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혁명 - 우리는 누구를 위한 국가에 살고 있는가
존 미클스웨이트 외 지음, 이진원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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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블룸버그’의 존 미클스웨이트와 ‘이코노미스트’의 에이드리언 울드리지가 함께 공저로 지난 2014년에 출간된 ‘The Fourth Revolution’ 을 2015년 국내에 번역 출간한 것인데요. 국역의 제목이 원래 제목과는 다를 줄 알았는데, 출판사 측에서 따로 수정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의구심을 갖은 데에는 본문의 내용과는 달리 제목에서 약간의 괴리감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런 혁명류나 새로운 사조를 뜻하는 제목의 책들은 주장하는 바가 거의 짜맞춘 듯 비슷한 부분이 제법 많기에 저도 선뜻 이 책을 붙잡기가 망설여졌었는데요. 다행히 예상과는 달리 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서두에 토마스 홉스와 존 스튜어트 밀, 베아트리스 웹과 밀턴 프리드먼이 언급되어 나오는데요. 이들의 사상을 간추려봤을 때, 개인의 자유, 야경 국가론, 소극적 정부에 관한 내용이 주된 논의로 나오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료들로 하여금 더 의미 확장이 될 줄 알았으나, 이것과는 달리 이 두 저자의 주장이 다소 장황한 면이 분명 있습니다. 글 전체를 이끌어가는 논점은 왠만하면 일관되고 흐트럼 없는 것이 유리한 것인데요. 뒤이어 싱가포르와 인도, 중국의 사례에서 밝히고 있는 것들은 다소 권위주의적 정부의 주도권하에 이루어진 제도와 정책들 위주입니다. 더욱이 스웨덴과 덴마크 사례를 또 언급하면서 이들의 모델이 싱가포르 모델보다 완벽하지 않다고 단정짓는 언급에 저는 더 난해해졌습니다. 이렇게 일관된 것은 정부가 이익들간의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과 리콴유의 입을 빌어, “인간은 안타깝게도 본질적으로 사악하며, 이런 사악함은 통제되어야 한다”고 꼬집어 인용한 것은 더욱더 저의 이런 의심을 부추겼는데요. 결론만 놓고 말씀드린다면 이 두 저자는 일종의 효율적인 정부와 복지 차원에서 낭비되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형태의 주장을 가다듬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이들의 말대로 끊임없이 상쇄되어 변질된 형태로 진화한 것이라면 그것의 주된 원인은 엘리트주의적 정치의 엄연한 실패와 제도상의 선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득권층의 존재 때문일겁니다. 전자는 2008년 소위 폐쇄된 정보 독점을 누린 경제 엘리트들이 저지른 세계금융위기로 나타났고, 후자는 현재 미국에서 소득 상위 1% 를 이루는 계층중 절반이 전문의들로 밝혀졌다고 소개하는 부분에서 사회 기득권의 배타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세습된 계급 형태로 정체되어 그것이 나날이 견고화 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인간의 이익추구화가 노골적으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제러미 벤담이 다수의 행복을 통해 사회 이익의 확대로 소수의 차별받는 구성원들 없이 사회의 전반적인 선순환적인 사이클을 기대했던 것이라면 사회학의 원칙은 토크빌이 앞서 주장한 대로 개인의 이기심을 적절히 견제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국가의 복지 모델에 대한 북유럽 사례를 들면서 그래도 싱가포르 모델이 효율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그러한 국가 모델이 과연 현실적으로 부합될 수 있는 것인지는 좀 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미국은 복지 지출과 관련해 OECD 평균 통계와 비교해봐도 아주 미흡하고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복지여왕’과 같은 사례보다는 제도의 외곽에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소외된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또한 미국은 그동안 인종주의적 편견과 재생산으로 ‘흑인들이 직업적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고, 게으르고, 무책임하다는’논리로 복지 예산을 이것과 비슷하게 싸잡아 비난해왔습니다. ‘리콴유는 공짜 보편적 복지를 혐오한다’는 주장 만으로는 그동안 복지관련 비용이 아주 과대하고 낭비되어 왔다는 측면의 해석은 되지 못합니다.

앞으로 견고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부들의 최우선 과제는 복지 지출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와 혐오가 아니라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조세 정의를 확립하고 곳곳에 도사리고 았는 관료들의 부패 문제와 낭비되는 예산을 적절히 포착하여 돈이 새는 구멍을 막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세계 경제가 다소 위축되어 있다고 하나 차이나 머니를 비롯한 중국의 폭발적 경제 성장 붐으로 2009년부터 지금까지 큰 문제로 여겨질 만한 것은 없었다고 봐야겠죠. 포퓰리즘과 같이 제가 엘리트 정치를 배격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제는 많은 부분에서 수정과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정부의 효율적 관리나 개인과 경제적 주체들의 이익과 자유 보장을 위해 정부의 그것을 재편하자는 이런 논의는 꼭 ‘혁명’이라 불릴만큼 전세계 많은 사람들의 삶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끝으로 이 두 저자가 경제적 그리고 다소 안일한 외형적 규모로 중국과 인도의 사례를 끄집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비민주적 권위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에 저는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인도가 현재에 민주주의 국가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 실체가 어떠한지는 아주 자명한 것이죠. 그래서 단순히 이런 ‘상명하복’의 체제적 권위주의의 겉보기 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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