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법률가들 - 법은 어떻게 독재를 옹호하는가
헤린더 파우어-스투더 지음, 박경선 옮김 / 진실의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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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오스트리아 포어베르크 주의 블루덴츠에서 태어난 헤린더 파우어-스투더는 현재 비엔나 대학의 교수로서, 오스트리아 내에서는 저명한 여성 철학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학문적 분야는 윤리, 정치 및 페미니즘 철학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1977년에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뒤이어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에서 법철학 연구소의 조교로 일했으며, 1984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UC)에서 강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1996년과 1998년에 이르는 시기에는 하버드 대학에서의 연구를 거쳐, 2006년에는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으로 뉴욕 대학(NYU)에서 연구를 지속합니다. 이런 그녀의 연구들 가운데,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과거 나치 판사였던, '콘라트 모르겐'에 대한 훌륭한 논저와 동시대 국가사회주의 법 이론에 대한 공동 연구, 이외에 광범위한 자유와 평등에 관한 철학과 법학과 연계된 연구 활동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Justifying Injustice"로 지난 202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10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파우어-스투더의 이 책을 잠시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과거에 일독한 제임스 Q. 위트먼의 훌륭한 보론이라 느낀 부분인데요. 단편적으로 히틀러의 제3제국의 일련의 사법 체계와 국가 사회주의가 더할나위 없는 '악의 현신'으로 이해된다면, 그녀의 이 논저는 그런 정권에 부역한 법률가들, 법사상가들, 철학자들을 인용하며, 이들의 왜곡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학문적 분석 자체가, 현상과 구조적 모순에 대한 설득력을 답보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오늘날 꽤 위대한 정치철학자로 읽히는 '카를 슈미트'의 만행은 여기에서 낱낱이 폭로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슈미트의 실체를 지그문트 바우만과 마크 릴라를 통해, 처음 접하기는 했습니다만, 그가 왜 자유주의를 혐오했는지, 또한 많은 문명 국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주의적 관용을 왜 그리 대놓고 역겨워 했는지, 인간 카를 슈미트의 본질에 대한 단초를 충분히 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앞선 부분은 그 무엇보다 이 글의 특별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국가 통합은 모두가 알다시피 프로이센(체제로서와 국가로서)에 의해 사실상 완성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베르사유에서 제국을 선포한, 빌헬름 1세, 오토 폰 비스마르크로 통합된 독일 민족의 제국은 역사에 등장하게 되는데요. 개인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해 대다수 독일인들이 자유주의는 자신들과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여겼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후 과정에서 케인스의 여러 우려와 같은 독일 내부의 지식인들이 영국과 프랑스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경멸해 마지 않았던 점은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이는 대표적으로 카를 슈미트를 통해,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이는 저자가 언급하듯, 이미 1920년대부터 카를 슈미트는 자유 민주주의와 가치 다원주의에 대한 반감을 가감없이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독일 법학자들과 법철학자들, 그리고 다수 관료들이 좀 더 내부적으로 집중된 권력, 즉 아돌프 히틀러가 중심에 선 나치 체제를 사법적 근거를 마련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 이 책의 요지이기도 합니다. 카를 슈미트는 단호한 태도로 히틀러 정권을 지지했고, 더 나아가 이에 대한 법적 기반을 지원하고 구성하는데 노력했습니다. 이에 이 글 3장, '총통'에서, "민족사회주의 혁명의 목표는 모든 사회적 반대를 이겨낼 만큼 강력한 국가를 세우는 것이라고 나치 사상가들은 끊임없이 강조했다"고 저자는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었는데요. 결국 소위 민족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에서, 나치 법률가들 가운데, 울리히 쇼이너와 오토 퀼로이터는 유대계 독일인들을 무자비하게 배제하여, 새로운 질서 하에, 국가와 민족의 유기적 연결에는 아주 극명하게 "인종적 함의"가 숨어 있다는 것을 3장 말미에 저자는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 인종적 함의란 바로, "순혈 아리안주의"였습니다.


나치 체제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법사상가들은 히틀러에 의해 수립된, 제3제국을 정치적 독단, 폭력, 테러를 초월하는 국가로 묘사하기도 했는데요. 제3제국을 특수한 종류의 통합된 국가로 지탱해 주었던 것은, '전체국가'나 '통일된 국민국가' 또는 '국가주의적 법치국가'와 같은 공식이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 정치 이론에서 '집단의지','인민주권' 등을 부분적으로 차용하여, 국가의 법적 토대를 준비했다고 3장 이후, 논증되는데요. 이미 이들은 1933년 2월부터, 악명 높은 인종 이데올로기와 총통에 대한 사실상의 신화적 지위를 포함한, 민족사회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의 토대를 성공적으로 마련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기반에는 앞서 언급했던 대로 오랫동안 법을 연구했던, 법 이론가들과 법 사상가들이 그 이론을 제시하고 지원했던 역할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대통령과 총리의 지위 모두를 승계한, '총통'에 대한 유일무이한 입법적 권리의 부여는, 명실상부한 이 제3제국의 권력에 대한 어떠한 견제도 불가능하게 만든 초헌법적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순혈 아리안들이 주축이 된, 단일 민족국가의 영도자로서, 총통의 지위는 그야말로 확고부동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 뿐만 아니라, 저자 역시 히틀러가 자신의 권력 의지에 대한 욕망도 지대했고, 이러한 권력 집중에 대한 요체를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마찬가지로 분석하고 있었는데요. 물론 1939년 이후, 히틀러가 불법적인 영토 확장에 나서는 가운데,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이 민족사회주의 국가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직접적으로 평가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시기 폴란드에서의 폴란드인들과 유대인들의 조직적인 제거를 놓고 봤을 때, 이 제3제국의 팽창은 어쩌면 배타적 단일 민족 국가를 지향하는 이런' 왜곡적 정치 이데올로기'로 인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과거 바이마르공화국의 유산이라 볼 수 있는 상당히 체계화 된 사법 제도에서의 법해석이 앞선 법이론가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이는 법에서의 자유주의적 유산이 총체적으로 거세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나치 제국의 "처벌 없는 범죄는 없다."는 노골적인 이데올로기적 지침은 이 체제의 법 감정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더군다나 사법 제도에서 공정성과 정의를 답보하는 판사들에게 이례적으로 작의적인 해석까지 가능하게 할 정도로 법 해석에서의 무분별한 '재량권'을 강화합니다. 즉, 형법에서 "범죄에 대항하는 싸움이란 곧 민족공동체에 대한 배신과의 싸움"이라는 미명하에, 저자의 말마따나 자유주의 형법에서 애지중지했던, "생명, 자유, 재산 같은 법의의 보호"같은 관념을 거의 무력화시킨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글 4장에서, 당시 저명한 법 이론가였던 빌헬름 자우어는 형법을 윤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벌의 목표가 "심화, 내면화, 도덕화"가 되어야 하므로 "범죄에 대한 사회적,윤리적 보복, 특히 속죄"를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면서 소위 "민족적 양심"을 강조합니다. 그런 연유로 제3제국 내부의 반체제 인사들과 노동운동가 등을 법적인 절차 없이 체포해 강제수용소로 불법 이송한 사례는 이를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조직적 이론의 체계는 나치 제국의 사법 제도에서 어떻게 보면 관념적 근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배타적 민족 국가 내에서 자신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앞선 민족적 양심이라는 측면에 기반해, 일반적인 개인의 권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기에 이르는데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 이러한 체제 강요적 메커니즘 하에, 유대인 말살이 이들에게는 매우 사법적이면서 소위 윤리적인 근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더욱이 앞선, 판사에 대한 너무나 도가 지나친 재량권 부여는 결국 법 조항에 기반하지 않는 작의적인 판결을 내리게 되는 심각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소위 법 조항에 매달리는 계몽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일종의 왜곡된 결단주의적 함의가 짐작되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인종학자 한스 F. K. 귄터로 대변되는 '유대 민족에 대한 인종 연구'와 같은 경멸적인 작업들이 그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넘어,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고, 더 나아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점은 매우 불행한 역사의 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저작들은 나치의 인종적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이 책에서 기록되는데요. 이미 앞서 지적한대로, 이 나치 당의 목표였던 '유대인 배제'는 이미 1933년부터 계획되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막스 게르스텐하우어의 저서, "영원한 독일"로 이어지는 극명한 인종차별의 예시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주요 논점이 되기도 했는데요. 결국 윤리적, 인종적 체계의 새로운 윤리 체계가 탄생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5장 이후, "순수한 피와 순수한 민족의 특수성을 보존하는 것은 도덕적 임무이자 윤리 의무"라는 대명제가 도출되기에 이릅니다. 저는 당시 평범한 독일인들이 인종주의에 오도된 지식인들의 작업에 의해, 이렇게 쉽게 "다른 인종에 대한 물리적 제거"에 소위 열광하게 되었는지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나 아렌트와 같은 인간 본성에 잠재해 있는 악의 문제를 떠나, 자유주의와 가치 다원주의가 철저하게 제거된 "다른 형식의 문명 국가"가 어떻게 파멸에 이를 수 있는지, 나치 국가는 이를 아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베우제츠, 트레블링카, 소비보르, 아우슈비츠-비르게나우' 등지의 유대인 절멸 수용소에 희생된 죄없는 유대인들의 그 수많은 학살을 이 정도의 정치적 근거로 전부 설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앞선 히틀러에 동조한 독일의 법이론가들, 법사상가들, 제국 관료들이 당시도 뿌리 깊었던 '반유대주의'와 이것을 통해, 순수한 아리안 민족의 국가를 세우고, 더 나아가 후대의 순혈 아리안들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더 많은 영토를 얻겠다는 이런 일원화된 체제가 아주 조직적으로 수행되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자는 약간의 정치 투쟁적 시각에서 나치 체제하의, 친위대 (SS)와 게슈타포를 다루고 있지만,이들 조직은 익히 알려진 바대로 힘러의 정치적 의도와, 자신의 권력 의지로 새롭게 개편됩니다. 저자는 이 부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논점을 기존 사법 제도의 지위를 받지 않는 나치 친위대가 조직한 재판 조직과 통상 법을 초월한 이들 친위대와 게슈타포의 '조직적인 인신 구속'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1943년 이후, 히틀러의 '구두 지시', '구두 통치'와 같은 자신이 신뢰하는 일부 관료들에게 쪽지로 지시를 내리고, 그러한 지시 사항이 추후에 알려지게 되는, 소위 정실 권력과 같은 모습이 보여지고 있는데요. 이미 나치 판사였던, "콘라트 모르겐"을 통해, 실질적으로 무력화 된 사법 제도와 임의적으로 혹은 가차없이 이뤄지는 인신 구속과 작위적인 판결, 그에 따른 즉각적인 법 집행은 친위대와 게슈타포대로 무분별하게 자행됩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이 히틀러가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보기에 따라 다소 불명확하게 보입니다만, 어찌됐던 힘러에 대한 히틀러의 신뢰 자체는 진실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이러한 이행의 맥락이 어떻게 보면, 편의주의적인 발상과 "이중 국가"라는 그 특유의 제3제국의 통치 행태 등으로 분석해 볼 수도 있겠는데요. 당시 군에 대한 권력 집중과 그에 따른 내부의 치안과 질서 유지는 또 조직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어서, 믿을 만한 인사에게 이를 위임하여, 큰 틀에서 인종주의적 내부 체제를 떠받드는 가히 누구도 쉽게 견제할 수 없는 폭력적인 권력을 이들에게 가능하게 했다고 여겨집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당시 여러 법학자들과 법이론가들이 단순한 경찰 이상의 조직들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실상 "총통으로부터의 권력"은 이를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굳이 법의 도덕적 명분을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누구보다 저는 카를 슈미트에게 이러한 인종주의 국가의 왜곡된 정치 이데올로기로 말미암아, 사실상 법의 유명무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을 스스로 예견했는지 오직 되물어보고 싶을 뿐입니다.

오늘날 문명 국가의 사법제도는 법과 도덕주의의 명백한 분리가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도덕적 관점을 어느 정도 기반해 놓고 있어야 할 겁니다. 또한, 법규에 대한 충실성, 공정함을 위한 노력, 법적 안정성이 사법 제도의 요건이라는 점과, 당시 히틀러 정권의 정치화된 사법제도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없다는 점은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철저하게 자유주의적 기반이 제거되고 배제된 나치의 사법 제도 및 그 체제는 인종주의로 점철되어, 당시 유럽에 두번째 대전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법은 국가를 정형화 된 이론과 제도 내에서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틀입니다. 더욱이 사법 제도는 견고하게 그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어야만 국가에 속한 시민들까지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데요. "오직 우리 인종만의 국가","다른 인종의 불결한 피를 미연에 방지하는", 그리고 더 나아가 유대인 말살을 하고야 말겠다는 그 비밀주의와 실행에 옮긴 치밀한 과정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자유 민주주의적 유산의 소멸 뿐만 아니라, 독일 민족의 인간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인류의 기본적인 가치조차도 스스로 참담하게 궤멸시킨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참혹한 역사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의 도덕적 측면을 배제하여, 반대의 저열한 측면을 끊임없이 끄집어 내게 만드는 극단주의자들, 인종주의자들, 그리고 그것에 향수를 느끼는 자들의 면면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을 넘어, 또 다른 역사의 반복이 될 수 있다고 우려가 되는데요. 일차적으로 관용과 역사를 알지 못하는 법이론가들과 법사상가들의 지난 날 행적을 통해, 살아있는 교훈을 얻는 것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미 그런 법기술자들이 꽤나 존재하니 말입니다.  


-본문 209 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나치 법률가들이 칸트의 정치철학에 기달 수는 없었으면서도 맥락에서 벗어난 채로 특정 개념들-선의지, 무조건적 의무, 정언명령 등-만 끌어다 쓰면서 윤리에 관한 고찰을 도구로 이용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량학살 명령이 친위대 법원 최고 심급인 힘러와 히틀러로부터 직접 하달되었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는 점이다.

나치 성향의 법률가들은 의회민주주의를 "공허한 법적 형식주의"라 공격했고 가치다원주의와 자유주의적 관용을 "윤리적 혼란"의 원흉이라고 비판했다.

1933년 민족사회주의 정권 장악을 지지했던 법이론가들의 글에는 독일 최초의 민주정 시기에 대한 뿌리 깊은 경멸이 드러나는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시선은 당시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슈미트가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을 막으려 했다 치더라도 그는 바이마르공화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지키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민족사회주의 혁명의 목표는 모든 사회적 반대를 이겨낼 만큼 강력한 국가를 세우는 것이라고 나치 사상가들은 끊임없이 강조했다.

인종 이데올로기는 제3제국 법사상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슈미트는 법과 정의의 수호자라는 규범적 기능을 공공연히 히틀러에게 부여했다. 총통은 평생직이며 해임되지 않는다는 시실 때문에 이 권력은 더욱 부각되었다.

나치 법률가들은 총통에게는 무엇이 인민에게 최선이고 어떻게 하면 독일의 연속성과 번영을 보장할지 정확히 알아내는 인식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 문제를 회피했다.

나치 친위대 수뇌부는 필요시에는 즉결처형 같은 "가장 가혹한 방법"을 써서라도 점령지를 안정시키라는 히틀러의 ‘특별명령‘이 힘러를 통해 하달됐다고 했다.

특히 위험한 것은 정치적으로 왜곡된 도덕 이해의 규범적 범주가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도덕의 규범적 범주와 흡사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치 통치와 같은 현실 세계의 역사적 사건은 법체계가 단지 정치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사용될 뿐 앞서 언급한 공표성, 투명성, 이해 가능성, 신뢰성, 예측 가능성, 일관성, 정합성, 자의적 소급 입법으로부터의 자유 등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때 실제로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확실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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