자체였을 겁니다. 이 대목에서 한나 아렌트는 1장의 논증들을 통해, 사실상 수많은 독일인들이 '도덕의 붕괴' 상태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증명합니다. 이때의 많은 사람들이 "나치의 성공에 감명을 받았고 자신들의 판단을 스스로 독해한 역사의 평결"을 고려해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이를 명확히 드러내는 부분이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도덕의 총체적 붕괴'는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글에서 좀 더 첨언되지는 않지만, 이는 나치 수뇌부와 소수인 그들을 추종하는 독일의 일반 시민들을 모두 포함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제 개인적인 의견을 보태자면, 나치에 부역했던 마르틴 하이데거나 카를 슈미트와 같은 엘리트 지식인들이 나치즘 자체를 어떤 정치적 돌파구로 여겼고, 이러한 민족적 범주 안의 배타적 인식을 방패 삼아, 국가와 민족 그리고 나치즘이라는 삼위일체를 최소한의 양심 없이, 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나치즘 이전의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이질적인 뼈대와 그것이 초래한 모든 사회정치적 이행 - 혹자들이 자유주의의 역겨운 껍데기 라고 말한 - 이 앞선 이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양심의 자유'라는 것이 근본적인 사유와 성찰이 배제된 채, 그저 사전적인 의미나 단편적인 심상으로만 이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음 2장에서, 저자인 한나 아렌트에 의해서 충분히 고찰 되지만 인간의 이성을 발견한 근대 유럽의 몇 세기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그 역사가 결국에는 도덕적 성찰의 황무지와 다름 없었다는 결과물은 시대와 인종을 넘어 뼈아픈 진술로 이해됩니다. 저는 이를 마약과도 같은 합리주의의 산물이라고 싸잡아 몰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유를 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체는 어쩌면 합리성이라는 단어가 아우르는 손쉬운 개념 하에 더욱 조장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후반부인 7장에서 여실히 논증 되겠지만 아우슈비츠에서의 조직적인 독일군이 그 과학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유대인 절멸이 여러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진술은 그만큼 저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를 갖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이에 저자는 "2500년씩이나 된 서구의 문학, 철학, 종교 사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양심이라는 것이 현존한다는 사실에 관해서 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모든 과장된 구절들과 설교들"이 세대를 거쳐 이어져 왔다는 것을 분명한 목소리로 밝히고 있었는데요. 오래전에 소크라테스가 "불의를 행하는 것보다 불의를 당하는 게 낫다"는 소위 말하는 '실재적 악'을 거부했던 의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연유로 '나와 세계와의 관계'를 면밀히 성찰하지 못한 자들이 이룩한 정부라는 것이 어떤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짐작할 만합니다. 이를 달리 해석해 보자면, 바로 양심이 누구에게나 실존한다는 그 허구성을 애써 대변하는 듯 보이는, "상당수 인간에게 양심은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극적인 메타포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누군가에 의해, 예를 들면 히틀러와 같은 자들과 같이, "인간종의 생존" 혹은 "자신을 포함한 민족의 생존"을 위해, 유럽의 암세포와 같은 유대인들을 멸종시키겠다는 그런 생각이 실제로 실행되었다는 점에서, 유럽에서의 허울 뿐인 양심이라는 문제를 아주 근본적으로 고찰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특히 4장에서, "그 전체주의의 통치자들이 서구 도덕의 기본 계명들을 뒤집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이었던가"라고 진술하는 장면은 그만큼 몰락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역시나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나 아렌트는 그 당시를 돌아보며, 소위 독일 사회의 주요 엘리트들이라 볼 수 있는 지식인들과 경제인들, 혹은 사법 관료들이 자신들의 숙고된 성찰이나 의견 없이, 오로지 "총통이 원하시는 것", "총통이 일관되게 내리는 명령"이라는 전제 하나 만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양심을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고 진술합니다.

2장 도입에서 추동되는 이 "도덕적 질서의 총체적 붕괴'를 과거 유럽 철학의 근간에서 찾아봐야 하는지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답보하고 있습니다. 도덕의 총체적 붕괴를 거의 온 몸으로 표상하는 이 신종 살인자들이 일반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으며, 같은 동기에서 일반적인 척 행동하고 말을 하고 있다는 전범 법정에서의 증명은 어쩌다 20세기의 유럽이 그렇게 되었는지를 되내기에 만듭니다. 아렌트의 분석처럼 오로지 참혹한 범죄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이들 '살인마들'에게만 향하는 것은 면밀한 분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도덕 법칙 내에서, 행위의 일관성과 충분한 근거 이유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에 그녀는 "정치 질서는 도덕적 고결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 만을 필요로 한다"는 전제와 함께, 이마누엘 칸트의 입을 빌어, "한 국가를 조직하는 것의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상관없이 악마와 씨름을 하는 형국에서라도 그들이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기만 한다면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었는데요. 이는 전반적인 사유에서 철저하게 이성에 기댔던 칸트의 학문적 결과물들을 차치하더라도 저 최소한의 지적 능력이 기반이 되는 전제 조건이 존재한다면 설사 악마 뿐만 아니라 국가가 패망하는 순간에 놓이더라도 최소한 대안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겁니다. 그래서 종교가 국가의 도덕적 질서의 구축에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한 연유에는 이것이 지식이나 진리와는 상당히 다른 조건이기 때문일 겁니다. 유럽의 가톡릭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한 장면을 대입해 본다면 히틀러의 제국이 전유럽에 확장하고 그와 더불어 유대인들이 곡소리를 내며 죽어갈 때, 로마 교황청의 주인인 비오 12세의 행적은 아침 호숫가의 뿌연 안개처럼 유럽과 가톨릭에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물론 아렌트가 평생 연구한 칸트의 내력을 빌려서, 히틀러의 나치즘이 어떤 종교적 신봉과 같은 비이성적 귀결에 이르렀다고 아주 직접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총통'이 당시 독일인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종교이든 정치이든 간에, 거의 거스를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그녀가 진술하는 칸트의 철학이 무엇보다 '올바른 이성'에 근거한 도덕적 법칙을 어느 정도는 옹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모든 인간이 이런 합리성 유형, 즉 과거 칸트가 말한 바 있는 그 도덕법칙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다고 가정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자신을 "졸개"와 다름없다고 밝힌 아이히만과 같은 나치의 졸개들은 이를 현실에서 여실히 부정 당했지만 어찌됐든 이들 살인자들의 예는 오로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이 대목에서 칸트가 말하는 양심의 기능이 "자기 경멸의 형태로 자신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해석은 실로 놀랄만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는 명백히 자기 기만에 빠진 인사가 아니라면 도덕적 문제에 대한 소위 "인식과 결단"에 있어, 이 양심이 작용하는 바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앞선 나치 졸개들과 이들에게 전무해 보이는 도덕적 법칙 내지는 양심의 결여가 단순하게 설명될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바는 결국 정치적 질서 혹은 법칙과 도덕과 양심의 문제는 여실히 다르게 작용한다는 진실입니다. 아렌트는 이에 대해 "아무리 나치 정권이 합법적이라고 해도 그들의 죄는 남는다."고 밝히고 있었는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왜 유럽의 정치적 유산과 그에 반하게 되는 도덕적 법칙 내지는 견제가 왜 함께 갈 수 없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매번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정치와 도덕은 다르다고 말하는 그 내심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매번 도덕적 기만 위에 정권과 정부가 세워져 있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차치하더라도 "정권의 개"가 되는 저들. 그러니까 부역자들의 양심이 왜 보이지 않는지는 이로써 명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자인 아렌트는 앞선 논증들을 기반으로, 왜 진정한 성찰과 사유를 하지 않는 인간들이 왜 그토록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4장에서, 밝혀내고 있었습니다. 흔히 작금의 시대에도 "철학과 형이상학이 죽어버렸다"고 자주 언급되기도 하지만 칸트를 반증하여 언급되는 "사유함이라는 정신 능력"의 결과가 불확실하고 입증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어떤 인생의 책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저자인 그녀 역시 이미, "사유가 소수만의 특권이 될 수 없다"고 명백히 진술하고 있었는데요. 아렌트의 말마따나, 자신이 철학자임을 전제하지 않고서도 이미 사유하고 있다는 고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이 고백이 담겨 있는 대목에서, "모든 시민이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그저 권리 만을 요구하는 것은 그저 자가당착을 넘어, 이런 자들을 시민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유가 없는 자칭 시민"이라는 어구에 저는 존 듀이와 로널드 드워킨을 떠올렸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이는 사유를 하지 않는 자들에게 도덕적 양심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거의 확신하게 만듭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지점에서, 왜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이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 않아 보이는 인상에 왜 그토록 의문을 갖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런 '죄악의 유산'을 이어 받은 당시의 독일인들의 그 특유의 행태를 보면서, 마찬가지로 2차 대전 이후의 일본인들의 의식 구조를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후반부 7장은 바로 그러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연합군에 항복하여 탄생한 독일의 아데나워 정권은 태생적으로 나치 부역자들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나치에 복무한 적지 않은 자들이 정권의 구성원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점은 아렌트가 명확히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가장 충격적으로 여겨진 부분이 뉘른베르크 재판과 이어지는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에서 수많은 독일인들이 그 재판 과정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이것이 그저 역사의 그늘 안으로 묻혀지기를 바랐다는 대목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평생 자신이 독일인과 유대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여겨 왔는데요. 그렇다면 이 장면을 목격한 그녀에게 있어 이 "독일인들"이라는 집단에 갖는 복잡한 심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유대인들이 "즉각적인 가스 주입에 죽음을 맞이하거나, 몇 달이나 지나 지독한 육체 노동에 이르러 죽음에 이르는 사례" 이외에, 역시나 모두가 짐작하듯이, 그저 재미로 사람을 살해하는 "나치의 졸개들"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입니다. 아마도 적지 않은 분들은 이들 나치의 졸개들 가운데 그래도 양심을 갖고 행동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양 재판에서 드러난 자들 가운데 그런 자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 7장에는 무고한 유대인들이 어떻게 재미와 성적 추동에 의해 순식간에 살해되었는지 역사적 증거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과 어린 소년, 소년들에 대한 충동적이고 쾌락적인 살해 동기에서,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과 동시에, "정교하게 구축된 송장 제조 공장"을 운영한 "그 아무것도 모른다는" 저들은 그야말로 악마들 그 자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서류에 싸인을 했던 자와 그런 명령을 여지없이 수행하는 부속품과 같은 그런 자들로 구분해 볼 수도 있겠지만 저 부속품과 같은 자들이 태연히 인간의 탈을 쓰고 있었다는 점에서, (대전 중이나 종전 이후에도) 인간이 어디까지 죄악을 범할 수 있는지 이들은 생생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렌트는 양 재판(뉘른베르크와 프랑크푸르트) 에서 마치 판사들이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듯 보이는 여러 장면과 저 나치의 졸개들이 자신들의 무고를 스스로 증명을 해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히틀러 부역자들이 별다른 제재 없이 무사 방면 되었다는 점은, 이 재판의 복잡하고 난해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여실히 드러난 참혹한 전쟁 범죄조차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그 정교하게 고안된 사법 체계가 스스로 모순에 빠졌다는 것을 드러내는 재판이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나치 독일의 그 철저한 합리성과 자신들이 스스로를 추앙하는 게르만 민족 이외의 다른 인간을 그저 절멸의 대상과 도구로 삼은 것은 이제는 역사의 과오, 그 이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시대의 역사적 유산을 작금의 독일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이어받았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판단한다면 참혹한 전쟁 범죄의 파급물을 단순히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데나워 이후의 독일 정권이 역사를 뼈저리게 반성했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장의 철학적 논증들은 꽤나 놀랄만한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도덕적 양심을 큰 틀로 놓고 왜 과거의 유럽이 '반유대주의'와 같은 도덕과 양심을 거스르는 뿌리 깊은 증오로 귀결되었는지. 쉽게 말해, '인간의 배신'을 철학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유약한 영혼을 위해, 철저하고 근본적인 사유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사유가 만능이 아님을 아렌트는 밝히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사유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인간들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 우리가 처한 씁쓸한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20세기 "국제적 인사들" 가운데 어느 누구 한 사람도 1930년대의 연대성에 대한 자신들의 집합적인 기대치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 벌거벗은 악마성에서 비롯된 공포 자체가 나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모든 도덕적 범주들을 초월하고 모든 사법권의 기준들을 파괴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새로운 형태로서의 현대적 독재 양태들을 알고 있는데, 그것의 우선적인 양태는 군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민간 정부를 무너뜨리며 시민들에게서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박탈하는 경우다.

이제 국가의 통치 행위 공식의 이면에 놓인 그 이론은 주권 정부들이 비상시국하에서 국가의 존립 자체와 권력 유지가 달려 있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범죄적 수단을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비합법성은 눈이 멀지 않고 심장이 돌처럼 굳지 않고 부패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명확하게 보이며 그의 심장에는 거부감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도덕적 행위가 비합법적이고 모든 합법적인 행위가 모종의 범죄가 되는 조건 아래서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와 정반대로 우리의 모든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나의 시대 초기 단계에서 지적, 도덕적 대변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존경할 만한 사회 구성원들이 제일 먼저 굴복한 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무제약적인 양심의 자유라는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데, 이유는 그것이 모든 공동체 조직의 파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20세기 초입까지도 여전히 "영구적이고 필수적"일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많은 것들 중에서 도덕적 이슈를 택하여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 보려고 한다.

본래 양심은 모든 언어에서 옳고 그름을 알고 판단하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 즉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고 또 자각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금껏 들어왔던 바에서 추론하건대 도덕적 처신은 일차적으로 사람이 자신과 더불어 수행하는 상호작용에 좌우되는 듯하다.

양심은 인간이 자신의 말보다 신의 말씀을 경청하는 기관으로서 이해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의 구체적인 도덕적 성격을 획득했다.

그 결과 그는 다른 이들을 좀 더 "도덕적"으로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도덕을 손상시키고 절대적인 신념과 무조건적인 복종 양자를 산산조각 내버린다.

소크라테스는 지금 우리가 도덕적으로 부르는 것이 정말로 단독성 상태에 놓인 인간과 관련이 있으며 또 한 시민으로서의 인간을 향상시킨다고 믿었다.

누구든 사유하는 일 없이 그리고 그 사유하는 과정 자체에 진입하지 않은 채로 소크라테스식의 검토 내용을 경청한다면 그는 당연히 [기존 도덕의 관점에서] 타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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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리얄리 2025-11-11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늑대의 시간]을 생각나게도 하고, ‘합법적인데 뭐가 문제냐?‘라는 자기기만의 우리 사회도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위 글의 내용과 별개로 한나 아렌트와 하이데거가 연인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받았던 충격(?)이 생각나네요. 아직 소녀였던 한나 아렌트에게 하이데거는 철학의 신으로 보였을까요. 물론 나치 입당 전의 이야기라 할 수도 있고, 학문적 교감이 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장차 ‘부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하이데거와 나치로 인해 온갖 고초를 겪은 한나 아렌트 커플을 상상하란 여전히 어렵네요.

베터라이프 2025-11-11 19:44   좋아요 0 | URL
유감스럽게도 한나 아렌트와 마르틴 하이데거 이 두 사람은 명백히 불륜 관계였습니다. 물론 야스퍼스와도 그녀는 긴밀하고 가까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야스퍼스가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였던 것도 익히 알려진 내용이죠 ^^; 어찌됐든 하이데거의 철학적 결과물은 거의 인정하는 분위기이니 아렌트 역시 적지않은 감화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나치 부역과 그에 따른 개인적 책임은 나치가 패망한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그의 과오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카를 슈미트에 비하면 하이데거는 조그만 양심이라도 있던 인물이었죠.

이 책을 일독하고 나서도 하루 종일 독일인들이 진정 과거사를 성찰했는지에 고민을
해보게 됩니다. 총리가 무릎을 꿇은 그 유명한 사진을 떠올려 본다면 국가와 국민의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가 어쩌면 다를 수도 있을 겁니다. 국가 사회주의라는 괴물을 앞세우고 뒤에 죄다 숨을 수도 있겠구요. 참 많은 생각이 드는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맨스필드 파크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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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태어난 제인 오스틴은 익히 알려진 대로 당시를 대표하는 문호였습니다. 그녀의 부친인 조지 오스틴은 스틴븐턴과 딘의 성공회 교구의 목사로 재직했으며, 모친인 카산드라 리는 저명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옥스퍼드 올 소울스 칼리지의 목사이기도 했습니다. 스티븐턴에 정착한 이들 오스틴 가족은 대체로 친족들의 후원에 의지했고 그에 따라 수많은 친척과 친족들의 방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1783년이 되던 해에, 오스틴과 그녀의 여동생 카산드라는 앤 콜리에게 교육을 받기 위해 옥스퍼드로 보내졌으나 그 해 가을, 제인은 발진티푸스에 걸려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그녀는 집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고 1785년이 되어서야, 라 투르넬 부인이 운영하는 레딩 기숙 여학교에서 여동생과 함께 본격적인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후 1793년에서 1795년 사이에 제인은, 짧은 서간체 소설인 '레이디 수잔'을 쓰게 되었고 이 작품은 그녀의 정교한 초기 작품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1796년이 되자 그녀는 자신의 두 번째 소설이라 볼 수 있는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을 쓰기 시작해, 1797년 8월에 초고를 완성합니다. 이 작품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평단과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이 오만과 편견을 시작으로 소위 제인 오스틴의 4대 작품이 큰 명성과 더불어, 평단에 연이어 히트를 치게 됩니다. 이런 문학적 성공 이후, 1804년에 오스틴은 바스에 살면서, 소설 '왓슨 가족'을 쓰기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사망 때문인지, 끝내 완성을 하지 못합니다. 바스와 차우튼에서의 생활을 거쳐, 1816년이 되자 몸이 상당히 좋지 않았지만 그녀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게 되는데요. 그녀가 최종적으로 목숨을 잃게 된 원인으로 후에 전문가들이 '림프종'으로 판단했지만 얼만간 그녀의 건강은 상당히 악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1817년 7월 18일, 그녀는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고. 동생인 헨리가 그녀의 유해를 윈체스터 대성당 본당 북쪽 통로에 안장하게 됩니다. 그녀의 사후, '설득'과 '노생거 사원'이 세트로 출판되었고, 그녀의 동생인 헨리 오스틴은 자신의 누나가 이 두 소설의 저자임을 공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세번째 작품인 맨스필드 파크는 1814년, 토머스 에저튼이 초판으로 출간했고, 오스틴 생전에 1816년, 존 머레이가 재출간했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Mansfield Park"로 국문 번역이 된 판본은 2014년에 펭귄 출판사에서 출간한, '펭귄 고전 시리즈'의 본으로 여러가지 주를 포함해, 2016년 10월 초판이 발행되었으며, 제가 구입한 판본은 초판 6쇄로 2022년 4월에 출판되었습니다.

헌팅던 출신의 마리아 워드 양은 정말 운이 좋게도 노샘프턴 주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인 토머스 버트럼 경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녀에게는 다른 둘의 자매가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들 둘에게는 맏언니의 행운이 함께하지 않아, 적당히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특히 막내인 프랜시스 양은 소위 말하는 '경솔한 결혼'에 저당 잡혀, 떨어지는 사회적 지위로서나 궁핍한 경제적 환경에서 혹독한 시련을 맞게 됩니다. 프랜시스 양은 이런 운명에 스스로 인질잡힌 결혼으로 말미암아, 두 언니로부터의 한동안 '관계 단절'을 경험하게 되고 그 세월의 시간은 꽤나 모진 세월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날이 경제적 궁핍에 빠졌으면서도 프라이스 부인(결혼한 프랜시스 양의 정식 이름)은 아홉 번째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처제의 형편을 안타깝게 여긴 토머스 경은 프라이스 가의 장녀인 패니 프라이스를 자신의 성(城)인 맨스필드 파크로 이끌게 됩니다. 그는 어린 프라이스 가의 장녀를 분별있고 존경받을 수 있는 레이디로 키워주겠다는 호언과 함께, 패니를 가부장적인 결정을 통해, 비로소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미 짐작했듯이 패니가 맨스필드 파크에 받아들여진 이후부터, 그녀의 하루하루는 녹록치 않았을 겁니다. 특히나 10세 언저리의 어린 소녀가 그와는 애초 환경이 다른 사촌들과 같은 집에서 살아가기가 정신적인 면에서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굳이 아동 심리학자의 발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시기의 패니의 정서와 그렇게 형성된 내면과 본성은 확실히 다른 또래와는 확연히 달랐을 겁니다. 귀족 출신의 유산을 몸소 체득한 이모부인 토머스 경은 본래의 근엄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패니에게는 이 집안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으로 각인됩니다. 그럼에도 이런 패니가 온전히 이 집안에서의 조그만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촌 오빠인 에드먼드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그는 버트럼 가의 차남으로 토머스 경이 장남인 톰 보다 내적으로 그리고 그의 신중한 내면에 대한 신뢰로 의지할 수 있는 아들로 판단하고 있었는데요. 그는 주변과 다른 사람의 품성과 본질을 신중하고 집요하게 살펴보는 성격으로,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결코 일희일비 하지 않는 나이에 맞지 않게 진중하고 속이 꽉찬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미 패니가 '자신의 집'에서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절감하고, 이렇게 왜 매사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지 그는 파악을 했으며, 이런 시간들에서, 패니의 "섬세한 취향, 정신, 감정 등"을 확신하게 됩니다. 유서 깊은 매스필드의 고택에서 홀로 고독과 싸우고 있는 사촌 여동생 패니에게 그는 선선히 책을 권해주고 유일한 친구이자, 의지할 수 있는 오빠로 십 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는 에드먼드에게 있어서도 패니의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게 되는데요. 뒤에 등장할 메리 크로퍼드에 대한 그의 고민 역시, 그러했습니다.

역자의 의도대로 이 작품을 총 3권의 분량으로 구별해 본다면 제1권은 이런 패니의 놀라울 만한 감수성과 비교할 수 없는 분별력, 그리고 신중하고 조심스런 내면으로 이어지는 본성과 그에 따른 성장으로 축약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이 1814년 출시되고 나서, 해당 장편을 접한 많은 독자들은 작품 자체에 대한 코멘트를 하는 것을 넘어, 주인공인 패니 프라이스에 대한 평가를 (아마도) 쉽게 내리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즉, 당시 시대 상의 분위기로서 뿐만 아니라, 이런 소극적이고 내면에 침잠한 여성 캐릭터가 글을 읽는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이는데요.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성격을 완성시키고 더 나아가 추구하는 야망까지 가질 수 있는 점진적이고 두려움 없는 인물을 원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성의 굴레'라는 측면에서는 터무니 없는 양가 감정과 같은 기대까지도 허용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2권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패니 프라이스에 대한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인물 조성은 충분히 고유한 서사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패니와 같은 예민한 감수성과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내면의 고차원적인 취향과 동시에 부각되는 그런 신중한 성격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오스틴은 패니와 의도치 않게 맞물리면서도 본질적인 측면에서 섞일 수 없는 인물인, '메리 크로퍼드'를 여기에 배치합니다. 맨스필드 교구를 이끄는 그랜트 박사의 부인과 친자매지간인 메리는 오빠와 자신에게 남겨진 적잖은 유산과 어릴 때, 가까운 친족 어른의 지도를 받지 못해, '자유'와 '누구에게도 개입 받지 않는 삶의 주도'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쟁취하는 인물입니다. 저는 이 메리 크로퍼드라는 인물이 이 작품에 투입된 것이 매우 극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녀의 본성과 자기 이익에 따른 행위와 욕망을 현대의 관점으로 재해석할 생각은 없지만 남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하고, 또한 책임을 지지 않는 비교적 화려한 언설을 갖추고 있기에, 애초에 진정성이라는 단어와는 아주 거리가 먼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작가인 제인 오스틴이 지난 날 여러 작품에서 구현해 놓은 상기 모습의 인물들로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보였던 모습이기도 합니다.  
 
헨리 크로퍼드 역시, 후견인인 숙부의 간섭을 어느 정도 배제하며, 런던과 여러 도시의 사교계를 섭렵하는 인물인데요. 제인 오스틴은 무엇보다 그를 '자만의 화신'으로 만들었습니다. 즉, 자기애는 지나칠 정도로 확고했고 바로 그것이 본성의 기반이 되었기에, 애초에 진중하고 몰입된 애정 자체보다, 여성을 자신의 도구로 삼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이용한 여성의 감정을 '환희와 만족의 수단'으로 환치하는 아주 거릴 것이 없는 자입니다. 그랜트 부인의 초청을 통해, 겪게 된 맨스필드 파크에서의 분위기와 결국 실패하게 되지만 즉흥적으로 구상한 연극 무대가 자신의 욕망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은 점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꽤나 불쾌한 인물이기도 한데요. 그는 이미 근처의 명문가인 러시워스 가와 약혼을 맺은, 버틀럼의 장녀인 마리아에게, "약혼한 여자는 늘 약혼하지 않은 여자보다 매력적"이라는 가차 없는 심상을 피력하기도 합니다. 마치 여자의 마음을 얻는 행위 자체를 요샛말로 두근거리는 '게임'처럼 취급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미 그는 몇 차례의 전력을 갖고 있었는데요. 1권 중후반부, 토머스 경이 부재한 맨스필드 저택에서 스스로 궤멸에 가까운 짧은 열정에 사로잡혀, 이에 모두를 충동으로 이끄는 연극의 모험에서, 마리아의 약혼자인 러시워스를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더욱이 마리아를 헛된 충동으로 교묘히 충동질하는 그의 저열한 일면은 저로서는 몇 번이나 작품에서 분석을 시도해볼 정도였습니다.  

이런 전력의 헨리 크로퍼드가 패니에게 시작했던 구애는 마찬가지로 일종의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신중한 언행과 더 나아가 주변인들의 대화까지 일일이 챙기는 패니는 그에게 있어 흡사 요즘 말로 '외계인'과 다름 없었는데요. 자신의 여동생인 메리와의 대화에서, 그는 그녀를 어느 의미에서든 정복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오로지 자신의 흥미 거리를 위해서 말이죠. 여기에 동생인 메리 역시, 앞선 패니에게 큰 영향을 끼친 에드먼드에게 그가 확연히 자신과 다른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안락한 남은 생애와 그런 취향들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남자를 원했던 메리는 '고결한 삶'과 귀족의 의무를 알고 있던 에드먼드의 삶의 지향을 사교계에서 풍월로 여럿 접했던 것처럼 가치들을 이해하는 척하면서도 끝내는 에드먼드를 반쯤, 경멸하기에 이릅니다. 가문의 유산을 제대로 승계할 수 없는 차남이라는 지위를 일찍이 수용한 에드먼드에게 자신의 욕망보다는 형인 톰의 장래와 더불어 가문의 화목을 위해, 얼마간의 재산을 담보로 성직을 자청하게 됩니다. 메리에게는 그에게서, 맨스필드의 유서 깊은 명문가라는 지위와 마찬가지로 노후를 유복하게 보낼 수 있는 재산이 보일 듯 했으나, 끝내 에드먼드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기는 커녕, 교묘하게 이용하기만 합니다. 여기에는 패니와의 우정까지도 그런 구실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후반부 가장 심각한 파문으로 나타나는 막장의 그 사건에서 그녀는 교묘한 변명만을 늘어놓게 되는데요. 한 사람의 인성이라는 것이 주어진 환경에서 이를 어떻게 주도적으로 행할 수 있겠는가라는 당위에서 거듭 정해진다면 삶의 무대와 그 주변인들을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인간에게는 그 인성의 발현이 극적으로 선하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작가인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작품에서 숱하게 등장하는 지명인 '바스'만큼이나 분별력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분별력이 없는 인간이 과연 온전한 인간일 수 있겠느냐라는 물음은 아마도 오스틴의 중대한 과제였던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인간의 분별력이라는 소재를 아주 극대로 활용한 소설로 생각됩니다.


다른 어느 작품의 전개 과정보다도 이 장편의 제3권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만합니다. 거듭 구애하는 헨리 크로퍼드의 의도된 행위를 초기에 제대로 읽지 못했던 에드먼드에게 실망했던 것 만큼이나, 집안과 집안의 결합을 차치하더라도 그만한 재산과 그 정도의 상식과 예의를 갖춘 젊은이의 청혼을 거절하는 패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계도'하는 토머스 경의 태도도 역시, 입이 절로 벌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가 패니를 향해 내뱉은 "이기적이고 배은망덕"이라는 표현은 이 시대의 젊은 여성들이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거듭된 형태로 오만했던 토머스 경의 이런 '양식'은 후반부에 이르러 참혹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딸들인 마리아와 줄리아의 전형적인 행태 자체가 그저 모성의 유전이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워드 가의 세 자매와 오버랩 되기도 합니다. 특히 노리스 부인의 인물 조성은 극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악랄한 부인의 인성까지 긍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어떤 한 사람의 본성과 그 내면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진실된 눈으로 바라본 한 사람의 판단이 그렇지 못한 인간들의 터무니없는 비아냥과 취급을 받을 부분인지는 지금의 인간 사회에서도 충분히 고민이 될 만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패니는 유년 시절부터, 오랫동안 겪어 왔던 고립된 생활에서 사촌 오빠인 에드먼드를 제외한다면, 독서와 사색으로 자신을 조각한 인물입니다. 내면은 충실하고 견고하게 구축했고, 자신의 눈은 본질을 보기 위해 노력했고, 주변의 어느 누구에게도 쉽사리 판단하거나 결정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따뜻하고 정 많은 심성을 갖추었습니다. 통찰이 그녀의 고유한 본성이었다면,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그리고 자신의 이익으로 가는 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인물들의 조소와 비아냥이 패니와 같은 인물에게 향하는 단계의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완독하기 전까지는 패니에 대해, 여자가 아닌 한 인간의 자유와 선택의 문제를 대변하는 인물로 절반쯤 이해했으나, 거대한 파국 이후의 조금 성급한 결말을 맞이하고 보니, 그녀는 남들과 다른 조건에서 내면을 충실히 쌓아온, 귀감이 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서사 중간에, 마치 작가인 제인 오스틴이 말하는 듯 토해내는 "여자가 누군가의 구애를 받았으면 무조건 그것에 화답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너무나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헨리 크로퍼드의 패니에 대한 '구애 작전' 자체가 한 나르시스트의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의 결과는 아주 혹독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제1권 중후반부터 진행된 맨스필드 파크에서의 연극 시도와 그에 따른 복잡한 양상의 연습과 마찰은, 대미 자체를 이미 구축한 바와 다름 없었는데요. 저는 이 부분에서 제인 오스틴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메리 크로퍼드와 같은 인물은 우리 주변에서 숱하게 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 작품의 일독을 통해 얻어진 그와 같은 교훈적인 정신 자체는, 우리 같은 현대인들에게는 더없이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문 195페이지에 띄어쓰기 오류 한 곳이 있었습니다.

-본문 560페이에도 띄어쓰기 오류가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더 많은 잘못된 띄어쓰기가 상당히 많이 보였습니다.)


-본문 602페이지에 등장하는 '에드먼드'는 페니와 포츠머스로 동행하는 오빠인 윌리엄을 

 고려했을 때, 윌리엄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그녀는 이 사촌 오빠가 선하고 위대한 온갖 것들의 본보기이고, 그녀 외의 어느 누구도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어떤 감정으로도 충분히 보답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자신의 고마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혹은 상대방이 교양과 훌륭한 성품을 갖고 있겠지 하고 철석같이 믿었다가, 자신이 완전히 기만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래서 그 정반대의 상황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게 된 사람들을 제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데요!"

에드먼드 오빠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착한 성품을 드러내 보이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또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자제력이라든가 타인에 대한 올바른 배려, 자신의 속마음에 대한 정확한 인식, 도의의 원칙 같은 것이 그녀가 받은 교육의 필수적인 내용은 아니었으니, 그녀는 그런 심성을 갖고 있지 못한 관계로 자신이 처한 상황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예의범절은 아마 훌륭한 행동 원칙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품행‘이라고 불러도 될 겁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이 바로 저런 태도야. 부탁하거나 선택권을 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저런 식으로 자기가 원하는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려고 접근하는 걸 보면, 다른 어떤 일보다도 더 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니까."

"다른 여자들이 무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만큼, 너는 주목받고 칭찬받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던가."

토머스 경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이들을 위한 일일지라도 가능한 한 가장 득이 되는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책략을 세운다거나 머리를 짜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사람이었고, 그런 일에 재바른 태도를 경멸했다.

"인간의 본성에는 일주일에 한 번의 설교로 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도덕적 교훈이 필요하다는 걸 에드먼드도 알고 있으니까요."

"정말 그렇소. 패니가 있는 앞에서 칭찬하고 있으니, 우리가 자신을 얼마나 착한 아이로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셈이군. 지금은 우리가 정말 소중한 말동무가 됐지. 그동안은 우리가 저 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었다면, 지금은 저애가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만일 이 세상에서 어떤 야심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아가씨가 있다고 한다면, 그게 바로 패니 프라이스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사실 그녀는 이모부처럼 통찰력이 뛰어나고, 지극히 존경스럽고, 훌륭한 분이라면, 그녀 쪽에서 그를 싫어하는 마음이 확고하다는 걸 단순히 인정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리라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예전에 그토록 큰 충격과 혐오감을 주었던 모습, 다른 사람들을 세심히 배려하거나 존중하는 마음이 결핍된 모습이 다시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녀가 호감 비슷한 감정을 품고 크로퍼드를 대해왔다고 여기기는커녕 항상 그 반대라고 믿어왔었고, 나아가 그녀가 마음의 준비도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급습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패니, 내 동생들의 훌륭한 자질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싶긴하다만, 나는 그 애들이 단독으로 그랬든 같이 그러했든 크로퍼드 씨의 호감을 얻으려는 바람을 과도하게 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패니는 그토록 이른 나이에 올바른 분별력을 행사할 수 있는 타고난 밝은 정신에 대해 찬탄하고픈 마음이, 그런 정신이 초래하는 잘못된 행동을 가혹하게 비난하고픈 마음보다 더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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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최세희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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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스셔주 스티븐턴에서 태어난 제인 오스틴은 스티븐턴과 딘에서 성공회 교구의 목사로 일한 부친과, 세습 작위의 남작 가문이자 유서깊은 리 가문 출신의 모친 밑에서 겸허한 교육을 받으며, 유년 시절을 보냅니다. 1783년이 되자 오스틴과 그녀의 여동생 카산드라는 앤 콜리에게 교육을 받기 위해 옥스퍼드로 보내졌고, 앤 콜리는 그녀들을 사우샘프턴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해 가을, 예상치도 않게 두 자매는 발진티푸스에 걸리게 되는데요. 이때 제인은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후 제인은 집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1785년이 되어서야 라 투르넬 부인이 운영하는 레딩 기숙학교에서 여동생과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1787년부터 1793년까지 오스틴은 29개의 초기 작품을 집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790년에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짧은 분량의 서간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즈음에 오스틴은 스스로 전문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1800년이 되어, 그녀의 부친이 은퇴를 결심했고 그동안 머물던 스티븐턴을 떠나, 바스로 온 가족이 떠나게 됩니다. 1804년, 오스틴은 바스에 지내면서 소설 '왓슨 가족'을 쓰기 시작했지만 완성은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많은 여성 작가들처럼 그녀 역시도 익명으로 책을 출판하기에 이르는데요. 동생인 에드워드의 손에 이끌려 이주한 차우튼에서, 그녀의 소위 4대 작품이라고 일컫는 소설을 성공적으로 출판합니다. 이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었고 당시 젊은 귀족들이 여론을 주도하여 크게 유행을 타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이성과 감성'으로 당시로서는 꽤나 많은 수입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16년에 이르러 일시적으로 건강이 나빠졌지만 이를 무시하고 집필활동에 정력을 쏟았지만, 1817년 7월, 그녀는 갑작스레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의 유해는 윈체스터 대성당 본당의 북쪽 통로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녀의 비문에는 오빠인 제임스가 글을 작성했고, "그녀의 뛰어난 지성"에 대한 언급이 있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소개할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Emma"로 지난 1816년에 출간되었고, 이 번역본은 2016년 시공사에 의해 출판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번역본의 추천사에는 주한 영국 대사의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오스틴의 이 작품은 런던 인근의 가상 마을인 하이버리와 그 주변 영지인 하트필드, 랜달, 돈웰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장편의 주인공인 '에마 우드하우스'는 하트필드의 터줏대감인 유서 깊은 우드하우스가의 차녀로, 과거 귀족 가문의 유산을 바탕으로 지역의 다른 여타 인물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세속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스틴의 이 소설은 일종의 '풍속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더해, 주인공인 에마의 약간의 좌충우돌식 숙녀 성장기와 이 시대의 (성을 가진) 특별한 여성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그려내는 적지 않은 분량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만, 제인 오스틴이 추구하는 특유의 문학적 방향성과 더불어, 숨기지 않는 현실적 모습을 이어지는 여러 사건들과 절묘하게 배치함으로써, 다양한 서사를 따라가는 일독 그 자체로는 매우 즐거운 편이었습니다.

여느 노인들과 비교해서도 상당히 예민하고 거기에다 건강염려증까지 보이고 있는 부친을 지근거리에서 보살피고 있는 에마는 이 작품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극 중에서 에마의 외모를 소개하는 오스틴의 묘사 역시도 한 눈에 봐도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요. 그녀 자신의 지위로서 뿐만 아니라, 우드하우스 가(家)의 실질적인 안주인의 위상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녀 자신이 지역 내의 상당한 존중을 받고 있음을 드러내는 설명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녀를 하트필드의 주변을 통틀어 마치 '여왕벌'처럼 노골적으로 칭송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중심이 되어 벌어지는 주변 관계들 간의 교류와 그 와중에 과거 테일러 양이었던, '웨스턴 부인'과 안쓰러운 사생아이기도 한 헤리엇 스미스를 배치해, 이들 사이에서 무엇보다 '분별력을 갖춘 숙녀의 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특히 이 시대의 '고귀한 여성들'에게 있어, 변함없는 숭고한 애정과 그로인한 가문 간의 혼인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였으며, 시대를 표상하는 전반적인 결혼관, 그리고 그 실상에 대해. 오스틴은 특유의 관찰자적 시점으로 이를 가감 없이 드러내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기본적 이해는 시대극이 갖는 장점이기도 하며, 각 시대별로 살아간 인물들의 내밀한 모습을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펴볼 수 있게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그녀의 가정 교사였던 '테일러 양'이 인근의 웨스턴 가에 시집을 가게 된 연유에는 바로 에마의 공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혼기에 이른 훌륭한 여성이 마찬가지로 명예로운 신사에게 향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지난 에마의 행적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는데요. 신분과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만남과 관계라는 일종의 구시대적 관습은 여전히 소설 속 사회의 중요한 가치였고, 이는 해리엇 스미스를 통해서도 대비되어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극 후반부에 오스틴 답지 않은 '부실한 결론'을 감안하더라도 해리엇이라는 여성의 인물 조성 자체는 독자들에게 뿌리 깊은 영국 왕국의 신분적 단면을 엿보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그녀가 사생아라는 측면의 제약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에마가 해리엇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살뜰하게 챙겼던 연유에는 같은 여자로서의 무던한 이해가 배경이 되었을 겁니다. 소녀의 시기를 지나 숙녀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던 해리엇에게 지워진 신분상의 제약 만큼이나 '숙녀의 기본 자세'를 중요시하는 에마에게는 무엇보다 그녀를 관리할 스스로의 명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어설픈 숙녀를 노리고 있는 결격 사유의 남성들이 있을 수 있다고 에마는 믿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로버트 마틴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물론 극 중에서 에마와 해리엇의 우정에 대해 한치도 경멸할 수 있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데요. 다만, 이 두 사람의 우정이 에마의 경솔한 '사랑의 작대기'로 시험 받았다는 측면과 일전에 경험한 테일러 양의 성공적인 사례로 말미암아, 유독 에마 자신의 결혼 문제는 부친의 존재로 멀찍이 밀려났지만 역설적이게도 작가는 후반부의 극명한 서사로 말미암아, (인물 조성에 공들인) 해리엇을 결국 '조기 결론'으로 이끌게 됩니다. 이 부분 역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에마를 둘러싼 일종의 소란들이 '겹겹의 풍속'으로 나타나고 이 가운데 이런 숙녀들이 어우러진 통속적 연애 소설로서, 이 이야기 자체로 당시 일부 계층에게는 상당한 교훈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 묘사된 '신분에 걸맞는 결혼' 즉, 에마의 친언니인 이저벨라와 신흥 가문이라고 볼 수 있는 나이틀리 가의 결합은 여기서 중요한 설정이기도 했는데요. 즉, 제인 오스틴이 당시의 풍속을 어떠한 거름망 없이 여실히 묘사하면서도 '신분에 맞는 결합'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을 아낀 것은 어느 정도 복합적인 요인에 기반하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시대상 그 자체 일수도 있고 그런 '신분의 보수성'이 당시를 살아간 제인 오스틴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요소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뒤이어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인, 제인 페어팩스 역시, 가볍지 않은 비중으로 에마와 쉽게 비견되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에마와 비교해서 빈한한 가정사(3만 파운드의 유산을 받을 에마와 비교해서는)와 수양 딸과 비슷한 상황으로 인해, 내면이 아래로 침잠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저의 이런 표현이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제인이라는 인물 자체는 에마와 비교해서도 충분히 인정 받을 만한, 훌륭한 숙녀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솔직하고 다양한 루트의 감정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에마와는 달리 제인은 스스로의 감정과 기분을 타인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상반된 인물인데요. 이 지점에 있어 어느 정도는 극의 반전을 위해 작가인 오스틴이 설정한 측면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녀 자신은 '타인의 호의'에 본능적인 의심을 내비치는 인물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숙녀들 간의 오고감이 단순히 사교계에서의 질의 응답과 전형적인 화답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소설의 주제와 맞물려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각자가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적절한 예의와 그에 따른 화법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절제된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나름 인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치 현대의 극단적인 직접 화법과 다름없는 날 것의 '감정 분출'과는 달리, 이 소설의 사회에서 보여지는 적절한 신분을 배경으로 한, 남녀 간의 그 예의의 문답은 어느 정도 고풍적인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와 별개로 주요 남성 캐릭터이기도 한, 조지 나이틀리와 (웨스턴씨의 사연 많은 아들인) 프랭크 처칠은 서로가 매우 구별되는 인물들입니다. 치안 판사로 재직 중인 조지 나이틀리는 에마의 남편인 존 나이틀리와 친척 관계로 극의 1부 전반에서, 에마에 의해 약간의 '별종'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그는 숙녀들에게 일절 '넉살을 부리지 않는' 신사로, 하이버리에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있어, 어느 정도 주변을 맴도는 인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거의 존재감이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극 후반부인 3부에 가서야, 조지 나이틀리의 진정한 인물됨이 드러나게 되는데요. "나는 진실만을 말한다"는 그의 의미심장한 대사와 '견실하고 섬세한 원칙주의'로 설명하는 그의 인생 자세는 몇 마디 말로도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그와는 다르게 웃는 낯과 언변을 갖춘 프랭크 처칠은 극 전환의 주요 키워드로 읽혔으나 다른 연유로 제게 충격을 준 인물입니다. 그는 꽤나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열정에 쉽게 사로잡히는 인물로, 극 중에서 "책을 읽고 교양을 쌓는 일반적인 신사들"에 비하면 송곳처럼 대비되는 인사입니다. 극의 중후반부에서 에마와 매우 가까운 웨스턴 부인을 상상의 나래로 이끌고 마는 그의 성급한 감정 기복은 오래지 않아 이 작은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2부 이후의 큰 두 가지 사건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요. 특히 프랭크 처칠이 관여 되어 있는 그 의미심장한 사건에 있어, 작가인 제인 오스틴이 서사의 장구한 계획이라는 일환에, 개연성을 가히 인질로 사로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비틀린 극의 전개가 그 대목을 읽을 당시에는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 지점의 프랭크 처칠은 여지없이 여러 숙녀와 얽히기도 했고 오스틴이 극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분별력을 갖춘' 인물로는 설명되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프랭크 처칠의 쓰임새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이렇게 대립되어 나타나는 조지 나이틀리와 프랭크 처칠의 구분은 마치, 제인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 그려낸 이야기와 흡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누군가의 진정한 인물됨은 그저 몇 마디의 말과 도드라진 행동으로 판단될 수 있는 계재는 아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얼마전의 자신과 다른 성장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에마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하트필드의 주변에서 반쯤은 스스로 자초한 일들로 인해, 내면과 가치관이 성장하기에 이르렀고 끝내 진정한 사랑에 대해, 자발적으로 눈을 뜨게 되는데요. 전반적으로 이 작품이 어떤 '맹렬한 주제 의식'을 답보하고 있는 여타의 그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단순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삼아 그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간의 재미 정도로 이해해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주인공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을 통해, 신분의 조건과 단순한 삶의 양태를 넘어서는 그 사람의 '순수한 의지'에 대해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프랭크 처칠이라는 인물을 그저 조소하려는 것이 아닌, 사람의 진정한 내면과 귀감이 될 수 있는 본성 자체는 쉽게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는 법이며, 그간 제인 오스틴이 그려낸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이러한 베일 속에, "조급하고 무분별한 애정"에 대한 분명한 의심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꽤나 유쾌하게 이 소설을 일독할 수 있었는데요. 작품 초반에 어설프게 얽혀 있던 조지 나이틀리의 (오해를 방치한) 대사들과 그의 행동됨을 다시금 돌이켜 볼 수 있는 부분은 나름 즐거운 복기였습니다. 그리고 엘턴 부인으로 극대화 된 유일한 희화화를 제외한다면 오스틴이 만들어 놓은 인물들은 대부분 개연성 있는 조성으로 본래의 내면과 그것이 엿보이는 어투와 행위 등이 보다 사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는 제인 오스틴 특유의 생생한 인물 설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극의 결말이 다소 성급하게 마무리되어 이 부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극 후반부를 이끄는 주요한 두 가지 사건도 따로 언급해야 했으나 이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상세한 분석은 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엘턴 부부에 대한 서사적 분석 역시, 극중 주요한 사건이 혹여 그 과정에서 드러날 가능성이 있기에 아쉽게도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엘턴 부부에 대한 설정 자체는 제인 오스틴이 거리를 둔, '부분별한 결혼, 무분별한 애정'의 집합체로 이 부부 자체가 편협한 시대상 그 자체에서 젊은 남녀가 경계해야 할, 분명한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본문 388페이지에 띄어쓰기 오류가, 본문 626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또한 651페이지에 문장 중간에 뜬금없이 마침표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보기에 번역은 전반적으로 훌륭하다고 볼 수 있었으나, 편집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렇게 더할 나위 없는 양장본으로 출시된 작품이 저런 오류들을 수정하기 않고 급급하게 내놓은 것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남편은 그녀가 아름다운 미덕을 발휘해 자신을 사랑해주었으니 그 보답으로 결혼 생활에서 모든 것을 아내애게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마음씨가 따뜻하고 기질이 상냥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부분의 여자들에게서 예상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자신의 상황에 잘 대처했으며, 작은 곤경과 시련을 잘 참아내고 순조롭게 헤쳐나갈 만한 분별력과 활력과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

하이버리에서 우드하우스 양의 입지는 대단한 것이었으므로, 그런 사람을 소개받는다는 것은 스미스 양에겐 기쁜 일이면서 동시에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었다.

해리엇은 획실히 영리하지 않았지만 다정하고 유순하며 고머워할 줄 아는 성품이었고, 자만심은 조금도 없었으며 다만 자신이 우러러보는 사람을 귀감으로 여겨 따르고자 했다.

"내가 일반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는 건, 해리엇, 만약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마땅히 그 남자를 거절해야 한다는 거야."

"만약 당신을 비롯한 남자들 대부분이 그런 아름다움과 그런 기질을 여성이 갖출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자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 착각이 이만저만이 아닌 거겠죠."

그리고 잦은 사교 활동과, 그런 것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형부의 성향은 다름 아닌 철저할 정도로 가정에 충실한 습성, 자신에겐 가정만으로 족하다고 여기는 태도에 기인한 것으로 어딘지 모르게 존경스럽고 가치 있어 보였다.

에마가 툭하면 혈색이 나쁘다고 흠잡았었던 제인의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섬세해서 가히 활짝 피어 절정에 이른 꽃과 같았다. 그런 만큼 에마는 나름의 원칙이 있음에도 도의적으로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런 우아함은 용모 면에서나 정신 면에서나 하이버리에선 좀처럼 드문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에마는 자신과 그의 만남에 대해 사람들이 품을 만한 기대, 예전부터 그녀의 마음을 강렬하게 지배해왔던 생각을 그도 한적이 있을지, 그래서 그의 찬사를 동의의 표시로 봐야 할지 아니면 반항의 증거로 봐야 할지 궁금해졌다.

에마는 숙녀를 대하는 그의 정중한 태도에 다소 아집이 섞여 있음을, 그리고 그녀와 춤을 추는 즐거움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그녀에게 반대하는 쪽을 택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떤 일이 있어서도 아버지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확고히 결심하긴 했지만, 사랑의 감정이 강렬하다면 지금의 감정에서 예견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심란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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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직 언론인이자 전 정권의 고위 관료였던 인물이 자택에서 체포를 당했습니다. 이 사람은 기사에서, 그동안 6차례의 경찰 출석 요구에 불응한 것으로 나왔고, 그로인해 법원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다른 혐의도 수사중이거나 곧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아는데요.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정치적 발언으로 인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취지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과방위 위원들이 고발했던 점이 이번에 수사가 되면서 이어진 일로 위 사건을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 독서 모임에서 만난 어느 국회의원 비서관 분과의 몇가지 대화가 떠오릅니다. 그는 국민의힘이 새누리당이던 당시, 모 의원의 비서관을 하고 있던 분이었는데요. 자신이 생각하기에 국회의원을 비롯, 소위 고위 공무원들, 법조인들에 대한 가장 큰 문제를 거론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사회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고 직무가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사사건건 법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아무리 법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따른 고려가 필요하다."는 식의 '들은 얘기'를 이야기해 주더군요. 저는 앞선 제목처럼 이 '법의 지배'가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아주 중요한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위 잘나가는 양반들이 (물론 일부겠지만)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고위 공무원이나 요직의 법조인들, 혹은 정치인들의 생리를 전부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사고 과정과 인식의 범위 자체 뿐만 아니라, 소위 '특권'으로 읽혀질 수 있는 문제 의식에 있어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는 것은 엘리트들의 도덕적 기준 및 법의 평등이라는 관념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많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 존 듀이는 시민 각자가 '정치적 분별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래쉬 또한 시민들이 분별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갖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지그문트 바우만이 인용하던 크리스토퍼 래쉬의 사례가 문득 떠오릅니다. 사실 저는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 시점부터, 포퓰리즘이 어떤 정치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조로 자리매김하면서, 극단의 정치가 암세포처럼 자양분을 얻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마누엘 카스텔이 예견했던 '온라인의 혁명'이 정치적 발전에 기여했던 것이 아니라, 결국엔 사익 추구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의 음울한 추락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들의 발언을 쏟아낼 수 있는 매체들이 기술적으로도 발전했고 심지어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 이익 추구가 가능하게 됩니다. 마크 트웨인이 자신의 짧은 단편을 통해, 껍데기에 불과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정치 혹은 사회 전반을 냉소했던 장면도 떠오르는데요. 어떠한 왜곡된 '스피커'를 사회의 정화작용으로 마땅히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과 심지어 그 사람의 경제적 이익까지 챙겨주며, 그의 뒤를 봐주는 '분별력을 잃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그만큼 이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위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선 그 사람은 자신의 '예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에 있어 매우 중요하죠. 표현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그야말로 죽은 사회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의 표현이 법이 인정한 '제한과 의무'에 저촉되지 않는지, 한 개인의 위치로서가 아니라, 그가 맡고 있는 직위에 따른 '제한과 의무' 범위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었는지, 이를 법적으로 판단해 보는 것은 체제의 안위와 정치의 온전을 위한 그 대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법정에서 판사가 자리에 들어설 때, 법정의 모든 사람들이 몸을 일으켜 판사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나, 그의 말에 경청하고 그가 조직하는 법정에 기꺼이 수복하려고 하는 것은 그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의 공정한 대리를 맡고 있는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판사가 심리하는 법정의 판단을 그 고위직도 아무런 사심없이 응할 의무가 있으며, 이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그야말로 법의 평등을 존중하는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정치의 범위 안에서 벌어진 일들은 왠만하면 정치의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때론 정치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무엇보다 시민들이 아닌 당사자들의 의견에 따라, 법의 판단을 받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 정치적 당사자들이 시민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아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또한, 정치에 속한 인사들이 정치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 두 양자를 엄격히 분리하고, 도덕적으로 관리하거나, 스스로 그 양자가 협력하게 되는 일은 지양해야 했으나, 실상은 이 모든것이 권력의 행태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면에서 법의 판단은 더 가혹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심각한 정치적 대결구도에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동업자 의식'처럼 그러한 동조 의식이 결여된, 작금의 정치 무대는 그야말로 정치적 독립이 흔들리는 양상으로 자초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이 당사자들에 의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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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사회 - 무한한 욕망의 세계사
다니엘 코엔 지음, 박나리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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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코엔은 1953년 6월, 튀니지의 튀니스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약사인 어머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프랑스 중남부의 오트루아르 주의 생디디에앙벨레에서 기초 교육을 수료한 후, 1973년에 프랑스에 소재한 그랑 제꼴 가운데 가장 명문이라고 볼 수 있는 노르말 쉬페리외에 입학합니다. 이후 1976년에 수학 전공으로 학위를 수여 받고, 3년 뒤인 1979년에는 경제학으로 프랑스 국립 박사 학위 (DND)를 취득합니다. 또한 그는 1986년에도 파리-낭테르 대학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데요. 동시에 1981년부터 1982년, 1983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 하버드 대학의 방문 교수로도 재직했습니다. 그는 앞선 교수 이력 이외에도,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총리와 함께 경제 분석 위원회 (CAE)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국가 부채 전문가로서 라자드 은행의 고문으로 그리스 총리와 에콰도르 대통령에게 국가 부채 협상에 대한 조언으로 유명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프랑스아 올랑드의 지지자로서, 프랑스 내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사회적 족적을 남긴 코엔은 2023년 7월, 혈액 질환으로 한창 활동할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Le monde est clos et le désir infini"로 지난 201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 3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일독했던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현대'에서 다니엘 코엔이 수차례 인용되었기에 이번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논저 가운데, '악의 번영'은 꽤 많은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소개할 이 글은 인류와 함께 시작된 생산과 그 수단의 증대 그리고 그로 인한 비약적 인구 증가를 바탕으로 한 경제사의 개요로, 경제학이 익숙치 않은 독자들이 보기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비교적 수월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코엔은 자신의 논증을 위해 '인간의 역사' 가운데 시기 별로 요약하고 있고, 더욱이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와 로베르 카스텔과 같은 많은 학자들의 글을 직접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책을 단순히 광범위한 경제사나 혹은 사회사를 축약한 내용으로만 보기에는 어폐가 있기도 한데요. 단지 인간의 합리성이라는 주제로 경제적 사회발전사에 국한되지 않고, 계몽주의가 어떻게 경제적 인간에 기여했는지를 논하면서, 인간이 이룩한 생산의 발전과 사회적 부의 증대의 과정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상세히 고찰해 보는 것이 주된 출판 의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합리성의 체계적 경쟁으로 말미암아, 저자인 코엔의 분석대로 서양과 동양의 격차는 소위 칭기즈 칸의 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판단됩니다. 여기서 그는 이 '유목민 제국'의 이상하리 만큼 비정상적인 영토적 야욕과 서쪽으로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중국의 경제를 초토화 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단언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유목민의 약탈 경제에 그동안 중국 왕조가 구축해 왔던 농경 경제를 비롯, 사회적 경제가 가히 뿌리 뽑혔다고 보는 듯 했습니다. 더욱이 유럽의 경제 변혁을 이끌어 낸 주요 사건들 가운데, 14세기의 흑사병은 당시 봉건제도에 기반한 유럽의 사회 경제를 대혼란에 빠뜨렸다고 진단하는데요. 일종의 흑사병이 유럽의 임금 노동 체계를 아예 재설정하기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급격한 노동 인구의 감소는 그런 여파를 초래할 수 있겠죠. 즉, "흑사병의 위기는 유럽 전역에서 임금 인상을 촉발했고 평균 임금은 평소 수준에 비해 두 배로 뛰어올랐다"고 그는 뒤이어 서술합니다. 또한 저자는 이렇게 수세기에 걸쳐, 인간의 노동 가치라는 소위 임금 상승이 영국의 산업 혁명에 영향을 끼쳤다고 논의를 확장하여,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단편적으로 대부분 당시의 산업 혁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 혁명'으로 비롯되었다고 이해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그 이전의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생산 발전에 이바지했던 분명한 기여와 이러한 체계적 시스템이 기존의 변화된 신념과 함께, 전세대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급격한 인구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중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런 연유로 토머스 멜서스의 기존 연구들이 이러한 맥락에서 한때 주목을 받은 이유일 텐데요. 그렇게 알려진 인식은 뒤이어 등장하는 '서구 유럽의 급부상'과 매우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의 논증은 꽤나 정교해서, 어느 정도 설득력을 답보하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전통적 자본이 관여하게 되는 막대한 생산물의 증대는 그전에 볼 수 없었던 기계와 그것이 성공적으로 조합된 산업 혁명의 폭발적 확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노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흔히 '러다이트 운동'이 영국에서 발생한 극명한 사회 운동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기술 발전에 대한 저항'은 사실상, 러다이트를 끝으로 종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한정적인 세계사적인 측면에서는 말이죠. 이는 한참 후에 등장하는 포드주의에 이르러, 인간의 노동이 사회적 협상과 기업의 권력 경쟁을 통해, 그 사회적 의의가 점차 축소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많은 사회학자들은 그저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문명의 과실과 삶의 조건이 비약적 개선되었던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는 역설적이에도 인간의 원초적 노동력에 대한 하향적 재평가로 수정될 수밖에 없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차츰 산업 전반에 도입되었던 '기계'들의 존재로 말입니다. 심지어 이러한 이행은 평범한 인간들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파고였고, 이 지점에서 저자인 코엔은 직접 인용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뉴딜 시대의 극적인 사회적 타협을 제외한다면 전통적인 노동 자체는 과하게 말해서, 종속적 지위로 격하당했다고 요약해 볼 수 있겠습니다.

코엔은 자신의 이 글에서 꽤 신중하면서도 특별한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는데요. 과거 프로테스탄트 혁명을 거치면서, 전유럽 사회는 기존의 종교가 분리되는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계몽주의가 세속화와 함께, 세계는 그 전과 다른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이는 인류에게 있어 본격적인 '진보'의 조건에 대한 사실상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확장된 논증에서 인류가 종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자마자 계몽주의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이러한 변화된 상황이 소위 생산 수단의 발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진보'에 대한 감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종교 혁명이 거의 노예 상태에 다름 없었던, 인간에게 종교의 억압을 걷어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막스 베버가 인식한 프로테스탄트 혁명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뒤이어 나오는 "계몽주의는 전반적으로 물질적 진보 개념을 경계하는 태도를 유지했다"는 코엔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흔히 (경제적) 합리성과 계몽주의와의 상관 관계를 논하는 수많은 학자들의 인식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분석이기도 한데요. 더욱이 코엔은 후에 등장하는 걸물인, 애덤 스미스가 이 '진보'의 개념을 정신적 의미로 받아들일 생각을 못했다는 평가에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애덤 스미스는 일의 전문화가 노동자들의 도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들을 향한 도덕 교육이 사회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고 여겼는데요. 이처럼 스미스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작은 면에서조차 상반된 인식이 존재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굳이 '도덕 감정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스미스에게는 노동이 인간을 예속하게 만드는 여느 '진보'에 대한 도덕적 쇠퇴를 우려했던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코엔은 일종의 동어 반복일수도 있겠지만 후기 자본주의가 구축한 약육강식, 승자독식과 같은 불평등적인 분배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에 놓인 중산층이 과연 '민주주의 이상'에 있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표합니다. 이는 후기 자본주의 이후, 녹록하지 않은 사회 환경에 따라, 점차 중산층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들의 지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과연 민주주의는 온전할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여겨지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핵심 사항으로 발전된 후기 자본주의 이후의 모습이, 시장에서 소비를 해나가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식비, 주거비, 의복비, 교통비"가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에 시민이자 소비자인 우리가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가 있었는데요. 이에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를 인용한, 코엔은 "초고소득을 올리는 소수의 인원이 빈민층의 소비재를 무료로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식으로 만사가 진행된다"는 문장으로 '시장의 구매'가 본질적으로 새로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은, 실질적 소비에 대한 허황된 전망으로 가늠해 볼 수 있겠는데요. 이처럼 소비에 대한 진정한 차별, 시장에서의 그런 소비들이 단순히 판매를 넘어, 사회의 안정에 기여하는 일자리 창출로 매번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일종의 진실을 드러내게 만듭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허망한 구호에 익숙한 현대 사회와 그 양태에 대해, 저자는 르네 지라르를 인용하며, 소위 이중 구속 double blind 을 바탕으로 분석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벌이는 모순된 명령 체계로, 우울하게도 이런 측면의 모순은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인간의 욕망과 자아 실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장치로도 읽힙니다. 아버지나 아들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일방적 상황을 자초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결코 앞선 양자를 만족 시킬 수 없는 현실을 콕집어 냉소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진술이 오늘날 사회적 인정을 바라는 개인들의 욕구, 그리고 그것이 기반이 된 정체성 실현에 속지 않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를 달리 언급해본다면, "서구 사회를 가로지르는 정치적, 도덕적 위기는 성장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사실에 많은 빚을 지고 있거니와, 시장이 기반이 된 자본주의의 명백한 한계, 이를테면 돈과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코엔은 덴마크 모델을 일종의 검토할 만한 대안으로 보고 있었는데요. 바로 덴마크에 거울처럼 프랑스를 비춰, 자신의 조국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고찰해 보고 있습니다. 과거 프랑스는 유구한 역사에서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국가였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하고, 마치 "보수주의자들이 경제자유주의와 동맹을 맺어 좌파에 대항했던 것"처럼, 프랑스 역시 거듭된 세계화의 주축 국가로 나아갔다고 증명하고 있었는데요. 이들 프랑스인들이 남들과 비견했을 때, 스스로 평등하기를 원하지만, 다른 이기적인 측면에서 남들과 진정 평등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역설 자체는 세계화 시대의 개인주의적 욕망과 이기심의 추구가 그리는 세계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끝으로 저자는 글 후반부에서 프랑스의 퇴직연금제도의 불확실성과 빈민층을 게토화시키는 일련의 사회화 과정, 그리고 '족내혼'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비슷한 계급 간의 동질혼을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 후기 자본주의가 초래한 '사회적 분리'를 타파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이런 프랑스의 과제는 서구 선진 국가들의 거의 동일한 (어두운) 유산으로 시민 사회가 계층과 계급으로 분리되는 상황을 더욱 고착화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의 파급은 거의 명백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후 몇 세대에 걸쳐, 그저 자본주의의 당면한 모순만으로는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파국'은 입 밖으로 내뱉는 것조차 두려운 일이지만, 여기서 분명한 점은 정치 또한 한 묶음으로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앞선 '게토화'와 철저히 분리된 계급 간의 영역 고착은 바로 음울한 전망을 대변하는 소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래할 진정한 정치의 위기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예측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최종적으로 코엔이 후반부에 논증하는 소위 '과제들'은 분명 중대한 의미 내지는 의미심장한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지속적인 고성장을 기대하지 않는 자기암시 요법보다는, 장기간의 성장 변화를 예측하는 일은 단 10년의 단위로도 불가능함을 받아들이고, 경제의 파란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자 행동해야 한다"는 그의 조언은 우리 모두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과거 68혁명의 여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르주 바타유에 대한 향수는 흡사 진보적 프랑스 지식인들의 전형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바타유가 그동안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끼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 이 책을 통해서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 변화에 떠밀려온 인류는 이런 유의 노력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며, 변화의 실질적 의미를 언제나 나중에야 깨닫곤 했다.

18세기 말에 멜서스는 인류 역사를 ‘식량이 풍부할 때 인간은 그 수를 불린다‘는 극도로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요약했다.

수치심의 지배를 받는 사회는 타인의 시선이 가하는 외부적 압력에 속박되기 마련이다.

금리 또한 추락하고, 득을 보는 것은 금융 혹은 부동산 자산뿐이다. 따라서 임금 디플레이션이 자산 가치 상승을 야기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첫 번째 변천은 막스 베버가 말하는, 사회의 주요 조직 원칙으로서 주술 혹은 신앙이 이성에 자리를 내주는 ‘세계의 탈마법화‘에 해당된다.

두 번째 근대성, 탈물질주의적인 근대성을 향한 희망은 더더욱 혹독한 현실에 격파당할 처지에 있었으며, 과거 모욕당했던 산업사회를 향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더는 과거의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 계획에 따라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처럼 스스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순전히 인간만의 능력, 그리고 세상을 개선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리켜 루소는 ‘개선 가능성‘이라고 일컬었다.

경영자와 피고용자 간의 이익 담합을 일체 막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를 제정했다. 경영자를 임금노동자에서 제외한 뒤 그의 보수를 기업의 주식 성과에 연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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