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 미국이 낳은 열병의 정체
모리모토 안리 지음, 강혜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2016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반지성주의’의 열풍을 일으킨 이 책의 저자 모리모토 안리의 간단한 이력을 접한 순간 조금 놀라웠는데요. 저자 자신이 신학을 전공하고 국제기독교대학의 목사까지 역임했던 행적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목사라고 봐도 무방한 사람이 반지성주의라는 주제 들고 글을 썼다는 자체가 대담하게 느껴지면서도 다소 의외라고 느낀 것이 이 책을 읽기 전에 느꼈던 감정이었습니다.

우선 반지성주의에 대한 정의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웹을 비롯한 여기저기에 이에 해당하는 설명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데요. 저자인 모리모토 안리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반지성주의란 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 의식이 아니라 지성의 자기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며, 이러한 반지성주의의 입장에 있는 의견이나 사람들은 지성이 갖고 있는 특수한 성격, 즉 지식 자체가 대체로 권위를 뛰어넘기도 한다는 문제와 지식인들이 종종 스스로 그런 권력이나 제도의 일부가 된다고 평가한 것과 같이 제가 느끼기에는 지식 자체가 과도화게 해석되고 인정되어 그것에 대한 우려로 ‘반지성주의’를 이해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위키 백과를 비롯한 다수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다소 적대적이고 노골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단 저로서도 반지성주의적 운동이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에서 분명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포퓰리즘과 포퓰리스트를 비롯한 일련의 우려할 만한 정치적 분위기가 반지성주의와 그 궤가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죠.

세계 지성사에서 반지성주의를 최초로 소개한 ‘미국 생활에서의 반지성주의’를 쓴 미국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를 모리모토 교수도 언급하고 있는데요. 포퓰리즘 연구를 거의 최초로 시도한 폴 태가트와 유사하게 호프스태터 역시 ‘반지성주의 연구’에서 동일한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미국에서 초기 청교도 유입의 영향으로 비롯된 미국 독립 혁명과 그 이후의 초기 미국의 청교도적 분위기, 그리고 독립 운동에 관여한 소위 미국의 국부들의 행적들을 연관지어 대체로 정교 분리를 강조했던 미국 초기 사회가 오늘날 백인 상류층과 정치종교적인 백인들에 의해 어떻게 세속의 불합리한 상황에 눈감고 종교적인 구원 사회에 몰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토마스 제퍼슨이 앞으로의 독립 미국이 정교 분리 국가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았으나, 모리모토 교수가 설명하듯이 초기 미국 식민지에 학교보다 교회가 먼저 들어선 연유로 현재의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기독교적 분위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레이건의 대통령 퇴임사로 설명되는 다소간의 자신의 기독교적 가치 지향과 40세 이전까지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그 이후 종교에 귀의해 다른 사람이 되었던 조지 W. 부시의 일화 등으로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맏형이라 자임하는 미국의 정치적 분위기가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적 정치인들이 과도하게 언론이나 매체를 통해 기독교적 체험을 비중있게 다루고 그것을 재차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국한된 문제라고 보기에는 민주적 제도 하에 헌법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교 분리의 원칙에 다소 편파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미국 독립 선언서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개개인은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아도 도덕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며,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를 분별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신념이지만 이런 능력이 이성의 능력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아마도 지성의 측면에서 이성이 역할을 하는 부분까지 공통적으로 평등하다고 여기는 것은 반지성주의적 측면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부분적으로 확대 해석되거나 다르게 인용된 평등의 개념이 지성에 대한 인식을 무시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듯 한데요. 앞서 말한대로 지성이 때로는 권위로 나타나거나 권력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제는 계몽주의적 입장에서도 휴머니즘적 측면에서도 매우 좋지 않은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모리모토 교수는 이렇게 지성의 지배에 대한 반역은 이처럼 평등이라는 이념을 원동력으로 허고 있는데,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단순히 지적인 것이나 지적인 사람에 대한 반발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것은 지식의 권위에 대한 반발이며 이러한 반역에 의해 때로는 반지성주의가 지성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예측되지 못하는 반대급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습니다.

책을 일독하고 나서 약간 뒷맛이 개운하지 못했는데요, 반지성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이나 부정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 가치인 ‘정교 분리’에 대한 입장이 대체로 모호해서 그가 신학을 전공한 학자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전의 가톨릭적 정교 일치 세계는 당시의 인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충분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에도 중동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유일의 종교 원칙이 어떤식으로 표출되는지 알 수 있지요. 이런 모호한 부분을 제외하면 미국의 역사와 초기부터 안착된 현재 미국 사회의 분위기, 기독교적 운동과 그와 관련된 인사들의 행적들까지 세세히 제공하여 우리가 ‘반지성주의’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러한 정보가 미국의 과거와 지금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어서 다소 제한적이긴 합니다만 이러한 미국 자체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정보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봐도 개인적으로는 무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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