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 대산세계문학총서 57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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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이름이 이디스 뉴볼드 존스인 워튼은 1862년, 미국 뉴욕시 웨스트 23번가 브라운스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조지 프레데릭 존스로, 존스 가문 자체는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번 부유한 가문이었습니다. 덕분에 부친이 사망하자 워튼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부친의 사촌은 도금시대 사교계에서 이름을 알린, 캐롤라인 셰머혼 애스터로, 워튼은 이렇게 돈과 지위를 갖춘, 명망 있는 가문의 여식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작문에 재능을 보인 그녀는, 1877년, 15세가 되던해에, 비밀리에 자신의 중편을 발표합니다. 이후 1885년 4월, 워튼은 자신보다 12살 연상인 에드워드 로빈스 워튼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그의 남편은 보스턴 명문가 출신으로 워튼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유력 가문의 신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인 테디 워튼은 1880년대 후반부터 1902년까지 만성적인 우울증을 앓았고, 같은 기간에 워튼 역시 천식과 우울증을 앓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아무래도 그녀가 원하는 결혼 생활이 아니었기에 이 시기에 워튼은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쯤 그녀에게 평생 지기가 되어준 헨리 제임스를 만나게 되고, 동시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지속하게 됩니다. 이런 문학 활동외에,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광적인 제국주의자로 밝힌 워튼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헌신적인 지지자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의 이에르에서 지내면서, 그녀는 1920년에 <순수의 시대>를 완성합니다. 일생동안 단편은 85편을 쓸 정도로, 장단편에 구애 받지 않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그녀는, 1937년 8월 11일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는데요. 이후 베르사유에 있는 외국인 묘지에 묻혔는데, 오랜 친구였던 월터 베리와 함께 영면에 들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The Reef"로, 지난 191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번역 작품으로, 지난 2007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워튼의 이 작품은 생전 고통스럽지만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해주고 또한 헨리 제임스 만큼 그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모튼 풀러튼'과의 연정이 이 작품에 녹아 있습니다. 극중 주요 인물이기도 한, 조지 대로우와 소피 바이너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어쩌면 중대한 스포일러일 수도 있으므로)인 한 호텔의 묘사가 워튼 자신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저에 궁금증이기도 했던 워튼이 왜 유독 남자 주인공들을 '지적이며 독서를 좋아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었는지, 비로소 그 정확한 연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조지 대로우 역시, 헌책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었는데요. 더욱이 다른 여주인공이기도 한, 애너 리스의 입으로, "대로우가 자신의 세계를 넓혀주고, 생각의 차원을 높여주곤 했다"는 이 의미심장한 독백은, 대로우를 지적이면서 이성적인 캐릭터인 동시에 그 시대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성상으로 그려낸 듯 보였습니다. 


이 극을 거의 좌우한다고 볼 수 있는 소피 바이너는 어떻게 보면 워튼의 중편소설, "버너 자매"에서 부분적으로 차용한 인물로 여겨집니다. 그녀는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을 뿐더러, 여기에 양친까지 여의고, 심지어 자신 스스로를 위해 쓸 수 있는 어느 정도 가용할 수 있는 돈도 없는 상황입니다. 더욱이 그녀를 구원해 줄 어떠한 연줄도 없고 누구에게도 금전적 자비를 구할 수도 없는 실정인데요. 그녀는 성격적으로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머릿 부인집에서 그저 잡일을 몇 년간 해왔지만,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도 받지도 못하고 그 집을 뛰쳐 나온 시점입니다. 바로 이 작품의 서두가 소피와 대로우의 만남으로 시작되는데요. 저는 이 장면에서 일전에 읽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의 '밀입자'가 절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대로우는 젊은 시절,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연애도 해보고 어떻게 보면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영국 외무부의 외교관입니다. 그는 고위 외교직으로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도 충실한 마음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젊은 시절 치명적인 불장난으로 인해, 자신에게 맞는 아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애너 리스와 서로 먼 길을 돌아가게 되는데요. 아마도 애너 본인이 보기에 이렇게 지적이고 사리분별이 뛰어나고, 누군가에게 훌륭한 조언을 할 수 있는 멋진 사내가 당시 사교계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여성과 염분을 뿌리고 다닐지는 꿈에도 몰랐고 그런 연유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두 사람의 한결 같은 연정에도 불구하고, 애너는 거의 즉흥적으로 눈에 들어온 다른 사람과 결혼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제 대로우는 스스로 인생 경험이 많이 쌓였고 또 직무에 있어서도 꽤 궤도에 올라, 연구도 해보고 외국에 나가는 기회도 얻게 됩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애너는 남편을 사별하고 미망인이 된 기간이 이미 여러 해가 지나, 두 사람의 진정한 재결합이 작품의 서사 한 가운데에 놓여집니다. 다만, 애너, 그녀 자신은 프랑스의 한적한 지역에서 스스로 고립된,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삶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작고한 남편과는 전혀 애정이 없는 결혼을 시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한 채 원만했고, 의붓 아들인 오언을 자신의 친아들 마냥 마음을 다해 키워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그간 이룩한 성과 가운데 하나였는데요. 저는 이 장면에서 애너의 본성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조용하고 스스로에게 진지한 여성이면서 삶과 관계에 있어, 어떠한 오점도 없는 인물인데요. 그렇지만 꽤 오랫동안 자신에게 사랑을 보이는 대로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렇기에 매번 둘은 서로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도버해협을 두고 대로우에게 보낸 전보 역시, 그런 미적거림을 다시금 반복하는 것으로 읽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이번에도 애너의 확신을 받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도 그녀의 아무런 이유도 없는 전보에 크게 실망한 대로우는 억지로 쓴 남은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될지, 해협을 가운데 두고 고심을 하게 됩니다. 아주 복잡하고 실망스런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그는 몇해 전, 머릿 부인의 파티에서 우연잖게 만나게 된 소피를 우연히 재회하게 됩니다. 소피는 한눈에 보기에도 아름답고 젊고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워튼은 그녀의 모습에 대한 묘사에 꽤나 공을 들이기도 했는데요. "높고 감미로운 음성과 민첩한 몸놀림 뿐만 아니라 작은 코, 맑은 피부, 환하지만 연한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듯 가볍고 섬세한 용모"라고 묘사됩니다. 저는 서두에서 이 소피라는 여성이 대로우와 애너 사이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캐릭터로 예측했지만 이 예상은 정확하게 어긋나게 됩니다. 그간 읽은 워튼의 다른 작품들에서 등장한 여러 인물들 중, 소피 바이너라는 인물의 마음과 행적을 통한, 각인은 그만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녀는 자기 희생과 사랑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절대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순수하고 절제된 성품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아마도 작가인 워튼은, 당시 근대적인 분위기, 사회 계층에서 신분상의 계급이 많이 퇴색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류 계층과 이들이 주도하는 관계의 여러 모습들, 그리고 하위 계층에게 보이는 역겨운 시선 등 여기에 대로우의 젊은 시절 하위 계층 여성들을 스스로 육체적 쾌락의 대상을 삼은 것이나, 반대로 결혼에 있어서 만큼은 자신의 격에 맞는 여성을 찾으려는 그런 시도에서 애너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지속하는 것은 단순한 남녀 간의 애정 문제만은 아니라고 여겨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애너 역시 젋은 시절부터 고생이라곤 전혀 몰랐고 여기에 자신의 지위와 부에 맞는 결혼을 했으며, 지금도 사용인들을 거느리며 아무런 부족함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거듭되는 소피의 삶에 대한 진정성과 그것이 바탕이 된 좌절과 희망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대로우와 애너 두 캐릭터가 그 지위와 명예에 맞는 도덕 관념과 진실됨, 그리고 걸맞는 본성을 갖추지도 못한 점은 워튼이 소피라는 캐릭터를 통해 여실히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한 사람의 본성과 진실됨, 고결, 책임감, 관계의 진정성 등은 계급과 부의 유무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것이죠. 바로 이 두 사람을 위해 소피가 보인 자기 희생적 결단과 배려는 대미로 향하는 지점부터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간혹 보이는 지성과 판단력, 그리고 달변이라고 봐도 분명한 대로우의 모습은 계급적 신분도 그렇거니와 직업조차도 의미심장한 캐릭터인데요. 그에 대한 인물조성이 작가인 워튼이 공들여 썼던 만큼, 그의 허위와 가식, 그리고 위선까지도 지문 사이의 여러 상징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애너 역시, 답답하고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그 본성안에 자리한 고결 그리고 삶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 등이 한낱 얼음 조각처럼 쉽게 부서지게 됩니다. 특히, 애너의 지독할 정도로 편집증적인 모습은 작가인 워튼이 지난날 경험한 마음의 편린들에게서 비롯된 것인가 라고 의심될 정도로 집요한 서사로 점철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의 가시가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의문이 든 동시에, 작가 본인의 삶과 작품의 모습이 함께 유동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끝으로 워튼이 왜 이 작품에 대해, 그렇게 큰 애착을 가졌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약간 논외지만, 이 작품에서도 복합적인 의미로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하는 인물인, 애들레이드 페인터의 인물 조성 역시, 가히 워튼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본문 104 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귄 여자들은 모두 명백히 ‘숙녀‘였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대로우가 보기에 여자는 원래부터 그 목적으로 창조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남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 여기까지 진화해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본능적으로 이 두 부류를 엄격히 구분해서 생각했고, 이 두 인생관을 양립시키려는 중간 부류의 사람들과는 교류하지 않았다.

바이너 양이 빨대로 주스를 마시는 동안 대로우는 담배를 피우면서 다른 남자들의 눈길을 끄는 여성과 같이 있다는 사실에 원초적인 자부심을 느꼈다.

바이너 양과의 관계는 이 싸구려 호텔이나 불가피하게 진부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이 세상 밖에 존재하는 미지의 영역에서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삶의 모든 표현 방식을 알고 싶어 하되 그것이 아름다움과 세련된 감정을 통해 발현되기를 바라는 열정적인 아가씨는 리스가 대표하는 그런 사회에서 자신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행복 때문에 그 애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희생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조금씩 긁어내서 우리의 행복을 이뤄야 한다면, 얼마나 비참해요!

대로우에게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은, 오언이 자신과 바이너 양이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는 의심을 한다면, 계모의 약혼자가 그런 시간에 동생의 가정교사와 단둘이 만나고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기리라는 것이었다.

"오언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 건 상관없어! 사랑에 빠진 청년은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자기에게 싫증이 났다는 자존심 상하는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어떤 이유라도 갖다 붙일 거야."

소피 바이너의 사랑과, 그 사랑 때문에 그녀가 취한 행동이 대로우 앞에 버티고 선 채 그의 눈을 응시하며 그의 얼굴에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말은, 당신이 좀 더 나이가 들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 알게 될 거라는 뜻이지.

지금 생각해보니 리스와의 결혼 생활은 엄격한 자제와 질서로 특징지어지는,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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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법률가들 - 법은 어떻게 독재를 옹호하는가
헤린더 파우어-스투더 지음, 박경선 옮김 / 진실의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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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오스트리아 포어베르크 주의 블루덴츠에서 태어난 헤린더 파우어-스투더는 현재 비엔나 대학의 교수로서, 오스트리아 내에서는 저명한 여성 철학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학문적 분야는 윤리, 정치 및 페미니즘 철학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1977년에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뒤이어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에서 법철학 연구소의 조교로 일했으며, 1984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UC)에서 강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1996년과 1998년에 이르는 시기에는 하버드 대학에서의 연구를 거쳐, 2006년에는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으로 뉴욕 대학(NYU)에서 연구를 지속합니다. 이런 그녀의 연구들 가운데,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과거 나치 판사였던, '콘라트 모르겐'에 대한 훌륭한 논저와 동시대 국가사회주의 법 이론에 대한 공동 연구, 이외에 광범위한 자유와 평등에 관한 철학과 법학과 연계된 연구 활동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Justifying Injustice"로 지난 202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10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파우어-스투더의 이 책을 잠시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과거에 일독한 제임스 Q. 위트먼의 훌륭한 보론이라 느낀 부분인데요. 단편적으로 히틀러의 제3제국의 일련의 사법 체계와 국가 사회주의가 더할나위 없는 '악의 현신'으로 이해된다면, 그녀의 이 논저는 그런 정권에 부역한 법률가들, 법사상가들, 철학자들을 인용하며, 이들의 왜곡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학문적 분석 자체가, 현상과 구조적 모순에 대한 설득력을 답보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오늘날 꽤 위대한 정치철학자로 읽히는 '카를 슈미트'의 만행은 여기에서 낱낱이 폭로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슈미트의 실체를 지그문트 바우만과 마크 릴라를 통해, 처음 접하기는 했습니다만, 그가 왜 자유주의를 혐오했는지, 또한 많은 문명 국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주의적 관용을 왜 그리 대놓고 역겨워 했는지, 인간 카를 슈미트의 본질에 대한 단초를 충분히 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앞선 부분은 그 무엇보다 이 글의 특별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국가 통합은 모두가 알다시피 프로이센(체제로서와 국가로서)에 의해 사실상 완성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베르사유에서 제국을 선포한, 빌헬름 1세, 오토 폰 비스마르크로 통합된 독일 민족의 제국은 역사에 등장하게 되는데요. 개인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해 대다수 독일인들이 자유주의는 자신들과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여겼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후 과정에서 케인스의 여러 우려와 같은 독일 내부의 지식인들이 영국과 프랑스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경멸해 마지 않았던 점은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이는 대표적으로 카를 슈미트를 통해,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이는 저자가 언급하듯, 이미 1920년대부터 카를 슈미트는 자유 민주주의와 가치 다원주의에 대한 반감을 가감없이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독일 법학자들과 법철학자들, 그리고 다수 관료들이 좀 더 내부적으로 집중된 권력, 즉 아돌프 히틀러가 중심에 선 나치 체제를 사법적 근거를 마련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 이 책의 요지이기도 합니다. 카를 슈미트는 단호한 태도로 히틀러 정권을 지지했고, 더 나아가 이에 대한 법적 기반을 지원하고 구성하는데 노력했습니다. 이에 이 글 3장, '총통'에서, "민족사회주의 혁명의 목표는 모든 사회적 반대를 이겨낼 만큼 강력한 국가를 세우는 것이라고 나치 사상가들은 끊임없이 강조했다"고 저자는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었는데요. 결국 소위 민족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에서, 나치 법률가들 가운데, 울리히 쇼이너와 오토 퀼로이터는 유대계 독일인들을 무자비하게 배제하여, 새로운 질서 하에, 국가와 민족의 유기적 연결에는 아주 극명하게 "인종적 함의"가 숨어 있다는 것을 3장 말미에 저자는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 인종적 함의란 바로, "순혈 아리안주의"였습니다.


나치 체제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법사상가들은 히틀러에 의해 수립된, 제3제국을 정치적 독단, 폭력, 테러를 초월하는 국가로 묘사하기도 했는데요. 제3제국을 특수한 종류의 통합된 국가로 지탱해 주었던 것은, '전체국가'나 '통일된 국민국가' 또는 '국가주의적 법치국가'와 같은 공식이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 정치 이론에서 '집단의지','인민주권' 등을 부분적으로 차용하여, 국가의 법적 토대를 준비했다고 3장 이후, 논증되는데요. 이미 이들은 1933년 2월부터, 악명 높은 인종 이데올로기와 총통에 대한 사실상의 신화적 지위를 포함한, 민족사회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의 토대를 성공적으로 마련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기반에는 앞서 언급했던 대로 오랫동안 법을 연구했던, 법 이론가들과 법 사상가들이 그 이론을 제시하고 지원했던 역할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대통령과 총리의 지위 모두를 승계한, '총통'에 대한 유일무이한 입법적 권리의 부여는, 명실상부한 이 제3제국의 권력에 대한 어떠한 견제도 불가능하게 만든 초헌법적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순혈 아리안들이 주축이 된, 단일 민족국가의 영도자로서, 총통의 지위는 그야말로 확고부동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 뿐만 아니라, 저자 역시 히틀러가 자신의 권력 의지에 대한 욕망도 지대했고, 이러한 권력 집중에 대한 요체를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마찬가지로 분석하고 있었는데요. 물론 1939년 이후, 히틀러가 불법적인 영토 확장에 나서는 가운데,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이 민족사회주의 국가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직접적으로 평가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시기 폴란드에서의 폴란드인들과 유대인들의 조직적인 제거를 놓고 봤을 때, 이 제3제국의 팽창은 어쩌면 배타적 단일 민족 국가를 지향하는 이런' 왜곡적 정치 이데올로기'로 인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과거 바이마르공화국의 유산이라 볼 수 있는 상당히 체계화 된 사법 제도에서의 법해석이 앞선 법이론가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이는 법에서의 자유주의적 유산이 총체적으로 거세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나치 제국의 "처벌 없는 범죄는 없다."는 노골적인 이데올로기적 지침은 이 체제의 법 감정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더군다나 사법 제도에서 공정성과 정의를 답보하는 판사들에게 이례적으로 작의적인 해석까지 가능하게 할 정도로 법 해석에서의 무분별한 '재량권'을 강화합니다. 즉, 형법에서 "범죄에 대항하는 싸움이란 곧 민족공동체에 대한 배신과의 싸움"이라는 미명하에, 저자의 말마따나 자유주의 형법에서 애지중지했던, "생명, 자유, 재산 같은 법의의 보호"같은 관념을 거의 무력화시킨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글 4장에서, 당시 저명한 법 이론가였던 빌헬름 자우어는 형법을 윤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벌의 목표가 "심화, 내면화, 도덕화"가 되어야 하므로 "범죄에 대한 사회적,윤리적 보복, 특히 속죄"를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면서 소위 "민족적 양심"을 강조합니다. 그런 연유로 제3제국 내부의 반체제 인사들과 노동운동가 등을 법적인 절차 없이 체포해 강제수용소로 불법 이송한 사례는 이를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조직적 이론의 체계는 나치 제국의 사법 제도에서 어떻게 보면 관념적 근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배타적 민족 국가 내에서 자신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앞선 민족적 양심이라는 측면에 기반해, 일반적인 개인의 권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기에 이르는데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 이러한 체제 강요적 메커니즘 하에, 유대인 말살이 이들에게는 매우 사법적이면서 소위 윤리적인 근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더욱이 앞선, 판사에 대한 너무나 도가 지나친 재량권 부여는 결국 법 조항에 기반하지 않는 작의적인 판결을 내리게 되는 심각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소위 법 조항에 매달리는 계몽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일종의 왜곡된 결단주의적 함의가 짐작되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인종학자 한스 F. K. 귄터로 대변되는 '유대 민족에 대한 인종 연구'와 같은 경멸적인 작업들이 그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넘어,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고, 더 나아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점은 매우 불행한 역사의 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저작들은 나치의 인종적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이 책에서 기록되는데요. 이미 앞서 지적한대로, 이 나치 당의 목표였던 '유대인 배제'는 이미 1933년부터 계획되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막스 게르스텐하우어의 저서, "영원한 독일"로 이어지는 극명한 인종차별의 예시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주요 논점이 되기도 했는데요. 결국 윤리적, 인종적 체계의 새로운 윤리 체계가 탄생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5장 이후, "순수한 피와 순수한 민족의 특수성을 보존하는 것은 도덕적 임무이자 윤리 의무"라는 대명제가 도출되기에 이릅니다. 저는 당시 평범한 독일인들이 인종주의에 오도된 지식인들의 작업에 의해, 이렇게 쉽게 "다른 인종에 대한 물리적 제거"에 소위 열광하게 되었는지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나 아렌트와 같은 인간 본성에 잠재해 있는 악의 문제를 떠나, 자유주의와 가치 다원주의가 철저하게 제거된 "다른 형식의 문명 국가"가 어떻게 파멸에 이를 수 있는지, 나치 국가는 이를 아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베우제츠, 트레블링카, 소비보르, 아우슈비츠-비르게나우' 등지의 유대인 절멸 수용소에 희생된 죄없는 유대인들의 그 수많은 학살을 이 정도의 정치적 근거로 전부 설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앞선 히틀러에 동조한 독일의 법이론가들, 법사상가들, 제국 관료들이 당시도 뿌리 깊었던 '반유대주의'와 이것을 통해, 순수한 아리안 민족의 국가를 세우고, 더 나아가 후대의 순혈 아리안들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더 많은 영토를 얻겠다는 이런 일원화된 체제가 아주 조직적으로 수행되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자는 약간의 정치 투쟁적 시각에서 나치 체제하의, 친위대 (SS)와 게슈타포를 다루고 있지만,이들 조직은 익히 알려진 바대로 힘러의 정치적 의도와, 자신의 권력 의지로 새롭게 개편됩니다. 저자는 이 부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논점을 기존 사법 제도의 지위를 받지 않는 나치 친위대가 조직한 재판 조직과 통상 법을 초월한 이들 친위대와 게슈타포의 '조직적인 인신 구속'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1943년 이후, 히틀러의 '구두 지시', '구두 통치'와 같은 자신이 신뢰하는 일부 관료들에게 쪽지로 지시를 내리고, 그러한 지시 사항이 추후에 알려지게 되는, 소위 정실 권력과 같은 모습이 보여지고 있는데요. 이미 나치 판사였던, "콘라트 모르겐"을 통해, 실질적으로 무력화 된 사법 제도와 임의적으로 혹은 가차없이 이뤄지는 인신 구속과 작위적인 판결, 그에 따른 즉각적인 법 집행은 친위대와 게슈타포대로 무분별하게 자행됩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이 히틀러가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보기에 따라 다소 불명확하게 보입니다만, 어찌됐던 힘러에 대한 히틀러의 신뢰 자체는 진실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이러한 이행의 맥락이 어떻게 보면, 편의주의적인 발상과 "이중 국가"라는 그 특유의 제3제국의 통치 행태 등으로 분석해 볼 수도 있겠는데요. 당시 군에 대한 권력 집중과 그에 따른 내부의 치안과 질서 유지는 또 조직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어서, 믿을 만한 인사에게 이를 위임하여, 큰 틀에서 인종주의적 내부 체제를 떠받드는 가히 누구도 쉽게 견제할 수 없는 폭력적인 권력을 이들에게 가능하게 했다고 여겨집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당시 여러 법학자들과 법이론가들이 단순한 경찰 이상의 조직들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실상 "총통으로부터의 권력"은 이를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굳이 법의 도덕적 명분을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누구보다 저는 카를 슈미트에게 이러한 인종주의 국가의 왜곡된 정치 이데올로기로 말미암아, 사실상 법의 유명무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을 스스로 예견했는지 오직 되물어보고 싶을 뿐입니다.

오늘날 문명 국가의 사법제도는 법과 도덕주의의 명백한 분리가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도덕적 관점을 어느 정도 기반해 놓고 있어야 할 겁니다. 또한, 법규에 대한 충실성, 공정함을 위한 노력, 법적 안정성이 사법 제도의 요건이라는 점과, 당시 히틀러 정권의 정치화된 사법제도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없다는 점은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철저하게 자유주의적 기반이 제거되고 배제된 나치의 사법 제도 및 그 체제는 인종주의로 점철되어, 당시 유럽에 두번째 대전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법은 국가를 정형화 된 이론과 제도 내에서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틀입니다. 더욱이 사법 제도는 견고하게 그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어야만 국가에 속한 시민들까지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데요. "오직 우리 인종만의 국가","다른 인종의 불결한 피를 미연에 방지하는", 그리고 더 나아가 유대인 말살을 하고야 말겠다는 그 비밀주의와 실행에 옮긴 치밀한 과정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자유 민주주의적 유산의 소멸 뿐만 아니라, 독일 민족의 인간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인류의 기본적인 가치조차도 스스로 참담하게 궤멸시킨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참혹한 역사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의 도덕적 측면을 배제하여, 반대의 저열한 측면을 끊임없이 끄집어 내게 만드는 극단주의자들, 인종주의자들, 그리고 그것에 향수를 느끼는 자들의 면면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을 넘어, 또 다른 역사의 반복이 될 수 있다고 우려가 되는데요. 일차적으로 관용과 역사를 알지 못하는 법이론가들과 법사상가들의 지난 날 행적을 통해, 살아있는 교훈을 얻는 것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미 그런 법기술자들이 꽤나 존재하니 말입니다.  


나치 법률가들이 칸트의 정치철학에 기달 수는 없었으면서도 맥락에서 벗어난 채로 특정 개념들-선의지, 무조건적 의무, 정언명령 등-만 끌어다 쓰면서 윤리에 관한 고찰을 도구로 이용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량학살 명령이 친위대 법원 최고 심급인 힘러와 히틀러로부터 직접 하달되었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는 점이다.

나치 성향의 법률가들은 의회민주주의를 "공허한 법적 형식주의"라 공격했고 가치다원주의와 자유주의적 관용을 "윤리적 혼란"의 원흉이라고 비판했다.

1933년 민족사회주의 정권 장악을 지지했던 법이론가들의 글에는 독일 최초의 민주정 시기에 대한 뿌리 깊은 경멸이 드러나는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시선은 당시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슈미트가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을 막으려 했다 치더라도 그는 바이마르공화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지키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민족사회주의 혁명의 목표는 모든 사회적 반대를 이겨낼 만큼 강력한 국가를 세우는 것이라고 나치 사상가들은 끊임없이 강조했다.

인종 이데올로기는 제3제국 법사상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슈미트는 법과 정의의 수호자라는 규범적 기능을 공공연히 히틀러에게 부여했다. 총통은 평생직이며 해임되지 않는다는 시실 때문에 이 권력은 더욱 부각되었다.

나치 법률가들은 총통에게는 무엇이 인민에게 최선이고 어떻게 하면 독일의 연속성과 번영을 보장할지 정확히 알아내는 인식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 문제를 회피했다.

나치 친위대 수뇌부는 필요시에는 즉결처형 같은 "가장 가혹한 방법"을 써서라도 점령지를 안정시키라는 히틀러의 ‘특별명령‘이 힘러를 통해 하달됐다고 했다.

특히 위험한 것은 정치적으로 왜곡된 도덕 이해의 규범적 범주가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도덕의 규범적 범주와 흡사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치 통치와 같은 현실 세계의 역사적 사건은 법체계가 단지 정치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사용될 뿐 앞서 언급한 공표성, 투명성, 이해 가능성, 신뢰성, 예측 가능성, 일관성, 정합성, 자의적 소급 입법으로부터의 자유 등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때 실제로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확실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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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3 1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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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3 17: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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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4 0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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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4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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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31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4 0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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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
이언 매큐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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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은 1948년 6월, 영국 햄프셔 주 올더숏에서 데이비드 매큐언과 릴리언 바이올렛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노동계급 출신의 군인으로 소령 계급을 달고 전역했습니다. 이 때문에 매큐언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영국이 아닌 해외에서 보내게 되는데요. 그의 가족은 그가 12살이 되던 해애, 비로소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매큐언은 영국으로 돌아오자 서퍽의 소년들을 위한 기숙학교인 울버스톤 홀 스쿨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데요. 1970년에 매큐언은 서섹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노리치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수여 받습니다. 그는 등단한 이후로, 6번이나 부커상 후보에 오르게 됩니다. 1998년에는 장편, '암스테르담'으로 부커상을 수상하는데요. 이외에도 1981년에 '낯선 사람들의 위안'이, 검은개가 1992년에, 어톤먼트는 2001년에, 토요일이 2005년에, 체실 비치에서가 2007년에 각각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게 됩니다. 이런 매큐언은 2008년 더 타임즈가 선정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 목록에 올렸고, 데일리 텔레그래프 지는 그를, "영국 문화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100인들" 가운데 19위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작품은 원제, "Black Dogs"로 지난 199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 5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구입한 판본은 같은 해, 6월에 출판된 2쇄본 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과 관련해, "검은 개"에 대한 작가 나름의 설명이 대미에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다 그곳으로 돌아와 우리 곁에 유령처럼 출몰해 떠돌 것이다. 유럽 어딘가에서, 언제가는"으로 매큐언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작품을 다 읽으신 분들은 이 검은 개가 의미하는 바가 어느 정도 명확하다고 여기실 텐데요. 저는 이를 "과거의 파시즘, 오늘날의 극단주의"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정치적 감수성이 예민한 "준"이라는 인물이 참혹한 대전으로 폐허가 된 어느 인적이 드문 프랑스의 오지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검은 개 두 마리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이런 그녀에게 자신을 휘감은 죽음의 기억이, 스스로의 삶에 커다란 명시적 전환점으로 각인됩니다. 여기에 그녀의 사위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극 중 제러미의 후일담과 같은 이야기들은 단순한 개인의 체험을 넘어, 역사의 일그러진 단편과 뒤섞이며, 어떤 실체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그것은 그의 장모가 맞닥뜨린 그 땅에, 과거 게슈타포와 히틀러에 부역한 프랑스 비시 정부의 비밀 경찰로 이어지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굴절'이 바로 프랑스에 남긴 전쟁의 상흔이었습니다.

도저히 헤어질 수는 없고 그렇다고 다시 결합할 수 없는 묘한 부부인, 준과 버나드는 주인공의 아내인 제니의 친부모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두 사람은 유럽의 대전 이후의 세대를 표징하는 인물들이기도 한데요. 이들은 1936년과 1946년, 그리고 1953년을 거치며, 한 눈에 서로에게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그 와중에 이 젊은 두 부부가 모종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각기 외형적으로 그리고 심정적으로 자신들의 '분리된 삶'을, 현직 기자인 사위 제러미의 눈을 통해, 반추하게 되는 시대의 상처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이토록 더할 나위 없는 자유주의의 번영 속에, 오늘날의 유럽이 서구 자유 진영의 대표격으로 인식되는 시점에서,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그 땅에 수많은 시신을 묻을 수밖에 없었던 1946년의 프랑스는, 이 부부에게 세상을 온전히 그들의 눈으로 확인하는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한국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에게, 전쟁이라는 실체는 아마도 이들과 동일하게 몸과 마음에 각인 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극 중 3부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폴란드의 마이다네크 수용소에서, 제러미와 제니가 겪게 되는 그 마음 깊숙이 박히는 절망은, "방문객은 이곳에 와서 절망하거나, 아니면 손을 주머니에 더 깊숙이 찔러넣고 따뜻해진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악몽을 꾸는 이들에게 한 발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었다"라고 극명한 서사를 더합니다. 수십만 명의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러시아인, 프랑스인, 영국인, 그리고 미국인이 이 수용소에서 희생 당했다고 나와있는 그 몇 글자마저도 우리에게는 먼 옛날의 뜬구름 같은 이야기로 취급하고, 그런 역사가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작금의 현실일 겁니다.

저 역시, 매큐언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유럽이 겪은 질곡의 역사를 특정한 개인의 지나온 삶과 연계시켜, 그것을 관통한 사람과 그저 역사로만 접한 후대 간의 타협하지 못하는 인식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탁월한 문학적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의 주인공인 제러미가 지난 날 장모의 소위 좌절된 삶에 대한 본질, 그리고 왜 그녀가 프랑스 오지 마을에 은거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집요한 집착은 이러한 외형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러미가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양친을 잃고, 방황하던 십 대 시절에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그만의 사정, 다시 말해 그의 예민한 서사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즉, 자신이 느끼기에도 생각이 깊고 누구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장모는 아내인 제니를 통해 맺게 된 인연이라는 측면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그가 자신의 모친처럼 대하는 감정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가 딸보다 더 오랫동안 별거한 장모와 장인 어른 사이를 중간에서 이들을 잇는 가교 역할을 자임했던 것은, 제러미라는 인물의 본성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만듭니다.

분명한 정치적 지향을 보였던 준은 1950년에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함으로써, 일말의 혁명적 아이디어를 삶의 지향점으로 계속 이어나가기 어렵게 됩니다. 버나드 역시, 그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본질적인 거부감을 마찬가지로 몸소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대안으로 노동당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그를 향해 정치적 변절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당시 자유 노조의 시기라는 것은 그런 함축된 의미를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버나드는 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삶을 위해, 그런 정치에 몸을 담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점에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준에 대한 원망과 동시에 두 사람 사이의 현격한 행동의 괴리가 나타나게 된 것이죠. 반대로 준이 말년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와 그것을 본질적으로 개선 시키기 위한 노력에 힘을 쏟은 것은 어쩌면 시대와의 온건한 타협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에 작품 속에서, "망각은 비인간적이고 위험하며 기억은 끝없은 고문이 될 터인데"라는 저의 눈을 절로 끈 문장은, 이처럼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마찬가지로 2부 '베를린'에서 겪은, 말살된 나치즘의 망령인 초기 네오 나치의 잔재, 그리고 그 당시에도 현실에 남아 있던 파시즘의 유령을 같이 동행했던 버나드와 제러미 모두, 몸소 체험하게 되는 두려움의 실체는 1989년 그 시기에도 많은 유럽인들이 이미 역사를 오래전부터 망각했기 때문에 시작됐다는 근거로도 읽힙니다. 우리가 애써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끝없이 부정하고 망각했던 그 참혹한 역사의 잔재를 말입니다.


끝으로, 매큐언의 이 작품은 단순히 시대에 따른 이데올로기 투쟁이 아니라, 그 이데올로기가 왜곡된 정치 해석과 이행으로 유럽 사회에 남긴 상흔과 그러한 배경속에 과거를 살아갔던 한때, 청안의 젊은 부부의 인생 행로를 짚어나가는 나름대로 우리에게는 의미 있는 서사이기도 합니다. 매큐언은 작품의 말미에서 콜린 크라우치처럼, 이 파시즘의 망령이 다시금 전유럽에 나타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었는데요. 검은 개를 맞닥뜨린 생전의 준이 라벤더 풀밭에서 미지의 존재에게, 생명을 위협 당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집에 라벤더 비누를 풀어 놓은 것처럼,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망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역사의 증거를 유럽의 시민 모두가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현 시점입니다. 그런 연유에서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이데올로기나 체제 그 자체는 참으로 역겨운 것이기도 한데요. 모두가 언급하는 시민의 정치적 선명성이란 바로 이런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금 곱씹게 됩니다. 매큐언의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제게 각인될 것 같습니다.     


- 요즘들어 '자유주의적 관용'에 대해 고심하게 됩니다. 권력의 정당성을 어느 한쪽에게만 몰아주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유주의, 물론 카를 슈미트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진정한 자유주의적 관용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준의 신앙 표현이 숨막혔고, 자신들은 신앙이 있기에 선하고 신앙은 미덕이며 그러므로 불신은 무가치하거나 좋게 봐줘야 불쌍하다고 믿는 모든 신앙인의 무언의 가정이 불편했다.

준의 자식들은 자기 부모간의 차이라는 지겹도록 친숙한 주제가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는지 상상조차 못했다.

버나드는 벌써 수년 전 공산당을 떠나 노동당 의원을 지냈고, 기득권층이었고, 그중에서도 방송, 환경,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정부 위원회를 담당하는 자유주의적인 분파에 몸 담았다.

빛의 목격, 진실의 순간, 전환점, 그런 것들은 필시 포화상태인 옛 추억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헐리우드 영화나 성경에서 빌려오는게 아니던가?

"그럼 왜 세상이 개혁되지 않았지? 무상의료며 임금인상, 가구마다 자동차며 텔레비전, 진동칫솔 따위가 다 갖춰졌는데, 어째서 사람들은더 행복하지 않은 걸까? 이런 개혁에 뭔가 빠진 게 아닐까?

30년대의 공개재판과 숙청, 집산화, 대규모 수송, 강제노동수용소, 검열, 거짓말, 박해, 대량학살...... 결국은 모순은 너무 커지고, 신념은 깨지지.

이런 수용소를 기획하고 짓고 그토록 공들여 집기를 들이고 운영하고 유지하고 마을과 촌락에서 인간 연료를 거둬온다는 것이. 그 정력이라니. 헌신이라니. 어떻게 이런 일을 실수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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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1
리처드 턱 지음, 조무원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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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프랜시스 턱은 1949년생으로, 영국의 정치 이론가이자 정치 사상가입니다. 그는 유년시절, 영국 뉴캐슬 타인 지역의 오랜 사립학교인 로열 그래머 스쿨을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의 지저스 스쿨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턱은 케임브리지에서 역사학으로 학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73년부터 1955년까지 케임브리지에서 가르쳤으며, 그 후 하버드 대학의 교수진에 합류하여 프랑크 F. 톰슨 정부학 교수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1994년, 영국 아카데미 펠로우로 선출됩니다. 이런 학문적 경력 이외에, 턱은 지난 브렉시트와 관련해. 자유로운 좌파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노동당 정부를 옹호했으며, 우익적 목표를 충족시키는 신자유주의적 구조를 강요하는 유럽연합 (EU)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Hobbes : A Very Short Introduction, First Edition"으로 지난 1989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0년 1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미셸 푸코를 통해, 오늘날 새롭게 재조명 되고 있는 토머스 홉스에 대한 리차드 턱 교수의 의미있는 개론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홉스는 과거 데이비드 흄에 의해 철저히 멸시되기는 했지만 근래 푸코의 혁명적 아이디어와 그 이전의 공리주의자들에게 사상적 영감을 제공한 사상가였습니다. 특히 홉스는 당시 종교라는 기득권과 새롭게 대두하고 있던 철학의 분리를 강조했고, 어떻게 보면 루소보다도 더 일찍, 소위 '자기 보전의 권리'라는 인간의 생명 유지와 삶의 보전이라는 측면의 권리를 누구보다 빨리 인정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러한 인식 가운데, 커먼웰스와 주권자라는 개념은 당시 영국 휘그당의 정치인들을 비롯, 일반 귀족 계층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바가 있습니다. 다만, 리바이어던 이후, 그가 이신론에 가까운 종교적 회의론자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당시 종교 보수주의적 시대에 정확히 배척을 당하면서 정치적 및 경제적으로 곤란한 만년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저자인 리차드 턱은 이러한 홉스의 사상이 근대성과 그 실험이라는 몇 세기의 인류 지성의 개변 시기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고 밝히고, 또한 현대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었던 공리주의적 아이디어의 배경적 지식을 제공한 이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학문적 성과는 충분히 재평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여겨집니다.

홉스도 당시 여느 지식인들처럼, 인문주의자로서의 삶을 견지합니다. 이는 말 그대로 현실 정치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며, 후에 등장할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축소된 의미처럼, 그런 학문의 지향을 추구했습니다. 이는 과거 그리스 철학과 문학의 지향점과 유사한 것일 텐데요. 여기에 스스로 찾게 된 광범위한 '철학'에 대한 관심도 포함해야겠습니다. 물론 초기에 홉스는 갈릴레이를 통해, 과학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만 갈릴레이가 신념으로 내비쳤던 '그 위험한 사상'으로 말미암아 교황청에 처벌을 받게 됨으로써, 그런 직접적인 원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홉스 역시, 현실 종교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물론 이런 완고한 종교적 기득권에 대해, 후고 그로티우스가 누구 못지 않은 영향을 홉스에게 끼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요. 홉스가 강고한 칼뱅주의자들에게 뜨악한 감정을 가졌던 것은 이를 어느 정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홉스는 17세기의 종교가 유럽에 수많은 내전을 일으킨 당사자로 인지하고 이들 대부분이 명백한 '광신도 집단'이라고 인식합니다. 또한, 턱 교수의 입을 빌어, "홉스가 의무보다는 권리와 자유"에 관심이 더 컸다는 분명한 증언은 그가 영국의 유력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당시 통치 시스템이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그다지 충족되지 못했던 현실의 한계에서 인지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은 역시나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약간의 논외지만, 이 글의 후반부 논증을 거쳐, 홉스가 가졌던 이신론과 시민종교에 대한 관념들이 후에 등장할 계몽주의 사고를 미리 예견했던 것이라고 보는 저자의 분석은 저의 시선을 끌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홉스가 불편하게 여겼던, 당시 칼뱅주의자들은 그로티우스를 추방하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근대 회의론과 후기 회의주의 철학에 위협으로 여겼던 것도 네덜란드의 칼뱅주의자들이었는데요. 강경한 그로티우스와 타협하지 않는 칼뱅주의자들이 만난 역사적 사례는 홉스에게도 잠시 크롬웰 시기의 평안함을 제외한다면 이후, 스스로 고유의 사고를 위해서는 그다지 녹록치 않는 환경이었습니다. 귀족과 연계되어 삶을 이어가는 소위 명사라는 입장에서 홉스의 이신론과 도덕적 상대주의는 여러 측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요. 이미 그로티우스는 종교가 강력한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홉스 역시, 매번 그런 내면의 양심을 숨길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와는 별개로 그로티우스는 노골적으로 "국민국가는 다른 국가를 도울 하등의 의무가 없으며, 단지 서로를 해치지 않을 의만을 지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자인 턱의 분석대로, 이런 그로티우스가 홉스에게 남긴 것이 적지 않았는데, 특히, 초기 자연권에 대한 아이디어이기도 했던 그의 생각은, "모든 권리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대명제였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비자유주의적인 원칙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런 그의 생각이 리바이어던을 관통하는, 홉스의 "자기 보존의 권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물론 자기 보존의 권리는 후에 장 자크 루소가 고안해 낸 생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읽히게 됩니다. 다만, 홉스도 존 로크의 작업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고, 후세의 루소가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따라서 시민과 주권에 대한 일반 의지를 고안했던 점은 어떻게 보면 이 시기, 홉스의 작업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디. 

이처럼 홉스의 유년 시절에 유행했던 몽테뉴와 같은 특별한 인문주의는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었는데요. 인간들의 신념과 관습의 다양성을 알리긴 했지만, 이것의 공통된 도덕적 분모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 인문주의자들이 세상에 대해 자포자기 하게 된 것은, 인간 존재 자체가 위험천만하고 서로가 경쟁하는 이념들 사이에서 인간들 대부분이 자신의 안전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것을 인문주의가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 보존의 욕구는 그 자체로 도덕적 원리라는 일종의 '자연권'이라는 개념 자체는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를 위해 법을 연구하고 고안한 그로티우스는 물론이거니와, 홉스도 그러한 동질의 생각을 갖게 된 것인데요. 이는 여실히 그의 논저, '리바이어던'에 투영되기도 합니다. 생명과 자기 보존을 위해, 자연 상태에서의 불확실성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 설사 대안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이 자연 상태를 중인들에게 폭로하기 위해서라도 - 홉스는 어느 정도 사명감을 갖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에 홉스는 그의 저서, '법의 기초'에서, "모든 인간은 자연권으로 인해 자기가 처한 위험에 대한 수단의 필요성과 그 위험의 크기를 스스로 판단한다"고 명백한 주장을 펼칩니다. 이러한 연계는 '시민론'과 '리바이어던'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홉스 정치 이론에서 특색이 있는 것의 거의 모든 부분이 이 단순한 명제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인 턱은 분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홉스의 특별한 관점은, "외부세계에 대한 명백하고 객관적인 진실은 없으며, 모든 인간은 무엇이 자신에게 위험한지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하리라는 틀링없는 사실이 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서사는 꽤나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평가에 근거하여 행동할 것"이라는 마찬가지의 현실론적인 분석은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결국 '자연 상태로 내몰린 인간'이라는 철학적 서사와 그런 배경을 통한, 현실의 재해석,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 어떻게 하면 우리 인간이 자기 보전의 권리를 추구할 수 있겠는가는 당시 이단아였던 홉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홉스를 짜깁기 했던 소위 대전에 관여한 카를 슈미트와 레오 스트라우스로 대변되는 극단적 전체주의에 있어, 마찬가지로 큰 영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로티우스와 존 셀든을 통해 점층된 사유로 강화한 홉스는 이후, 겸허하면서 중립적인 주권자라는 개념을 (새롭게) 잉태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후에 공리주의자들에게 시민들의 의지를 공리주의적 규범에 굴복시킬 수 있는 전능하고 중립적인 주권자가 필요하다는 이들의 감각으로 이어지는데요. 이 부분과 관련된, 저자의 분석대로, "홉스를 흠모한 공리주의자들은 사회적 목표를 보장하는 국가의 권리에 대한 그의 설명을 빌려 오면서도 그러한 사회적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설명을 끼워 넣었다"고 해석합니다. 결국 토머스 홉스는 이들 공리주의자들에게 결코 없어서는 안될 사상의 본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홉스를 근대성과 근대주의의 기반을 제공한 인물로도 읽히는 근본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의 유명한 논저, '리바이어던'이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을 공부하는 것의 폐단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차 있는 점과 홉스는 이러한 공부가 독자들로 하여금 '자유'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는 의견을 저자는 덧붙입니다.

당시 많은 인문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코먼웰스의 자유로 인해서 그들 스스로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홉스는 이 점을 거부합니다. 또한, 홉스는 이 코먼웰스의 명백한 자유와 이것을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주권자의 존재에서, 백성들이 이 주권자를 강제할 수 있는 것은 권리로서가 아니라 주권자에게 부여된 도덕적 의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것을 백성들의 전방위적인 권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주권자, 양자 간의 도덕적 토대의 이해관계로 읽히기도 하는데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주권자에 대항할 수 있는 시민들의 권리가 협소하다는 사실 자체는 단순한 논리 관계가 아니라, 그것이 기반한 맥락이 의미심장하다고 여겨집니다. 권위와 전제적 권력을 휘두르는 비자유적 주권자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이 무조건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본다면, 홉스가 분석한 주권자의 존재 자체는 비정치적인 의미인 동시에, 어떻게 보면 정치 초월적인 의미로도 읽힙니다. 그런 측면에서 홉스가 종교가 더 이상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란 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끝으로, 저의 이 책과 관련된 서평은 꽤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글 말미에 적어두고자 합니다. 홉스의 핵심 사상을 담은 '법의 기초'와 '리바이어던'을 읽지 못한 관계로, 저는 그저 리차드 턱 교수의 해석에 홉스를 이해하는 데,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도덕적 상대주의에 대해 우리가 어떤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 글이 충분한 반면교사가 되었고, 우리에게 법은 강제를 띠게 되지만, 무엇보다 세인 모두에게 도덕적인 측면의 본보기 내지는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소위 이상적인 법철학에 근거한 여러 아이디어들에 대해 고심해 보게 됩니다. 더군다나 앞선 자연 상태에 대한 논법이 홉스와 루소가 서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이나, 칸트로 이어지는 철학의 재정립의 시기 이후, 우리가 인식하는 홉스와 그의 리바이어던이 후세에 얼마나 협소한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명철하게 쓰여진 유명한 논저 역시, 후세에 이르러 오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근대 정치의 현실은 조작, 기만, 협박이었으며, 이것을 포착한 고전 작가는 키케로가 아니라 타키투스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우리 내면의 정신적인 삶과 우리 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들에 대해서도 틀림없이 설득력 있는 지식을 가질 수 있다.

비록 데카르트가 윤릭학과 정치학을 자신의 새로운 철학적 기초 위에 두려고 했다고 다소 모호하게 포명하긴 했지만, 그는 눈에 띄게 성공하지 못했고 정치에 관해 좀처럼 쓰지 않았던 주요 철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남았다.

따라서 정부에 의해서 주장되는 권리와 의무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자연 상태에서의 권리와 의무로부터 비롯되거나 이와 양립 가능해야만 했다.

"리바이어던"에 담기 내용을 알게 되자 홉스의 오랜 왕당파 친구들은 그와 더이상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했고 홉스를 ‘무신론자‘,‘이단자‘,‘반역자‘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홉스는 1666년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이유로 투옥되거나 추방될 무서운 가능성에 직면해 있었다.

언어는 실재와의 관계가 난해하고 논쟁적인 단순한 형식 체계이지만, 추론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도 하다.

이들 인문주의자가 결국 믿게 된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위험천만한 세상, 그것도 경쟁하는 이념들로 인해 두 배로 위험해진 세상에서 인간들이 자신의 안전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홉스의 우선적인 과제는 상대주의가 옳다는 점과 이것을 자신의 과학철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에 대해서 주권자가 가지고 있거나, 우리를 위해서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는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수단이 무엇인지 고려할 권리이다.

예컨대 일반적인 경제적 번영은 사회적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국가를 번영시키는 것은 그 무엇이든 홉스의 이론 안에서 정당한 듯 보인다.

시민과 주권자 모두의 주된 책무는 그들 자신과 동료 시민들의 물리적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비록 교조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국가는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필요 외에는 어떤 종류의 교의도 고집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마키아벨리는 기독교가 정치적 관점에서 특별히 만족스러운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고대의 종교와 같은 것들이 훨씬 더 좋을 수 있다고 암시함으로써 이전 세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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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는 좌파가 아니다 - 진지한 민주주의자를 위한 선언
수전 니먼 지음, 홍기빈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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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수전 니먼은 미국의 도덕 철학자, 문화 평론가, 수필가 및 대중 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식인입니다. 그녀는 고교 시절, 학교를 중퇴하고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는데요.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존 롤스와 스탠리 카벨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그녀는 예일 대학에서 철학과 조교수와 준교수를 역임하고, 1996년부터 2000년까지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철학 준교수를 맡기도 했습니다. 특히 니먼은 록펠러 재단의 연구 펠로우, 미국 학술 학회 협의회 (ACLS)의 수석 펠로우로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외 그녀의 학문적 연구 방향은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철학사 전반을 살펴보고, 이 시기의 라이프니치, 칸트, 헤겔, 니체, 쇼펜하우어, 프로이트, 카뮈, 레비나스, 한나 아렌트 등의 사상과 연구를 깊이 천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니먼은 인간에게 주어진 도덕적 명확성이라는 보다 높은 철학적 과제와 인간 본성의 본질적인 탐구를 통해, 인간과 정치,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효용있는 철학'의 방향을 여전히 모색하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Left is Not Woke"로 지난 202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4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참고로 번역은 홍기빈 선생이 맡았습니다.

니먼의 이 책은 그녀 스스로가 뒷부분에서 2022년 4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있었던 애쉬비/태너 강좌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었는데요. 이 글에서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출간한 논저들 대부분이 '진보주의와 그에 따른 철학의 현실적 문제'가 주요 탐구 주제였습니다. 또한, 이 글 역시,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논저라 여겨지는데요. 여기에 등장하는 워크(Woke)는 단편적으로는 깨어있는 자, 혹은 스스로 깨어있는 정치 의식을 기반으로, 남들과 다른 정치적 선명성을 가진 사람의 정치 등으로 해석해 볼 수 있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는 오늘날 정체성 정치 운동 내지는 그것을 지지하는 견고한 도덕적 지지행태를 뜻합니다. 즉, 니먼은 "이러한 정체성 정치는 결코 진보주의 운동, 좌파와는 다르다"는 이른바 그 한계를 제목에서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었는데요. 특히, 오늘날 정체성 정치 운동 전반이 우리 시대의 오랜 기초가 된 계몽주의와 결별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비판하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자인 니먼은 계몽주의에 기반한 보편주의가 결여된 '정체성 정치'는 그야말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요 논점이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인 좌파에게 있어서 '보편주의'는 자신들의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되었던 원리였습니다. 그리고 정치학에서 로버트 달이 스스로 다원주의를 강조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이런 보편주의가 그것의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보편성 및 보편주의가 결여된 좌파란 이 세상에 존재할 수도 없고, 또한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부분이 좌파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해석이기도 한데요.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로, 소위 그간 '좌파의 몰락'이라는 현상을 폭로했던 샹탈 무페의 언급이나,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로 인한, 탈이데올로기, 탈인식론의 입장에서 인간을 체제를 유지시키는 경제적 지위로 해석하는 이런 '새로운 시대'는 진보주의와 좌파를 자의반 타의반 무능력한 무리로 몰아갔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분석에서 이 신자유주의 시대를 이 글 5장에서, "자기이익이라는 이데올로기"라는 아주 직접적인 문구로 시대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자기이이익이라는 이데올로기와 보수주의를 결부시켜 생각해 본다면, 정체성 정치와 외형상 아주 확연하게 대립하는 보수 정치에 대한 양자간의 걸개를 대략 짐작해 볼 수도 있겠는데요. 극단적인 측면에서 이타주의를 개인의 이익으로만 치부하는 교묘한 비도덕적 작업과 사회를 이익이라는 수단으로만 해석하는 부류들이 적지 않다는 현실, 그리고 더 나아가 노골적인 탈계몽주의적 관점, 그에 따른 탈정치의 일면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다시금 고민해보게 됩니다. 


저자인 니먼은 2장에서, 현재 범람하고 있는 부족주의와 관련해, 그동안 신자유주의가 각국의 시장과 경제적 이익 등을 여기에 연결시켜, 소위 세계를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개방시켜 나갔지만 그저 노골적인 경제적 이익화를 제외한다면 그것의 개방성은 대체로 제한된 의미로 국한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개방의 시대에 여전히 종식되지 않은 '인종주의'라는 존재는 이렇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니먼은 우리의 역사가 진보되어 왔고, 특히 미국 사회에서 흑백 분리와 같은 과거 지독한 인종 분리 정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미국 정치가 인종적으로 흑인인 대통령을 백악관의 주인으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과 완전히 왜곡된 반대편에 있는 인물인 도널드 트럼프를 정치에 등장시킨 것은 외형상 과거의 인종주의를 불식시킨 그런 현상의 반발력이 일으킨 현상이라고 봐야 할까요. 이에 니먼은 진보는 무조건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철학적 맥락의 해석을 덧붙이고 있었지만 이런 단순한 맥락의 서사는 저로서는 쉽게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오늘날 미국 사회, 특히 대학 전반은 저자의 말마따나, 노골적인 "계몽주의 때리기"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현상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18세기 이후의 계몽주의적 역사가 인간의 권리, 사회적 진보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는 점을 당연히 니먼 만큼이나 동의하고 있는데요. 일전에 다른 독서 모임에서 토론에 참여한 이들이 "계몽"에 대해 매우 반감을 갖고 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저로서는, 인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악의 본성'과 다른 영장류에 비해 두드러지는 폭력성과 그것을 끊임없이 도덕적으로 제어하고자 노력했던 계몽주의의 노력을 마찬가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다시금 떠오르는 것이지만 상대적으로 저자는 다른 인용들을 통해, 인간이 그 정도의 폭력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보다 철학에 기반한 도덕적 본질의 존재로 규정한 이면에는 계몽주의, 즉 보편주의의 오래된 역사가 기반해 있기에 그런 해석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인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인간의 존재성 문제에도 불구하고 칸트와 같이, 이성이 기반이 된 도덕적 통제를 강조한 계몽주의자들이 있어 왔기에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규정하게 되지 않았나 고민해 보게 됩니다. 과거 야만의 시대를 거쳐, 이 계몽주의 운동이 인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된 점이 우리가 체험했던 진보의 원동력이 되었던 증거입니다. 

우리는 흔히 워크 컬쳐를 일종의 진보주의 운동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인종주의와 관련된, 정체성 정치는 꽤나 단호한 사회 운동으로 보통 여겨지는데요. 물론 일전에 로빈 디앤젤로가 비판적으로 언급했듯, 아직도 미국의 많은 백인들은 작금의 인종주의가 별반 문제가 없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회의 주류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라고 볼 수 있는 인종인 백인들이 자신들의 사회에 대한 성찰이 얼마나 미흡하고 미진한가를 엿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한데요. 니먼이 인용한 프란츠 파농의 사례를 다시금 살펴봐도, 인종주의는 인간의 보편성을 무시하는 동시에 개인의 인격적 개성도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워크 운동 자체가 소위 평범한 보수주의부터 극단주의 세력에 이르기까지, 이런 흐름이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은,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그 경직성이 이들에게 부정의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들 극단주의 세력들은 워크 woke 가 초래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한'이 인간의 영혼을 침식시킨다는 말로 강조하니 말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카를 슈미트 식의 정치적인 자유와 신자유주의 사이에 한가지를 택해야만 한다면 참으로 심각한 딜레마를 초래하게 될 겁니다. 니먼은 마크 릴라보다도 더 카를 슈미트, 혹은 그가 남긴 지적 유산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는데요. 슈미트는 정치를내편과 적이라는 '피아 식별'로 규정하고 이후의 정치의 건전성을 왜곡하는 줄도 모르고 후세의 지식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추앙을 받은 인물입니다. 이미 니먼도 언급하고 있지만 슈미트는 단 한번도 나치에 부역한 일을 진심으로 반성한 바가 없는 인물입니다. 물론 제 잘낫다고 과거를 성찰하지 않은 한 인물 때문에 정치가 변곡점에 휩싸였다고 싸잡하 치부할 순 없지만 세계 여러 곳에서 보이는 정치적 결단주의의 행태는 그가 어느 정도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수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카를 슈미트에게 매료되었다는 그녀의 평가는 이 시점에서 복잡한 감상을 들게 만듭니다. 이는 슬라보예 지젝 역시, 인정했던 부분이기도 한데요. 사회 내부에서 어떤 선택의 여지가 제한받게 될 때, 이 극단의 지점에서 그런 원인을 해석할 수 있는 수단을 찾게 되는 것은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이성으로 사고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습성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이 카를 슈미트를 호의의 시선으로 본 연유에도 기존의 보편의 논리와 그것의 궤가 상당히 달라, 이처럼 그간 정치철학에서의 '슈미트 대두'는 그저 신기한 현상으로만 볼 수 없는 특이한 광경이기도 합니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카를 슈미트는 진보 뿐만 아니라 평범한 우리에게도 특유의 사고로 흡사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했다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인 니먼의 분석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있어 진보주의 혹은 진보주의자는 바로 좌파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좌파는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일련의 자세를 견지하는 정치라고 이 글에서도 드러나고 있는데요. 단순히 사회의 문제만을 나열하는 워크와는 사뭇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해묵은 논쟁들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으로 삼는 정치적 변절자들도 많은 것도 분명 사실이지만, 워크가 사회적 진보에 이르는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말마따나 워크와 좌파는 분명 확연한 차이점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좌파는 이라크 전쟁과 같은 부도덕한 전쟁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들며 비판했고, 더 나아가 이를 폭로했던 것이, 이들이 보이는 '도덕적 명징성'의 한 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독한 편집증적인 태도로 문제를 파고들어, 일부의 이익으로 삼는 그런 행태를 비판해 마지 않는 점은 과거 좌파의 선명성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진정한 좌파는 이제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퍙가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되기도 하는데요. 즉, "좌파에 입장에 선다는 것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자신과 남들의 삶을 현실에서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지한다는 것을 말한다"는 4장의 논증은 이처럼 분명한 차별점으로 읽힙니다.

끝으로, 니먼은 시장의 자유가 국가의 기초가 되었던 시기를 거쳐, 푸코의 설명대로 이런 신자유주의가 세련된 인식으로 여겨지는 세계의 진면목을 우리는 매일 인식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와중에 정치의 붕괴는 지속되었고 마가렛 대처 식의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시녀로 전락하는 몇 십년의 시기 동안, 아주 노골적인 정치적 파시즘이 정치 분열을 자양분 삼아, 미국에서 새롭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일 텐데요. 그가 등장할 즈음에 바로 앞선 정체성 정치가 도덕 본질의 왜곡된 현상으로 나타났고 낯색 하나 바꾸지 않은 노골적인 거짓말이 정치의 주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즉, 다음 4년의 트럼프 임기는 분명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적지 않은 위기가 될 것임은 단편적인 추측이 아니라, 직면한 파시즘적 정치로 인해 그 심각성이 대두될 가능성이 몇해에 걸쳐, 농후하다 볼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진보주의 정치 그리고 좌파의 몰락은 많은 사회가 계몽주의적 보편성에 더욱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설사 한줌도 안되는 좌파의 몰락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허위와 거짓 뉴스, 노골적인 거짓의 언사, 인종차별 등 과거 위선적인 조지 W. 부시의 시대조차도 감히 꺼낼 수 없었던 일들이 우리 정치의 자화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남을 포용하고 인정하는 것보다 증오하고 백안시 하는 것이 일상사인 인간의 본성에 빗대어 봤을 때, 이는 전자보다 손쉬운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주의는 바로 사람들의 이러한 본성을 더욱 부추겨, 정치를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갑니다. 이제 우리 정치와 더불어 세계 정치의 파국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를 무엇보다 고민해 봐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글 말미에 이르러 니먼은 어느 정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제시하는 일종의 '인민전선 popular front'의 아이디어는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이는 좌파의 연대, 진보주의의 탁월한 연합이 시민의 연대로 이어져, 도널드 트럼프와 극단주의자들의 발호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밝히는 것인데요. 그만큼 시민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기가 다가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작금의 우리 정치에 있어서도 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의 정부 4년 내내 흑인이나 라틴계에 대한 인종주의를 공공연히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로부터 받은 표가 오히려 2016년 선거 당시보다 늘어났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슈미트와 하이데거를 감싸는 이들은, 반유대주의가 나치즘의 본질적 요소였다는 요즘 통용되는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워크 운동 덕분에 우리는 백인이라는 것이 여러 정체성 가운데 하나 정도가 아니라 인간 전체를 대표하는 것, 즉 중립과 규범 사이의 어떤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오늘날 부족주의는 더욱 역설적이다. 인종이라는 것 자체가 인종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점 때문이다.

케냐의 몸바사에서 태어나느냐, 미국의 맨해튼에서 태어느냐에 따라 삶이 완전히 달라지고 수명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릴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또한 계몽주의가 내세우는 보편주의라는 것이 점점 비백인화되고 있는 세계에서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유럽의 특정 이익을 은폐하고 있다는 오늘날의 주장과 위험할 정도로 가깝다.

그러나 2020년 BLM 운동이 이렇듯 보편주의적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 우파는 재빠르게 이를 정체성 정치의 한 사례로 몰아가버렸다.

하지만 유대인은 피해자이며 독일은 가해자라는 관계가 독일의 자기 이미지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되는 바람에, 독일인은 유대인을 희생자 이외의 다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말았다.

인종주의 시스템이라는 것은 인간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것과 동시에 개인의 인격적 개성도 부인하는 것이므로, 인종주의 시스템을 해체할 것을 자신의 신조로 삼은 파농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21세기 초입이라는 시점에서 ‘민주주의‘니 ‘자유‘니 하는 말들이 실로 어이가 없을 정도로 남용되고 오용되는 바람에 아예 진실성 자체를 의심받게 되었다.

극심한 검열과 문맹이 만연했던 시대, 누구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기 스스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사회를 폭파시킬 만큼 위험한 것이었으며, 교회 당국은 막강한 권력을 동원하여 이를 힘으로 억눌렀다.

자신이 자유주의 왼쪽에 있다고 여기는 독자들이 슈미트에게 끌리는 유일한 이유는, 자유주의의 실패와 위선에 대한 그의 신랄한 비판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권‘이라는 개념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 개념이 무엇이건 간에 벌거숭이로 날뛰는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권력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리를 내세우고 공정하게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동할 때도 많다.

좌파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자신과 남들의 삶을 현실에서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인종주의가 끈질기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창피한 일이며, 반세기 전의 민권 운동을 목도했던 이들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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