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 조세피난처의 원조, 스위스 은행의 비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홍기빈 해제 / 갈라파고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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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 곳 리뷰에서 장 지글러의 ‘유엔을 말하다’에서 잠시 언급했던,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를 읽었습니다. 이 책과 관련해서 소개된 해외 기사들도 있고, 저자 본인도 약간의 후일담으로 꺼내긴 했습니다만, 장 지글러는 1990년 출간 당시 자신의 모국인 스위스에서 수많은 살해 위협, 입에 차마 담을 수 없는 매국노라는 취급까지 받으며 더불어 민사 재판에 피소되어 법원까지 드나들어야 했었는데요. 이 글의 도입부에서도 “관계 당국이나 당사자들 그리고 법원에서 이 글이 밝히는 주장에 어떠한 허위성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그래서 1989년 당시 스위스 금융과 관계 당국, 사법 당국의 행적과 구조 등을 통해 어떻게 전세계 마약 자금 등과 같은 검은 돈이 스위스에 몰려 들었는지에 대해 이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유럽 한복판에 영세중립국이라는 입지 만으로 이 지역의 은행들에 돈을 맡기면 안전할 것이다 라는 속념과는 좀 더 상세한 구조적 개념을 알 수 있는데요. 확실히 돈이 있는 곳에는 일종의 카르텔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유럽의 스위스는 전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오래된 실질적 연대가 있는 국가인데요. 특히 직접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시민들이 특별한 사안에 대한 ‘직접 투표’와 이런 기본 토대를 바탕으로 꽤 견고한 연방주의적 통치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의 고유한 통치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여기서 소개되는 연방 검사제도에 있어서 프랑스나 미국과는 달리 각 주의 사법 체계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으로 이것은 각 연방법에 관련한 사안에도 주정부에 상당한 권한이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스위스 금융 카르텔은 스위스 내의 정치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그런 연유에는 스위스 경제에서 이 국제 금융업은 적지 않은 자본을 창출하고 이것을 스위스 국내에 재창출을 하는 즉, 시민들에게도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는 등의 견고한 정치경제적 시스템인데요. 이러한 과정에는 대체로 정치권의 지원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시스템에 정치권이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이러한 스위스 전체의 정치경제적 외부돈으로 인한 경제 순환행태가 그동안 이 검은 돈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게 된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상 남의 돈으로 자본의 재창출을 해왔던 것으로 지난 2차대전 기간에 유대인들이 맡긴 돈을 관련 증언이 나타나기 전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던 사례나 각종 범죄 단체의 검은 돈을 캐내기 위해 유럽의 여러 수사당국들이 스위스 당국에 수사 요청을 해왔을 때도 그것을 갖은 수단으로 무시해 왔던 연유에는 이러한 기조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2018년 현재에는 스위스-EU가 맺은 범죄와 관련된 계좌 사실 확인 협정이라든지 2008년 이후에 미국의 검은돈 추적과 관련된 미국 사법 당국에 의한 압력에 다소간 굴복해 스위스 금융권이 ‘계좌인의 사실 관계 통보’와 같은 정보 제공에 나서고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장 지글러가 이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마약 자금과 같은 비윤리적인 검은 돈을 아무런 윤리적 양심 없이 마구잡이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통해 스위스 은행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고, 그리고 이러한 카르텔에 연계되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스위스 정치권의 부패와 비윤리적 개입을 폭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스위스의 많은 변호사들이 이러한 검은돈을 관리하는 ‘페이퍼 컴퍼니’를 위해 일하는 등의 윤리적 문제는 아마도 덤이었겠죠. 지글러 자신의 의원으로서 그리고 학자적 양심으로 진실은 알려져야만 한다는 절박한 소신이 이 글의 출판의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외부에 꽤 훌륭한 민주주의 정치로 어느 국가 못지않게 부유하고 부강한 나라로 알려져있던 스위스 국민으로서는 장 지글러의 이 책이 매우 못마땅했을 겁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이익과 관련된 자들이 그를 죽이겠다고 수없이 협박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더군다나 1991년에는 이 책으로 의원으로서 면책특권까지 박탈당했으므로 저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의 고된 개인사를 참으로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에 선뜻 나선 저자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노엄 촘스키’와 비견될 만한 지식인이 또 존재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검은 돈은 왜 스위스로 몰리는가’는 그러한 평가를 받을만 하다고 여겨지네요. 끝으로 얼마 전 제러드 듀발의 글에서 봤던, ‘성찰과 행동을 결혼시키자’ 는 문구가 문득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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