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배반
쥘리앙 방다 지음, 노서경 옮김 / 이제이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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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파리에서 처음 출간된 쥘리앙 방다의 이 책은 그 시기를 지나 오랫동안 여러 시간을 거쳐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당시 유럽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불온한 기운, 즉 파시즘과 그것에 동조했던 수많은 지식인들과 앞서 1898년의 프랑스에서의 드레퓌스 사건과 같이 명백하게 맨 얼굴을 드러냈던 프랑스 지식계의 패거리 행태를 보면서 일찍이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로 꽃피웠던 진정한 인문주의와 그러한 근원적 지식인의 토대에 반하는 지식인 무리들에 대한 아주 냉엄한 비판이 방다의 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만 139만명이나 희생되었던 1차 대전의 참혹한 실상과 그 이후의 또 다른 대전에서 보여졌던 선명한 인간 스스로의 악의 측면과 독일 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의 상당수가 그러한 폭력에 스스럼없이 동조했던 역사적 현장에 제일 먼저 앞장섰던 지식인들에 대해 처음으로 느꼈던 좌절이 1946년 판 서문에 깊게 남아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 자유의 기본 입장에 반하는 지식인들과 그것을 경멸해 마지않는 무리들에 대한 비판을 역사와 종교적 교리, 식민주의 등으로 부분 대 개념 해석으로 방다 자신의 고유한 해석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특유의 직설적이고 무차별적인 문장은 진정성이 깊게 느껴지는데요.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자임하는 자들은 그렇지 않은 수많은 대다수를 위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교과서적인 입장을 열거하고 비교 분석과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정치 정념에 스스로 동조하여 대중이 이에 스스로 편입되게 하기 위함이나, 형이상학적인 가치에 대한 아주 노골적인 경멸, 정의로운 자들과 정의롭지 못한 자들을 가려내기 위해 힘써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 민족 정념이 야심에 따라 얼마든지 폭력적, 배타적이 될 수 있음에도 그것을 경고하지 않는 것, 특수한 것을 숭배하고 보편적인 것을 경멸하는 것, 악이 정치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악은 언제나 악인 것인데 그것에 대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부조리에 격렬히 저항해야 하는 것, 개인주의와 개인적 견해를 집단주의를 옹호함으로써 터부시하고,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인 개인주의를 침해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는 것 등에 대한 사례를 일일이 방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내지는 철학적 의견 등을 대입해 단순히 논거와 주장으로 끝나지 않고 그의 묵직한 진정성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약간의 논외이지만 방다가 인문주의적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인간의 악의 측면이 개선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에 반대하는 일반 지식인들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한 부분입니다. 즉, 지식인이라면 인간의 선한 측면을 옹호하고 발전시켜 그것을 거부하고 경멸하는 자들에게 마땅히 격렬하고 사력을 다해 비판을 가해야하지만 니체나 베르그송과 등과 같이 인간의 이성에 대한 측면의 불신을 주의로 삼은 철학자들과 다른 학문적 연구자들이 마찬가지로 보편적 도덕에 대한 불신이 저 역시도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다만, 방다가 여기서 주장하는 것을 다소 단순화 시켜서 말씀드린다면, 인간과 사회의 기본적 개념을 경멸하는 태도와 그러한 주의화에 대한 저항이 아무래도 지식인들이 가져야하는 책무임은 아주 당연하지만, 전세계가 고도로 민주주의화의 길과 자본주의 시장체제로 나날이 확장되고 있는 환경에서 개인의 이기주의적 측면의 현실과 그러한 현실주의가 그 기본 임무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식인들의 명예와 출세에 관한 부분이 바로 이러한 측면이겠죠. 물론 방다의 주장은 매우 당연한 것으로 앞서 제가 해석한 현실주의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부분이 이상주의적 가치관이라고 해석되어 폄하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이 속해 있는 사회의 범주에서도 최종적으로 정치의 범위에 속속 항복을 하고 편입되는 지식인들의 현상을 오늘날에도 많은 만큼 최소한 이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최소한 인간의 기본적 토대인 이성, 도덕, 자유, 평화 등을 보존하기 위한 대책과 연구가 절박하게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방다 역시 이러한 현실주의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기도 했는데요. 어쩌면 이기적 현실에 편입되지 않고 격렬히 저항하는 지식인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역으로 좀더 건강한 사회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약간의 사족입니다만, 개인적으로 학부 시절이었던 지난 90년대 말에 어느 헌책방에서 이 책의 오래된 구판을 발견했습니다. 당시에 집어든 그 책의 몇 장을 넘겨보고선 고리타분한 도덕 논쟁과 비슷한 글로 보여 금새 바닥에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돌아서 만나 읽게 되었던 이 책은 제 머릿속에 제법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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