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수수께끼
존 던 지음, 강철웅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에게 ‘캠브리지 학파’ 의 일원으로 알려진 존 던 교수의 ‘민주주의 수수께끼’를 읽었습니다. 저에게는 존 던 교수의 글이 두번째인데요. 며칠전에 ‘민주주의의 마법에서 깨어나라’ 를 꽤 의미있게 소화하고 나서 다시금 존 던 교수의 글을 검색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

2004년에 씌여진 것으로 보이는 헌사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짤막한 글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존 던 교수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김 전 대통령이 영국 체류 시절, 그 즈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김 전 대통령을 잠시 떠올려보기도 했네요.

이 책은 우리가 간과하거나 빠트리기 쉬운 민주주의의 발생 초기 부터 테르미도르 시기의 공화주의 혁명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기순차적으로 서술되고 있어서 흐름을 집고 넘어가는데도 큰 도움이 되는데요. 그리스와 자치주 시절의 네덜란드, 미국 독립전쟁, 그리고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과 이후 로베스피에르로 비롯되는 자코뱅 당 집권시기 등에 대한 최소한의 배경 지식이 있어야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데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번역은 평범한 수준이라고 생각되고요. 개인적으로는 테르미도르에 대한 서술이 나오는 3장 전까지는 꽤 잘 읽혔던 것 같습니다.

초기 아테네 시절의 직접 민주주의 형태의 정치는 노예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 기본 상태에 투표권과 참정권리가 제한적으로 일부 사람들에게만 부여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와 특징이 명확했습니다. 저는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아프리카 노예를 바탕으로 경제적 특권을 지닌 당시 남부인들의 상황이 아테네 시절의 권리를 가졌던 소수 남성 계층과 동일시 되었는데요. 프랑스 혁명 시절의 사상가 시에예스가 ‘특권층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의 당위성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플라톤이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배심 살인’ 을 당한것으로 극도의 민주주의 비판자가 되긴 했지만 그가 당시 민주주의를 비판 해석한 바대로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지주들이 노예 경제를 거느리며 특권을 유지한 것은 사실상 민주주의를 거부한 것으로 봐야할 텐데요. 더욱이 아테네와 미국 초기에 노예가 밀접하게 붙어있어서 민주주의 체제 자체로 이상적인 목표를 삼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저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즉, 노예 제도라는 폭력에 기반한 경제적 특권이 앞선 이들과 함께 했기에 현실적 결핍없이 민주주의의 이상에 다가설 수 있었고 그래서 완벽한 민주주의란 오늘날 현실에서 가동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자본주의를 가장 잡음없이 행할 수 있는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를 선호했던 이유도 크게 작용했으므로 시장의 권리를 크게 강조했던 많은 경제학자들도 민주주의에 대해 이러한 인식을 갖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작은 정부’를 민주정이 해낼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죠.

플라톤도 역시 집단 이익보다는 공동선에 헌신하는 폴리테이아에 대해 긍정했고,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데모크라티아로 칭하게 되는 옛 민주주의 형태와 더 나아가서는 우중 지배로 불리우는 오클로크라티아를 멸칭적인 기준으로 비판했습니다. 샤피로 교수가 언급한대로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에게 잠정적인 부의 재분배를 바란다면 자본주의를 이식한 경제 제도하의 여러 모순과 이익간의 잡음들을 해결하고 소수의 기득권들이 민주주의가 중우 정치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에 당연히 반박하며 평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제적 분배 문제가 결코 왜곡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해야 하겠죠. 민주주의가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 기재라고 거듭 재생산 하는 이론에도 더욱 비판해야할 것입니다.

다수의 여러 의견들이 폭발적으로 제시되는 소위 다수의 의한 정치는 그러한 의견 갈등과 대립을 설득과 타협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공화입니다. 과거 동서 냉전의 결과로 민주주의 자체의 성찰과 반성없이 오늘날까지 이르긴 했습니다만 삼권 분립과 헌법에 기반한 법에 의한 통치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엘리트주의적 정치주의에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교활하고 왜곡을 일삼는 직업 정치인들’에 대한 시민사회와 시민들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키워야 하겠죠. 이렇게 제가 제기한 우려를 3부의 테르미도르에 담고 있으며, 그런 연유로 4부에서 밝힌 그것은 하나의 핵심적인 판단을 아주 올바르게 내리는 민주주의는 한 나라 안에서 정치적 선택을 조직하고 시행하기 위한 설득력 있는 혹은 신뢰할 만한 묘방을 제공하거나 못할 수도 있다고 던 교수의 ‘의도적인 불확실한 결말’ 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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